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의미에서 '말씀 전례' 는 성체성사를 비롯한 모든 전례 거행을 의미하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세 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 '우선 미사의 전반부' 를 가리키는 말인데, 이 표현은 성찬 전례와 갈라놓는 느낌을 준다. 미사는 '말씀 전례' 와 '성찬 전례' 가 서로 밀접히 결합하여 하나의 예배를 이루는 것으로, 떼어 생각하거나 어느 한 부분을 종속적인 것으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 전례를 미사의 전반부로만 생각하려는 경향은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가 지닌 밀접한 연관성을 해칠 위험이있다. 두 번째로는 성찬 전례를 거행할 준비를 시키는 '교육적인 부분' 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말씀 전례는 성체 안에 현존하는 주님이 말씀 안에서도 똑같이 현존하며 회중에게 말씀하는 또 하나의 전례이다. 세 번째는 '예비자들의 전례' 라는 의미로, 말씀 전례가 끝나면 예비자들을 돌려보냈던 옛 전례 관습에서 나온 이름이다. 이러한 관습을 계속해서 보존하고 있는 지역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는 이 이름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이 이름은 말씀 전례가 지닌 외형만을 부분적으로 보는것으로 핵심을 보지 못한 것이다.
I . 말씀으로 힘을 얻는 전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따른 전례 개혁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전례 거행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지닌 핵심적인 가치와 그 역할을 크게 강조하였다는 점이다. 사실 모든 전례 거행은 말씀과 분리해서는 생각할 수 없다. 전례는 말씀에서 기인하고, 그 말씀에 연결되어 있는 신경 조직과 같은 것으로, 말씀을 실현하고 해석하며, 살아 있고 역동적이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은 단순한 윤리적 권고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1981년에 전례 성사성이 발간한 《미사 독서 총지침》 (Ordo Lectionum Missae)은 "전례 거행의 핵심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만큼 하느님 말씀의 중요성을 알게 될 것 이다. 전례 거행에 대해 이야기되는 것은 곧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서도 이야기될 수 있다. 왜냐하면 둘 다 그리스도의 신비를 기억하게 하고, 둘은 각기 고유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신비를 영속시키기 때문이다”(5항)라며, 전례 거행과 하느님 말씀의 뗄 수 없는 관계를 언급하고 있다. 또 "사실 기본적으로 하느님의 말씀 위에 기초를 두고 말씀에서 힘을 얻는 전례 거행은 말씀 자체의 효과를 풍요롭게 하는 새로운 사건이 된다. ···· 그래서 교회는 전례 안에서 그리스도를 회상하고 있는 성서를 읽고 해석하는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다"(3항)라고 설명한다. 여기에서 전례와 말씀은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 있음을 알게 된다. 전례는 말씀에서 힘을 얻지만, 또한 말씀이 효과를 내게 한다.
전례 거행 전체가 말씀으로 실행된다는 뜻에서 전례 거행 전체를 넓은 의미의 '말씀 전례' 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으로 '독서' 라는 이름으로 성서의 말씀을 봉독하고, 그때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라고 선포함으로써 '말씀 전례' 는 미사 안에서 '성찬 전례' 와 짝을 이루는 말씀의 식탁을 가리키기도 한다.
말씀과 사건 : 하느님의 말씀은 발설되는 것을 실제로 이루어지게 하는 말씀이기에, 말씀을 통해 하느님의 생각과 인간에 대한 구원 계획이 밝혀진다. 다시 말하면 말씀은 단순한 언어의 전달 수단이 아니라 하느님의 의지와 계획을 드러내고 실현하는 '생산적인 사건' 이다. 하느님은 행위로써 드러내시고, 드러내시며 일하신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 은 당신 자신을 드러내는 사건, 곧 행동하는 말씀을 뜻한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 더 날카로워 혼과 영,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꿰뚫으며 마음의 생각과 의향을 판단합니다"(히브 4, 12). 이러한 언급처럼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이고 행동하는 말씀이며, 행동으로 계시하고, 계시하며 실행하는 말씀이다.
말씀과 현존 : '하느님의 말씀' 은 하느님께서 '지금 여기에' 현존하시게 하는 힘이다. 행하는 주체이신 하느님은 말씀으로 행위 안에 현존하시며, 이로 인해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말씀이 행하는 주체가 되어 현존하신다. 결국, 여기에서 '하느님의 말씀' 은 말씀하시는 하느님이 된다.
성서에서는 이러한 의미의 말씀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출애굽의 사건은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하느님은 예언자들에게 말씀하시고 그들을 파견할 때에도 그들 안에 현존하신다. 하느님의 말씀은 울려 나는 데 그치지 않고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전능한 현존을 그 안에 담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강생의 신비에서 잘 드러나는데, 하느님의 말씀이 '살'[肉]이 되시어 볼 수 있게 되었고, 말씀은 사람들 가운데에 사시려고 오셨다. "그 말씀은 처음부터 계셨으며, 우리가 듣고 우리 눈으로 보고 살펴보고 또 우리 손으로 만졌던 것입니다"(1요한 1, 1). 성서의 저자들은 말씀이 눈으로 볼 수 있게 현존한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시켜 주고있다.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여러 번 여러 모양으로 예언자들을 통해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으나 이 마지막 날에는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 1, 1-2) 행동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으로 힘과 생명을 얻는 말씀에 대해서 <전례 헌장>은 이렇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말씀 안에도 현존하시니, 교회에서 성서를 읽을 때 말씀하시는 이는 그리스도 자신이시다"(7항). 교회가 선포하는 말씀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며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말씀은 하느님의 현존으로 힘을 얻는다. 말씀의 봉독자가 전례 안에서 성서를 읽고 "주님의 말씀입니다"라고 하면, 그것은 곧 지금 봉독한 말씀안에 하느님이 현존하시며 친히 말씀하셨다는 뜻이 된다.
말씀과 성취 : 하느님이 주체가 되어 행동하시는 계시인 말씀은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말씀이다. 말씀은 인간들에게 선포되는 순간부터 하느님이 이룩하시는 행위와 인간의 응답을 통해서 인간의 삶을 성숙시킨다. 말씀의 작용은 한마디로 하느님과 인간이 함께 이루는 행위이다. 그래서 구세사는 곧 말씀이 작용하는 역사라고 할 수있다. 이 역사는 말씀이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완성되었다. 예수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써 구세사를 완성으로 이끌었으며, 이 죽음과 부활은 전례 거행을 통해서 선포되고 재현된다. 오늘날 이 선포와 재현은 또다시 말씀으로 성취되고 있으므로 우리는 '말씀의시대' 를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II . 말씀 전례의 거행
말씀 전례의 특성 : 하느님의 말씀은 전례 거행을 통하여 선포되고, 그리스도는 그 선포되는 말씀 안에 현존하며, 사람을 거룩하게 하고 하느님께 완전한 예배를 드리는 구원의 신비를 이룬다. 하느님의 구원은 말씀으로 거행되는 전례 안에서 그 의미의 충만에 이른다. 이로써 전례 거행은 하느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완전하고 효과적으로 선포하는 행위가 된다. 이처럼 전례 거행을 통하여 선포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성령의 힘으로써 언제나 살아있는 말씀이 되고, 사람에 대한 그칠 줄 모르는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 준다(《미사 독서 총지침》, 4항).
말씀의 선포와 구원 경륜 : 교회는 전례를 거행하며 말씀을 선포할 때마다 그리스도의 신비가 이루어짐을 선포한다. 구약 안에 신약이 담겨 있고 신약 안에서 구약이 밝혀진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구약과 신약의 중심은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뜻이 완성에 이른다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전례 거행의 중심은 그리스도이고 그 뜻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결국, 성서가 구원과 생명의 샘이듯이 전례는 "교회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모든 힘이 흘러 나오는 원천이다"(전례 10항). 따라서 표현되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전례를 거행할수록 더욱 하느님의 말씀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말씀과 전례가 각기 고유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신비, 곧 구원을 이루는 것이다(《미사 독서 총지침》, 5항).
말씀의 선포와 신자들의 응답 : 하느님은 말씀하실 때 마다 그 말씀을 듣는 우리의 응답을 기다리신다. 그 응답은 말씀을 듣고 "영과 진리 안에서"(요한 4, 23) 아버지께 드리는 예배로 표현된다. 우리에게 응답하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다. 성령은 우리에게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하시며 삶 안에서 실천하게 하신다.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시오"(야고 1, 22). 이처럼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이는 그 말씀을 선포하는 전례에 충실히 참여할 뿐만 아니라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 과 하나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그는 전례 안에서 선포된 신비를 삶으로 사는 사람, 하느님의 말씀에 올바로 응답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응답하는 이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빛난다.
전례를 거행하기 위해 모인 회중은 성령의 힘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 선포를 통하여 자신이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임을 확인한다. 하느님 백성은 전례를 거행하면서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기억하고 하느님 말씀의 선포자가 되며 삶으로써 그 말씀의 증인이 된다(《미사독서 총지침》, 6~7항).
Ⅲ . 성체성사 거행의 말씀 전례
현행 로마 예식의 미사는 시작 예식, 말씀 전례, 성찬전례 그리고 마침 예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말씀 전례는 말씀의 봉독과 침묵, 화답송, 복음 환호송, 강론, 신앙 고백, 보편 지향 기도로 이루어진다. "하느님께서는 전례 거행을 통하여 지금도 당신 백성에게 말씀하시고,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을 전하시며 백성은 노래나 기도로 이에 응답한다”(전ㅀ 33항)는 사실을 말씀 전례를 통하여 성취한다.
말씀의 선포(말씀의 봉독) : "미사 거행에서 성서의 찬가들과 함께 성서의 봉독은 생략되거나 축소되거나 성서독서가 아닌 다른 독서로 대체될 수 없다" (《미사 독서 총지침》, 12항). 그리고 복음의 봉독은 말씀 전례의 절정이며, 회중은 다른 독서들을 들으며 복음을 들을 준비를 갖춘다. 성 유스티노는 《호교론 I》(ApologiaI I) 67장에서 짧게 말씀 전례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말씀전례에서 몇 개의 독서를 했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예언서들과 '사도들의 기억들' 이라고 표현한 사도들의 서간이나 복음서를 봉독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말씀 전례는 유대인들의 회당 예배에서 영향을 받아 발전한 것이다. 4세기 말의 《사도 규율》(Constitutionesapostolorum)은 율법과 예언서, 서간, 사도 행전, 복음의 봉독을 지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관습은 시리아와 아비시니아(오늘날의 에티오피아 지방)의 교회들에서도 똑같이 행하여졌다. 성 요한 그리소스토모에 따르면 옛 비잔틴 예식에서는 세 개의 독서가 선포되었는데, 이러한 관습은 성 아우구스티노 당시의 아프리카와 스페인, 갈리아,밀라노, 로마에서도 확인된다.
현재 전해지는 로마 예식의 독서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뷔르츠부르크의 독서집(Lezionario di Wiirzburg)이고, 그 다음으로 전해진 것이 8~9세기의 수사본인 무르바흐의 독서집(Comes di Murbach)인데, 여기에서는 보통 2개의 독서를 봉독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독서집의 구성은 매우 빈약하지만, 교황 비오 5세는 이것과 거의 동일한 형태이면서 내용은 더 빈약한 미사 경본 독서집을 발간하였다. 이 독서집은 사순 시기와 부활 팔일 축제일에만 고유한 독서를 가지고 있을 뿐 주간에는 주일의 독서들을 반복해야만 했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고자 주일은 3년 주기, 평일은 2년을 주기로 하는 새로운 미사 독서집을 내놓았다. 이 새 독서집의 독서 선택 원칙에 따르면, 연중 시기의 첫째 독서는 구약성서에서 복음의 주제와 잘 맞는 내용을 선택하고, 둘째 독서는 주제와 상관없이 거의 연속적으로 봉독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축일과 사순 시기의 주일에는 둘째 독서도 다른 독서들과 주제의 조화를 이루도록 선택하였다. 셋째 독서인 복음의 봉독은 사순 시기에는 요한 복음을 봉독하지만 다른 시기에는 거의 연속적으로 공관 복음서들을 봉독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 두 개의 독서만을 봉독하고자 할 때에는 복음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구약의 독서를 첫째 독서로 선택하도록 권고하였다.
대림 시기의 주일들은 세 개의 독서가 3년 주기로 짜여져 있다. 사순 시기의 주일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이 시기에는 '가해' 의 독서들을 매년 봉독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 이유는 '가해' 의 독서들은 옛 전통을 보존하면서세 독서들 사이의 수평적 조화뿐만 아니라 주일에서 주일로 넘어가는 수직적 조화도 이루도록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이 독서들은 부활절에 세례를 받게 될 예비자들을 위해 그때에 알맞는 교리를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러나 새 독서집도 단점을 지니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연중 시기 주일에 거의 연속적으로 둘째 독서를 함으로써 강론할 때에 다른 독서의 내용과 주제의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또 어떤 때는 너무 긴 독서를 하지 않으려고 짧게 나누어 놓은 말씀이 주제의 단절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결점의 하나는 3년 주기에 따른 주일 '본기도' 와 독서들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조화의 단절은 연중 시기에 더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런 결점들을 보완하려고 일부 국가에서는 복음 주기에 맞추어 그에 맞는 새로운 본기도들을 만들어 제시하고 있다.
침묵 :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 거행에서 성서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전례 24항) 말씀 안에 현존하는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재확인하면서(전례 7항), 중요한 전례 행위인 침묵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였다. "능동적 참여를 촉진하기 위하여, 회중의 환호, 응답, 시편 교송, 대경, 성가와 함께 행동과 동작과 몸가짐 등을 올바르게 하도록 유의하여야 한다. 또한 합당한 때에는 거룩한 침묵을 지켜야 한다" (전례 30항). "말씀 전례는 묵상을 도와주는 형태로 거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말씀을 받아들이는 데에 장애를 줄 정도로 급하게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하느님과 사람의 대화는 성령의 활동으로 회중에 적합한 짧은 침묵의 순간을 요구한다. 그 침묵의 순간은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의 마음 안에 파고들어 기도로 응답하게 한다" (《미사 독서 총지침》, 28항).
공의회 전까지 전례의 한 요소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침묵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은 커다란 변화로서, 이제 침묵은 전례 거행의 한 부분이 되었다. 전례에서의 침묵은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를 촉진시키기 위한 것이다. 특별히 침묵은 말씀을 듣고, 들은 말씀에 묵상과 기도로 응답하도록 도와 준다. 침묵은 "마음속에 성령의 목소리가 온전히 울려 나게 하고 개인의 기도를 하느님의 말씀과 매우 밀접하게 일치시켜 준다" (《성무 일도의 총지침》, 202항). 또한 침묵은 어린이들과 같이 주의를 기울이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너무 외적인 활동으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게 한다.
이러한 침묵은 말씀 전례와 관련해서 "말씀 전례를 시작하기 전에, 그리고 첫째 독서와 둘째 독서의 봉독 다음에, 그리고 강론이 끝난 다음에"(《미사 독서 총지침》, 28항)할 수 있다. 이때 하는 침묵은 들은 것을 잠깐 묵상하는 침묵이다(《로마 미사 경본의 총지침》, 23항). 이 침묵은 하느님 말씀에 응답하는 침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더 깊이 깨닫고, 그 말씀에 마음으로 동의하여 실천하게 한다. 이처럼 침묵은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필연적인 조건이다. 신자들은 이 침묵을 통해서 거행되는 전례에 흡수된다. 그럴 때 비로소 신자들은 말씀의 영성을 배우게 되고 내면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침묵은 말씀을 가까이 하는 데에서 오는 열매이기에 침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곧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침묵 중에 듣게 하신다(1열왕 19, 11-13). 침묵은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를 신뢰로 이끌어 가고, 계시하시는 주님께 마땅한 공경을 드리게 한다.
화답송과 복음 환호송 : 말씀 전례 안에서 하느님과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이제 금시 들은 말씀에 대해 신자들에게 짧게 묵상하도록 하는 침묵 다음에 노래하는 '화답송' 에서 가장 잘 이루어진다. 이것이 화답송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이다. 이 화답송은 주님과 당신 백성 사이에 나누는 가장 힘있는 대화이다. 새 로마미사 경본은 실제로 선포된 말씀에 내용적으로 가장 가까운 화답송을 선택하기 위해 정성을 다했다. 중세기에는 화답송에 가락을 붙여 아름답게 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이 화답송은 독서와 마찬가지로 존중되어야 한다. 이 화답송은 들은 말씀에 주의를 집중시키고, 그 말씀에 응답하여 노래로써 기도하는 것이다. " '층계송' 이라고도 했던 화답송은 말씀 전례의 중요한 부분이면서 전례와 사목적으로 커다란 중요성을 지닌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신자들에게 시편으로 말씀하시고 같은 시편으로 교회가 기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도록 주의를 기울여 신자들을 교육해야 한다"(《미사 독서 총지침》, 19항).
'알렐루야' 또는 '복음 전 노래' 라고 하는 복음 환호송은 복음을 선포하는 노래이다. 이 노래는 곧 선포될 복음의 내용을 예고한다. 또한 이 노래로써 "신자들의 회중은 자기들에게 말씀하려 하시는 주님을 맞아들이고 주님께 인사하며 자기의 믿음을 드러낸다"(《미사 독서 총지침》, 23항).
강론 :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미사 전례에서 사제가 하는 강론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였다. "하느님의 백성은 무엇보다 살아 계신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모이고, 모든 이들은 사제들의 입술에서 그 말씀을 찾을 권리를가지고 있다" (사제 4항)고 말한다. 이보다 먼저 <전례 헌장>에서는 "예식이 허락하는 한, 전례 행위의 한 부분인 강론을 위한 가장 적합한 자리가 예규에 명시되어야 한다. 강론의 직무는 성서와 전례를 원천으로 가장 성실하고 적절히 수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강론은 구원의 역사 안에서, 곧 우리 안에, 무엇보다도 전례 거행 안에 현존하고 작용하는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하느님께서 이루신 기묘한 업적을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5항).또한 "강론은 특히 주일과 의무 축일에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 때에 중대한 이유가 없는 한 생략되어서는 안된다"(52항)고 강론의 의미와 그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이러한 공의회의 기본 정신은 후속 전례 개혁에 반영되어 교회는 미사 때는 물론, 어떤 의식을 거행하든지 사제에게 복음을 봉독한 다음에 짧게라도 강론을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말씀 전례가 중요하게 부각된 만큼 강론도 중요한 전례 행위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강론은 언제나 성서의 봉독과 연결되어 있고, 믿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강론은 말씀이 쓰여진 사회와 회중이 살고 있는 사회 · 문화적 상황과 역사 · 정치적 환경의 차이, 곧 현재와 성서 본문의 간격을 메워 주는 해석의 열쇠로 작용한다. 강론은 여러 가지 상황을 생각하면서 구원의 신비를 거행하려고 '지금 여기에' 모인 백성들과 함께 하느님께서 나누고자 하시는 대화에 개인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신자들을 도와 준다. 이러한 해석학적 활동인 강론은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메시지를 알아듣고 생각하게 하며, 의기(意氣)를 북돋아 그 메시지를 성취하도록 헌신하게 한다. 또한 교회 공동체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을 기억하게 하여 말씀의 뜻을 공동체적으로 실현하도록 힘쓰게 한다. 강론은 주님께서 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두세 사람이 마음을 모아 기도하는(마태 18, 19) 공동체로 신자들을 이끌어 간다.
강론은 듣는 이들에게 말씀에서 선포되는 구원이 진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그들이 놓여 있는 역사적 · 사회적 · 개인적인 상황을 읽을 수 있는 예언자적 모습을 요구한다. 이런 시각을 지닌 강론은 신자들에게 역사 안에서 활동하시는 주님께 충실하게 한다. 또한 강론은 하느님의 말씀과 문화, 신앙과 생활에 대한 반성인 교리로써 견고해져서 성서적이고 전례적인 교리 교육이 된다. 그러나 교리는 '견고한 그리스도교 체제' 를 단순히 과시하는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반면 강론은 구원의 시간(καιρός)과 파스카 사건에서 생겨난 사랑의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격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론은 형제적 충고일 뿐만 아니라 위로하고 격려하며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강론의 말씀을 통해서 자양분을 받아 성장하고, 복음 선포자와 예언자, 교사로서 자기 신원을 세상 안에 드러낸다. 강론은 예수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루가가 예수께서 하신 복음 선포의 시작을 묘사하는 부분을 보면, 말씀의 선포로만 끝나지 않고 그 뒤에 해설이 따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책을 접어서 시중드는 사람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셨다. 회당에 모인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께로 쓸렸다. 그때 예수께서는 그들을 향해 '이 성경(말씀)은 오늘 여러분이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습니다' 하고 말씀하시기 시작하였다" (루가 4, 20-21) . 말씀의 봉독에 이은 이러한 해설의 기원은 유대의 전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안식일에 갖는 유대인들의 회당 예배는 성서의 봉독과 강론을 통한 해설의 특별한 자리였다. 루가는 또한 부활한 예수가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 성서의 말씀을 들려주고 해설해준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전해 준다(루가 24, 13-32). 부활한 예수는 다른 열한 제자에게도 나타나 "성경을 깨닫게 하시려고" (루가 24, 45) 성서의 말씀을 설명해 주었고, 이러한 방법은 사도들에게도 이어졌다. "율법과 예언서 낭독이 끝나자 회당장들이 그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기를 '형제들이여, 당신들이 백성을 격려할 말씀이 있거든 해주십시오' 하였다" (사도 13, 15). 이러한 청을 들은 사도들은 성서를 예수의 파스카 사건에 비추어해설하였다(사도 13, 16 이하).
성 유스티노도 《호교론 I》에서 말씀을 봉독한 다음에는 말씀을 실천하도록 적절한 권고를 담은 강론이 이어졌음을 전해 주고 있다(67장). 강론은 처음부터 성서의 봉독과 따로 뗄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이러한 점을 깨달은 교회는 강론을 "전례 거행의 한 부분"(전례 35항,52항)으로 강조하기에 이르렀고, 그런 만큼 모든 사목자들은 이 강론을 "중대한 이유 없이 생략해서는 안된다"(전례 52항 ; 《로마 미사 경본의 총지침》, 42항)고 적극 권장하게 되었다.
신앙 고백(Credo) : 신경이 로마 교회의 미사에 도입된 것은 꽤 늦은 시기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성 하인리히 2세(973~1024)가 교황 베네딕도 8세(1012~1024)에게 요청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도입은 12세기 초에 가서야 확정되었다. 동방 교회나 다른 라틴 교회들에 비해 로마에서 신경의 도입이 늦어진 이유는 베네딕도 8세 교황이 직접 언급하였듯이 로마에서는 미사에 신경을 도입하여 이단으로부터 신자들의 신앙을 보호해야 할 정도로 이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례 때에만 하던 신앙 고백(신경)이 미사에 도입된 것은 동방 교회에서 비롯되었으며, 이 신앙의 조목들은 제1차 니체아 공의회(325)와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 그리고 칼체돈 공의회(451)를 거치면서 확정되었다. 이것이 전례 안에 도입된 것은 515년경 콘스탄티노플의 디모테오에 의해서인데, 성찬 전례를 시작하기 전에 바쳤다. 이 신앙 고백은 동방의 모든 교회들로 퍼져나갔고, 유스티노 황제가 568년에 법으로 인준하였다.
동방 교회의 이 신경은 스페인으로 전파되었고, 589년의 톨레도 교회 회의에서 인준되었다. 그러나 이 신경은 감사 기도(prex eucharistica) 전이 아니라 주의 기도를 바치기 바로 전에 노래했다. 그런데 이 신경의 형식이 동방의 것일지라도 성령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부분에서는 이미 사라고사(Zaragoza)에서 만들어진 양식을 본받아"아버지와 아들에게서 좇아 나신" (ex Patre et Filio pro-cedentem)이라는 내용이 첨가되었다. 6세기 말과 8세기 초 사이의 스토우(Stowe) 미사 경본은 미사 통상문 안에 신경을 담고 있는데, 여기서는 주의 기도 전이 아니라 봉헌 전에, 복음 봉독 다음 또는 강론을 한 다음에 바쳤다. 여기에 있는 신경은 '성자와' (Filioque)가 빠진 것이었다.이처럼 켈트인들의 신경은 스페인의 신경과는 양식과 미사 중의 위치에 다소 차이가 있다. 카알 대제와 아귈레이아의 성 바울리노(Palino d'Aquileia, 780~802)는 로마 교회의 신경 안에 '성자와' 를 도입하는 데 큰 몫을 하였다. 최종적으로 로마에도 성 하인리히 2세의 요청에 따라 '성자와' 가 삽입된 신경이 미사에서 복음 봉독 다음에 도입되었다.
이러한 "규정에 따라 하게 되는 신경 또는 신앙 고백은 미사 거행 안에서 독서와 강론을 통하여 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모인 회중이 동의의 응답을 하게 하고 성찬 전례에서 믿음의 신비를 거행하기 전에 교회가 인준한 양식으로 '신앙의 조목' 을 기억하게 하는 목적을 갖는다"(《미사 독서 총지침》, 29항).
보편 지향 기도 또는 신자들의 기도 : 학자들 중에는이 기도를 말씀 전례가 아니라 성찬 전례(Liturgia sacri-ficale)에 연결되는 것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없다. 그러나 성주간 수요일과 성금요일에 성찬 전례가 따르지 않는 말씀 전례 끝에 : '장엄 기도' (Orationes sollemnes)가 바쳐졌다는 사실은 보편 지향 기도(Oratio universalis)가 말씀 전례를 마감하는 기도로 이해되었음을 말해 준다.
고대에서는 어떻게 불렸는지 모르지만 '신자들의 기도' (oratio fidelium)는 '예비자들에 대한 기도' (Oratio SU-per catechumenos)를 바친 다음에 예비자들을 돌려보낸 뒤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신자들이 기도를 바쳤다는 데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면, 이 이름은 매우 오랜 역사를 지닌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예비자들을 보내는 관습이 유지되고 있는 동방 교회에서 이 이름은 여전히 의미가 있을 것이고, 또한 라틴 예식의 교회에서도 예비자들이 성찬례에 참석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교회가 있다면 이 기도를 '신자들의 기도' 라고 지칭하여도 괜찮을 것이다.<전례 헌장>은 이 기도를 '공동 기도 곧 신자들의 기도'(Oratio communis seu fidelium)라고 한다(73항). 그러나 미사 통상문은 그것을 '보편 지향 기도 곧 신자들의 기도(Oratio universalis seu oratio fidelium)라고 하였다. 현대에맞는 명칭은 '보편 지향 기도' 라고 생각하지만 성인 영세자들이 세례를 받은 다음 처음으로 이 기도에 참여하는 관습이 행해지는 지역 교회들에서는 '신자들의 기도'라는 이름을 보존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카펠레(B. Capelle)는 '장엄 기도' 가 로마와 아프리카에서 펠릭스 3세 교황(483~492)에 이르기까지 신자들의 기도의 일반 양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젤라시오 1세 교황(492~496)은 그 자리에 그리스인들의 형식과 비슷한 리타니아(Litania) 형식의 기도를 도입하였다. 그리스인들은 부제가 지향을 말하면 신자들이 언제나 '기리에 엘레이손' (Kyrieeleison) 하고 응답하였다. 그러나 로마에서는 부제가 지향을 말하고, 그 응답을 제시했다. 그 응답은 '기리에' 일 수도 있고 '그리스테' (Christe)일 수도 있었다. 그 후 이 기도는 독서 앞으로 자리를 옮겼고, 성 그레고리오 교황(590~604)은 하나의 환호로서 응답만을 남겨 두면서 지향을 없애 버렸다. 그리고 강론 다음의 빈자리에 밀라노 예식을 따라서 '수페르 신도넴' (super sindo-nem, 성체포 위의 기도 : 암브로시오 예식에서 복음 다음 노래 뒤에 하는 옛 기도인데, 오늘날에는 신자들의 기도를 마감하는기도)의 기도를 도입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대부분의 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보편 지향 기도는 그 자체로 탁월한 기도이지만 몇 가지 조건이 존중되지 않는다면 기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첫째, 독서와 내용적으로 관련성을 유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보편 지향 기도는 본기도가 도입되기 이전까지는 회중의 첫 기도로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회중의 응답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내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분명히 이 기도는 오늘의 구체적인 삶과 공동체가 느끼는 필요와 관련되지만, 구체적이고 다양한 지향들은 언제나 전례가 거행하는 구원의 신비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도를 통해서 신자들이 전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려면 이 기도에 대한 신학 교육이 필요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보편 지향 기도가 지닌 기능을 새롭게 깨달으면서 성찬례 안에 복구시키도록 하였다." '공동 기도' 곧 '신자들의 기도' 를 특히 주일과 파공 축일의 강론 다음에 복구시키도록 해야 한다"(전례 53항).신자들은 이 기도를 통해서 보편 사제직(세례 사제직)을수행하며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도의 명칭에 대해서 아직 일반적으로 '신자들의기도' 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지만 전례 헌장에서 사용한 '공동 기도' 라는 이름이나 '보편 지향 기도' 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보편 지향 기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많은 옛 문헌들은 바오로 사도가 디모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1디모 2, 1-2a)을 인용하고있다. <전례 헌장>은 바오로 사도의 이 권고를 반영시켜"이에 신자들이 참여함으로써 거룩한 교회, 우리를 권위로써 다스리는 사람들, 여러 가지 곤경에 처하여 있는 이들, 모든 인류 및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할 것이다" (53항)라고 언급하고 있다.
양식과 내용의 다양성을 지니고 있지만 폭 넓은 '가톨릭적인' 관심과 보편적인 염려는 이 기도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교 전례가 지니고 있는 항구한 원칙을 발견하는데, 지역 교회가 드리는 기도이지만 그것은 온 교회 안에서 드리는 기도이다. 선택된 온 가족을 위하여 공동의 아버지와 한 분이신 주님께 드리는 간구 안에 구체적인 그리스도 공동체와 보편 교회의 연대 또는 유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표현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보편 교회' 란 로마 교회나 어떤 구체적인 지역 교회가 아니라 지역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완성시켜 나가는 데에 목표로 삼고 있는 이상(理想)이요 형상(形相, forma)인 교회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편 지향 기도' 안에서 만나는 지역 교회의 구체적인 필요성은 보편 교회라는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기 위해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스도 교회는 그리스도의 예배와 그분의 구원 사업을 계속하는 것을 자신의 과업으로 이해하고 있다. 교회는 결코 자신만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는다. 치프리아노(?~ 258)가 《주의 기도》 해설에서 말하고 있듯이 그리스도의 백성은 세상 안에서 '온 백성이고 하나' 이기 때문이다.
보편 교회를 위한 지역 교회의 기도인 보편 지향 기도는 그 내용에 이러한 독특한 위치를 표현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 시대성을 담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시대와 장소의 고유성을 포함하면서도 모든 시대와 장소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지향의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이러한 특성을 포함하고 있는 기도가 될 때에 보편 지향 기도는 보편 사제직을 수행하는 참으로 살아 있는 기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보편 지향 기도가 지역 교회의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그 회중을 구성하고 있는 신자들의 언어와 표현 방식에 적합한 것이어야 하고, 그들의 삶과 관심과 희망, 염려와 고통 그리고 기쁨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교회 공동체들과 온 교회의 사람들과 상황과 필요함이 그 기도 안에 드러나야 한다. 하느님은 온 인류에 대한 구원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신자들의 기도 는 교회 안에 국한되지 않고 온 인류를 향한 '보편 지향 기도' 가 된다. 교회의 신비 안에서 각 교회 공동체가 자신을 주님의 몸으로 이해한다면 주님을 대신하여 온 인류의 짐을 대신 지고 구원하는 공동체로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완수할 것이다. 교회의 기도는 이렇게 구원하는 사명을 수행하는 구원의 차원에서 바쳐질 때에 참된 '전례 회중' 의 기도가 될 것이다.
전례 전통은 보편 지향 기도를 말씀 전례의 한 부분으로 간주한다. 그것은 말씀하신 하느님께 회중이 드리는 응답이다. 그러므로 들은 성서의 말씀과 기도의 지향은 훌륭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성서의 말씀은 강론으로 해설되고, 기도로써 신자들에게 내면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이 된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다음, 그리스도 공동체는 기도한다.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을 들은 교회는 하느님께 충실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러나 자신의 나약함을 알고 있기에 도움을 청하고 간구한다. 강론은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구원 의지를 깨닫게 하고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를 일깨워 준다. 그 깨달음과 응답이 보편 지향 기도안에서 표현된다. 이렇게 해서 말씀의 선포와 화답송, 강론과 보편 지향 기도가 주제적으로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말씀 전례를 구성한다. 보편 지향 기도는 그 미사에서 들은 하느님 말씀에서 직접 인용한 말마디로 하거나 적어도 주제가 일치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이렇게 기도를 바침으로써 교회는 신자들에게 이 세상의 필요와 지향을 하느님의 계획에 비추어 생각하게 하는 습관이 몸에 배게 한다. 또한 그것은 기도의 차원을 말씀이 지니고 있는 교리 교수의 차원으로 들어 높이는 효과를 내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믿음의 내용(Lex credendi)과 실천(Lex orandi)이 하나가 된다. 믿는 대로 기도하고 기도하는 대로 믿는다. 또 반대로 기도하는 대로 믿고 믿는 대로 기도한다. 이 둘 사이에 분리는 생각할 수 없다. 영성은 믿음의 내용을 실천하는 데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 기도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기도를 참으로 그리스도교적으로 풍요롭게 할 것이다. 이러한 기도 양식의 모범을 부활 성야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부활 성야 미사의 말씀의 전례 때, 매 독서 다음에 사제가 바치는 기도는 방금 들은 말씀에 응답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범을 기초로 하여 보편 지향 기도를 바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보편 지향 기도의 직무를 수행하는 신자들은 들은 말씀의 주제를 잊어버리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말씀과 밀접한 주제의 연관성을 가지고 기도할 때 교회 안에서, 교회와 함께, 교회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말씀의 진리를 표현하는 기도가 바로 '교회의 기도' 이다.
IV . 성사 예식과 축복 예식의 말씀 전례
성사 예식 또는 그 예식 미사의 말씀 전례는 그 성사가지닌 뜻을 깨닫게 하고 성사 예식으로써 실현하는 신비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밝혀 준다. 성사 예식의 말씀 전례를 위해 선택된 성서 구절들은 여러 상황에 더 알맞게 사용하도록 여러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사목자들은 지혜롭게 더 적합한 독서들을 선택할 수 있다.
장례 예식을 위해서도 여러 성서 말씀들을 선택하도록 하고 있는데, 대부분은 그리스도인의 죽음이 지닌 뜻, 곧 파스카 신비에 참여함을 강조한다. 장례 예식에서 말씀 전례의 거행은 의무이다. 성삼일, 대축일, 대림 시기와 사순 시기 그리고 부활 시기 주일처럼 장례 미사를 드릴수 없는 날에도 미사 없이 장례식을 거행할 때에는 꼭 말씀 전례를 거행하도록 하고 있다. "성당에서 거행되는 장례식에는 미사가 있든지 없든지 말씀 전례와 이전에 사도 예절이라고 했던 고별식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장례 예식서, 6항).
축복 예식은 세상의 모든 실체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구원과 그러한 구원을 현존하게 하는 매개자인 교회를 눈으로 볼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 축복 예식은 말씀 전례와 공동체가 함께 기도하도록 하고 있다. 축복 예식에서 말씀 전례의 목적은 "축복이 하느님 말씀의 선포에서 그 뜻과 효과를 얻게 된다는 사실을 설명해 주는 표지가 되게 하려는 데에 있다"(축복 예식서 21항)고 말한다. 하느님의 말씀과 교회의 기도는 축복 예식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아무리 짧은 예식으로 축복 예식을 거행할지라도 이 두 요소만큼은 절대로 생략해서는 안된다고 예식서는 규정하고 있다(축복 예식서 23항). 이처럼 말씀의 선포와 기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미신을 피하고 신자들을 더 능동적인 참여로 이끌기 위함이다(축복 예식서 27항 참조). (→ 감사의 전례; 독서 ; 독서 주기 ; 독서집 ; 미사 ; 보편 지향 기도 ; 설교 ; 신경)
※ 참고문헌 Sacra congregatio pro sacramentis et cultu divino, Ordolectionum missae de editione typica altera Ordinis lectionum missae, 1981.1. 21/ Sacra congregatio pro cultu divino, Institutio generalis Missalisromani, 1970. 3. 26/ S. Marsili ed., Eucaristia, Anamnesis 3-2, CasaleMonfo. to(AL), 1983/ A.M. Triacca, Bibbia e liturgia, D. Sartore · A.M.Triacca eds., Nuovo Dizionario di Liturgia, Frascati, 1983, pp. 175~197/-,La celebratione di parola di Dio, Christi locutio, Vita fidelium, B. Secosdin(a cura di), Parola di Dio e Spiritualità , 1984, pp. 152~ 165/ R. Cabiè,L'Eucharistie, A.G. Martimort ed., L'Eglise en prière Ⅱ, Paris, 1983.〔金宗秀〕
말씀 전례 典禮
〔라〕Liturgia Verbi · 〔영〕Liturgy of the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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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전례 거행은 말씀과 분리해서는 생각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