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교구 소속 본당. 인천시 남동구 만수1동 958 소재. 1988년 1월 10일 만수동(현 만수3동) 본당으로부터 분리 · 신설되어, 1993년 1월 26일 본당명을 남동 본당에서 '만수1동 본당' 으로 변경하였다. 주보는 삼위 일체. 관할 구역은 만수1 · 4 · 6동, 서창동, 장수동, 운연동 전역과 만수2 · 5동 일부. 〔교 세〕 1988년 1,487명, 1989년 3,308명, 1992년 5,554명, 1993년 7,929명, 1994년 8,712명. 〔역대 신부〕 초대 옥슬리(B. Oxley, 옥) 베르나르도(1988. 1~1993.2), 2대 김병상(金秉相) 필립보(1993. 2~현재) .
〔설립과 발전〕 인천시와 시흥시에 인접한 만수1동 지역은 1977년 수인(水仁)간 산업 도로가 개통된 데에 이어 인천 시청이 근처의 구월동으로 이전되고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는 등 거주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교세가 크게 신장되었다. 이에 인천교구에서는 이 지역에 새로운 본당 설립을 추진하여 1988년 1월 만수동 본당에서 남동 본당을 분리시키고, 성당 부지로 만수초등학교 뒤편에 있는 만수1동 457번지의 논 약 700평과, 임시 사제관으로 만수 주공 아파트 416동 1002호를 마련해 주었다. 이어 초대 주임으로 골롬반회 소속의 옥슬리 신부가 부임하였으며, 그 해 1월 17일에는 만수동 본당에서 남동 본당의 첫 미사가 봉헌되었다. 당시 만수동 본당 주임 이수일(李秀一, 제르바시오) 신부는 485세대 1,487명의 교적과 1천만 원의 본당 신축 기금을 전달하고 성당이 마련되기 전까지 주일 미사는 만수동 본당에서, 그리고 평일 미사는 원하는 가정에서 각각 봉헌하였다.
한편 그 해 1월 21일 본당에서는 가건물로 된 임시 천막 성당의 건립을 위해 만수1동 276번지에 240평의 토지를 임대하였고, 만수동 본당 초대 사목 회장이었던 윤용식(요셉)으로 하여금 공사를 추진하게 하여 2월 1일 임시 천막성당과 사무실, 회의실을 완공하고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 후 전입 신자의 증가로 성당 신축이 대두되었으나, 교구에서 마련해 준 토지는 지리상 성당 부지로 적절하지 못하여 6월 19일부터 성당 건축을 위한 헌금을 모금하였다. 그래서, 현 본당 위치에 2차에 나누어 총 718평의 부지를 매입하였으며, 외국으로부터의 건축 보조금과 골롬반회 한국 지부에서의 무이자 대부금, 본당 신자들의 모금, 각종 물품 판매 및 폐품 수집 등에 의한 건축금 마련으로 1989년 4월 2일 성당 대지 축복식과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같은 해 6월부터 성당 건축을 위한 헌금 모금을 재개하여 1990년 4월 14일 성당(870평)과 사제관을 완공하였다. 그러나 교리실을 비롯한 각종 부속 시설의 보완 공사가 이듬해까지 계속되어 축복식은 1991년 5월 18일에 교구장 맥노튼(McNaughgton, 羅吉模) 주교의 집전으로 거행되었다.
〔성장과 변모〕 초대 옥슬리 신부는 부임 직후인 1988년 1월 31일 본당 주보(週報) 제1호를 발행하고 그 해 4월 4일자로 본당 주보(主保)를 '삼위 일체' 로 정하였으며, 삼위 일체 대축일을 본당 축일로 정하였다. 또 2월 3일에 열린 임시 구역장 · 반장 회의를 시작으로 신자들의 신심 활동 활성화와 친목 도모 및 복음 전파를 위해 많은 단체들이 설립되었고, 5월에는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가 구성되었다.
2대 주임 김병상 신부는 부임 직후 미사를 증설하고 예비자 교육을 강화시키는 한편, 1994년 5월 1일 수녀원 및 문화원 강당 140평을 신축한 데 이어 문화원을 개설하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주민들에게 문화 혜택의 기회를 주었다. 또한 적극적인 전교 활동으로 교세 신장에 크게 기여하였는데, 특히 1994년 말에는 '새로운 양 찾기 운동' 을 전개하여 1995년 6월 25일 500여 명의 입교 예정자 모임을 주관하였다. 그 후 약 7개월 동안 모든 예비자들을 지역 · 연령 · 학력 · 교리 시간대별로 구분하여 총 45개 반으로 편성하고, 예비자 교육을 실시하여 이듬해 1월 21일 486명의 새 영세자를 배출시켰으며, 12월에도 600여 명의 새 영세자가 배출되었다. 또 냉담자를 위한 '잃은 양 찾기 운동' 도 전개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으며, 1996년 7월 1일에는 도서, 영상 비디오, 신문 기사 스크랩 등 다양한 사목 및 선교 관련 자료들을 갖춘 본당 자료실을 개설하였다. 신심 단체로는 본당 설립 초기부터 활동을 한 안나회, 삼위 일체회, 연령회 등이 있으며, 레지오 마리애 2개 꾸리아에 35개의 쁘레시디움이 활동하고 있다. (⇦ 남동 본당 ②; → 인천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인천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인천교구사》, 천주교 인천교구, 1991. 〔편찬실〕
만수1동 본당
萬壽一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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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