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교구 소속 본당. 인천시 북구 삼산동 261-1 소재 1976년 12월 26일 부평1동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녀 글라라. 관할 구역은 삼산동, 갈산동 아파트 지대, 작전동 일부. 〔교 세〕 1976년 960명, 1980년 1,475명, 1985년 1,297명, 1988년 1,759명, 1993년 2,910명. 〔역대 신부〕 초대 노경삼(魯景三) 다니엘(1976. 12~1982. 1), 2대 시폴로네(Roco Cipollone, 지세암) 로코(1982. 2~1985), 3대 팔라다니(Gian Carolo Faladani, 장자호) 가롤로(1985. 1~1990. 11), 4대 윤종일(尹鍾-) 디도(1990.11~1994. 2), 5대 이태영(李泰榮) 마리 요셉(1994. 2~현재).
〔설립과 성장〕 갈산동 본당의 설립은 이 지역의 개발과 신자수의 증가에 직접적인 원인이 있었지만, 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회 한국 지부의 기금으로 성당이 건립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1975년 인천교구장 맥노튼(William McNaughton, 나 굴리엘모) 주교는 이 회와 협의하여 갈산동에 성당을 건립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동회의 한국 지부에서는 같은 해 3월 자체 기금으로 현재의 위치에 부지를 매입하였고, 이어 주변의 부지를 추가로 매입하였다. 그러자 교구에서는 1976년 12월 26일자로 노경삼(魯景三, 다니엘) 수사 신부에게 새 성당 건립의 책임을 맡기고 부평1동 본당에 거주하면서 이를 완공하도록 함으로써 본당 설립을 보게 되었다. 이때부터 본당에서는 성전 건립 운동을 시작하여 이듬해 5월 성당 기공식을 거행하였으며, 10월에 그 축성식을 갖게 되었다. 당시 건축비는 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회가 대부분을 지원하였고, 일부를 교황청에서 원조하였는데, 신자들은 성당 공사가 마무리될 즈음 내부 설비를 위해 정성을 마련하였다. 이후 신자들은 1979년 10월 수녀원을 신축하고 이듬해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수녀들을 맞이하였고, 1980년 9월 신용 협동 조합을 창립하였다. 그러나 제2대 본당 주임 시폴로네 신부 재임시인 1983년 3월부터 노틀담 수녀회에서 본당의 사목을 돕게 되었다. 한편 1981년 3월에는 계산동 공소의 교세가 확장되면서 1981년 3월 본당으로 설정됨에 따라 총 신자수 1,500여 명 중 800여 명이 새 본당으로 이적되는 변모를 겪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당에서는 신자들의 정성을 모아 1984년 7월 성당 마당의 축대 공사와 외벽 페인트 공사를 하였고, 비좁은 교리실과 사무실을 확장하기 위해 교육관 신축을 시작, 1985년 8월에 이를 축성하였으며, 1987년 1월에는 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회에서 수녀원 뒷편에 '요셉의 집' 이라는 양로원을 개원하였다. (→ 인천교구) 〔편찬실〕
갈산동 본당
葛山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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