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베오서 - 書

〔그〕Μακκαβαίων · 〔라〕Libri Machabaeorum · 〔영〕Books of Macccab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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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베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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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베오서.

유대를 강제적으로 헬레니즘화하려고 한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Antiochus IV Epiphanes)의 박해 시대에 유대교를 지키기 위하여 일어난 혁명과 그 역사를 기록한 책들의 수집서. 몇몇 필사본(MSS)과 70인역 성서는 마카베오 1서, 2서, 3서, 4서로 구분하고 있다. 초대 교 회는 마카베오서의 내용이 박해 때에 지녀야 할 하느님께 대한 신앙과 충실이 담겨 있어 소중하게 여겼다. 유다 마카베오나 마카베오 가문과 전혀 관계가 없는 마카베오 3서와 4서는, 하느님의 율법에 충실하였고 헬레니즘에 저항하여 순교한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확대 해석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불가타 성서에 마카베오 1서와 2서가 성서의 일부로 포함되었고,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서는 이를 제2 경전으로 선언하였다. 루터는 마카베오 1서가 많은 외경 중에서도 정경 속에 속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프로테스탄트는 이 마카베오서를 외경(外經)으로 간주하였다.
〔마카베오 1서〕 명칭 : 예로니모의 《프롤로구스 갈레아투스》(Prologus Galeatus)에 따르면 마카베오 1서는 원래 히브리어로 쓰여졌다고 하나 전해지는 것은 그리스어 사본들뿐이다. 그래서 본래의 명칭도 그리스어 사본들과 다른 증언들을 통해서 추측할 수밖에 없다. 70인역 성서를 비롯하여 에우세비오와 글레멘스의 저작에 나타난 명칭은 '따 마카바이카' (Τὰ Μακκαβαϊκά, 마카베오에 관한 일들, 또는 마카베오가의 책)이다. 그러나 초기 히브리어와 아람어 작품에는 '마카베오' 가 아니라 '하스모네' 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4세기의 히브리어 저작인 《조쉬폰》(Josippon)에서는 유대 전쟁사를 마무리 지으면서 "그 나머지는 '하스모네 가문의 책' 에 기록되어 있다" 라고 밝히고 있으며, 랍비들은 마카베오서를 '하스모네 가문의 책' 이라고 부르고 있다. 오리제네스는 마카베오 1서에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사르벳 사바니엘' (Sar-beth Sabaniel)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달만(Dalman)은 이것이 '하스모네 가문의 책' 이라는 아람어 표현의 오기(誤記)라고 주장하였다.
내용 : 마카베오 1서는 마따디아와 그의 세 아들인 유다, 요나단, 시몬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게 되는 역사적인 배경을 이야기하고 있다. 먼저 알렉산더 대왕의 통치와 그 후계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왕국의 분할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나서 셀레우코스 왕조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기원전 175년에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가 즉위한 때부터 기원전 134년 시몬의 죽음에 이르는 약 40년 동안의 유대인 역사를 계속해서 서술한다. 마카베오 1서의 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역사적인 서문(1, 1-64)
셀레우코스 왕조의 시작(1, 1-10)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의 박해(1, 11-64)
② 마카베오가의 투쟁(2, 1-16, 24)
마따디아의 저항(2, 1-70)
유다의 투쟁(3, 1-9, 22)
요나단의 투쟁(9, 23-12, 53)
시몬의 활약(13, 1-16, 24)
저자의 관점 : 마카베오 1서는 성서적이며 보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야훼' 라는 하느님의 이름은 나오지 않고, 히브리어식 표현인 '하늘' (οὐρανός)로 나타나거나(3, 19. 50. 60 ; 4, 10. 40 ;9, 46 ; 12, 15 ; 16, 3), 인칭 대명사 '그' (αὐτός)로 나타난다(2, 61 ; 3, 22). 이로 인해 마카베오 1서가 제2 경전으로서 지니고 있는 영적인 성격과 종교적인 가치를 부인하고 세속적인 작품으로 취급하려는 경향도 있었다. 비록 저자가 역사 안에서 하느님보다는 인간적인 요소를 강조하였지만, 하느님이 역사를 이끌고 있으며 당신이 선택한 백성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생각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 또한 저자는 마카베오 혁명의 영웅들보다도 오히려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민족에 대한 사랑, 율법에 대한 확신, 그리고 하느님께 봉사하기 위해 어떤 희생이라도 치른다는 마음을 강조하였다. 이런 관점을 제시하면서 저자는 은연중에 마카베오가의 열성과 관대함을 본받도록 독자들을 초대하고 있다.
신학 사상 : 마카베오 1서는 율법 준수를 가장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엄격한 율법주의자인 저자는 모든 유대인들이 율법과 그 제도를 준수하고 보존할 의무가 있다고 믿었다(1, 11. 15. 43. 49. 54. 60. 62 ; 2, 20 이하 ; 3, 21). 그에 따르면 마카베오 혁명도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일어난 혁명이다. 마따디아는 율법에 충실한 비느하스(민수 25, 6-13)처럼, 안티오쿠스가 율법을 지키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리고, 헬라주의자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을 때 배교자를 죽이면서까지 자신의 율법에 대한 열성을 드러내었다(2, 26). 그리고 죽을 때에도 야곱과 마찬가지로(창세 48-49장) 아들들에게 "율법을 굳게 지켜라" (2, 64)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전쟁 중에도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하였다. 그런데 율법에 대한 철저한 준수도 강조하면서 2장 41절 이하에서는 안식일 준수에 대해 개방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왜냐하면 안식일에 적들이 공격할 때 율법에 따라 싸우지 않은 이들의 죽음을 보고 안식일에 전쟁이 일어나면 싸우기로 결의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생겼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생기지는 않았습니다"(마르 2, 27)라는 예수의 가르침의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저자는 하깨, 즈가리야, 말라기와 같은 구약성서의 마지막 예언자들 이후 예언이 중지되었다고 여겼다. 즉 그의 시대는 예언자가 나타나지 않는, 예언이 없는 시대라는 것이다. 비록 예언은 중단되었을지라도 이스라엘 민족은 여전히 신명기에 예언된 것처럼(신명 18, 15. 18) 더럽혀진 제단 돌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4, 46), 또는 시몬과 그 상속자들의 잠정적인 통치 후에 누가 대사제, 즉 통치자가 될 것인지(14, 41)를 결정할 예언자의 도래를 기다렸다. 그러나 메시아 사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2장 57절에 나오는 다윗의 영원한 왕권은 하스모네 왕조에서 구체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마카베오 1서에는 죽은 자들의 부활이나 영혼 불멸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이러한 사상이 공통적이었고(다니 12, 3 : 에녹 1, 9 ; 9, 1. 5 이하 ; 22, 11-14 ; 2마카 7, 9. 11. 14. 29),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신념은 있었지만(사도 23, 6), 이 책은 다른 견해를 취하고 있다. 마카베오가의 영웅들은 두려움 없이 죽음에 직면한 전투에서 싸웠지만, 그들은 다른 삶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지 않았고 자신들이 가진 동기의 정당함을 믿었으며, 선조들처럼 용감하고 헌신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선조들과 같은 명성을 얻기를 갈망하였다.
저자와 기록 연대 : 저자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없다. 팔레스티나의 지리와 당시 정치의 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 군사적인 원정과 왕실의 음모들, 마카베오가의 인물들에 대한 저자의 지식을 살펴보면 그는 같은 시대의 인물로 당대사건의 목격자였을 것이다. 나아가 하스모네 왕조에 호의적인 하스모네가의 역사가로도 여겨진다. 또한 존경할 수 없는 대사제들인 야손과 메넬라우스, 알키모스에 대한 저자의 평가와 다른 삶에 대한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주장이 나타나지 않고 안식일 준수에 대한 관대한 태도 등을 볼 때, 저자는 바리사이파보다는 사두가이파에 속하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마카베오 1서는 로마를 우호 관계에 있는 동맹국으로 보고 있으므로 폼페이우스의 로마 침략 이전에 기록되었다(8, 1. 12 ; 12, 1 ; 14, 40). 그러므로 기원전 63년은 하나의 귀결점(terminus ad quem)이다. 그리고 본문의 이야기는 시몬의 죽음과 요한 히르가누스의 등극까지 이어지므로 출발점(terminus a quo)은 기원전 134년이다. 요한 히르가누스의 죽음과 그의 후계자에 대한 언급이 있다면 기원전 104년이 출발점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러한 언급은 없다. 따라서 마카베오 1서는 기원전 134~104년 사이에 집필이 시작되어 기원전 63년 이전에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역사성 : 많은 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마카베오 1서의 저자는 정확한 이야기를 서술하려고 의도하였다고 한다. 이 책은 하느님의 도움을 인정하지만(2, 51 ; 3, 18 ; 4, 10 ; 9, 46 ; 16, 3) 마카베오 2서처럼 하느님의 신비스런 개입으로 유대인들이 승리를 거두었다고 진술하지는 않고 오히려 인간의 용감함을 강조한다. 마카베오 1서의 기록들은 신뢰성에 토대를 두고 있어 역사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기록들이 여럿 있지만, '페르시아의 엘리마이스 (6, 1)라는 도시는 어딘지 알 수 없고, 몇몇 과장되거나 축소된 표현들도 있다(4, 15 ; 7. 46 ; 11, 45-51). 아 울러 많은 기도문(3, 50-54 ; 4, 30-33)과 연설문(2, 7-13; 2, 50-68 ; 4, 6-11), 편지와 공문서들이 에즈라서나 느헤미야서처럼 풍부하다. 편지와 공문서에 대해서 때때로 진정성이 의심되기도 하나 대부분의 문서들은 진정성을 띠고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마카베오 1서에서 아주 두드러진 특징은 이 문서들이 이야기 흐름을 단절시키지만 후대에 삽입된 것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 문서들은 다음과 같다.
① 길르앗의 유대인들이 유다에게 보낸 서신(5, 10-13), ② 로마인과 유대인의 우호 동맹(8, 22-32), ③ 알렉산더 발라스 왕이 요나단에게 보낸 서신(10, 18-20), ④데메트리우스 1세가 요나단에게 보낸 서신(10, 25-45), ⑤ 데메트리우스 2세가 요나단에게 보낸 서신(11, 30- 37), ⑥ 어린 왕자 안티오쿠스가 요나단에게 보낸 서신(11, 57), ⑦ 요나단이 스파르타인에게 보낸 서신(12, 5-18), ⑧ 스파르타의 왕 아레오스가 대제사장 오니아스에게 보낸 서신(12, 20-23), ⑨ 데메트리우스 2세가 시몬에게 보낸 서신(13, 36-40), ⑩ 스파르타인이 시몬에게 보 낸 서신(14, 20-24), ⑪ 시몬과 그 형제들의 공적을 기념하는 유대인들의 포고(14, 27-45), ⑫ 안티오쿠스 7세가 시몬에게 보낸 서신(15, 2-9), ⑬ 로마의 집정관인 루기오가 이집트의 왕 프톨레미에게 보낸 서신(15, 16-21).
〔마카베오 2서〕 명칭 : 에우세비오가 처음으로 마카베오 2서를 언급하였고,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는 이 책을 '헤 톤 마카바이콘 에피토메' (ἡ τῶν Μακκαβαϊκῶνἐπιτομή, 마카베오가의 일들에 관한 발췌본)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키레네 사람 야손이 저술한 5권으로 된 책의 요약으로(2, 23), 원래 이야기의 흔적이 여러 장에서 같은 결론을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3, 40 ; 7, 42 ; 10, 9 ;13, 26 ; 15, 37-39).
내용 : 마카베오 1서가 약 40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반면, 마카베오 2서는 주로 유다 마카베오의 행적에 관심을 가지고 15년 동안(기원전 176~161)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으며, 마카베오 1서는 본래 히브리어로 쓰여졌으나 2서는 그리스어로 저술되었다. 이 책은 크게 다음과 같이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 도입부 : 두 개의 권고 편지(1, 1-2, 18)
이집트의 유대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1, 1-9)
이집트의 유대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1, 10-2, 18)
② 저자의 서문(2, 19-32)
③ 역사(3, 1-15, 36)
축복 : 대제사장 오니아스 3세 때의 예루살렘(3, 1-40)
범죄 : 야손과 메넬라오스 때의 예루살렘의 헬레니즘화(4, 1-5, 10)
징벌 :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박해(5, 11-6, 17)
전환 : 순교자들의 죽음과 백성들의 기도(6, 18-8, 4)
심판과 구원 : 유다의 승리(8, 5-15, 36)
④ 저자의 맺음말(15, 37-39)
이 책에 기록된 사건들은 마카베오 1서와 2서가 서로 독립적이지만 병행 구절을 가지고 있다. 사건의 순서가 마카베오 1서와 차이가 나는데, 가장 명백하게 드러나는 차이는 안티오쿠스 4세의 죽음과 성전 정화에 관한 것이다(9, 1-10, 9). 디모테오와 바키데스에 대한 전투 이야 기(8, 30-33)는 8장 29-34절 사이에 삽입되어 있어 니가노르의 패배 이야기의 연속성을 깨고 있다. 또 이 구절은 후에 나오는 마카베오의 예루살렘 탈환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11, 1-12, 1), 예루살렘 탈환은 마카베오 1서에서는 유다가 리시아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결과로서 진술되어 있으므로(1마카 4장), 마카베오 1서의 사건과 비교하여 올바른 순서를 찾는다면 리시아의 패배(11, 1-12, 1), 성전의 정화(10, 1-8), 디모테오와 바키데스의 패배(8, 30-33),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죽음(9장 ; 10, 9)순일 것이다. 이웃 민족들과의 전쟁 이야기(12, 3-45)는 마카베오 1서 5장에서처럼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죽음 이전에 놓을 수도 있다.
저자의 관심과 신학 사상 : 마카베오 2서의 주요한 관심은 예루살렘 성전에 있다. 저자는 성전이 어떻게 악인들에게 더럽혀지고 의인들을 통하여 정화되었는가 하는 관점에서 초기 마카베오 혁명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성전을 모독하고 파괴하려고 했던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의 죽음과 니가노르의 패배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집트의 유대인들이 성전을 다시 봉헌한 하누카 축제와 니가노르의 패배를 기념하는 니가노르의 축제일을 지키라고 하였다. 또한 이집트의 레온토폴리스(Leontopolis)에 있는 유대 성전에 비하여 예루살렘 성전은 하느님이 당신 백성 안에서 거주하는 곳이므로(14, 35-36), 전세계에 서 유일하고 가장 위대하고 거룩하다(2, 19. 22 ; 5, 15 ; 14, 31 ; 15, 18)고 강조하였다.
마카베오 2서의 신학적인 주제는 신명기 신학이다. 하느님은 당신 백성이 범죄할 때 이방인을 도구로 삼아 심판하지만, 회개하고 하느님의 계명에 충실할 때 신앙의 영웅들을 통해서 구원한다는 것이다. 의인의 고난까지 초래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박해는 대사제들의 지도 아래 유대인들이 헬레니즘화되어 하느님을 배반하여 일어났지만, 또한 유대 백성을 회개시키려는 하느님의 호의가 있는 시련이었다.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는 유다 마카베오와 그 동료들의 기도와 충실을 통하여 하느님의 자비로 바뀌었다(8, 1-5. 27).
유일신 사상과 하느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사상은 하느님을 부르는 호칭에서 두드러진다. 단순히 '하느님' , '주님' 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전능하신 주님' (3, 22 ; 8, 18), '정의의 재판장이신 하느님' (12, 6. 41), '우주를 지배하시는 위대하신 하느님' (12, 15. 28), '모든 것을 다 내려다보시는 분' (12, 22) 등으로 부르고 있다. 또한 천사들까지 유대인들의 싸움에 참여하게 하는 하느님은 '만군의 주님' 이고, '모든 신령들의 왕' (3, 24)이다.
마카베오 2서에 따르면 순교는 종교적인 자유를 억압하는 세력에 대항하여 하느님의 율법을 거역하고 몸을 더럽히기보다는 차라리 고결한 죽음을 선택하는 인간의 권리로서 하느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스스로 선택한 고통이다. 또한 마카베오 1서에서는 특수한 상황에서 안식일 준수에 대한 개방성을 띠고 있지만 2서에서는 안식일을 철저히 준수하라고 하였다. 순교에 직면한 사람은 자신의 신앙적 의지를 잠시 유보하거나 자신의 행동과 신앙을 이원화하여 죽음을 면할 수도 있었으나(6, 21) 그러한 행동은 순교자에게는 용납될 수 없다. 당장에는 인간의 벌을 피해 목숨을 건질 수 있을지라도 하느님의 눈을 피하거나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6, 26). 부활 교리는 이러한 신앙의 신념으로 영웅적인 죽음을 선택한 순교자들에대한 격려로 나타나고 있다. 엘르아잘의 흠 없는 죽음(6, 18-31), 한 어머니와 일곱 아들의 죽음(7장), 라지스의 죽음(14, 37-46)은 최초로 알려진 순교록이다. 아울러 죽은 자의 부활은 메시아 시대에 지상의 축복에 참여하기 위해 소생한다는 육체적인 용어로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육체의 부활은 율법을 지키고 경건하게 죽은 자들에게 일어나며, 비록 죄를 짓고 죽었을지라도 살아 있는 사람들이 죽은 자들을 위해서 속죄제를 올리면 죽은 자들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유다 마카베오는 전쟁에서 죽은 자들을 위해 속죄제를 올리도록 돈을 거두어 예루살렘 성전에 보냈는데(12, 43), 이것은 죽은 사람에 대한 살아 있는 사람의 기도가 죽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와 기록 연대 : 야손이 쓴 5권의 책을 요약했다는 마카베오 2서의 저자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지만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사는 유대인으로 추정된다. 예루살렘 성전과 의식을 잊지 않고, 새로운 축제인 하누카 축제와 니가노르의 날을 지키기를 갈망하였던 저자는, 야손의 역사책을 자기 나름대로의 목적과 방법을 가지고 요약하면서 야손을 '건축가' 로, 저자 자신을 '장식가' 로 비유하였다(2, 24-32).
마카베오 2서의 마지막 사건이 발생한 연대는 기원전 161년이지만, 야손이 역사책을 저술한 지 얼마나 지나서 마카베오 2서가 쓰여졌는지는 결정하기 어렵다. 니가노르의 패배(15, 36)를 기원전 100년으로 주장하는 견해가 있고(코르닐, 카우취, 벨하우젠), 마카베오 2서가 마카베오 1서 다음에 쓰여졌다는 것은 유대인이 로마에 공물을 바친 사실(8, 10. 36)로 확인되며, 예루살렘이 유대인들에게 속해 있으므로 기원전 63년 이전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마카베오 1서에 비해 2서에서 드러나는 바리사이파적인 교훈들, 엄격한 율법 준수, 유대인의 배타주의적 성격, 사두가이파와는 다른 미래에 대한 견해 등은 기원전 100년경의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관점을 드러내므로, 기원전 100년 이전에 쓰여졌다는 견해는 의심스럽다. 따라서 추정할 수 있는 연대는 기원전 100~63년 사이로 여겨진다.
역사성 : 마카베오 2서는 당시 헬레니즘 세계에 널리 보편화되어 있었으며 모든 의미들을 독자의 감성과 상상력에 호소하는 문학 형태인 '감상적인 역사' (pathetic history) 서술 형태를 사용하고 있다. 이 양식은 오늘날과 같은 과학적 역사 서술 방식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또한 이 책은 교리를 전수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교훈적인 의도에서 기록되었으므로 역사적인 관점보다는 교리적인 관점에 치우쳐 있다. 이 책의 역사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상반되는 견해가 있는데, 니제와 쉴라터와 같은 학자들은 마카베오 2서가 1서보다 더욱 역사적인 작품이라고 주장하였고, 비브리히, 코스터, 캄파우젠 등은 마카베오 2서가 실질적으로 역사적인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두 견해의 중간 입장을 주장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즉 마카베오 1서에 없는 역사적인 자료를 마카베오 2서가 포함하고 있는 경우, 그 자료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거나 직접적인 반대의 증거로 대립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올바른 것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마카베오 2서 3-5장은 마카베오 1서에 없는 마카베오가의 폭동에 관한 내용을 상세히 언급하고 있고, 마카베오 1서에서 다룬 사건이나 에피소드를 마카베오 2서는 아주 자세하고 특수하게 다루고 있지만(10, 14-23 ; 12, 7-9 = 1마카 5, 1-5 ; 12, 7-25/10, 24-38 = 1마카 5, 29-44/ 12, 32-45 = 1마카 5, 63. 65.68), 비역사적인 특성도 나타나고 있다(3, 24 이하 ; 11, 8).
〔마카베오 3서〕 칠십인역의 필사본에서 마카베오 1서와 2서와 내용적으로 가깝다는 이유로 붙여진 명칭인 듯하다. 이 책은 마카베오 2서의 여러 주제를 반향하고 있고 마카베오 시대보다 약 50년 정도 먼저 일어난 사건들을 언급하고 있으며, 동시에 마카베오가와 전혀 무관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프톨레마이오스 필로파토스와 유대교 사이에서 벌어진 투쟁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데, 이 이야기들은 각각 마카베오 1서와 2서를 근거로 하여 저작된 것이다. 알렉산드리아가 이야기의 무대로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저자는 알렉산드리아에 거주하는 유대인으로 모세의 율법을 충실히 지키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저작 연대는 마카베오 2서로부터 받은 영향을 고려해 볼 때 기원전 100년 이전일 수는 없고, 이집트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종교적 작품을 통하여 하누카 축제와 니가노르의 축제가 지니고 있는 권고와 교훈을 주려는 것이 저술 의도이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땅에서도 '영원한 이스라엘의 구원자' (7, 16)인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로 보호를 받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6, 15).
〔마카베오 4서〕 그리스어 필사본들 안에서 공통적인 이 책의 이름은 마카베오 4서이다. 요세푸스는 그의 작품 속에서 '이성의 우월에 대하여' (Περὶ αὐτοκράτορος, λογισμοῦ)라는 제목으로 마카베오 4서를 언급하였다. 이 책은 덕 있는 사람에게 나타난 경건한 이성의 우월성에 대한 철학적인 논문이나 논설인데, 마카베오 4서라는 명칭은 그 주제가 마카베오 2서에 나타난 마카베오가의 역사로부터 실례를 들어서 설명한 데 기인한다. 저자의 관점은 스토아 철학적으로, 덕이 있는 사람은 이성으로 감성을 지배한다고 보았다. 저자가 주장하는 기본 덕인 신중(φρόνησις), 정의(δικαιοσύνη) , 용기(ἀνδρεία) 절제(σωφροσύνη)도 스토아 철학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이야기는 정통 유대적인 성격을 띠면서도 모든 것을 지배하는 이성은 하느님이 계시하신 율법으로 다스려지는데, 그 율법은 충실한 순교자들이 죽음에 처하면 서도 지켰던 율법이라고 강조하였다. 저자는 바리사이파에 속하는 유대인이며 연대를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70년 성전 파괴 이전에 기술되었을 것이다.
〔종 합〕 역사적이고 종교적인 가치를 고려할 때, 마카베오 1서는 열왕기와, 마카베오 2서는 역대기와, 마카베오 3서는 에스델서와 친숙하게 비교할 수 있고, 마카베오 4서는 성서와 관련되는 부분 없이 철학적인 논문이나 찬미가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마카베오 1서와 2서만이 제2 경전에 속하지만, 구약(다니엘서)과 신약에까지 두루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마카베오서는 계속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마카베오서는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의 문학 작품으로서, 어떤 점에서는 가장 위대한 진리가 적절하게 표현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카베오가 독립 전쟁 ; 외경)
※ 참고문헌  R.A. Stewart, 《ISBE》 3/T. Fischer, 《ABD》 4, pp. 439~450/ H. Anderson, 《ABD》 4, pp. 450~454/ Y.M. Grintz, 《EJ》 11, pp. 656~660/ Y. Amir, 《EJ》 11, pp. 660~662/ W.H. Brownlee, 3, pp. 201~215/S. Zeitlin, The First Book of Macccabes, 1950/ - The Second Book of Maccabees, 1954/ J. Collins, Daniel, 1 · 2Maccabees, 1981/J.A.Goldstein, 1 · 2Maccabees, 《AB》, 1981/J.A. Soggin, An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1983/ P.F. Ellis, The Men and the Message ofthe Old Testament, 1963/ 천사무엘, 《구약 외경의 이해》, 한국신학연구소, 1996. 〔李忠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