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스, 제임스 (1926~ )

〔영〕Michaels, J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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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마이클스 주교.

제임스 마이클스 주교.

주교.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세례명은 야고보. 한국 성은 권(權). 1926년 5월 30일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나 네브라스카(Nebraska)주(州)의 골롬반 대신 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수학한 후 1951년 12월 21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듬해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원에 진학하여 1955년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본국으로 돌아가 매사추세츠 주의 밀턴(Miiton)에 있는 골롬반 대신학교에서 교리 및 윤리 신학을, 1956년에는 논리학 및 라틴어를 강의하였다. 이어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1957년 11월 입국하였다.
광주 대목구에서 본격적인 사목 활동을 위해 한국어와 풍속을 익힌 후, 1958년 6월 광주 북동(北洞) 본당 보좌 신부로, 그리고 9월에는 노안(老安) 본당 보좌 신부로 잠시 사목한 마이클스 신부는, 1959년 5월 전남 보성(寶城)의 벌교(筏敎) 본당 보좌 신부로 전임되었다가 이듬해 4월 벌교 본당 2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이어 벌교 본당 관할인 고흥(高興)의 소록도(小鹿島)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자 1960년 8월 13일 초대 주임 신부로 부임하였는데, 그는 부임 초기부터 성당 및 사제관의 건립을 위해 매우 적극적으로 노력하여 1961년 10월 11일에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1964년 1월 휴가차 본국으로 돌아가기까지 약 3년 반 동안 소록도 본당에서 전교 및 사목 활동을 전개한 마이클스 신부는, 주위로부터 소외된 나환자들을 위해 각종 시설을 마련해 주는 등 남다른 관심과 사랑을 쏟았다.
한편 1962년 3월 10일 한국 천주교회의 교계 제도 설정에 따라 광주 대목구가 광주대교구로 승격된 후 관할 지역의 교세가 계속 신장되고 교구 업무도 점차 증대되었다. 이에 교구 행정 업무를 보다 원활히 추진하기 위해 당시 광주대교구장 헨리(Henry, 玄海) 대주교는 1965년 1월 15일 마이클스 신부를 부주교로 임명하였다. 이듬해 3월 5일에는 광주대교구 보좌 주교로 임명되어 4월 14일 미국 세인트 폴(St. Paul) 대성당에서 광주대교구 보좌 주교 겸 버브(Verbe) 명의 주교로 주교 성성식을 가진 마이클스 주교는, 그 후 헨리 대주교를 보좌하여 광주대교구의 교세 신장과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1969년 1~10월 호남동(湖南洞) 본당 2대 주임으로 사목하면서 부임 초기부터 본당의 구역 및 반의 조직을 새로 편성하는 등 신앙 공동체 모임의 활성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고, 소홀해지기 쉬운 각종 전례의 의미를 강화시켰으며, 성가대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1970년에는 전남 나주(羅州)의 영산포(榮山浦) 본당 임시 주임으로 파견되어 약 3개월 가량 사목하였으며, 1971년 8월에는 초대 주임 신부로 있었던 소록도 본당의 7대 주임으로 다시 임명되어 이듬해 9월까지 사목하였다. 이때 광주 까리따스 수녀회의 영성 지도 신부를 맡기도 하였다.
그 후 1973년 4월 3일에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West Virginia) 주의 휠링(Wheeling, 1974년 Wheeling Charleston으로 명의가 변경됨) 교구 보좌 주교로 임명되어 본국으로 돌아가 1987년 9월 22일까지 사목했으며, 현재는 은퇴하여 베리빌(Beryville) 교구의 시토회(Cisterian) 수도원내 사제관에 거주하고 있다.
※ 참고문헌  Jeremiah F. Kelly, The Splendid Cause(1933~1983), Columban Fathers, 1984/ 1994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p. 460/ D.A. Boland, 《NCE》 3, p. 1037/ 《가톨릭 사전》 <가톨릭 시보> 510호(1966. 3. 13), 517호(1966. 5. 1), 861 호(1973. 4. 15)/ 《경향잡지》 1178호(1966. 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천주교광주대교구, 《광주대교구 50년사》, 빛고을출판사, 1990. 〔李裕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