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에서의 40년 동안 내려 주신 양식(출애 16, 1-4. 35 ; 여호 5, 12).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도착하기까지 광야에서 이 "하늘에서 내려온 곡식"(신명 8, 3. 16 ; 느헤 9, 20 ; 시편 78, 24 ; 105, 40)을 매일 아침 식구수대로 거두었는데, 주간의 여섯째 날만은 두 배로 거두어 안식일의 식량으로 삼았다(출애 16, 19-20. 22-26). 구약의 백성이 먹었던 만나는 신약의 백성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생명의 빵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예표(豫表)한다(요한 6, 41-51).
〔어 원〕 이집트를 탈출한 지 두 번째 달에 씬(Sin) 광야에 이르렀을 때 이스라엘 후손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굶주림에 대해 불평하였다(출애 16, 1-3 ; 신명 8, 3). 이에 하느님은 아침에는 만나,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먹게 해주셨다. 그들이 진을 친 천막 둘레에 이슬과 서리처럼 깔려 있던 양식(출애 16, 8. 12-14. 31 ; 민수 11, 6-9)을 처음 보았을 때, 서로에게 '만 후' (מַה־הוּא, 이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었던 질문(출애 16, 15)에서 '만나' 라는 어원이 유래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만나를 가루로 만들어 기름에 튀기거나 빵으로 굽거나 끓여서 음식을 만드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를 하였다(출애 16, 14. 31 ; 민수 11, 7-8).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먹기도 하였을 것이다.
〔학자들의 견해〕 만나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들이있는데, 이를 자연 현상으로 보는 일부 학자들은 팔레스티나와 시나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특정한 나무들(Alhagi maurorum, Tamarisk gallica, Fraxinus ornus 등)에서 생성되는 수액(樹液)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타마리스크 나무의 작은 가지에서 떨어져 내리는 방울들은 사막의 건조한 공기 속에서 낟알 모양으로 빠르게 응고되는데, 이 끈적거리는 알맹이는 풀씨처럼 얇고 작은 것에서부터 완두콩만한 크기로 형성된다. 시나이 반도에 거주하는 베두인들이 '만' (מָן)이라고 부르는 이 자연산 만나는 이슬처럼 투명한데, 시간이 지나면 희끄무레하거나 노르스름하거나, 혹은 갈색이 되어 햇볕에 녹아 버린다. 또 다른 견해는 나뭇가지의 연한 껍질에 스며드는 두 종류의 개각충(介殼虫, Trabutina mannipara Ehrenberg, Najacoccus serpen-tinus Green)의 분비물이라는 설이다. 즉 곤충들이 질소가 거의 없는 나뭇가지에서 신진 대사에 필요한 질소를 모으려고 많은 양의 수액을 빨아들인 다음에 배설하는 분비물이 만나라는 것이다. 작은 덩어리로 뭉쳐져서 꿀처럼 단 이 분비물을 화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탄수화물과 포도당, 과당은 함유되어 있으나 단백질은 없다.
이와 같은 자연산 만나의 양은 겨울 비의 양에 의존하는데 나쉽 와디(Nasib Wadi)와 에쉬-쉐이크 와디(Esh-Sheikh Wad)에서 특히 많이 생산된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지금까지도, 그 지역 전체에 만나가 비오듯 내려온다"고 《유대 고사》에 기록하고 있다(Ⅲ, 1. 7). 그러나 자연산 만나가 실제로 생산되는 기간은 봄철, 다시 말해 5월 말에서 6월 초에 이르는 3~6주 가량의 짧은 기간에 불과하며, 그 양도 한 사람이 하루 종일 부지런히 거두어야 220g 정도이다. 이처럼 짧은 기간과 적은 양의 자연산 만나가 많은 무리의 계속적인 양식이 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 국경 지대에 도착하여(출애 16, 35) 길갈에서 가나안 땅의 과일을 먹기까지(여호 5, 12) 광야에서 40년 동안 만나를 풍족하게 먹었다. 만나가 설혹 자연산과 같다해도 그 양과 시기는 분명 자연을 초월하는 기적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늘에서 비처럼 내린 만나를 한 사람이 한 오멜(대략 2.2리터)씩, 각자가 먹을 만큼 거두었다(출애 16, 16-18). '하늘의 빵; (시편 105, 40)인 만나는 많이 거둔 사람이나 적게 거둔 사람 모두에게 더도 덜도 아닌 꼭 필요한 양이 되었다. 모세는 하느님이 베푸신 이 큰 섭리의 표징을 대대손손 기억하게 하려고 만나를 항아리에 담아서 계약의 궤에 보관하도록 아론에게 명하였다(출애 16, 33-34 ; 1열왕 8, 9 ; 2역대 5, 1 ; 히브 9, 4). 이 계약의 궤는 유대가 멸망할 때 예언자 예레미야가 느보 산의 한 동굴에 숨겼다고 전해진다(2마카 2, 4-7). 이러한 전승을 배경으로 묵시 문학에서는, 메시아 왕국을 충실하게 기다리며 승리한 사람에게 하느님이 감추어 둔 만나를 주신다는(묵시 2. 17) 희망을 표현하였다.
〔의 미〕 만나는 극도의 결핍과 위험으로 생명이 위태로운 광야에서 살아갈 힘을 주는 '강한 이들의 빵' (시편 78, 25 ; 느헤 9, 20)이며, 안식일을 제외한 평일에 매일 새로이 주시는 일용할 양식(마태 6, 11)이다. 모세는 비록 후손들의 교육을 위한 좋은 목적에서일지라도 많은 양이 아니라 오직 한 사람의 하루 양식거리인 한 오멜' 만을 보관하도록 하였다(출애 16, 33).
만나는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양식인 성체성사를 예표한다. 구약의 백성은 만나를 먹고도 죽었으나 '하늘에서 내려온 참된 생명의 빵' 인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시는 사람은 영원한 구원의 생명을 받는다(요한 6, 31-65). 예수가 빵을 많게 한 기적을 본 군중은 예수가 만나를 내리게 한 모세처럼 (신명 8, 15-16 ; 요한 6, 14) 그들을 정치 · 경제의 곤궁에서 구원해 주기를 원하였다. 빵이 많아진 기적에 뒤이어 유대인들이 만나를 언급하며 예수에게 표징을 요구한 것은(요한 6, 30-31. 34) 그들이 예수의 말과 그 기적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학자들 중에는 유대인들은 예수에게 빵 증가 이상의 더 큰 표징, 곧 매일 하늘에서 만나와 같은 빵을 내려 주기를(출애 16, 4. 15 : 시편 78, 24 지혜 16, 20) 요구한 것이라고 주석하기도 한다.
만나가 예표하는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의 몸을 일용할 양식으로 주시는 하느님의 놀라운 사랑의 기적이다. 만나와 성체성사는 전적으로 하느님의 선물이다. 빵의 형상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를 받아 모심은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구원자와의 만남이다. 영성체로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시는 하느님 백성의 생활은 하느님께 온전히 의존하는 삶이며, 빵만으로 살지 아니하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신명 8, 3 ; 마태 4, 4 ; 루가 4, 4) 삶이다. 광야의 백성들은 생명을 주는 '천사들의 빵' (시편 78, 25)인 만나까지 싫증을 내며 불평하였다(민수 11, 4-6). 그러나 믿음을 지닌 사람들에게 만나는 먹는 이마다 다른 맛을 준다(지혜 16, 20-26). 성체성사 역시 불신자들에게는 늘 같은 맛인 단순한 밀떡에 불과하나, 신심 깊은 사람들에게는 각자에게 심오한 맛을 주는 '영적 양식' (1고린 10, 3)이다. 만나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신앙의 정점이며,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우리 가운데 있음을(루가 17, 21) 보증하는 표징이다. (→ 성체성사)
※ 참고문헌 G.L. Carr, 3, pp. 239~240/ X. Léon-Dufour, Vocabulaire de Théologie Biblique, Paris, 1981/ B.J. Malina, The Pale-stinian Mamma Tradition, Leiden, 1968/ J.L. Mihelic, 《IDB》 3, pp. 259~260/Michael Zohary, Manna, Plants of the Bible, Tel-Aviv, 1982/ Joel C. Stay-ton, 《ABD》4, p. 511. 〔趙和濬〕
만나
〔히〕מָן · 〔그〕μάννα · 〔라·영〕m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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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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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를 줍는 이스라엘 백성들(로베르티 에콜 작, 론드레스 국립 미술관 소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