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시, 조반니 도메니코 (1692~1769)

〔라〕Mansi, Giovanni Domen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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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교. 가톨릭 신학자. 교회 출판물 편집자. 1692년 2월 16일 이탈리아 루카(Lucca)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1710년에 천주의 모친 성직 수도회(Congrêgation des Clercs de la Mère de Dieu)에 입회하였다. 특별히 신학적인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 교회 문제와 관련된 책을 편집한 만시는, 신학자로서 활동하면서 몇 년 동안 나폴리에서 윤리 신학을 가르쳤으며, 문헌 조사와 자신의 연구 활동차 수차례 동부 유럽을 순방하기도 하였다. 그 후 콜로레도(Fabio Colloredo) 대주교의 부름을 받아 루카에서 '교회사와 전례 아카데미' 를 창설하였다. 1758년 추기경단 임명시 그가 고려되기도 하였으나 교황 글레멘스 13세(1758~1769)에 의해 거부되었는데, 당시 교회로부터 비난받은 디드로(D. Diderot)의 《백과 사전》(Encyclopèdie)의 편집에 관여했다는 이유에서였다. 1765년에야 비로소 교황 글레멘스 13세에 의해 루카의 대주교로 서임된 만시는, 1769년 9월 27일 루카에서 사망하였다.
〔저술 활동〕 만시의 주된 활동은 편집자로서의 활동이었는데 일생 동안 약 90권을 편집 · 발간하였다. 그의 유일한 독자적 저술은 《주교에게 유보된 사건과 파문에 관한 논고》(Tractatus de casibus et excommunicationibus episcopis reservatis, Lucca, 1724)뿐이다. 만시는 1728~1733년 베네치아에서 발행된 23권의 세계 공의회 모음집 보충편을 총 6권으로 루카에서 1748~1752년 사이에 발행하였다. 만시는 곧 이어서 자신의 작품 모두를 다시 개작하려고 시도하였는데, 이것이 1759~1798년 베네치아와 피렌체에서 그와 그의 후계자들에 의해 31권으로 발행된 《새롭고 가장 풍부한 공의회 모음집》(Sacrorum concili-orum nova et amplissima collectio)이다. 여기에는 공의회 문서 이외에도 전기문 · 조약문 · 교황청 서한들 · 교부학 문헌 등을 포함하고 있는데, 피렌체 공의회의 종식을 알린 1439년까지의 자료들이다.
〔영향과 의의〕 만시의 제자들은 이 31권의 모음집을 다시 편집하면서, 서문(序文)과 프랑스 왕의 조약문 2권, 1439~1720년의 공의회 및 교회 회의를 추가하여 35권까지 발행하였다. 그 후 리용의 교수 마르탱(J.B. Martin)과 아테네의 대주교 프티(L. Petit)에 의해 계속 추가 편집되어 1901년부터 1927년까지 파리, 라이프치히, 아른헴(Arnhem)에서 36권부터 53권까지 발행되었다. 이 추가 편집된 모음집은 보충과 목차, 19세기 동방 공의회와 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포함하여 그때까지의 서방 공의회를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공의회사에 대한 가장 중요한 원천 자료가 되고 있다. 그의 모음집은 고대 그리스도교와 중세기의 공의회에 대한 비교적 쉬운 참고 자료이며, 또한 동방 공의회와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 대한 자료도 된다. 그러나 그 중간 시기에 대한 자료는 매우 적다. (→ 신학사)
※ 참고문헌  H. Maisonneuve, 《Cath》 8, p. 350/ H. Rumpler, 《NCE》 9, p. 173/ R. Baumer, 《LThk》 6, p. 1365.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