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멜 제3회

第三會

〔영〕Third Order of Carm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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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멜 수도회의 영성을 본받아 생활하는 남녀 신자들의 모임. 일명 가르멜 재속회(在俗會). 1476년 교황 식스토 4세(Sixtus Ⅳ)에 의해 인준되고, 1948년 린치(Kilian Lynch) 총장에 의해 현재의 회칙이 발표되었다. 가르멜 수족(修族)에 속하는 제3회 회원들은 제1회(남자 수도회)나 제2회(여자 수도회)의 회원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나가면서 그 도움을 받아 가르멜의 영성과 지도안에서 그리스도교적 삶을 영위하고, 세속에서 복음적 완덕(完德)을 지향하는 신앙 생활을 한다. 특히 이 회는 형제회로서 위와 같은 지향 아래 다양한 의무를 교회와 사회 안에서 완수하도록 서로 격려하고 도와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6개월 정도의 예비 과정을 거쳐 입회한 뒤 1년 6개월이 지나면 서약을 한다.
한국의 가르멜 제3회는 1948년 가톨릭대학 신학부 교수로 있던 공베르(Antonius Gombert, 孔安國) 신부가 회원들을 모집하여 처음 모임을 가지면서 시작되었다. 당시의 명칭은 '한국 가르멜 재속 3회' 였다. 이 모임은 6·25 동란으로 한때 중단되었다가 서울 수복 후인 1953년 수유리 가르멜 수녀원에서 재출발하였으며, 1968년 총장 신부의 인준을 받아 정식으로 발족을 보았다. 그리고 1970년 10월 교황 바오로 6세(Paulus Ⅵ)의 인준을 받았고, 1975년 '대구 가르멜 재속회' 가 설립됨과 동시에 기존의 한국 가르멜 제3회를 '서울 가르멜 재속회' 로 개칭하였다. 이후 각 지역의 가르멜 재속회는 계속 증가하여 현재 9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그 회원수도 2,200 여 명에 달하게 되었다. 이에 회원들은 1991년 7월 전국 회원들 사이의 친교와 활동 협력을 위해 '가르멜 재속 연합회' 를 조직했다. 한편 서울 가르멜 재속회는 1979년 피정 장소를 인천 계산동 소재 남자 가르멜 수도원으로 이전하였으며, 1986년 새 부지를 희사받는 등 가르멜회관 건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 가르멜 수도회)
※ 참고문헌  백인덕, <가르멜 재속회>, 《교회와 역사》 제222호 (1993. 11), 한국교회사연구소, pp. 19~21. 〔車基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