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로 (?~580경)

〔영〕Mau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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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도로부터 호수에 빠진 플라치도를 구하라는 명을 받는 마오로(프라 필리포 리피 작).

성 베네딕도로부터 호수에 빠진 플라치도를 구하라는 명을 받는 마오로(프라 필리포 리피 작).

성인. 베네딕도회원. 한때 수비아코(Subiaco) 수도원의 아빠스였다고 한다. 축일은 1월 15일(현재는 10월 5일). 로마의 원로원 의원 명문 가문인 에귀시우스(Equtius)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나이로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 들어간 후, 성 베네딕도의 제자 가운데 가장 신심과 학덕이 뛰어난 인물이 되었다. 마오로에 관한 유일한 자료는 성 그레고리오 대교황의 《대화》(Dialogi Ⅱ, 3-7)인데 성 베네딕도와 성 마오로의 만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성 베네딕도가 그의 방에서 영적인 눈으로 성 플라치도가 호수에 빠졌음을 알고는 마오로에게 명하여 그를 구하게 하였다. 마오로는 스승의 명을 따라 이미 물결에 휩쓸려 버린 플라치도를 물위로 걸어가 수비아코로 다시 데려왔다. 순종에서 비롯된 이러한 기적은 그에 대한 동료 수도자들의 존경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529년 경에 성 베네딕도가 새로운 수도원을 설립하기 위하여 몬테 카시노(Monte Cassino)에 갔을 때, 성 베네딕도의 계승자로서 수비아코의 아빠스가 된 마오로는 형제들을 기도와 고행의 생활로 이끌어 갔으며, 많은 기적들을 행하였다.
몬테 카시노의 수사인 파우스토(Faustus)에 의해 쓰여진 것으로 알려진 《성 마오로의 생애》(Vita Sancti Mauri, BHL, 5772~5776)는, 실제로는 863년경에 글랑포이유(Glanfeuil)의 오도(0do) 아빠스에 의해서 쓰여진 것이다. 이 책에 의하면, 542년 망(Mans) 주교의 요청을 받은 성 베네딕도에 의해 갈리아 지방에 수도원을 세우도록 파견된 마오로는 글랑포이유의 루아르 강변에 수도원을 창설하였다. 그는 아빠스로서 38년을 지낸 후, 그 직책을 사임하고 수도원에서 약 50m 가량 떨어진 암자에서 은수 생활을 시작하였으나 2년 뒤 병을 얻어 580년경에 사망하였다. 성 마르티노 성당의 제대 오른쪽에 안장된 성 마오로는, 오늘날 성 베네딕도의 제자이면서도 베네딕도 수도회의 훌륭한 창설자로 간주되고 있다. 예수의 십자가의 작은 조각을 가지고 마오로 성인의 전구를 청하며 병자를 축복하는 이른바 마오로의 축복은 오늘날에도 행해지고 있으나, 1959년 3월 6일 이후로는 십자가 조각 대신에 베네딕도회의 메달이 사용되고 있다.
※ 참고문헌  V. Gellhaus, 《NCE》 9, p. 510/ R. Bauerreis, 《LThK》 7, pp. 198~199/T de Morembert, 《Cath》 8, p. 9461 최정오 편, 《가톨릭 성인 사전》, 계성 출판사, p. 261.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