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천주교 신앙의 도입과 관련된 인물들의 유고를 모아 편찬한 책. 만천(蔓川)이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자인 이승훈(李承薰, 베드로)의 호이기 때문에 그의 유고집으로 알려져 왔으나, 실제로는 다른 사람들의 유고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현존하는 것은 원본이 아니라 구한말의 괘지에 필사된 전사본(轉寫本)으로 크기는 17×25cm이며, 김양선(金良善) 목사가 수집하여 소장하고 있다가 그의 사후 숭실대학교 부설 '한국 기독교 박물관' 에 기증되었다. 표지에는 '만천집' (蔓川集)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안에는 '만천유고' 라고 적혀 있다.
내용은 잡고(雜稿)와 시고(詩稿), 수의록(隨意錄), 발문(跋文) 등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잡고에는 농부사(農夫詞) · 천주실의발(天主實義敗) · 십계명가(十誡命歌) · 천주 공경가(天主恭敬歌) · 경세가(警世歌) · 성교요지(聖敎要旨) 등 6종이, 시고에는 청앵유회 (聽鶯有懷) · 평천십이곡(平川十二曲) · 원적산중팔경(元積山中八景) · 복한초(復韓草) · 설월(雪月 ) · 잡시삼십여수(雜詩三十餘首) 등 6종이, 수의록에는 창시(創始) · 본조연기(本朝年紀) · 북경일본류구국정도(北京日本琉球國程道) · 도성(都城) · 행로거리정(行路距里程) · 중국성각부현(中國省各府縣) 등 6종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에서 이승훈의 저작으로 추정되는 것은 경술년(1790)에 농민들이 농기(農旗)에 글을 부탁하여 짓게 되었다는 주기(朱記)가 붙어 있는 '농부사' 뿐인데, 실제로 이승훈이 목민관인 평택 현감에 임명된 것은 이듬해인 1791년이었다. 한편 '만천초고' (蔓川草藁)라는 주기가 붙어 있는 수의록의 저작들도 그의 작품으로 추정되지만 분명한 것은 아니다.
잡고에 수록되어 있는 그 밖의 저작들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천주실의발' 은 저자가 나타나 있지 않으나 이익(李潼)의 저술임이 분명한데, 《성호전서》(星湖全書)에 있는 원본의 내용과는 다소 문자에 차이가 있다. '십계명가' 는 십계명을 풀이하여 천주교 봉행을 권하는 4 · 4조의 한글 가사체로, 기해년(1779) 12월 주어사(走魚寺) 강학 후 정선암(丁選庵, 즉 丁若銓) · 권상학(權相學) · 이총억(李寵億) 등이 지었다는 주기가 있다. 다만, 여기에서 정약전의 호를 선암이라고 적은 것은 '손암' (巽庵)의 오기임이 분명하며, 이 호는 1801년 그가 흑산도로 유배된 이후에 사용하던 것이다. 다음으로 '천주 공경가' 는 위의 십계명가와 같은 목적으로 같은 시기에, 같은 장소에서 이벽(李檗, 요한)이 작사하였다는 주기가 붙어 있다. '경세가 는 천주교를 배척하는 벽이(闢異) 가사로 그 저작 시기가 나타나 있지 않으나, 이가환(李家煥)과 김원성(金源星)이 작사하여 이승훈에게 주었다는 주기가 붙어 있다. 그리고 '성교요지' 는 이벽이 《천학초함》(天學初函)을 읽고 지었다는 주기가 붙어 있는데, 전문 28쪽이 모두 4 · 4조의 한문 정형시를 따르고 있으며, 중요한 내용은 협주에서 설명을 덧붙여 놓고 있다.
시고 중에서는 평천십이곡 , '원적산중괄경' 가운데 경기도 광주 · 여주 · 양평 일대의 지명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주어사 강학, 또는 고향이 그 지방이던 이벽이나 권철신(權哲身, 암브로시오), 정약전 · 약용(T若鏞, 요한) 형제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잡시 30여 수에 들어 있는 '야여이덕조완월당절흠'(夜與李德操翫月唐絶歆)은 이벽(덕조는 그의 字)과의 만남을 나타낸 것이고, '두미호주' (斗尾呼舟)와 '주행이두' (舟行二頭)는 양평 마재〔馬峴〕에 살던 정약전 · 약용형제가 훗날 이벽과 함께 서울로 갈 때 배를 타고 지나던 두미협(斗尾峽)과 관련이 있는 시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을 통해 이 시들을 이승훈의 작품으로 단정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발문의 저자를 이승훈과 관련 지어 그의 아들인 이신규(李身逵)로 보는 경우가 있고, 정약용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뿐만 아니라 십계명가 · 천주 공경가 · 성교요지 등에 첨부되어 있는 주기의 내용대로 그 저자를 초기 신자들로 이해하고, 그들의 교리 이해 정도를 설명하는 작품으로 인정하기도 하며, 1779년에 개최된 주어사 강학의 성격을 나타내 주는 자료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이 모두 조선 후기의 천주교 도입과 수용 과정에서 중요한 것인 만큼, 《만천유고》와 관련해서는 주기의 오류와 첨삭에 대한 설명, 주어사 강학의 성격 규정, 발문의 저자 규명, 그리고 각 저작들에 대한 분석이 앞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 《성교요지》 ; 이승훈 ; 주어사 강학)
※ 참고문헌 金玉姬, 《廣菴 李檗의 西學思想》, 가톨릭출판사, 1975/ 河聲來, 天主歌辭 研究》, 聖黃錫斗루가書院, 1985/ 李相寶, <闢衛歌에 대한 考察>, 《국어 국문학》 28집, 1965/ 車基眞, 〈蔓川遺稿 해제>, 《교회와 역사》 159호(1988. 8)/ 李離和, 〈李承薰 關係 文獻의 檢討〉, 《教會史研究》 8집, 한국교회사연구소, 1992/ 車基眞, 〈星湖學派의 西學 認識과 斥邪論에 대한 연구>, 韓國精神文化研究院韓國學大學院 1996. 〔車基眞〕
《만천유고》
蔓川遺稿
글자 크기
4권

《만천유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