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송파구 마천2동 93-5 소재. 1971년 9월 17일 천호동 본당으로부터 분리 · 설립되었으며, 1981년 3월 본당 이름을 거여동 본당에서 마천동 본당으로 변경하였다. 주보는 성 아우구스티노. 관할 구역은 송파구 거여1 · 2동, 마천1 · 2동과 오금동 일부 지역. 〔교 세〕 1971년 719명, 1974년 1,634명, 1980년 2,888명, 1983년 3,063명, 1986년 5,082명, 1988년 7,128명 1990년 5,462명, 1994년 6,740명. 〔역대 신부〕 임시 만니온(F. Mannion, 명) 프란치스코(1971. 9~12), 초대 오하라(J. O'Hara, 하) 요한(1971. 12~1975. 2) 2대 물둔(P. Muldoon, 조) 파트리치오(1975. 2~1978. 9), 3대 플라나간(J. Flanagan, 구) 요셉(1978. 9~1982. 6), 4대 모리시(M. Morissy, 모) 미카엘(1982. 6~1986. 5), 임시 박동균(朴東均) 도나도(1986.5~8), 5대 박항오(朴M垣) 마르티노(1986. 8~1991. 9), 6대 김창만(金昌滿) 안드레아(1991. 9~1996. 10), 7대 최익철(崔益喆)베네딕도(1996. 10~현재).
〔공소 시대〕 이 지역의 신앙 공동체는 1966년 8월경 천호동 본당 관할인 마천동과 거여동 일대에 서울시의 각처로부터 이주해 온 철거민들이 정착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중 4~5명의 신자들이 1967년 4월 이심원(시메온)의 집에 모여 공소 예절을 거행하였고 8월에는 회장 최재환(마태오)을 중심으로 거여동 공소를 신설하였다. 이어 1969년 11월에는 당시 서울대교구 경리부장 경갑룡(景甲龍, 요셉) 신부의 주선으로 혜화동 본당으로부터 현 본당 소재지의 부지 1,143평을 기증받았다. 여기에 골롬반 외방선교회 한국 지부로부터 본당 설립 기금을 협조받아 1971년 9월 5일 성당(58.8평) 및 사제관(19.6평)을 신축하고 그 해 9월 17일 본당으로 승격하였으며, 사목권은 골롬반 외방선교회에 위임되었다.
〔설립과 변모〕 마천동 본당은 설립 이후 1986년 5월 4대 주임 모리시 신부가 전임되기까지 약 15년 동안 골롬반 외방선교회에서 담당하였는데, 설립 당시의 관할구역은 마천1 · 2동, 거여동, 이동, 방이동, 오금동, 문정동, 장지동, 가락동, 송파동 및 경기도 광주군 서부면 감1 · 2리, 학함리 등이었다. 그러나 1982년 6월 가락동 · 송파동 · 문정동 · 장지동이 잠실(蠶室) 본당으로, 그리고 같은 해 8월에는 이동 · 방이동 · 오금동 일부가 신천동(新川洞) 본당으로 각각 이관되었다. 서울 변두리에 치우쳐 대부분 논밭이었던 마천동 본당의 관할 구역은, 1981년 9월 30일 서울 올림픽의 개최 결정에 따라 선수촌과 경기장 등이 건설되기 시작함으로써 전입 인구가 늘어났고 교세 역시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미 본당에서 는 공소 때에 지은 건물의 수요 능력이 크게 부족해지자 1981년 8월 성당 신축 공사에 착공하여 1983년 11월 총 건축 면적 457평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성당(137평)과 사제관 및 교리실, 사무실 등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그 후 1985년 6월에는 잠실 본당 관할로 이관되었던 문정동과 장지동이 마천동 본당으로 재이관되었다.
한편 1987년 2월에는 송파구 문정동 141번지의 부지 641평을 매입하여 그 해 5월 232평의 조립식 건물을 지어 강당 · 교리실 · 관리실 · 지하실 등을 마련한 후 문정동 공소를 발족시킨 데 이어, 곧바로 6월에 마천동 성당 증축 및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사제관 신축 공사에 착공하여 이듬해 4월 성당을 증축(33.8평)하고 신축 사제관 건물에 사제관과 수녀원 및 지하 성당 등을 마련하였다. 1988년 3월에는 경기도 서부면 지역이 수원교구서부(西部) 본당으로 이관되었으며, 1989년 10월 13일에는 문정동 공소가 문정동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성장과 활동〕 본당의 사목 조직은 1996년 현재 13개 구역 67개 반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사목 협의회 산하의 평신도 단체로서 레지오 마리애 3개 꾸리아에 61개 쁘레시디움, 울뜨레아, 성령 기도회, M.E. 성서 모임 봉사자회, 성서 읽기회, 전례단, 성 빈천시오 아 바울로회, 연령회, 어버이 성가단, 헌화회, 자모회, 복사단, 노인대학, 성 요셉회, 성모회, 성 대건회 등이 있다. 또한 청년 단체로는 두뢰회, 청년 협의회 산하의 초등부 교사회, 중등부 교사회, 청년 성가대, 청년 문예부, 한울 청년회가 있고, 학생 단체로는 중고등부 학생회가 있다.
본당 신자 공동체 구성원의 대부분이 서울 시내 여러곳에서 모여든 철거민임에 주목한 초대 주임 오하라 신부는 초창기 사목 방침을 신자 상호간의 친교에 두었으며, 2대 주임 물둔 신부는 보다 효과적인 예비 신자 교육과 신자 재교육을 위해 환등기를 사용하는 등 교리 교육을 강화하였다. 또한 가정 사목의 일환으로 매년 여러 차례에 걸쳐 합동 혼인성사를 집전함으로써 혼인 장애를 해소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또 3대 플라나간 신부는 평신도 사도직 활동을 강조하여 사목위원회(현 사목협의회)를 비롯한 주요 단체들을 결성시켰으며, 신자들을 위한 피정 및 세미나 개최와 함께 꾸르실료에 적극 참여하도록 권장하였다. 4대 주임 모리시 신부는 본당 관내에 노년층이 계속 증가하자 부임 직후인 1982년 10월 노인대학을 개설하였으며, 11월에는 불우 이웃 돕기 운동을 보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성 빈천시오아 바울로회를 결성하였다. 또 같은 해 12월에는 거여동과 마천동 일대의 영세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 청소년들을 위해 야간 학교인 '다산학교' 를 설립하였으며, 신자및 예비자들에게 성서 읽기를 강조하여 미사 때에 성서지참을 의무화하였고 각종 성서 모임을 활성화시켰다.
사목권이 골롬반 외방선교회에서 서울대교구로 이관된 후 5대 주임으로 부임한 박항오 신부는 구역 · 반 조직의 활성화에 역점을 두고 사목하였는데, 이를 위해 구역별로 미사를 거행한 후 신자들간에 친교의 시간을 갖도록 하였다. 또 다산학교의 운영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으나 본당의 교세 확장에 따라 본당에서 독립시켰으며, 각 가정에 일간지를 통한 입교 안내문 배포, 현수막 게양, 예비자 권면 카드의 봉헌, 전 신자 성지 순례 실시등 매우 다양하고도 적극적인 사목 정책으로 한 해에 1천 명 이상의 영세자들을 배출하였다. 6대 김창만 신부는 전 신자가 보다 신앙적인 내실화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는 한편,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구역별 미사 봉헌과 구역장 및 반장들의 연수를 실시하였다. 또 본당 신자 상호간의 친목 도모를 위해 음식 바자회 · 여름 가족 캠프 · 본당 체육 대회 · 척사 대회 · 경로 잔치 등을 개최하였다. 본당에서는 설립부터 현재까지의 변모상과 발전상을 살펴보기 위해 본당 30년사 발간을 계획하고 있다. (⇦ 거여동 본당 ; → 서울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편찬실〕
마천동 본당
馬川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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