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괴회 玫瑰會

〔라〕Confraternitas SS. Rosar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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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는 전교 초기부터 매일 묵주 기도를 바치는 관습이 성행하였다.

한국 교회는 전교 초기부터 매일 묵주 기도를 바치는 관습이 성행하였다.

묵주 기도를 통하여 성모께 특별한 공경을 드리고 특별한 도움을 청할 목적으로 설립된 신심회.
〔역 사〕 매괴회의 기원은 성 도미니코나 도미니코회의 제3회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으나, 실제로는 도미니코회의 수사 알랑 드 라 로슈(Alan de la Roche, ?~1475)가 1470년에 창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이 신심회에 대한 교황청의 승인을 얻지 못하고 1475년에 사망하였으나, 그가 사망한 해에 독일의 스프랭거(J. Sprenger) 수사는 쾰른(Köin)에서 매괴회를 세우고 교황 식스토 4세(1471~1484)로부터 1479년에 인가를 받았고, 교황 율리오 3세(1550~1555)로부터는 대사(大赦)의 특권까지 부여받았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매괴회의 모체로 간주되고있다. 이 시기에 매괴회는 묵주 기도를 알리는 주요한 수단이었으며, 이 회를 통해서 묵주 기도는 신자들의 신심에서 확고한 지위를 굳힐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조직도 전세계로 급속히 보급되었다.
1898년 10월 2일에 발표된 교황 레오 13세(1878~1903)의 교서 <우비 프리뭄>(Ubi)에 의하면, 매괴회는 도미니코회 총장이 관할하고 또 총장만이 교회법적으로 제정권과 지도자 임명권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매괴회를 설립하려면 반드시 도미니코회 총장의 허락을 받아야 하였다. 그리고 회원의 이름을 명부에 올리고 또 회원들이 묵주 기도를 바치는 것이 중요한 규칙이 되었다. 이에 회원들은 한 주일에 묵주 기도 15단을 바칠 의무가 있었고 이를 통해 회원들은 많은 대사를 얻을 수 있었다.
매괴회는 발전하는 과정에서 '항구적 매괴회' (Rosa-rium perpetuum)와 '생활 매괴회'Rosarium vivum)가 생겨났는데, 17세기에 생겨난 '항구적 매괴회' 회원들은 하루 24시간을 나누어 매시간 계속하여 묵주 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자리코(P. Jaricot)에 의해 1826년 리용에서 발족한 '생활 매괴회' 는 회원 12명이 신비 1단씩을 나누어 바침으로써 매일 묵주 기도 15단이 바쳐지도록 하였다. '생활 매괴회' 는 1832년에 그레고리오 16세(1831~1846) 교황에 의해 공인되었고, 1877년에는 도미니코회산하에 소속되었다.
〔한국의 매괴회〕 한국 교회에 매괴회가 언제 도입되어 설립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매괴회에 대한 첫 기록은 또 교우들을 매괴회와 성의회(聖衣會)에 가입시켜야합니다" 라는 다블뤼(Daveluy, 安敦伊) 신부의 1846년 2월 말 서한이다. 따라서 매괴회는 성의회와 더불어 이미 1846년에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으나 그것이 언제부터시작되었는지는 기록의 부족으로 알 수가 없다. 신유박해(1801) 시기에도 묵주와 관련된 기록이 나타나지만 그것이 곧 매괴회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후 1835년 말에 입국한 프랑스 선교사들이 회장들을 임명하거나 승인하고, 가장 긴급한 모든 것에 관한 규칙을 정해 주게 되는데 이 가운데 성의회가 포함되었을 것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기해박해 때 순교한 남명혁이 자신이 성의회 회원임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최초의 프랑스 선교사들이 입국하여 전교 활동을 전개한 1836년 직후에 매괴회가 성의회와 함께 설립되었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1887년에 간행된 <한국 교회 지도서>(Coutumier de laMission de Corée)에는 매괴회 입회 예절과 묵주 축성문이 나온다. 또 1914년의 <대구교구 지도서>(DirectoriumMissionis Taikou)에는 입회 예절과 묵주 축성문 외에 회원등록의 의무와 규정의 대사를 얻기 위해 적어도 한 주간에 15단을 한 번 바쳐야 함을 소개하고 있으며, 그 밖에 회원이 받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사들을 열거하고 있다. 1924년에 나온 <서울교구 지도서>(Directorium Missionisde Seoul)에도 회원이 대사를 얻기 위해 묵주 기도 15단을 매주일 바쳐야 한다고 하면서 그것을 나누어 바칠 수 도 있다고 하였으며, 10월에는 공적으로 바치도록 권고하고 있다. 또 선교사들은 교우들에게 주모경(主母經)만 배우면 어릴 적부터 묵주 기도를 바치는 습관을 키우도록 권하고 있다.
〔의 의〕 박해 시대의 천주교 신자들에게.있어서 묵주기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많은 은사는 커다란 힘이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 교회는 전래 초기부터 신자들 사이에 매일 묵주 기도를 바치는 관습이 성행하였고 자녀들에게도 따르도록 적극 권장하였다. 그리고 1841년 한국 교회가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를 주보로 모시게 되면서 교우들의 성모 성심은 더욱 확산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다른 한편으로 신앙 형태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즉 당시 매괴회 등 신심 단체의 존재는 이 시기에 이르러 개인적인 차원의 신앙이 신심 단체를 통한 조직적인 단계로 발전되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교우들은 이러한 신심회를 통해서 자신의 믿음을 굳건히 하고 박해 시대에도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던것이다. (→ 묵주 기도 ; 신심회 )

※ 참고문헌  W.A. Hinnebusch, Rosary, 《NCE》 12, pp. 667~670/ J.H.Kenny, Rosary Altar Society, 《NCE》 12, p. 670/ 《경향잡지》 334호(1915.9), pp. 421~424/ 허천, <매괴회에 대한 고찰>, 《가톨릭 연구》 1권 10호 (1934)《경합잡자》 920호(1940. 3), pp. 81 ~871 《달레 교회사》 김보록,<기도의 신학 10>, 《신학전망》 65호(1984. 여름), 대건신학대학/ 《뮈텔 주교 일기》 I, 한국교회사연구소, 1986/ <ロ-ザリオ>, 《カトリック 大辭典》 5, 상지대학, 1954/ 1887 Contmier de la Mission de Coréel 1912 Directorium Missionis Taikoul 1922 Directorium Missionis de Seoul. 〔房相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