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구 소속 본당. 부산시 북구 만덕3동 246-1 소재. 1981년 5월 31일 구포(龜浦) 본당에서 분리 · 신설되었으며 주보는 성령. 관할 구역은 만덕동 전역과 덕천동 일부 지역. 〔교 세〕 1981년 710명, 1985년 1,464명, 1988년 2,103명, 1991년 3,286명, 1994년 4,363명. 〔역대 신부〕 초대 호반(B. Hoban, 호) 브렌다노(1981. 5~1984. 5), 2대 윌리엄(J.H. William, 조용히) 요셉(1984. 5~1985. 4), 3대 윌름슨(G. Wilmsen, 진만복) 제라르도(1985. 4~1988. 1), 4대 박제원(朴帝源) 알베르토(1988. 1~1990.2 5대 정환국(鄭桓國) 알로이시오(1990. 2~1991. 2), 6대 김승주(金承柱) 요한 그리소스토모(1991. 2~1992. 2), 7대 이기정(李基正) 안드레아(1992. 2~1993. 2) 8대 김현영(金鉉英) 마태오(1993. 2~현재).
〔공소 시대〕 부산시에서는 구포 본당 관할이었던 만덕동에 1975년경부터 초량동 철거민들을 입주시켰는데, 신자수가 40여 명에 이르자 구포 본당의 이옥군(李玉君, 타대오) 신부는 직접 신자 가정을 방문하여 미사를 집전하고 신자들이 서로 친교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이후 철거민들의 정착 지역이 점차 확대되고 신자수도 계속 증가하자, 1976년 11월 17일 이 지역 신자들은 구포 본당의 송기인(宋基寅, 베드로) 신부를 주축으로 신덕동의 이주민과 향후 도시 확장 계획에 따른 교세 신장에 대비하여 성당 신축 허가를 교구청에 요청하였다. 그결과 교구에서는 1977년 2월 만덕동의 토지 400평을 성당 부지로 매입하고, 그 해 6월 공소 건물을 완공하였다. 같은 해 8월 15일 첫 미사를 봉헌한 후 전용주(베드로)를 회장으로 만덕 공소가 정식으로 시작되었으나 주임 신부의 매주일 공소 방문이 어렵게 되었다. 이에 부산교구장 이갑수(李甲秀, 가브리엘) 주교는 당시 김해 공군 군종 신부로 있던 백남용(白南容, 바오로) 신부로 하여금 1978년 5월 1일부터 이듬해 8월 23일 예편될 때 까지, 이어 강영돈(姜永敦, 라우렌시오) 군종 신부에게 1980년 7월 예편할 때까지 공소를 담당하도록 하였으며, 그 후 교구청의 해양 사목 지도 신부로 있던 파이퍼(David Pfeiffer, 파명건) 신부가 매주 방문하여 본당으로 승격할 때까지 미사를 집전함으로써 공소 공동체의 사목과 선교는 매우 활기를 띠게 되었다.
1977년 9월 레지오 마리애 상아 보탑 쁘레시디움이 창단된 이후, 이듬해 11월 청년회, 그 해 1월에는 애덕의 모후 쁘레시디움, 그리고 1980년 8월에는 인자하신 모후 쁘레시디움 등이 차례로 조직되었다. 만덕동을 중심으로 주택가가 형성되고 인근 지역에 아파트 단지가 형성됨에 따라 신자수도 급증하자 1981년 5월 31일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성장과 발전〕 1982년 4월 성당 및 사제관 신축 공사에 착공한 초대 주임 호반 신부는 그 해 12월 대지 400평에 건평 87평의 성당을 완공한 후, 이듬해 3월 6일 부활 대축일에 축복식을 거행하였으며, 본당 사목 협의회의 민주적 운영을 적극 유도했다. 또 근로 학생들을 위해 봉사하는 대학생들에게 지하 교리실을 빌려 주었으며, 장례 미사 때는 스님의 독경(讀經)을 허용하기도 했다.
2대 주임 윌리엄 신부는 신심 단체의 활성화와 신자 재교육에 주력하였으며, 3대 주임 윌름슨 신부는 전 신자들의 모금 활동으로 1985년 8월에 사무실과 수녀원을 각각 신축하였다. 또 전례 집전에 있어서 한국 고유의 전통 명절 예식을 존중한 윌름슨 신부는, 한국 순교 성인들의 공경에도 힘을 기울였다. 1986년 9월부터 지역 주민들과의 유대를 위해 마련한 한마당 놀이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으며, 물물 교환 바자회를 열어 남은 의류를 산청(山淸) 나환자촌에 전달했고, 병원 · 고아원 · 월남 난민촌 등을 자주 방문하여 어려운 상황에 있는 이들을 위로하고 연극 공연을 통한 전교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첫 한국인 사제로 부임한 4대 주임 박제원 신부는 각 구역별로 반 모임의 활성화를 도모하였고, 8대 주임 김현영 신부는 성당 증축 공사를 구체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1993년 7월에 지금의 성당 인근 부지 650여 평을 마련하고, 1995년 3월 15일 이갑수 주교의 주례로 성당 신축 기공식을 가졌다. 1996년 초 공사가 중단되는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으나 본당 신자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8월부터 공사가 재개되었으며, 공사비 절감을 위해 신자들이 직접 공사 현장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997년 4월경 완공 예정인 새 성당에는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사제관, 수녀원, 교리실을 비롯하여 주차장과 영안실까지 마련될 계획이다.
현재 신심 단체로 대건회, 교사회, 청년회, 안나회, 모니카회, 제대회, 성가대, 전례 봉사자회, 복사단, 빈천시오 아 바울로회, 연령회, 성모회, 울뜨레야, M.E., 교황청 전교회, 레지오 마리애 2개 꾸리아에 50개의 쁘레시디움 등이 있다. 만덕 본당의 관할 구역 내에 거주하는 신자들 대부분은 철거 이주민들이고, 인근 사상(沙上) 지역의 공단에서 일하는 공장 근로자들도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만덕 본당에서는 이들에 대한 사도직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지역의 복음화를 앞당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부산교구)
※ 참고문헌 부산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教區三十年史》, 천주교 부산교구, 1990/ 《가톨릭 사전》 보유편. 〔편찬실〕
만덕 본당
萬德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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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