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구 소속 본당. 부산시 수영구 망미1동 979-80소재. 1982년 2월 6일 연산 본당과 군인 성당인 성 도마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삼위 일체. 관할 구역은 망미1 · 2동, 수영동 전역과, 연산3 · 6동, 광안3동 일부 지역. 〔교 세〕 1982년 2,594명, 1987년5,558명, 1991년 5,580명, 1994년 6,281명. 〔역대 신부〕 초대 장병진(張炳晋) 야고보(1982.2~1983.2), 2대 정환국(鄭桓國) 알로이시오(1983. 2~1985. 2), 3대 황철수(黃哲洙) 바오로(1985. 2~1987. 2), 4대 황태웅(黃泰雄)요셉(1987. 2~1990. 2) , 5대 양요섭(楊要燮) 요셉(1990.2~1992. 2), 6대 손덕만(孫德萬) 토마스(1992. 2~1996. 2) ,7대 함영상(咸英相) 비오(1996.2~현재).
〔본당 설립〕 망미동 지역은 1964년 초량동(草梁洞) 지역 일대의 빈민 300여 세대가 집단 이주함으로써 인구가 급증하였고, 이어 1969~1974년에 실시된 구획정리 사업에 의해 새로운 주택지로 인식되었다. 당시 이지역은 광안 본당 관할이었으나, 성당과의 거리가 멀어 신자들은 1973년 12월 20일에 신설된 군인 성당인 성도마 본당(수영구 수영동 353번지)에서 미사 참례를 하기도 하였다. 한편, 성 도마 본당은 군인들만으로는 운영이 어려워 부산교구장의 승인을 얻어 1979년 6월 26일부로 부산교구의 준본당이 되었다. 이에 군인과 이 지역 신자가 한 본당 소속이 되었으나, 사목상 어려움이 많아 본당을 신설하기로 논의하였다. 그러다가 1981년에 박범숙(로사)이 현재의 본당 소재지인 성가 보육원의 부지 780평을 교구에 헌납하자, 교구에서는 이곳에 사제관과 교리실(50평)을 신축하고, 연산 본당과 성 도마 본당의신자 2,000여 명의 교적을 이관받아 이듬해 2월 6일 망미 본당을 신설하였다.
〔성당 신축 및 발전〕 설립 초기에는 교리실에서 미사를 봉헌하였는데, 각 신심 단체들이 조직되고, 성가 소비녀회 수녀들이 파견되어 전교 활동을 시작하는 등 본당체제가 갖추어지기 시작하면서 성당 건립에 전력하게 되었다. 같은 해 9월 12일 공사에 착수하여, 건평 383평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성당을 완공한 후, 1984년 2월 5일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그러나 본당 신설 5년만에 신자수가 두 배를 넘어서게 되자 각 단체들의 회합 및 주일학교 교실로 사용할 장소가 부족하여 1988년 4월 10일에는 교육관을 신축하였으며, 그 해 7월 토현(兔峴) 본당을 분리시킨 직후에는 성당 담장 공사 및 조경사업에 힘을 쏟았다.
4대 주임 황태웅 신부는 500여 권의 도서를 기증하여 본당 내에 도서실을 개원함으로써 신자들의 영적 성숙에 기여하였고, 5대 주임 양요섭 신부는 1991년 9월에 유기 농산물 직거래장을 개설하여 본당 공동체로 하여금 농촌의 어려운 현실을 깨닫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또 6대 주임 손덕만 신부는 청년회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1992년 4월부터 '젊은이 모임' 을 만들고 매주일 저녁 미사 후에 모임을 갖는 등 청년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 해 12월에는 본당의 역사를 담은 《망미 성당 10년사》를 발간하였다. 1993년에는 교리실을 신축하였고, 1994년에는 성당 안에 냉난방 시설을 비롯한 보수 공사를 단행하였으며, 1996년 6월 2일에는 제14회 '본당의 날' 행사를 성대하게 개최하여 본당 공동체의 일치와 친교를 도모하였다. 현재 신심 단체로 레지오 마리애 4개 꾸리아에 70개의 쁘레시디움, 장례 봉사 단체인 요셉회, 울뜨레야, 자모회, 젊은이 모임, M.E. 부부 성가대 등이 있다. (→ 부산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부산교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사 연구소 편, 《教區三十年史》, 천주교 부산교구, 1990/ 망미 성당 10년
사 편찬위원회 편, 《망미 성당 10년사》, 천주교 망미 교회, 1992. 〔편찬실〕
망미 본당
望美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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