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인들이 하느님께 희생 제물로 봉헌한 첫 열매, 맏배, 첫아들. 고대 이래 셈족은 하느님이 모든 생명체를 창조하였으므로 식물 · 동물 · 인간은 본래 하느님에게 속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어떤 목적이든지 사람이 하느님의 창조물을 사용할 때, 그것은 하느님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고 그분의 분노를 일으킨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맏물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나머지를 자신과 가족을 위해 사용하였다. 또한 전례에서 맏물은 가장 좋은 것으로 여겨졌으므로 이를 하느님께 봉헌하지 못할 경우에는 속량(П口), 즉 대속이나 속전으로 대치하였다(출애 13, 13. 15 : 34, 20 ; 레위 27, 26 : 민수 3, 44-51 :18, 15-17 ; 신명 14, 23-26).
〔어원 및 의미〕 비쿠림(בִּכּוּרִים)의 어근은 아람어 바크르(bakr), 히브리어 베코르( בְּכוֹר), 아랍어 비크르(bikr)에서 유래된 듯하다. 아카디아어 바카루, 바크루(bakkaru,bakru, 어린 낙타, 어린 나귀)도 이 어근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또 첫아들은 '처음 나다' (בָּכָר)의 어원과 관련되어 있고, '처음' 과 '자손, 계승자' 는 서로 연관된 것처럼 여겨진다. 70인역 성서에서 맏물은 프로토토코스(πρωτότοκος)로 번역되어 130번 등장하는데, 모세 오경에 74번, 역대기에 29번 나오고 주로 법 제정이나 연대기에서 사용되었다. 또 첫 열매로 번역되는 아파르케(ἀπαρχή)는 비유적으로 사용되는데, 농경 문화의 전례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첫 열매 : 땅에서 수확한 첫 소출' 즉 맏물은 가장 좋은 수확물로 간주되었다. 이스라엘에서는 다른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첫 열매들을 하느님께 바쳤다. 첫 열매는 처음에는 의식(儀式) 규정 없이 자유롭게 바쳐졌으나(창세4, 3-4) 후대로 가면서 이 관습은 율법에 의해 의무화되었고 봉헌 방법도 규정되었다. 첫 열매에 관한 성서 본문의 성립 연대를 살펴보면 이 관습의 발전 과정을 알 수 있다. 먼저 출애굽기에는 "네 땅에서 난 맏물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 너희 하느님 집으로 가져와야 한다" (23, 19 : 34, 26)고 하였으며, 신명기에는 봉헌 의식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신명 26, 1-11). 그리고 봉헌물은 처음에는 땅에서 직접 수확한 것에 국한되었으나 후에는 첫 열매를 가공한 것도 포함되었다(민수 15, 20 : 에제 44, 30 : 레위 23, 17. 20 ; 2열왕 4, 42 ; 신명 18, 4 ;토비 1, 6).
비쿠림은 사제의 명령에 따라 하느님께 봉헌하는 첫 곡식과 과일을 말한다. 항상 남성 복수 형태로 나타나는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땅의 첫 생산물(출애 23, 16. 19 ;34, 16 ; 민수 28, 16 ; 느헤 10, 35 ; 13, 31), 특히 밀(출애 34, 22)이나 곡식 수확물(에제 44, 30 ; 레위 23, 17. 20), 과일(민수 18, 13 ; 에제 44, 30), 무화과(나훔 3, 12), 포도 (민수 13, 20)를 가리켰고, 때때로 단순하게 '이른 열매' (레위 2, 14 ; 2열왕 4, 42)를 가리키기도 하였다. 비쿠림과 비슷한 뜻을 지닌 레쉬트(רֵאשִׁית)도 대개 '첫째' 나 '처음' 으로 번역되지만, 특별한 의미로 '고르고 고른' 을 뜻한다. 이 단어는 설익은 열매라기보다는 잘 익은 첫 열매' 를 가리키는데, 특별히 빵가루(민수 15, 20. 21 ; 에제 44, 30 ; 느헤 10, 38)나 곡식(레위 23, 10 ; 신명 18, 4 ; 2역대 31, 5), 포도주(신명 18, 4 2역대 31, 5), 기름(신명 18, 3 ; 2역대 31, 5), 꿀(2역대 31, 5), '땅의 모든 생산물' (2역대 31, 5), '모든 나무의 열매' (느헤 10, 38), 심지어는 양털(신명 18, 4)까지 의미하였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하느님 수확의 첫 열매인 이스라엘(예레 2, 3)을 비유적으로 나타낼 때에도 쓰였다. 또 비쿠림과 레쉬트는 '첫 열매 중의 첫째' 란 의미로 함께 사용되기도 하였다(출애 23, 19 ; 34, 26 : 에제 44, 30).
첫 열매의 봉헌은 수확을 거룩하게 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유배 이후 유대인들의 공동체는 "우리 밭에서 나는 햇곡식과 처음 딴 과일도 해마다 야훼의 성전에 바칠 것. 법에 있는 대로 맏아들과 처음 난 가축, 곧 처음 난 송아지나 새끼 양을 우리 하느님의 성전에서 봉직하는 사제들에게 바칠 것"(느헤 10, 36-37)을 제시하였다. 곡식 수확을 봉헌할 때는 야훼 앞에서 첫 열매단을 흔들어 바쳤는데(레위 23, 10-14 ; 출애 23, 16. 19), 보리가 밀보다 먼저 여물기 때문에 이 첫 곡식단은 보리였다. 햇곡식의 첫 열매를 바치는 축제 이후의 두 번째 축제는 7주 후 인 오순절에 거행되는데, 이때는 밀 수확의 첫 열매가 봉헌되었고(출애 34, 22), 아울러 처음으로 수확된 밀로 만든 첫 열매인 빵' 이 봉헌되었다. 이렇게 밀 수확이 끝날 때 거행되는 큰 감사 축제인 오순절을 첫 열매의 날' 로 규정하기도 하였다(민수 28, 26).
맏배 : 베코르는 짐승의 첫 새끼를 의미한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식물의 첫 열매와 인간의 첫아들 사이에서 '중간 위치' 를 차지한다. 깨끗한 짐승의 첫 수컷 새끼는 제물이 될 수 있도록 따로 놓았고(출애 13, 2. 12 ; 22, 29 ; 34, 19), 하느님께 봉헌되었다(출애 13, 15). 제 관계 문헌에도 하느님께 속하는 첫 새끼(레위 27, 26 ; 민수3, 41 ; 8, 17 ; 18, 15. 17)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가축의 맏배는 봄의 초막절에 희생 제물과 공적인 음식으로 하느님께 봉헌되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양 떼와 소 떼의 풍요를 보장받는다고 여겼다. 이것은 후에 과월절(출애 34, 18-20. 25-26)뿐만 아니라, 봄 축제와 출애굽기에 기술된 광야의 희생 제물 사이의 관련성을 나타낸다(출애 3, 18 ; 5, 3 ; 8, 27 ; 참조 : 10, 25). 그 후 계속해서 맏물 봉헌은 출애굽기의 신앙 내용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였다(출애 13, 14-15 ; 신명 15, 19-20). 초기 팔레스티나에서 양 떼와 소 떼의 맏배는 지방 성소에서 봉헌되었고(출애 22, 29b-30) 예배자는 식사에 참여하였다. 되새김질을 하지 않고 굽이 갈라지지 않은 나귀는 부정(不淨)한 짐승으로 여겼기 때문에(레위 11, 3) 제물로 바칠 수 없었고, 나귀의 맏배를 양으로 대속하지 않을 경우에는 피를 흘리지 않도록 목을 꺾어서 죽여야 했다 (출애 13, 11-13 ; 34, 19b-20) 신명기 규정 안에서 희생 제물은 흠이 없는 동물이었고, 소유주와 가장(家長)이 먹는 식사와 함께 중앙 성소인 예루살렘에서 매년 봉헌되었다. 흠이 있는 것은 희생 제물이 될 수 없었지만, 마을에서 먹을 수는 있었다(신명 15, 19-23). 사제계 법전에서 희생 제물은 사제의 재산이 되었다. 부정한 짐승 역시 속량하였는데, 속량하지 않을 경우에는 사제에게 그 짐승의 값을 치렀다(레위 27, 27). 또한 양 떼와 소 떼의 10분의 1은 야훼께 속하는 것으로 여겨졌다(레위 27,32).
첫아들 : 구약성서에서 첫아들이란 의미로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은 베코르였지만(창세 10, 15 ; 22, 21 ; 출애 6, 14 ; 민수 3, 2), 때로는 가돌(גָּדוֹל), 연장자 · 맏이)이 첫아들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였다(창세 27, 1. 42 ; 44,12 ; 1사무 17, 28).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정착하기 이전부터 첫아들이 야훼께 속한 것으로 알았다(출애 22, 29b-30 : 34, 19-20 ; 참조 : 13, 1-2). 고대 셈족은 첫아들을 신에게 속한 것으로 믿고 그를 희생 제물로 드렸으며, 히브리인들은 출애굽 사건과 이 봉헌을 연관시켰다. 첫아들은 아버지의 다음 자리를 차지하고 가족에 대하여 다른 형제들에 비해 더 큰 책임을 느끼며(창세 37, 22) 우선적인 특권을 가졌다(창세 43, 33) . 또 가족의 축복 속에 상속권을 받았고(창세 27, 1-4. 35-37), 가족 유산의 두배의 몫을 받았다(신명 21, 17). 즉 첫아들은 우선적으로 상속권을 가지며 아버지와 특별히 가까운 관계이고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 함무라비 법전에서도 모든 아들이 동등하게 상속을 받는 반면에 첫아들은 특별한 선물이나 우선적인 몫을 받았다. 엘리사는 이 권리를 선언하면서 엘리야의 계승권을 요청하였다(2열왕 2, 9). 첫아들은 비유적인 의미로도 사용되었는데, 죽음에 이르는 병을 죽음의 맏자식' (욥기 18, 13)으로, 가장 가난한 사람을 힘없는 이들의 맏이' (이사 14, 30)로 표현하였다. 이처럼 맏자식, 맏이는 특별한 성질이나 힘, 또는 가장 힘있는 존재의 으뜸으로 사용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은 '야훼의 첫아들' 로 불린다(출애 4, 22 ; 솔로몬의 시편 18, 4 ; 에스드라 6, 58). 딸에게 있어서의 '맏물' (בְּכִירָה)은 단순히 연장자를 의미할 뿐이다(창세 19, 31. 33. 37 : 1사무 14, 49). 라반은 메소포타미아 관습으로 큰딸이 먼저 결혼한다고 하였다(창세 29, 26).
베코르는 성서 안에서 모호하게 사용된 경우도 있다. ㅌ'정력의 첫 열매' (창세 49, 3 ; 신명 21, 17)로서 첫아들의 특징은 아버지와 관련하여 강조되어 나타나는데, 이는 가장인 아버지를 계승하는 첫아들의 우월한 위치를 의미한다. 반면에 "태를 맨 먼저 열고 나온" (출애 13, 2. 12. 15)의 표현에 나타난 첫아들의 특징은 어머니의 생물학적인 위치를 강조하면서, 인간과 동물의 생명에 대한 창조 질서에 놓인 첫아들의 종교적인 의미를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점은 사회법적인 측면에서는 아버지의 위치에서, 전례적인 측면에서는 어머니의 위치에서 첫아들의 독특한 상태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신명기 21장 15-17절에 따르면 아버지는 아들의 출생 순서를 무시하고 첫아들이 아닌 다른 사랑하는 아들에게 우선적으로 계승권을 부여하는 것을 금지하였으며, 첫아들은 유산의 두 몫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하였다. 계약의 법전에는 사람의 첫아들과 크고 작은 가축의 맏배는 야훼께 바치도록 규정되어 있다(출애 22, 28-29). 이렇게 첫아들과 맏배는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자이신 하느님께 봉헌되었는데, 그 이유는 "주님께서 사람의 맏아들부터 짐승의 맏배까지 이집트 땅에서 처음 난 것을 모조리 죽이신" (출애 13, 15) 그 밤을 영구히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주님은 맏물의 생명에 대하여 권한을 가지나 인간을 희생의 제물로 바치는 것을 거절한다(레위 18, 21; 20, 2-5 ; 신명 12, 31 ; 예레 7, 31 ; 19, 5). 그러므로 첫아들은 번제물이 되지 않고 오히려 속량되었는데, 출애굽기 13장 13절과 34장 20절에 규정된 대리 구속법(代理救贖法)을 잘 보여 주고 있는 것이 이사악의 희생에관한 성서의 서술이다. 그리고 후에 첫아들은 레위인들을 통하여 대속되었다(민수 3, 11-13 : 8, 16).
〔신약성서에서의 맏물〕 신약성서에서 맏물의 의미로 쓰인 '프로토토코스' 는 마리아의 첫아들로 불린 예수에게 많이 적용되었는데(마태 1, 25 ; 루가 2, 7), 이 단어가 비유적으로 예수에게 적용될 때는 구약성서에서의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하느님과 가장 가까운 특별한 관계를 가리킨다(히브 1, 6). 인류의 맏물인 예수는 마리아를 통하여 성전에서 하느님께 봉헌되었으며(루가 2, 22-24), 바오로는 예수를 "많은 형제들 중의 맏아들"(로마 8, 29)이라고 하면서 종말론적인 변형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죽은 자들 가운데 맏이" (골로 1, 18)라고도 불린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나신 분" (묵시 1, 5)은 단순히 시간 안에서 앞선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한 예수에게 부여된 첫아들의 위치를 가리키는 것이다. "모든 조물의 맏이"(골로 1, 15)인 그리스도는 모든 만물이 창조될 때 중재자로서 창조에 참여하였으며, 죽은 이들을 살아나게 하기 위하여 '맏물' 로서 부활하였다 (1고린 15, 23).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창조와 구원에 있어서 맏물로서 모든 이들보다 앞서고 또한 모든 이에게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더 나아가 영의 첫 선물을 지니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종말론적 구원에 이미 참여하면서 구원의 보증을 받고 있다(로마 8, 23).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백성의 첫 열매이고(야고 1, 18), 어린 양을 따르는 사람들은 하느님에게 첫 열매가 된다(묵시 14, 4). 데살로니카 신자들과 필립비 신자들은 그리스에서 제일 먼저 그리스도교에 입교하였기 때문에 맏물로 불린다(2데살 2, 13).
〔신학적 의미〕 첫 열매와 맏배는 하느님에게 속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성스러운 예물로서 하느님께 봉헌하였고, 첫아들은 어린 짐승으로 속량되었다(출애 13,13). 모든 것은 하느님이 창조하셨기에 그분에게 속해 있다는 생각이 맏물을 봉헌하는 의식에 들어 있는 것이다. 히브리인들의 맏물의 봉헌은 역사를 통하여 드러난 하느님의 은혜에 대한 보답이다(신명 26, 10). 또 첫 열매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은 수확 전체를 성화시키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인간은 첫 수확을 하느님에게 거룩하게 바치면서 동시에 하느님의 소유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봉헌을 통하여 자기가 그 어떤것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주인이 아님을 고백하는 것이다. 예수는 마리아의 '첫아들' 로 성전에서 하느님께 봉헌되었다. 또한 죽음에서 부활하여 죽은 자들의 맏이로서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보증을 약속하고 있으며, 창조된 만물의 맏이로서 새로운 창조를 계속하고 있다.
※ 참고문헌 C. Hauret, 《성서 신학 사전》, 광주 가톨릭대학 전망 편집부, pp. 148~149/ H. Ringgren, 김성애 역, 《이스라엘의 종교사》, 성바오로출판사, pp. 225~226, 247~2521 Tsevat, בְּכוֹר, 《TWAT》 1, pp. 643~650/ J. Morgenstern, First Fruits, 《IDB》, p. 270/ V.H. Koov, First- Born, 《IDB》, pp. 270~272/ R.O. Rigsby, First Fruits, 《ABD》 3, pp. 796~7971 B.A. Levine, 《ET》 6, pp. 1306~ 1308, 1312~1314/ J. Pedersen, Israel, Its Life and Culture, Geoffrey Cumberlege Oxford Univ. Press, London, 1963. 〔孫淑敬〕
맏물
〔히〕בְּכוֹרִים בְּכוֹר · 〔그〕πρωτότοκος, ἀπαρχή · 〔라〕Primitiae · 〔영〕first-born, first fru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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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맏물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카인과 아벨(구스타브 도레 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