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캐루스

〔그〕Μαχαιροῦς · 〔라〕Machae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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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 동쪽의 마캐루스 요새.

사해 동쪽의 마캐루스 요새.

사해(死海) 동쪽에 위치한 천연의 요새. 요르단 왕국의 수도 암만에서 남쪽으로 32km 지점에 마다바(구약성서의 메드바) 읍이 있고, 마다바에서 다시 남동쪽으로 13km 거리에 무카베르(Mukawer) 마을이 있다. 무카베르 마을에서 사해 쪽을 바라보면, 사해 수면보다 무려 1,014m나 높은 해발 700m의 마캐루스가 우뚝 솟아 있다. 오늘날 아랍인들은 이곳을 미슈나카(Mishnaqa)라고 부른다.
이스라엘 왕국의 알렉산데르 얀네우스 임금은 사해 동부 지역에서 세력을 떨치던 나바테야 왕국을 견제하고자 기원전 90년경 험준한 산 꼭대기에 마캐루스 요새를 창건하였다(요세푸스, 《유대 전쟁》 7, 171). 기원전 56년에는 얀네우스 임금의 아들 아리스토블루스 2세가 이 요새로 도망쳐 로마군에게 저항한 까닭에 로마군은 두 차례에 걸쳐 요새를 허물었다. 기원전 30년경 헤로데 왕은 동부 국경을 방어하고자 요새를 재건하였고(《유대 전쟁》 7, 172~177), 기원전 4년 헤로데 왕이 예리고 별궁에서 병사하자 그의 아들 헤로데 안티파스가 이를 물려받았다. 27년경 안티파스는 세례자 요한을 정치적으로 위험한 인물로 간주하여 한동안 이 요새에 가두었다가 참수하였다(요세푸스, 《유대 고사》 18, 116~119 ; 마르 6, 17-29). 70년 9월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완전히 점령함으로써 제 1차 유대 독립 전쟁은 사실상 끝이 났다. 그러나 유대 독립군 일부는 베들레헴 남쪽에 자리잡은 헤로디온 요새, 사해 동쪽의 마캐루스 요새, 사해 서쪽의 마사다 요새에 서 끈질기게 항전하였다. 72년 로마의 장군 밧소(Luci-nius Basso)는 헤로디온 요새를 함락시킨 다음 마캐루스 요새도 점령하였다(《유대 전쟁》 7, 163~177. 190~209).
1978~1981년 예루살렘 주재 프란치스코회 성서 연구소가 네 차례에 걸쳐 마캐루스 요새를 발굴하여 화려한 로마식 목욕탕, 큰 응접실(14.80×9.50m), 작은 응접실(9.50×9.50m)을 찾아냈다.

※ 참고문헌  정양모 · 이영헌, 《이스라엘 성지, 어제와 오늘》, 생활성서사, 1988, pp. 160~162/ Stanislao Loffreda, 《ABD》4, pp. 457~458. 〔鄭良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