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바르 그리스도교 - 敎

〔영〕Malabar Christ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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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년에 시리아어로 쓰여진 말라바르 교회의 전례서.

1301년에 시리아어로 쓰여진 말라바르 교회의 전례서.

인도 남서부 지역 케랄라 주(州)의 말라바르 해안에 거주하는 그리스도교 신자 공동체. 시리아 동방 전례(갈데아 전례)에 속하는 이들은 스스로 "토마 그리스도교인" (Christiani Sti iThomae)이라고 자처하며 자신들이 사도 토마에 의해 세워진 교회 공동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토마 사도가 이곳에 복음을 전파하였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단정할 수 없지만 뒷받침하는 기록들은 있다. 예를들면,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오 주교는 그의 《시편 주해서》 45장 21절 이하에서 토마 사도가 인도에서 전도하였고, 마태오 사도는 페르시아에서 전도하였다고 기록하였다(CSEL64, 344).
〔역 사〕 명칭과 유래 : 2세기경 인도에 그리스도인들이 존재하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처음에 그들은 북부 메소포타미아의 에데사(Edessa)에 소속되었다가, 5세기 후반에 페르시아의 총대주교좌인 셀레우치아-크테시폰테(Seleucia-Ctesifonte)에 속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페르시아에 자리잡고 있던 갈데아 교회의 총대주교(Katholikos)가 말라바르 교회에 주교들을 파견하였다. 5세기 말경에는 네스토리우스의 이단에 물든 페르시아 교회로부터 파견된 주교들이 인도에도 네스토리우스의 교리를 전파하였다. 그리하여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로, 다르소의 디오도로, 네스토리우스 등이 말라바르 전례 안에서 언급된다.
로마 가톨릭 교회와의 접촉 : 1498년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인도에 도착하기 이전의 말라바르 그리스도교인들의 역사에 대해서는 많은 것이 알려져 있지 않다. 선교사들은 도착 후 당시 3만 가구를 헤아리던 말라바르 그리스도교인들과 접촉하였는데, 선교사들은 처음에 그들을 같은 가톨릭 신앙의 형제로 받아들여 성사에 참여하게 하였으나, 점차로 교리상의 차이점과 그들 고유의 전례를 문제시하게 되었다. 이후 말라바르 그리스도교인들은 조금씩 네스토리우스의 이단에서 벗어나 로마 가톨릭 교회와 일치하게 되었고, 1539년에 설정된 고아(Gôa) 대교구는 그들을 관할하에 예속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교회의 노력은 갈데아 교회의 바빌로니아 총대주교의 입장과 충돌을 일으켰다. 바빌로니아 총대주교는 인도의 말라바르 그리스도교인들을 자기 재치권 밑에 두려고 계속 인도에 갈데아 주교들을 파견해 왔기 때문이다.
포르투갈 출신의 가톨릭 주교들은 말라바르 교회가 바빌로니아 총대주교좌로부터 떨어져 나올 것을 요구하면서, 갈데아 주교들을 이단자로 비난하고 그들의 마지막 주교인 앙가말라(Angamala) 교구의 아브라함 대주교를 체포 · 구금하였다. 아브라함 주교가 사망하자 그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고아의 대주교 알렉시오 데 메네세스(Alexius de Menezes)는, 1599년에 인도 캘커타에서 남쪽으로 약 20km 떨어진 디암페르(Diamper)에서 교회 회의를 소집하였다. 153명의 사제들과 660명의 평신도들이 참석한 디암페르 교회 회의는, 말라바르 그리스도교인들을 갈데아 바빌로니아 총대주교좌의 관할권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여 그들에게 네스토리우스 이단을 배척하고 로마 교황에게 순명할 것을 약속하게 함으로써 말라바르 교회는 공식적으로 가톨릭 교회에 귀속하게 되었다(Malabar Uniat Church). 그 이후 말라바르교인들은 3세기에 걸쳐(1599~1896) 가톨릭 주교들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디암페르 교회 회의에 뒤따른 지나친 로마 가톨릭화의 개혁은 오히려 극단적인 반발을 초래하여 1653년에는 말라바르 교회 신자들이 다시 서방 교회와 갈라지게 되었다. 그들은 로마의 승인 없이 단독으로 그들의 방인 부제이던 톰마소 데 캄포(Tommasode Campo)를 앙가말라 교구의 대주교로 뽑아 주교로 서품시켰었다.
이러한 분열 소식이 로마에 전해지자, 교황 알렉산델 7세(1655~1667)는 1661년 이탈리아 출신의 가르멜회 수도자 세바스티아니(Giuseppe Sebastiani)를 말라바르 교회로 파견하였고, 그 결과 갈라져 나간 공동체들 중 3분의 2에 달하는 신자들이 다시 로마 교회와의 일치(1662)를 회복하게 되었다. 세바스티아니는 교황으로부터 말라바르의 대목구장으로 임명되었다. 1678~1887년 말라바르 교회는 라틴 전례를 따르는 인도 가톨릭 교회와는 별도로 가르멜 수도회 출신 주교들에 의해서 사목되었으나, 바빌로니아의 총대주교가 파견하는 갈데아 주교들이 인도에 도착할 때마다 큰 혼란에 빠지곤 하였다. 이는 옛날부터 갈데아 주교들이 파견되어 오곤 하는 오랜 전통 때문이었다. 1887년 말라바르교인들을 위한 두 개의 대목구가 설정되었으나 사목 책임은 외국인 주교들이 맡았다. 그러다가 1896년에 이르러 말라바르 교회는 처음으로 세 명의 방인 주교를 맞게 되었고, 1923년 교황 비오 11세는 회칙 <로마니 폰티피치스>(Romani Pontificis)를 통하여 그들을 위한 교회 관구를 설정하였다. 이 관구는 에르나쿨람(Ermakulam) 대교구와 그 관구에 속하는 세 교구(Changa-cherry, Trichur, Kottayam)로 이루어졌다.
〔오늘날의 상황〕 방인 주교들이 착좌한 이후로 말라바르 교회는 눈부신 성장을 하였는데, 1901년 32만 2천명이던 신자수가 1947년에는 94만 7천 명으로 증가하였다. 1975년 통계 자료에 의하면, 신자수는 200만 명이 넘고, 사제수는 수도 사제를 포함하여 2,330명이다. 현재는 2개 대교구와 7개 교구로 되어 있으며, 인도 북부에 6개의 동방 대목구(Exarchati apostolici)가 설정되어있다.
로마 교회와 일치한 말라바르 교회는 고유한 갈데아 전례를 준수하면서, 전례 용어로 고대 시리아어를 사용하고 고유의 특별 교회법을 가지고 있다. 또 1831년부터 가르멜회 제3회가 설립되어 활동 중이며, 다른 여러수도회들도 교육과 사회 사업에 헌신하고 있다. 1961년의 공식 통계에 의하면 수녀수가 8,700명에 달하며, 사제직을 희망하는 1,800여 명의 지원자들이 12개에 달하는 대 · 소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교회가 경영하는 22개의 대학에서 15,000명의 대학생들이 연구 중이고, 50만 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교회가 경영하는 초등학교(906개), 중학교(344개), 고등학교(231개)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평신도 조직들과 청소년 · 학생들을 위한 조직들이 있으며, 월간 잡지가 5개나 발행되고 있다. 매년 1,000~1,500명에 달하는 개종자들의 숫자는 말라바르 교회의 활력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말라바르 교회의 영향은 인도 사회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1957년 케랄라 지역의 그리스도교인들과 그 지역 공산 정부와의 분쟁이 일어났을 때, 이 분쟁은 결국 그 해 7월 대대적인 평화 시위와 전체적인 파업으로 치닫게 되었다. 사태가 위급해지자 중재에 나선 의회에 의해 지역 공산 정부의 잘못된 태도가 시정되도록 함으로써 가톨릭 교회의 사회적 위치와 명성이 재확인되었다.
〔전 례〕 말라바르 교회의 전례는 본래 메소포타미아에서 사용되던 갈데아 전례였다. 그러나 16세기 이후로 라틴 전례의 깊은 영향을 받아 라틴 전례와 갈데아 전례의 혼합체가 되었다. 성당 구조(감실, 제대, 촛대 등), 미사 제의, 전례서, 서품 예식서 등 많은 부분에서 라틴 전례의 요소를 찾아볼 수 있으며, 미사 성제 거행에도 대림절 4주간으로부터 시작되는 전례력과 라틴 전례에 따른 성인축일을 준수하고 있다.
반면에 갈데아 전례의 요소 또한 적지 않다. 전례 용어로 고대 시리아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성무 일도서는 미사와는 달리 갈데아 전례의 시기를 따르고 전례 성가도 전통적인 메소포타미아 성가이다. 미사 전례 또한 갈데아 전례로서 아주 오래된 "사도들의 아나포라" (Anafora degli Apostoli)를 사용한다. 장례 예식에도 라틴 전례의 요소와 함께 갈데아 전례의 찬미가들이 사용된다.
이러한 복합적인 전례의 역사적인 이유는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포르투갈 선교사들은 말라바르에 도착한 후 그곳 신자들이 로마 전례를 준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1585년 고아에서 열린 제3차 지역 공의회는 라틴 전례의 성무 일도서, 미사 경본, 서품 예식서, 전례서를 고대 시리아어로 번역할 것을 결정하였다. 또 1599년에 개최된 디암페르 교회 회의에서는 네스토리우스 이단 서적들을 (전례 관계 서적들까지 포함하여) 불태우고, 전례에서 네스토리우스 이단과 관계된 모든 요소들을 교정 또는 삭제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모친' (Mater Christi) 대신에 '하느님의 모친' (MaterDei)이란 표현을 채택하고 네스토리우스파의 성인들에 대한 언급을 삭제했다. 말라바르 교회를 위한 전례서로 《사도들의 전례》(1774), 《미사 경본》(1775, 1844) , 《전례서》(1775, 1845) 등이 처음에는 로마의 포교성성(현재의 인류 복음화성)에서 출판되었으나, 이후에는 말라바르 현지에서 전례서들이 출판되었다.
〔야곱파 교회와 말란카르 교회] 말라바르에는 또한 시리아 전례를 따르는 야곱파 교회(Jacobites, 시리아 정교회.그들은 칼체돈 공의회의 그리스도의 두 본성에 대한 가르침을 거부하여 단성설을 주장하였다)가 존재한다. 이는 1653년의 분열에서 연유하는데, 당시 로마 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나머지 한 분파는 시리아 정교회의 총대주교를 그들의 최고 교회 지도자로 받아들여 야곱파 교회에 가담하였다. 그러나 시리아 정교회의 단성설(monophysismus)까지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현재 약 65만 명의 신자수를 헤아리며, 총대주교 1명과 주교 5명이 그들을 사목하고 있다. 19세기 말경에는 그들 중 일부 신자들이 영국 성공회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아 교리와 전례에서 서유럽 프로테스탄트의 특징을 받아들인 새로운 교회, 즉 마르-토마스 교회(Mar Thomas Church)를 세웠는데 신자수는 30만 명에 달한다.
말라바르의 시리아 정교회는 계속되는 내부 분열로 그 세력이 점차 약화되던 중, 1930년 이바니오스(Ivanios) 주교와 테오필로스(Theophilos) 주교가 로마 가톨릭 교회로 개종하였다. 이때 그들을 따르던 신자들의 대집단이 로마 교회와 재결합하면서 생겨난 교회가 시리아-말란 카르 교회(Malankas)이다. 그들 고유의 시리아 서방 전례(안티오키아 전례)를 따르며 모국어인 말라얄람어를 사용하고 있는 이들은, 오늘날 15만 명의 신자에 독립된 교회 조직을 가지고 있고 트리반드룸(Trivandrum)에 총 대주교좌가 자리잡고 있다. (⇦ 도마 그리스도교 ; → 동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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