인도 철학, 특히 베단타(Vedanta) 철학에서의 핵심 개념 중 하나. 그러나 베단타 철학 계열 내에서도 학파에 따라 어느 정도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대략 둘로 나누어 정리할 수 있는데 하나는 '마술' 혹은 '환상' , '환영' (幻影)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는 경우이고, 또 다른 하나는 '현상 세계를 나타나게 하는 원리' , '신비스러운 창조적 힘' 등의 의미로 이해되는 경우이다. 전자는 마야를 부정적인 맥락의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이고, 후자는 비교적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마야 개념에 대한 이 같은 이해의 차이는 곧 다양한 현상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둘 중 어느 것으로 사용하느냐의 차이가, 곧 다양한 현상 세계를 전혀 허구적인 '환상' 으로만 이해하느냐 아니면 궁극적인 실재에 근거하여 존재하는 것으로서 어느정도 실재성을 인정하느냐의 차이로 이어지는 것이다.
〔개념의 발전〕 후기 우파니샤드에 해당하는 《슈베타슈바타라 우파니샤드》에서 마야라는 개념이 비로소 분명하게 나타난다. 여기에서는 우주의 궁극적 실재인 브라만(Brahman)을 인격신 이슈바라(I'svara)로 파악하며, 이 세계는 마술사(māyin)와 같은 신의 환술(幻術, māyā)에 의하여 나타내 보여진다고 말하고 있다. 이 내용은 브라만을 우주의 궁극적인 실재로 인정하고, 현상 세계를 단지 인간의 무지(無知)로 인한 환술로 보는 불이론적(不二論的) 베단타(Advaita Vedānta) 철학의 견해를 이미 어느 정도 암시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슈베타슈바타라 우파니샤드》에서는 다른 한편으로, 다양한 현상 세계가 브라만으로부터 전개되어 나온 것이거나 혹은 그것의 변형인 만큼 단지 허구적인 환상일 수만은 없고, 오히려 브라만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보는 일종의 범신론적(汎神論的) 사상도 발견된다. 즉 《우파니샤드》에는 세계를 브라만의 전개로 보는 전변설(轉變說)과, 세계는 브라만이라는 유일의 실재를 근거로 하되 단순히 가상적으로 나타나 보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가현설(假現說)이 둘 다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현상 세계를 전자의 입장에서 보는 것은 어느 정도 그 실재성을 인정하는 긍정적 이해이고, 후자의 입장은 현상 세계를 전혀 허구적인 가상으로만 간주하는 부정적 이해라고 할 수 있다.
마야의 개념이 본격적으로 부정적인 의미의 맥락에서 사용된 것은 이른바 불이론적 베단타 철학이 확립되면서 부터였다. 베단타라는 말은 본래 '베다의 끝 혹은 목적' 이라는 뜻으로, 우파니샤드(Upanisad)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주의 궁극적이고 통일적인 원리를 추구하는 우파니샤드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해석하고 발전시킨 철학 체계를 지칭하기도 한다. 모든 베단타 철학자들은 다양한 현상 세계의 배후에 단 하나의 궁극적이고 통일적인 실재가 있다는 일원론(-元論)적인 세계관을 따른다. 그러나 이 궁극적인 실재와 현상 세계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의 문제는 베단타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후대로 이어지면서 베단타 철학 계통 내에서도 여러 학파를 성립시켰는데, 800년경에 인도 철학의 대가인 상카라(Śaṅkara)에 의해 확립된 불이론적 베단타 철학은 오직 브라만만이 절대적 존재라는 철저한 일원론적 실재관(實在觀)을 전개하였다. 다양성의 세계는, 유일무이한 실재인 브라만을 가리고 있는 베일과 같으나 알고 보면 단지 가상(假象)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상카라에 의하면 브라만은 모든 형상(形相)과 성질과 차별성과 다양성을 초월하는 절대적 존재로서, 브라만만이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브라만만이 유일의 실재이기 때문에, 자연 현상 세계의 모든 다양성은 부정된다. 또 그는 이 하나의 실재인 브라만은 우리의 무지(無知)에 근거한 환술의 힘 때문에 잡다한 이름과 형상을 가진 현상 세계로 나타나 보이게 된다고 하였다. 즉 세계는 브라만의 가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마야의 개념은 인간의 무지로 인한 인식 오류 현상에 해당하는 의미를 지닌다. 실재하지도 않는 것을 실재하는 것처럼 인식하는 현상을 마야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일종의 환술과 같은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결국 철저한 일원론적 철학을 전개하는 불이론적 베단타 학파에서의 마야 개념은 하나인 궁극적 실재의 세계를 다양하고 차별적인 현상 세계로 잘못 인식하는 현상 그 자체를 지칭하거나, 혹은 그 같은 인식 오류에 의해 전개된 가현적인 현상 세계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인간에게 그 같은 인식 오류를 유발하는 원인적인 어떤 힘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이해될 수 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 상당히 부정적인 맥락에서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마야의 개념에 비교적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입장도 제기되었다. 마야 개념에 대한 긍정적인 사용은 현상 세계에 대한 긍정적 이해로 이어진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이른바 한정 불이론(限定不二論, Viśiṣ-ṭādvaita)을 들 수 있는데, 이 철학을 전개한 라마누자(Rā-mānuja, 1055?~1139)는 상카라의 불이론적 철학을 신랄하게 공격하면서 독자적인 베단타 철학의 전통을 세웠다. 이 같은 한정 불이론 철학의 등장은 근본적으로 불이론적 철학이 종교적인 면에서 지니는 문제점에 기인하는 것이다. 불이론적 철학의 원리에 의하면 인격적인 신과 개인적인 영혼이라는 것은 무지나 환술에 의한 브라만의 환상적 나타남에 지나지 않으며, 영혼의 고통과 속박과 윤회라는 것도 결국 환술이며, 해탈 또한 마찬가지이다. 결국 상카라의 철학은 힌두교인들이 최고의 길로 간주하는 모든 종교적 신앙과 추구를 궁극적으로 무의미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라마누자의 사상은 기본적으로 비슈누(Viṣṇu) 신에 대한 신앙의 정통성과 신앙을 통한 구원의 길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브라만을 유일한 실재로 인정하는 것은 라마누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 브라만은 상카라의 불이론적 철학에 서처럼 아무런 속성도 없는 순수한 비인격적 존재가 아니라, 속성과 차별성을 지닌 인격적인 신이다. 다시 말해서 브라만은 다양성과 속성을 지닌 일자(一者)인 것이다. 영혼과 물질 역시 브라만의 속성으로서 실재하는 존재들로 간주된다. 따라서 라마누자에게 있어서 마야 개념은 무지 혹은 그로 인한 환술을 의미하지 않고 '신의 창조적 힘' 을 의미한다. 라마누자에 의하면 세계는 이미 브라만 안에 내재하여 있다가 그로부터 전변(轉變)하여 나온 실재이다. 마야의 개념은 이러한 현상 세계의 전변을 가능하게 해주는 신의 창조적 원리 혹은 힘의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후의 사상가들에게 있어서도 마야의 개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위의 두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현상 세계가 환상으로서 나타나 보이게끔 하는 일종의 원리라는 의미로 마야의 개념을 사용하는 경우는, 그것이 곧 인간 무지의 측면을 드러내는 부정적인 맥락에서 사용되는 경우이다. 현상 세계가 궁극 존재로서의 신의 신비한 능력, 힘에 의해 전개되어 나온 것으로 파악하면서 마야의 개념을 그러한 신의 능력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되는 경우이다. 이러한 두 가지 범주에서의 마야 개념과 대비되는 것은 샤이바 싯단타 학파(Śaiva-siddhānta)에서에서의 마야 개념이다. 샤이바 싯단타 학파는 13세기에 일어난 쉬바파의 하나로서 신과 인간의 차이, 그리고 인간의 죄와 신의 은총을 강조하면서 쉬바 신앙에 신학적 · 철학적 기반을 제공하였다. 여기에서는 마야 개념을 세계의 질료인(質料因)으로 해석한다. 이들에 의하면 신은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無所不在)한 존재이다. 신은 세계를 창조하고, 보호하고, 파괴하고, 영혼들을 혼미하게 하며, 해방시키기도 하는 다섯 가지 활동을 한다고 한다. 이 다섯 가지 활동을 할 수 있는 힘(śakti)은 신의 본질적인 면으로서, 의식이 있고 불변하며 영원한 에너지이다. 또한 신은 그의 본질적인 면은 아니지만 세계의 질료인이 되는 물질적인 힘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마야라는 것이다. 마야는 영혼을 속박하는 비정신물 혹은 부정물(不淨物)의 하나로서, 그것으로부터 물질 세계가 전개되어 나온다고 한다. 마야라고 하는 물질적 요인이 인간의 영혼을 묶음으로써, 인간의 영혼 앞에 여러 현상들, 장소들, 대상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이 세 가지 부정물, 즉 마야 · 무지 · 업(業)에 속박되어 있어 자유롭지 못하고 고통을 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처럼 영혼을 속박하는 부정물들도 모두 신의 힘과 작용에 근거한 것으로 인식 한다는 점이다.
〔의 미〕 마야의 개념은 인도의 여러 학파에 따라 각기 다른 내용으로 설명되었지만, 그들이 마야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자 했던 근본 의미는 일관되어 있다. 인도인들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절대적인 하나의 궁극 존재에 근거하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근거하여 다양한 현상 세계가 성립하는가에 대한 설명은 서로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는 경우도 있으나, 일관된 마야의 개념은 현상 세계들이 궁극 존재에 근거하는 구체적 양상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양상을 단지 인식 오류적인 환상 현상으로 파악하든, 아니면 신의 이해할 수 없는 작용에 의한 전개로 파악하든, 마야의 개념은 이 현상 세계와 궁극 존재를 이어 주는 연결 고리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 참고문헌 P. Deussen, The System ofthe Vedanta, Chicago, 1912/E. Deutsch · J.A.B. van Buitenen eds., A Sourcebook of Advaita Vedanta, Honolulu, 1972/J. Carman, The Theology of Ramanuja, New Heaven, 1974/John Grimes, A Concise Dictionary of Indian Philosophy, New York, 1989/Paul D. Devanandan, The Concept ofMaya : An Essay in Historical Survey of the Hindu Theory ofthe World, with Special Reference to the Vedanta, London, 1950/ Ruth Reyna, The Concept of Mayafro the Vedas to the Twentieth Century, London, 1962/ 길희성, 《인도 철학사》, 민음사, 1984. 〔吳智燮〕
마야
〔산〕Māy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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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