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수3동 본당

萬壽三洞本堂

글자 크기
4
인천교구 소속 본당. 인천시 남동구 만수3동 111-38소재. 1978년 8월 15일 간석동(현 간석2동) 본당에서 분리 · 신설되어, 1993년 1월 본당명을 만수동에서 만수3동으로 변경하였다. 주보는 성 안드레아. 관할 구역은 만수3동, 도림동, 서창동, 장수동 전역과 만수2 · 5동 일부. 〔교 세〕 1978년 478명, 1983년 2,265명, 1988년 4,716명, 1990년 3,672명, 1994년 4,054명. 〔역대 신부〕 초대 박성규(朴成圭) 베네딕도(1978. 8~1984. 2), 2대 이수일(李秀一) 제르바시오(1984. 2~1989. 2), 3대 오용호(吳龍浩) 세베리노(1989. 2~1992. 9), 4대 현명수(玄明洙) 바오로(1992. 9~1995. 2), 5대 황해룡(黃海龍) 마르코(1995. 2~현재).
〔설 립] 인천교구에서 21번째로 설립된 만수동 본당은 설립 초기에 구역 내의 한국 순교 복자 수도원을 임시로 사용하다가 1978년 9월 10일에 만수2동 108번지의 대영주택 15호와 8호를 빌려 각각 임시 성당과 수녀원으로 사용하였다. 철거민들이 많아 지역 신자들의 이주가 잦고, 또 경제적으로 저소득층이 많이 거주하여 성당 건립을 보류하다가 1980년 8월 30일 기공식을 가졌는데, 그 후 자금난으로 1981년 6월에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약 2년 뒤인 1983년 3월 22일에 재개되어 그 해 6월 18일 성당을 완공하였다. 착공 3년 만에 완공된 이 성당은 718평의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의 규모로 성당(120평)을 비롯하여 사제관, 수녀원, 사무실 및 각종 부대 시설을 고루 갖추고 있다.
〔활동과 변모〕 만수동 일대는 인천 시내 남쪽 끝에 위치한 외진 곳으로 본당 신자의 70%가 철거민이었다. 초대 주임 박성규 신부는 이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여 부임 직후부터 철거민 세대를 중심으로 가정 방문을 실시하고, 주변에 병원이 없는 현실을 감안하여 전셋집을 얻어 진료실을 개설하였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소아과장 최평화(제노베파) 교수가 이끄는 가톨릭 학생회와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가톨릭 학생회 회원들이 무료 진료팀을 구성하여 매주 토요일 진료 봉사 활동을 벌였는데, 이후 주기적이고 지속적인 의료 활동이 전개됨으로써 상설 진료소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1978년 11월 7일에는 예비자 교리반을 개강하였고, 1980년에는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들이 설립되었으며, 이듬해 10월 16일에는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를 구성하였다. 자금난으로 성당 공사가 중단되는 상황에서도 무료 진료소에 이어 1982년 3월 27일에 무료 유치원(2개 반 80명)을 개원하였다.
2대 주임 이수일 신부는 신자 재교육의 첫 단계 사업으로서 1984년 9월 4일 평신도 지도자 육성을 위한 야간 신앙 대학을 개설하였고, 1985년부터는 정규 교리반외에 1년에 4차례 '거북이반' 이란 명칭으로 별도의 교리반을 개설하였는데, 이 교리반을 운영함으로써 수시로 찾아오는 예비자들의 효과적인 수용과 중도 탈락한 예비자들의 재교육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본당차원에서 '예비 신학교 를 설립하여 성소 개발 및 육성을 도모하였으며, 매년 사순 시기에는 신자들이 연구한 교리를 매주 금요일 저녁 미사 강론 때 직접 발표하게 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3대 주임 오용호 신부는 1992년 8월 인하대학교 학생들의 자원 봉사로 운영되는 '용마루 야학교' 를 본당 내에 마련함으로써 중고등학교 교과 과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으며, 4대 주임 현명수 신부는 불우 노인들에게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기 위해 1994년 6월 12일 '밀알의 집' 을 개설하였다. 이어 5대 주임 황해룡 신부 때인 1996년 7월 1일, 인천시 남동 구청으로부터 사회 복지 회관의 운영을 위탁받아 용마루 야학교와 밀알의 집을 이전시키고, 독서실 · 청소년 공부방 · 노인 강좌 · 주부를 위한 영어 강좌 · 미용 강좌 등을 실시함으로써 지역 사회의 복지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현재 레지오 마리애 2개 꾸리아 산하의 24개 쁘레시디움을 비롯하여 연령회, 빈천시오 아 바울로회, 주일학교 자모회, 복사 자모회, 헌화회, 펠리컨 성가대, 청년 성가대, 청년회, 할아버지 · 할머니들로 구성된 신심 강화 및 친교 단체인 예수 성심회와 모니카회가 있으며, 지속적인 성체 조배회가 1988년 2월 9일 구성되었다. 특별히 1996년 6월 30일에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중심이 되어 가두 선교단을 발족시킴으로써 보다 적극적인 전교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 인천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인천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인천교구사》, 천주교 인천교구, 1991.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