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야, 조제프 프랑수아 마리 안 드 모이리아크 드 (1669~1748)

〔프〕Mailla, Joseph-François-Marie-Anne de Moyriac 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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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소속 중국 선교사. 역사가. 지도 제작자. 세례명은 요셉. 중국명은 풍병정(馮秉正). 자는 단우(端友) 1669년 12월 16일 프랑스 벨리(Belley) 교구의 마이야크(Maillac) 성(城)에서 뷔지(Bugey)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1686년 9월 10일 리용(Lyon) 관구의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중국 선교사를 자원한 그는 1702년 종신 허원을 한 후 프랑스를 출발하여 1703년 6월 16일 마카오에 도착하였다. 이후 마이야 신부는 광동성(廣東省) 광주(廣州)에 머무르면서 중국의 언어와 풍속을 익히고 1705년 9월부터 강서(江西) 지방에서 전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707년에 발생한 세 차례의 천주교 박해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 무렵 청의 강희제(康熙帝, 1654~1722)는 중국에 파견된 예수회 선교사들이 천문학 및 역법, 지리학에 밝은 것을 감안하여 중국의 지도를 제작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역사 및 지리학에 뛰어났던 마이야 신부는 1710년부터 1714년까지 동료 레지스(J.B. Régis, 雷孝思), 앵드레(Romain Hinderer, 德瑪諾) 신부와 함께 하남(河南), 강남(江南), 절강(浙江), 복건(福建), , 대만(臺灣) 지방 등을 직접 여행하면서 토지를 측량하여 지도를 완성하였다. 그 후 지도 제작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강희제의 수행원으로 임명되어 북경에 머물렀는데, 그곳에서 그는 만주어를 배웠으며, 주희(朱熹)의 저서라고 전해지는 중국의 역사서 《통감강목》(通鑑綱目)을 요약하여 프랑스어로 번역하였다. 1737년에 이를 출판하기 위해 프랑스로 보냈으나 당시에는 간행되지 못하다가 그가 죽은 후, 예수회 소속 중국 선교사 그로지에(Gosier, 格洛西) 신부에 의해 1777~1785년 《중국 통사(通史)》(Histoire géné-rale de la Chine, 전 12권)로 파리에서 간행되어 유럽인들의 중국 연구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그는 <중국 대지도>(Grande Carte manuscrite de Chine), <중국의 몽고 지방 및 인접 지역의 지도>(Carte de la Tartarie chinoise et des pays limitrophes), <아무르, 북해와 동해 사이에 있는 지방들의 지도>(Carte des pays compris entre I'Amour, la mer du Nord [glaciale] et la mer Orientale) 등을 제작하였으며, <직접 관찰한 중국 여러 지방 지도의 경도(經度)와 위도(緯度) 목록>(Catalogue des longitudes et des latitudes observées directe-ment en levant les cartes des provinces de Chine)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예수회 회원으로서 포교지 중국에서의 천주교 박해 상황 및 전교 활동상을 다룬 《서한집》(Lettres édifiantes et curieuses)을 저술하였으며, 대만의 초기 역사를 다른 저술을 남기기도 하였는데, 이 책은 영어로 번역되어 1774년에 《대만의 초기 역사》(The Early History of Formosa)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한편 이러한 지도 제작 및 저작 활동 외에도 북경에 있는 동안 예수 성심에 대한 신심을 전파했고, 성체회(Congregation du Saint Sacra-ment)를 소개하기도 하였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동안 뛰어난 중국어 실력으로 중국의 예술 · 과학 · 신화(神話) · 역사 등에 관한 지식을 많이 쌓은 마이야 신부는 이를 기초로 하여 《중국의 풍속과 관습》(Mœurs et usages des Chinois) 《주역에 대한 자의적(字意的) 번역》(Version littérale du I-king 易經) 등의 저서를 저술하였으며, 주일 복음 · 성인들의 생애 · 기도서 · 성심에 대한 기도 · 이냐시오의 영성 수련 등에 관한 많은 한서(漢書)를 저술하여 천주교 교리를 전파하는 데도 노력하였다. 그러던 중 1748년 2월에 얻은 병으로 인해 그 해 6월 28일 북경에서 사망하였다. 그가 사망하자 건륭제(乾隆帝, 1735~1795)는 전교 활동과 함께 서양역법 및 과학 기술 서적 등의 선진 문명을 중국에 소개하고 전파시킨 그의 업적을 기려 장례 비용을 지불하였으며, 장례식 때는 고관들을 비롯한 700여 명의 중국인들이 참석하였다.
마이야 신부가 남긴 중국어 종교서로는, 성체회의 규율을 설명한 《성체인애경규조》 (聖體仁愛經規條, 1719) 예수 성심에 대한 개론으로 성모 성심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는 《성심규조》(聖心規條)를 비롯하여 《성세추요》(盛世芻蕘), 《성년광익》(聖年廣益), 《성경광익》(聖經 廣益), 《구진자증》(求真自證), , 《붕래집설》(朋來集說) , 《피정휘초》(┝靜彙纱) 등이 있다.
그의 저서 중 일부는 일찍이 조선에 전래되어 이익(李濯), 안정복(安鼎福), 홍정하(洪正河), 이헌경(李獻慶), 신후담(愼後聃), 이벽(李檗), 이가환(李家煥) 등의 학자들과 초기 천주교 신자들에게 널리 소개되었는데, 1733년 북경에서 간행된 《성세추요》는 간행 직후 조선에 전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소원(溯源) · 구속(救贖) · 영혼(靈魂) · 상벌(賞罰) · 이단(異端) 등 총 다섯 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하느님의 존재, 천지 만물의 창조, 원죄와 구원, 영혼 불멸, 선행과 악행에 따른 상벌 규정, 그리고 미신 금지, 척불(斥佛), 척도(斥道) 등 천주교의 기본 교리가 비교적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이 호교서는 유교의 근본 이념에 어긋난다 하여 척사론자(斥邪論者)들로부터 매우 신랄한 비판을 받았으나 천주교의 교리를 쉽게 정리하였기 때문에 한글로 번역되어 신자들에게 널리 읽혀졌다.
《성년광익》과 《성경광익》도 1801년 신유박해 때의 기록에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그전에 조선에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들 역시 한글로 번역되어 신자들에게 널리 알려졌는데, 1738년에 간행된 《성년광익》은 연중 매일의 성인 · 성녀의 행적을 약술한 일종의 성인전으로서, 신자들에게 성인의 경언(警言)과 성전(聖傳)을 알림으로써 신앙심을 고취시킬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상하 2권으로 1740년에 간행된 《성경광익》은 연중주일과 축일의 복음 성서에 대한 해설서라고 할 수 있는데, 묵상에 대한 설명과 함께 다양한 묵상법을 소개한 뒤 묵상의 자료로서 성서 구절을 제시하고 있으며, 묵상 후 실천해야 할 덕목〔宜行之德〕과 묵상을 완결시키고 마땅히 해야 할 기도〔當務之求〕도 제시하고 있다. (→ 《성경광익》 ; 《성년광익》 ; 《성세추요》 ; 한역 서학서)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徐宗澤, 《明清間耶蘇會士譯著提要》, 中華書局仁行, 1958, pp. 408~409/ 馮作民 編譯, 《清康乾兩帝與天主 敎傳敎史》, 全史書局總經銷, 1966/ 方豪, 《中國天主教史人物傳》 第二冊, 香港公教真理學會, 1970, pp. 298~311/ Aloys Pfister, 馮承鈞 譯, 《入華耶會士列傳》, 商務印書館, 1938/ Louis Pfister, Notices Biographiquess et Bibliographiques II, Chang-hai, 1932, pp. 596~605/ J.Schiitte, 《LTnK》 6, pp. 1297~1298/ J. Dehergne, 《Cath》 8, p. 173/ J.V.Mentag,《NCE》 9, p. 79. 〔李裕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