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1908년에 충청북도 장호원(현 감곡) 본당의 부이용(Bouillon, 任加彌) 신부가 세운 초등 교육 기관. 1972년 폐교되었으며, 1967년부터 운영하기 시작한 매괴여자중 · 상업고등학교만 현재까지 남아 있다. 〔설립과 발전〕 1896년 9월 부엉골(현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부평리)에서 장호원으로 본당을 이전한 부이용 신부는 1898년에 이미 한문을 가르치는 서당을 운영할 정도로 교육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었으나, 능력 있는 교사도 없었고 확정된 교육 방법도 없어서 학교라고 하기에는 미진한 점이 많았다. 이러한 상태에서 증가하는 교세에고무된 부이용 신부는 학교의 필요성을 더욱 느끼고 뮈텔(Mutel, 閔德孝) 주교에게 도움을 청하는 한편, 독자적으로 130피아스트르 은화로 1908년 남학교를 설립하였다.
이듬해부터 즉시 여학교 설립을 추진한 부이용 신부는 1910년에 교사(校舍)를 마련하였고, 본당을 순회하면서 거둔 각출금과 학부모들의 협력, 그리고 자신의 돈을 합쳐 얼마간의 기금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여학생들을 교육할 교사(敎師)가 없어 서울에 있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 수녀를 요청하였다. 1912년 10월 장호원에 도착한 두 명의 수녀들의 헌신과 희생에 기초한 교육으로 여학교는 성공적으로 운영되었다. 실제로 장호원의 여학교는 좋은 평판을 받고 있었으며, 부모들도 수녀들에게 자녀를 맡길 수 있음을 매우 기뻐하였다. 이렇게 해서 장호원에는 남학교와 여학교가 세워졌고, 이를 통해 신자 자녀의 교육 및 선교 사업이 진행될 수 있었다. 그러나 매괴학교의 운영이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자금 부족, 학식 있고 헌신적인 교사의 부족, 부모들의 아동 교육에 대한 몰이해, 관청으로부터의 폐쇄당할 위험 등은 부이용 신부가 매괴학교를 운영하면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었다. 특히 남학교는 여학교에 비해 더욱 심각한 상태였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점은 교사의 부족이었다. 이러한 사정은 1921년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부이용 신부는 이 교육사업을 위해 헌신하였는데, 자녀들을 다른 학교에 보내려는 부모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남학교의 중흥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게 만들었다. 좁은 건물과 외교인 선생 밑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을 위해 1922년에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교사를 새로 마련하고 3명의 신자 선생과 1명의 회장을 둠으로써 남학교가 새롭게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 후 매괴학교는 공립 학교로 인정되다시피하면서 학생수도 계속 증가하여1923년에는 160명에 이르게 되었고, 같은 해 도지사와 부도지사가 학교를 방문할 정도로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재정 문제, 교사 부족, 부모들의 무관심 등은결국 매괴학교의 침체를 가져와, 1924년 6월 170명이던 남학교의 학생수는 이 지역에 공립 학교가 개설되면서 크게 줄었다. 남학교의 실정에 비추어 볼 때, 여학교는 수녀들의 희생적인 노력으로 좋은 평판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교육수준에 있어서는 만족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부이용 신부는 여학교의 종교 교육이나 생활 교육에 대해서는 만족감을 나타냈지만, 일반 지식 교육에 있어서는 한계를 인정하고 있었다. 매괴학교의 이러한 상황은 재정적으로 앞선 외교인 학교나 당국의 지원을 받고 있는 공립학교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학생수는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즉 프로테스탄트계 학교가 교육 시설 면에서 가톨릭계 학교보다 우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제 당국이 1919년부터 3면(面) 1교(校)주의, 1922년부터 2면 1교주의, 그리고 1928년부터 1면 1교주의로 공립 학교를 증설하였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프로테스탄트계 학교와 공립 학교에 다니게되었다.
〔변 천〕 1924년 장호원 지역에 공립 학교가 개설되면서 매괴학교의 학생수가 점차 줄어들자 6년제에서 4년제로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932년 6년제로 복귀한 매괴학교는 1938년 교사를 3층으로 증축하면서 공식 인가를 받았으며 부이용 신부는 총독부로부터 교육공로 표창을 받았다. 그리고 1938년 10월에는 매괴심상소학교(玫瑰尋常小學校)로 개명되었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 발발로 일제가 민족 말살 정책을 더욱 강화함에 따라 천주교회의 교육 사업도 해방 때까지 황국 신민화 교육 방침에 의해 침체와 부진을 면할 수 없었다. 이러한 와중에서 매괴학교는 1942년 일본인에게 빼앗겼고, 교명도 '욱산' (旭山)으로 바뀌어 운영되었다. 그 후 해방이 되면서 다시 찾은 매괴학교는 1947년까지 부이용 신부가 운영하다가 1972년 운영난의 심화로 폐교되면서 학생들은 공립 학교인 감곡국민학교로 옮겨 가게되었다. 한편 매괴국민학교 외에 1953년에는 장호원 본당 6대 주임 파디(J.Pardy, 巴智) 신부에 의해 매괴상업고등학교가 설립되었다. 파디 신부는 장호원에 남자 중학교만 있고, 남자 고등학교가 없는 것을 보고 전교를 위해서도 남자 고등학교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그리하여 1953년에 1학급 73명의 학생으로 매괴상업고등학교를 설립하고 매괴국민학교의 별관을 교사(校舍)로 사용하다가 1955년 4월 국민학교의 교사가 신축되자 그곳으로 이전하였다. 그 후 학생수가 증가함에 따라 1958년에는 소성당과 사제관(현 감곡 본당 주차장 자리)을 헐고 그곳에 학교 건물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당시 남학생의 부족과 여학교의 설립을 희망하는 지역 여론에 따라 매괴상업고등학교는 1965년부터 신입생 모집을 중지하고 같은 해 6월, 6학급의 여자 중학교 인가를 신청하여 1966년에 매괴여자중학교를 설립하였다. 그 후 1966년 11월에는 매괴상업고등학교를 매괴여자상업고등학교로 변경하였고, 이로써 현재의 매괴여자중 · 상업고등학교가 탄생하게 되었다.
설립 당시 6학급으로 인가된 여자 중학교는 1968년 9학급으로 확대되었다가 1985년부터 학생수 부족 등으로 학급수의 변동을 거쳐, 현재는 7학급 286명이 공부하고 있다. 이에 반해 1967년 첫 입학생을 받은 매괴여자상업고등학교는 1977년까지는 학생수가 중학교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이듬해부터 학급수가 계속 증가하여 1987년에는 18학급으로 늘어났고, 1996년 현재는 18학급에 841명이 공부하고 있다. 성실, 예의, 봉사를 교훈으로 삼고 애국인, 실력인, 창조인, 건강인, 자립인을 교육 목표로 하는 매괴여자중 ·상업고등학교는 시설 면에서도 많은 발전을 하였다. 즉 1968년 3층의 교사 1동을 마련하면서 현재의 위치(충북음성군 감곡면 왕장리 29번지)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1973년에 본관 3층 일부를 증축하였고, 1975년에는 운동장을 확장하였다. 그리고 1978년에는 후관(後館)을 신축하면서 8개의 교실을 마련한 데 이어 계속해서 증축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함께 여상(女商)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1983년에는 컴퓨터 30대를 설치하여 교육의 내실을 기했다. 또 1994년 3월에는 150평 규모의 강당을 준공하였고, 1995년 6월에는 지하 1층, 지상 3층의 기숙사(687평)를 완공하였다.
매괴여자중 · 상업고등학교의 역대 교장으로는 초대 박고안(朴稿安, 프란치스코) 신부, 2대 파디 신부, 3대 레이(J. Ray, 야고보, 李心) 신부, 4대 크레이그(H. Craig,후고, 奇厚根) 신부, 5대 라이언(F.Ryan, 프란치스코, 梁承德) 신부, 6대 아헤른(W. Ahearn, 굴리엘모, 安吉模)신부, 7대 김병철(金炳喆, 베네딕도) 신부, 8대 정영금 (鄭英金, 베르나르도) 수녀, 9대 박정자(朴政子, 레미지오) 수녀, 10대 오숙자(吳淑子, 마리아 비아) 수녀, 11대 박재순(朴再順, 안드레아) 수녀 등이고, 현재 오숙자 수녀가 1994년부터 12대 교장으로 다시 재임하고 있다. 1996년 현재 중학교는 28회에 걸쳐 4,029명, 고등학교는 39회에 5,397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 감곡본당)
② 1907년 합덕 본당의 크렘프(Krempff, 慶元善) 신부가 충청도 면천 비방면 소합덕에 세운 초등 교육 기관. 일반 교육과 교리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1908년 6월 14일 입학식을 거행하였고, 1910년에 8명의 첫 수료자를 배출하였다. 1921년 여자부가 설립된 이후 1922년에 남학교 140명, 여학교 60명의 학생으로 발전하였으나 재정과 교사 부족, 공립 학교와의 경쟁, 사회주의 사상과 공산당의 활동이 침투하면서 1924년에 남학교가 폐교되었다. 또 여학교도 버그네(현 충남 당진군 합덕읍 운산리)에 공립 학교인 연호소학교(鍾湖小學校)가 설립되면서 학생수의 부족으로 1928년에 폐교하였다.
※ 참고문헌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감곡 본당 90년사》, 천주교 감곡 교회, 1986/ -, 《구합덕 본당 100년사 자료집》, 천주교 구합덕 교회, 1990/ 《한국 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100년사》,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1991. 〔方相根〕
매괴학교 玫瑰學校
글자 크기
4권

1 / 4
1922년 3월, 부이용 신부와 매괴학교 남학생들(왼쪽)과 1938년 봄에 3층으로 증축한 매괴학교 전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