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 필자와 독자
네 복음서의 집필 연대와는 무관하게 전통적으로 신약성서의 첫 번째에 위치하는 복음서.
필자 :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마태오(마르 3, 18 ; 마태 10, 3 ; 루가 6, 15 ; 사도 1, 13)가 복음서를 썼다는 주장을 처음으로 내세운 사람은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Papias, 60~130경)였다. "마태오가 히브리어로 말씀들을 편찬하였는데, 제각기 힘닿는 대로 그것들을 번역했다" 는 그의 주장이 에우세비오의 《교회사》(3, 39,16)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 파피아스의 주장을 이어받아 리용의 주교 이레네오(menaeus, 130~200경)는 《반이단론》(3, 1, 1)에서 "베드로와 바오로가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있을 때 마태오는 히브리인들 가운데 살면서 그들의 고유한 언어로 복음서를 펴냈다"고 주장하였다. 파피아스와 이레네오의 증언 때문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마태오가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로 복음서를 집필하였고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다는 학설이 생겨났고, 이 주장이 전통적으로 인정되어 왔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에서 번역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어로 쓰여진 《예수 어록》과 《마르코 복음서》를 참고로 하여 직접 그리스어로 집필한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예수의 직제자 마태오가 복음서를 집필하였다는 설을 인정하기는 어렵고, 복음서 자체를 검토하여 필자를 추론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어로 복음서를 집필하였고 히브리어와 아람어에 익숙하였으며, 유대교 계율과 유대인들의 관습을 잘 아는 점으로 미루어, 필자는 그리스어를 구사하는 유대계 그리스도인으로 생각된다. 또 복음서 필자의 교회가 초기에는 성전세(17, 24-27)와 십일조(23, 23)를 바치고, 안식일 규정을 지키고(12, 11-12 ; 24, 20),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권위를 인정하였으나(23, 2-3), 후에 예수와 사도들을 배척한 유대 민족을 단죄하며, 특히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통박한 점(23장)과, 예수 그리스도를 일컬어 구약의 예언을 성취한 메시아이며 율법의 뜻을 바로 밝힌 참 해석자로 본 점으로 미루어, 이 복음서의 필자는 유대계 그리스도교의 율법 학자일 가능성이 높다.
독자 : 이 복음서의 필자는 세 차례에 걸쳐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로 번역해 준 경우(1, 23 ; 27, 33 ; 27, 46)를 제외하고는 독자들이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 낱말이나 표현을 이해한다고 전제하고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유대교의 계율이나 유대인들의 풍습도 이해하는 것으로 전제하고 아무런 설명 없이 기술하는 예가 많다. 이로 미루어 필자는 유대교 분위기에 익숙한 그리스도인들, 다시 말해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을 상대로 복음서를 집필하였다고 여겨진다. 그렇지만 필자는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를 붙잡아 죽였을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 역시 배척한 까닭에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였다고 단죄하고, 이제 이방인들 편을 들어 교회는 이방인 전도에 주력하라고 한다.
마태오 교회의 상당수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었으나, 그들은 유대교의 테두리를 벗어나 독자적인 교단으로 독립하여 유대교와 맞서고 있었다(5, 17-48 ; 23장). 이 교단은 이스라엘 민족의 테두리를 벗어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공존하는 교회로 성장하였으며, 이 교회는 유대인 전도는 거의 포기하고 주로 이방인 전도에 주력한 것 같다.
II . 집필 장소 및 연대
집필 장소로는 흔히 이스라엘에 인접한 시리아 지방을 꼽는다. 《디다케》(Διδαχὴ τῶν δώδεκα ἀποστόλων)가 100년경에 시리아 지방에서 집필되었고, 시리아 지방의 안티오키아 주교로 있다가 순교한 이냐시오가 마태오 복음서를 인용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시리아 지방에서 집필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마태오 복음서는 50~60년대에 쓰여진 《예수 어록》과 70년경에 쓰여진 《마르코 복음서》를 옮겨 썼으므로, 집필 상한 연대는 70년이고, 하한 연대는 《디다케》가 쓰여진 100년경이다. 따라서 마태오 복음서는 70~100년 사이에 쓰여졌다고 하겠는데, 그 집필 연대로 흔히 80~90년을 꼽는다.
Ⅲ . 사 료
마태오는 대체로 마르코 복음서의 구조를 따르면서 아울러 《예수 어록》과 자기 나름대로 수집한 특수 사료를 수용하였다. 그는 조직적인 사고를 가진 편집자였기 때문에 비슷한 말씀들이나 사화(史話)를 주제별로 한자리에 모아 놓았다. 마태오는 다섯 차례에 걸쳐 예수의 말씀들을 모아, 산상 설교(5-7장), 파견 설교(10장), 비유 설교(13장), 공동체 설교(18장), 심판 설교(24-25장) 등의 집성문(集成文)을 엮었고, 그 집성문들 다음에는 반드시 "예수께서는··· 나서 하시게 되었다"라는 결어를 덧붙였다(7, 28 ; 11, 1 ; 13, 53 ; 19, 1 ; 26, 1). 또한 마르코 복음 1-2장과 4-5장에 흩어져 있는 이적 사화 8편과 어록에서 취한 2편을 모아 이적 사화 집성문(8-9장)을 엮었다.
마르코 복음서 : 마태오 복음의 필자는 마르코 복음을 옮겨 쓰면서 중요한 단락들(마르 1, 21-28. 35-38 3, 20-21 ; 4, 21-25. 26-29 ; 7, 31-37 ; 8, 22-26 ; 9, 38-41. 49-50 ; 11, 11 ; 12, 32-34. 41-44 ; 13, 33-37 ; 14, 51-52)을 삭제한 경우도 있고, 마르코 복음이나 《예수 어록》의 단락을 옮겨 쓰면서 축소 · 확장 · 수정 · 중복한 경우는 매우 흔하고, 같은 주제를 한곳에 모은 까닭에 배열을 바꾼 경우도 있다. 두드러진 예가 마르코 복음과 《예수 어록》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열 가지 이적 사화를 모은 집성문(8-9장)이다. 뿐만 아니라 마태오는 예수의 감정을 드러내는 표현이나 그분의 권위와 권능을 낮추는 표현을 아예 삭제하거나 수정하였다.
《예수 어록》 : 루가 복음서는 대체로 어록의 순서를 존중하면서 큰 덩이로 잘라 집중적으로 옮겨 실었으나(루가 3-4장 ; 6-7장 ; 9-17장), 마태오 복음서는 어록의 순서를 고려하지 않고 3-13장, 16-20장, 22-25장에 흩어 놓았다. 마태오 복음서 내용 중에 《예수 어록》에서 옮겨 쓴 부분은 70개가 조금 넘는다.
마태오의 특수 사료 : 위의 두 가지 자료 외에도 마태오 복음서에만 수록된 말씀과 사화들이 있는데 이 가운데 일부는 《예수 어록》에서 따온 것이고, 일부는 마태오의 가필이다. 그 나머지는 오직 마태오만이 구전에서 수집하여 수록한 것들인데, 이를 일컬어 마태오의 특수 사료(特殊史料)라고 한다. 마태오가 사용한 특수 사료들은 대략 60여 대목이 된다.
IV . 구조 및 내용
학자들 사이에 마태오 복음서의 구조를 살피면서 문학적 특성을 고려하려는 시도가 있었다(C.H. Lohr, 《CBQ》 23, 1961, p. 427 ; W. Wilkens, 《NTS》31, 1985, pp. 24~38 등). 그러나 마태오 복음이 대체로 마르코 복음서의 순서를 따르면서 《예수 어록》과 자신의 특수 사료들을 편집하였기 때문에, 마르코 복음서의 순서를 따라 구조를 살피는 것이 무난하다.
전사(前史, 1-2장) : 마태오 복음은 특수 사료를 이용하여 예수가 공적으로 활동하기 이전의 이야기를 엮었다. 예수의 족보(1, 1-17)에 이어, 예수의 잉태와 탄생(1, 18-25), 동방 점성가들의 예방(2, 1-12), 이집트 피신(2, 13-15), 베들레헴 아기들의 학살(2, 16-18), 이집트를 떠나 나자렛에 정착한 이야기(2, 19-23) 등의 유년기 사화를 수록하였다. 예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이신 그리스도" (1, 1)요, 예수라는 이름 그대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분"(1, 21)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현신(現身)으로서 '임마누엘' (1, 23)이요, 하느님의 아들(2, 15)이며, 나자렛 사람(2, 23)이라고 마태오는 전한다.
활동 준비(3, 1-4, 11) : 이 부분은 예수가 공적으로 활동하기 직전의 이야기로서, 세례자 요한의 활약 사화(3, 1-12), 예수 세례 사화(3, 13-17), 유혹 사화(4, 1-11)가 수록되었다. 마태오는 마르코 복음 1장 1-13절과 《예수 어록》을 참작하여 이 부분을 엮었다. 유혹 사화에서 "네가 만일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4, 3-6)을 반복하면서 신명기 6-8장에 나오는 하느님의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광야에서의 시험에 관한 구절(4, 4=신명 8, 3 ; 4, 7=신명 6, 16 ; 4, 10 = 신명 6, 13)을 계속해서 인용하고 있는 것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신실(信實)했던 예수와, 하느님의 아들이면서도 신실하지 못했던 이스라엘을 서로 대조시키려는 의도가 들어 있으며, 하느님의 '아들 됨' 이 그 주제로 나타난다.
갈릴래아 활동기(4, 12-18, 35) : 마태오 복음은 마르코 복음 1장 14절부터 9장 50절까지의 구조를 따르면서 마르코 복음서 · 《예수 어록》 특수 사료의 말씀들과 기적들을 주제별로 모았는데, 갈릴래아 활동기 안에 있는 중요한 집성문으로는 산상 설교(5-7장), 이적 사화 집성문(8-9장), 파견 설교(10장), 비유 설교(13장), 공동체 설교(18장) 등이다. 산상 설교에서는 참된 의로움에 대해 말하고, 예수를 모세와 대조되는 인물, 모세보다 더 위대한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루살렘 상경기(19, 1-20, 34) : 예수가 갈릴래아를 떠나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직전까지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였다. 여기서 마태오는 주로 마르코 복음 10장을 따르면서 특수 사료에서 하늘 나라를 위한 독신에 관한 말씀(19, 10-12)과 포도원 일꾼들의 비유(20, 1-16)를 수집하여 삽입하였다.
예루살렘 활동기(21, 1-28, 20) : 예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 곧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부터 열한 제자에게 나타난 때까지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마태오는 주로 마르코 복음 11-16장을 따르면서 《예수 어록》 및 자기의 특수 사료를 일부 삽입하였다. 마태오 복음은 이 부분에서도 예수의 말씀들을 주제별로 모아,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규탄하는 유대교 단죄 설교(23장)와 종말 심판 설교(24-25장)를 엮었다.
V . 중심 사상
〔그리스도론〕 마태오 복음은 예수를 유대인들이 고대하던 메시아로 확신하면서 예수야말로 예언의 성취자요 율법의 참 해석자라고 밝힌다.
예언의 성취자 : 신약성서의 필자들은 한결같이 예수가 구약에 예언된 구원을 이룩하였다고 전한다. 하지만, 마태오 복음은 특히 예언과 성취의 도식으로 예수 사건을 풀이한다. "(주께서) 예언자(들) ··· 시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상투적인 도입문이 무려 열 차례나 나온다(1, 22 ; 2, 15b. 17. 23a ; 4, 14 ; 8, 17a ; 12, 17 ; 13, 35a : 21, 4 ; 27, 9a). 또 이와는 조금 다른 도입문이 다섯 차례 언급되고 있다(2, 5 ; 3, 3a ; 13, 14a ; 24, 15 ; 26, 56). 이 도입문은 유년기 사화에 여러 번 나오고, 나머지는 예수의 공생활, 예루살렘 입성, 수난과 죽음에 관련하여 나온다. 마태오 복음은 우선 그리스도인들을 상대로 예수는 메시아라는 확신을 심어 주었고, 나아가서는 유대교인들을 상대로 예수 메시아 신앙을 옹호하려고 예언과 성취의 도식을 애용하였다.
율법의 참 해석자 : 마태오 복음에 의하면 예수는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고 한다(5, 17-18). 그러나 율법의 세칙 하나하나를 고수하지는 않았으며 하느님의 뜻을 소중히 여겼다(12, 50 ; 15, 4 ; 19, 6-8 ; 21, 31). 여섯 가지 대립 명제를 보면 예수는 율법(命題)을 심화하거나 폐기하는 말씀(反命題)을 거침없이 하였다(5, 21-48) 이로써 예수는 새로운 모세로서 옛 것과 똑같은 권위를 가진 새로운 법을 선포한다.
그러면 하느님의 뜻이란 무엇인가? 하느님은 제사나 십일조보다 자비를 바라시며(9, 13 ; 12, 7 ; 23, 23), 율법은 황금률(7, 12)이나 사랑의 이중 계명으로 환원된다(22, 40 ; 참조 : 19, 16-22)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은 이처럼 예수가 밝혀 준 율법의 참뜻을 익히고 행하는 사람 을 참 그리스도인으로 간주하였다. 예수의 율법 해설을 익히고 행하는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보다 더 큰 의로움을 지닐 것이고(5, 20), 성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완전한 사람이 될 것이며(5, 48 ; 19, 21),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7, 24). 예수는 율법을 완성하였고, 그럼으로써 율법을 능가하였다. 예수는 안식일의 주인이며(12, 8), 성전보다 더 위대한 분이다(12, 6). 그로 인해 이제 사람들은 생베 조각을 헌 옷에 대서 깁지 않으며,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넣지 않게 되었다(9, 16-17).
그리스도(메시아)-다윗의 아들-임금 : 마태오 복음에는 그리스도' (메시아)란 존칭이 17번 나오는데(마르코 복음에 7번, 루가 복음에 12번), 전사(1-2장)에 5번, 수난사(26-27장)에 4번 집중되어 있다. 예수의 말씀과 행적은 그리스도의 일들이다(11, 2).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아들이면서 또한 다윗의 주님(22, 42)이다. 하지만 메시아인 예수는 고난과 죽임을 당하였으니, 현상적으로 볼 때 그는 실패한 메시아가 된다.
다윗의 후예 가운데에서 메시아가 태어난다는 것이 중론이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아들' 일 수밖에 없다. '다윗의 아들' 이란 존칭은 10번 등장한다(마르코 복음에는 4번). 예수의 양부 요셉이 다윗의 후예이므로 예수도 다윗의 아들이 된다(1, 20). 그러나 마태오 복음사가의 입장에서 '다윗의 아들' 은 예수의 정체를 밝히는 데 불충분한 존칭이었기에, 그는 다윗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다윗의 주님이었던 것이다(22, 45). 그리스도-다윗의 아들과 상통하는 개념이 '임금' 인데, 이 존칭이 마태오 복음서에 8번 나온다. 이방인들은 예수를 일컬어 '유대인들의 임금' 이라고 하는데, 동방에서 온 이방인 점성가들은 유대인들의 임금께 경배하지만(2, 2), 빌라도나로마 군인들은 유대인들의 임금을 업신여겼다. 최고 의회 의원들은 유대인들이었기에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보고 자기네 표현법에 따라 '이스라엘의 임금' (27, 42)이라고 하였지만 그를 놀리는 수작에 불과하였다. 예수는 이처럼 이승에서는 놀림감이 되었지만, 종말 심판 때는 '임금' 으로 오시어 모든 민족들을 심판하실 것이다(25, 34. 40). 신약성서의 필자들 중에서 마태오 복음사가만이 종말의 심판관인 인자(人子)를 '임금' 이라고 하였다. 그런가 하면 "인자의 나라" (정확히 인자의 왕국, 또는 인자의 왕정)라는 표현이 신약성서 가운데서 오직 마태오 복음서에만 3번 등장한다(13, 41 ; 16, 28 : 20, 21). 인자의 왕정은 보편적이며 동시에 온 세상에 미치는데, 그의 왕정은 역사적 차원에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종말에는 만천하에 밝히 드러날 것이다.
아들 -하느님의 아들 : 마태오 복음서에는 '아들' , 내 아들' , '그의 아들' , '하느님의 아들' 이란 표현이 21번 나온다. 예수는 법적으로는 요셉의 아들이었으나, 성령으로 잉태된 까닭에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었다(1, 21. 23. 25). 세례 때(3, 17), 그리고 변모 때(17, 5) 하느님 친히 예수를 소개하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나는 그를 어여삐 여겼노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라고 하셨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는 결코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지 않고 철저하게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였다(4, 3. 6; 26, 39. 42). 그는 아버지로부터 전권을 물려받았고(11, 27 : 28, 18), "아버지가 아니면 누구도 아들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또한 아들과 그리고 아들이 계시해 주려는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합니다"(11, 27)라고 단언하였다. 제자들(14, 33), 베드로(16, 16), 백부장(27, 54)이 그분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 또한 최고 의회 심문 때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라 자처하였다(26, 63-64). 구약성서에서는 하느님과 가까운 존재들, 곧 천사, 이스라엘 백성, 백성의 대표자인 임금, 의인을 일컬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하였다. 예수도 하느님과 가까운 까닭에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느님 친히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라고 하셨으니(3, 17 ; 17, 5) 이는 각별히 가까운 아들이라는 선언이다. '사랑하는 아들' 은 요한계 문헌에 나오는 '외아들' 과 같은 뜻이다(요한 1, 14. 18 ; 3, 16. 18 ; 1요한 4, 9). 첫 순간에 하느님의 성령으로 잉태되었으니 예수는하느님의 친아들, 다시 말해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라는 뜻이다(1, 23). 그리고 승천을 앞두고 열한 제자들에게 나타났을 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명하였으니 아버지와 아들은 거의 같은 위치에 있는 셈이다. 아울러 그 옛날 하느님께서 늘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셨듯이, 이제는 아드님께서 세상 종말까지 항상 하느님의 새 백성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신다(28, 19-20). 마태오는 예수를 하느님과 거의 같은 위치에까지 끌어올림으로써, 후에 요한계 문헌과 제1차 니체아 공의회(325)에서 삼위 일체 신앙을 정립하는 데 일조를 하였다.
또한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를 하느님의 지혜라고 보았다. 즉 예수를 선재(先在)하고 있는 지혜로 묘사(11, 18-19. 28-30 ; 23, 34-36. 37-39)하고 있다.
〔교회론〕 마태오 복음서 필자는 교회 문제에 남달리 많은 관심을 쏟았다. 우선, 복음서 필자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교회' ('erchonovo)라는 낱말을 3번 썼다(16, 18; 18, 17에 두 번). 또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관계 · 교직자 · 교회 규범 등 당시로서는 매우 절박한 문제들을 깊이 다루었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관계 : 이스라엘 민족은 '하느님의 백성' (2, 6)으로 자처하여 왔고, 예수도 오직 이들에게 파견되었고(15, 24), 또한 이들에게만 자신의 제자들을 파견하였다(10, 5-6). 그러나 이 민족의 지도자들은 처음부터 예수를 배척하였고, 군중들은 빌라도가 예수를 재판할 때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고함을 질렀다(27, 24-25). 예수가 부활한 후에도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 부활을 부정하고(27, 62-66 : 28, 11-15)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였다(10, 17. 23 ; 23, 34-37). 그 결과 이스라엘은 제1차 유대 독립 전쟁(70)이 실패로 끝나면서 예루살렘이 초토화되는 역사적 비운을 겪었고(22, 7 ; 23, 38 ; 24, 2 ; 27, 25), 장차 종말에는 하늘 나라에서 쫓겨나는 심판을 받을 것이다(8, 12). 물론 열두 사도를 비롯한 소수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그리스도인들 절대 다수는 이방 '민족들' 이었다(21, 43 ; 22, 9-10 ; 24, 14 ; 28, 19-20). 이제 이스라엘 민족은 '하느님의 백성'일 수 없고 그 대신 소수 유대인들과 다수 이방인들로 구성된 그리스도 교회가 하느님의 새 백성이 되었다고 보았다. 마태오가 교회를 '하느님의 새 백성' 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교회를 그렇게 간주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제 하느님의 새 백성인 그리스도 교회는 한편으로 하느님의 옛 백성인 이스라엘과 유대 관계를 맺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독자적인 신앙 공동체로 발전하였다.
양자간의 유대 관계를 드러내는 사례를 복음서에서 찾아보면, 그리스도인들은 70년 8월 29일 성전이 불타기 전까지는 성전세를 바쳤고(17, 24-27), 한동안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가르침을 인정했었으며(23, 2-3), 십일조를 바치고(23, 23) 안식일도 지켰다(12, 11-12 ; 24, 20). 이와는 반대로 독자적인 노선을 추구한 사례도 볼 수 있는데, 우선 유대교 회당을 가리켜 절대로 '우리 회당 이라 하지 않고 '그들의 회당' (4, 23 ; 9, 35 ; 10, 17; 12, 9 ; 13, 54) 또는 '너희 회당' (23, 34)이라 하였다. 사실 마태오가 소속한 교회는 예수를 구약에 예고된 메시아로 믿는 그리스도론과 오직 그분의 율법 해석만을 따르는 윤리관을 정립하였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의 테두리를 넘어 대거 이방인들을 받아들이는 개방 정책을 취하였다. 바로 이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인들로부터 모진 박해를 겪었던 것이다(10, 17. 23 : 23, 34-37).
마태오가 소속한 교회는 지리적으로 예루살렘 모(母)교회와 바오로계 교회들의 중간 지점인 시리아에 위치하였을 뿐 아니라, 그 신학 노선도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즉 율법의 유효성을 일단 인정하되 유대교 율법 학자들의 자구적 해석이 아니라, 율법 전부를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환원시킨 예수의 새로운 해석을 따랐다. 또한 마태오 교회가 부활한 예수의 능력과 성령의 작용을 결코 경시한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역사적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수용하고 전달하는 데 주력한 것 같다.
교직자 : 마태오가 소속한 시리아 지방의 교회에 베드로는 큰 영향을 끼쳤고, 그 밖에도 율법 학자들과 예언자들이 있었다. 베드로가 교회의 최고 지도자로 군림한 사실은 마태오 복음 16장 17-19절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이는 본디 마태오 교회에서 만들어 낸 단구였는데, 80년경 복음서를 집필할 때 이 단구를 수집하여 베드로가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한 문맥에다 삽입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단구의 뜻인즉, 베드로는 교회의 최고 지도자로서 매고 푸는 권한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이 권한의 내용을 두고 여러 가지 풀이가 가능하나, 윤리적 결정권과 교회 규범적 결정권이라고 보면 무방하다. 베드로의 권한을 논할 때는 교회 공동체에도 똑같은 권한이 있다고 하신 말씀(18, 18)을 유념하여, 베드로의 권한과 교회 공동체의 권한을 함께 고찰하여야 한다. 베드로는 마땅히 교회 공동체의 의사를 수렴하는 방식으로 자기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베드로는 교회 일치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인물인 셈이다.
마태오 복음 13장 52절과 23장 34절을 눈여겨보면 그리스도교 율법 학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사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헌것도 꺼내 주는 집주인과 비슷합니다"(13, 52). 옛부터 전해 온 유대교 율법과, 예수가 새롭게 풀이한 율법 해석(5, 21-48)을 다 익힌 사람, 그리고 구약의 메시아 예언과 예수로 말미암아 그 예언이 실현된 사실을 다 익힌 사람만이 그리스도교 율법 학자가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 율법 학자들은 그리스도교 예언자들과 함께 유대인들에게 박해를 받았다(23, 34). 그런데 유대교 율법 학자들이 선생 · 아버지 · 사부라 불렸듯이 그리스도교 율법 학자들도 같은 존칭으로 불렸다. 마태오는 이런 관행에 반대하여, 그리스도 교회에서는 그런 존칭들을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23, 8-10)고 하였다. 또 모름지기 교회 직책은 봉사직이니만큼 겸손되이 자기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하였다(23, 11-12 ; 참조 : 20, 25-28).
한편, 1세기경 시리아 지방 교회에는 예언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가족과 재산과 고향을 버리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10, 41) 예언과 구마와 치유 활동을 하다가(7, 22) 유대인들에게 박해를 받기 일쑤였다(5, 11-12; 23, 34. 37).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가 사랑의 이중 계명으로 환원시킨 율법을 지키면 참 예언자요, 이와는 반대로 범법을 일삼으면 거짓 예언자라는 윤리적 기준을 설정하였다(7, 21-23). 거짓 예언자들은 지금도 활동하지만 장차 종말이 다가오면 몹시 설칠 것이요, 그 결과 "범법이 늘어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식을 것"(24, 11-12)이라고 하였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교회를 이상화(理想化)하지는 않았다. 어느 누구도 죄를 지을 수 있다. 예언자들도 잘못될 수 있고(7, 15), 심지어는 베드로까지도 스승을 배반하였다(26, 69-75). 최후의 심판 때에 이루어질 마지막 선별 때까지 죄인과 선인이 교회 안에 섞여 있을 것이다(13, 36-43 : 22, 11-14 : 25장). 사도직의 생활은 9장 36절부터 11장 1절에 서술되어 있다. 결국, 마태오 복음서 전체는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 백성과 결합하신다는 계약 정식에 의해 틀지워진다(1, 23 ; 28,18-20). 옛 이스라엘은 쫓겨나고(21, 31-32), 이방인들의 개종과 함께, 하느님의 새 백성이 된다(21, 43).
교회 규범 : 마태오 복음사가는 마르코 복음서와 《예수 어록》과 특수 사료의 단편 전승들을 종합하여 18장을 엮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마땅히 자기 교회에서 지킬 규범들을 제시하는 까닭에 교회 규범' 이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로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말씀하고 행동하였듯이(4, 3. 6 26, 39. 42), 교회도 마땅히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받들어 그분의 언행을 재현해야 한다. 18장의 규범 하나하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언행을 반영한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잃은 양에 대한 관심, 작은 자들, 용서와 겸손에 대한 관심이 또 다른 중심적 지침이다. 일찍이 사도 바오로와 그 학파에서는 교회를 그리스도와 연관시켜 그리스도의 몸이라 했는가 하면 (1고린 12, 12 ; 로마 12, 4 ; 골로 1, 18 ; 에페 1, 23 ; 4,12. 16 ; 5, 23. 30), 하느님과 연관시켜 하느님의 이스라엘이라고도 하였다(갈라 6, 16). 마태오가 비록 이런 표현들을 쓴 적은 없지만, 내용상으로는 바오로 및 그 학파와 일맥 상통하는 교회론을 전개했다고 볼 수 있다.
〔그 밖의 중요 개념〕 하느님 나라(하늘 나라) : 마태오 복음사가는 일반적으로 '하느님 나라' (ἡ βασιλεία τοῦ Θεοῦ)라는 표현 대신에 '하늘 나라' 를 사용하였다. 하늘은 하느님의 완곡한 표현으로, 마태오는 '하늘 나라' 를 32번 사용하였고, '하느님 나라' 를 4번 사용하였는데(12, 28 ; 19, 24 ; 21, 31. 43), 의미상 차이는 없다(19, 23-24). 그러나 마르코 복음서와는 대조적으로 그 나라는 좀더 분명하게 현존하는 실재이다(3, 2 ; 4, 17. 23 ; 9, 35 ; 10, 7 ; 12, 28). 이것은 또한 미래적 실재이기도 하며(5, 3. 10. 19-20 ; 7, 21 8, 11-12 ; 13, 43; 18, 3 ; 19, 23-24 ; 25, 34), 영원한 생명과 동일시된다(5, 19 : 7, 21). 그 나라와 교회에는 명백한 일치가 있고, 실재하는 사회로서 비유들에 분명하게 나타나며(13, 24-30. 36-43. 47-50), 또한 인자(人子)의 나라이다(13, 11 : 16, 28).
여기서 하늘 . 나라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중재하는 초월적이고 역동적인 실재이다. '왕국' 은 마태오 복음서에서 과정의 개념으로, 이미 구약에 존재하였고, 어떤 의미에서 이스라엘은 이를 소유하였다(21, 33-46, 특히 43절). 그러나 유대인의 왕이신(2, 2) 예수의 탄생은 왕국의 새롭고도 최상의 존재를 가져오는 것으로, 세례자 요한과 예수는 그 나라가 가까웠다는 것으로 선포를 시작하였다(3, 2 ; 4, 17). 그 나라는 예수의 귀신 추방(12, 28)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왔으나, 그 나라의 최종 도래를 위해서 기도하도록 제자들을 가르치고(6, 10), 그것을 찾도록 한다(6, 33). 예수의 죽음 · 부활의 묵시적 사건은 왕국 도래의 새로운 단계를 의미하는데, 처음으로 예수가 우주를 지배하는 총체적 힘으로 찬양되었기 때문이다(28, 16-20). 이제 인자로서 그의 왕국을 다스리며(13, 37-38. 41), 종말 심판관으로서의 가시적인 도래는 그의 나라의 최종적이고 명백한 도래를 의미하는 것이며(16, 27-28), 그의 아버지의 나라가 될 것이다(13, 43). 하늘 나라는 죄로 물든 인간 세상을 점진적으로 뚫고 승리를 거두는 구원사 전체를 포괄하지만, 예수의 공생활 동안 발전하기 시작하여 죽음 · 부활로 완전히 창설된 교회와 동dlf선상에 있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마지막 심판(13, 24-30)에 대한 예고를 추정할 수 없으며, 비신자뿐만 아니라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도 이에 복종할 것이다(24, 45-25, 30). 만민을 제자로 삼으라는 것은 교회가 역사 안에서 그 나라의 완성을 향해 여행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의로움 : 마태오는 남달리 '의로움' (δικαιοσύνη)을 강조하였는데, 의로움은 도덕 · 윤리적인 의미의 '정의' 라기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3, 15 ; 5, 6. 10. 20 ; 6, 1. 33 ; 21, 32). 그러므로 의로움은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 , 곧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인간의 응답을 가리킨다. 하느님의 뜻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은 무엇보다 다섯 설교, 특히 산상 설교에 나타난다.
제자란 전적인 투신으로 예수를 따르라는 부르심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다. 마르코 복음서에 표현된 제자들의 모습과는 달리 마태오 복음서의 제자들은 예수를 믿고(14, 33) 이해한다(13, 51). 그러나 그들이 비현실적으로 이상화되지는 않았다. 위험에 직면하였을 때 움츠러들고 믿음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부족한 믿음' (8, 26 ; 14, 31 ; 17, 20)은 이후에도 제자들에게 드러난다(28, 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된 제자는 다섯 가지 설교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항상 중요한, 혹은 유일한 청중이다. 제자 됨의 결정적인 요소는 오히려 예수의 말씀을 듣고 그것에 순명하는 데 있다(7, 21-27 ; 21, 6 ; 26, 19). 이것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것과 같다(12, 46-50). 이런 순명하는 행동은 하느님 가족 안에서 예수의 형제 자매가 되게 한다. (⇦ 마두 복음 ; → 공관 복음서 ; 《디다케》 ; 복음서 ; 《예수 어록》 ; 하느님 나라)
※ 참고문헌 정양모 역주, 《마태오 복음서》, 200주년 신약성서 1, 분도출판사, 1990/ -, 《마르코 복음서》, 200주년 신약성서 2, 분도출판사, 1981/ 《루가 복음서》, 200주년 신약성서 3, 분도출판사, 1983/ 서중석, 《복음서 해석》, 대한기독교서회, 1991/ J.D. 킹스베리, 황성규 역, 《선포 주석 마태 복음》, 컨콜디아사, 1983/ H.C. 웨첸, 강요섭 역, 《마태 복음 연구 : 사람 됨의 기원과 운명》, 대한기독교출판사, 1983/ J. Gnilka, Das Matthäusevangelium I~I, 《HThK》 I-1~2, Freiburg, 1986, 1988/ Donald A. Hagner, Matthew 1~13, 33a, Dallas, Texas, Word Books, 1993/ U. Luz, Das Evangelium nach Matthäus, 1. Teilband : Mt 1~7, 2. Teilband : Mt 8~17, 《EKK》 I-1~2, Ziirich-Einsiedeln-Köin, 1985, 1990/ J.P. Meier, Law and History in Matthew's Gospel, 《AnBib》 71, Rome, 1976/ 一, The Vision ofMatthew : Chrrist, Church and Morality in the First Gospel, New York, Paulist, 1979/ W.D. Davies, The Setting ofthe Sermon on the Mount, Cambridge, repr. Atlanta, 1989/ M.J. Suggs, Wisdom, Christology and Law in Matthew's Gospel, Cambridge, MA : Harvard Univ., 1970/ W. Trilling, Das Wahre Israel. Studien zur Theologie des Matthaiusevaeliums, 《StaNT》 10, Miinchen, 1964. 〔崔惠榮〕
마태오의 복음서 - 福音書
〔라〕Evangelium secundum Matthaeum · 〔영〕Gospel according to Matth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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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 복음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