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안성군 미양면 갈전리 305 소재. 1959년 11월 16일 안성 본당(현 구포동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요한 비안네. 관할 구역은 미양면 중 계륵, 구수, 양변, 보체, 구례를 제외한 전지역.
〔교 세〕 1959년 800명, 1988년 916명, 1993년 931명. 〔역대 신부〕 초대 양병묵(楊柄默) 루가(1959. 11~1962. 1), 2대 이명기(李命基) 베르나르도(1962. 1~1964. 11), 3대 한종훈(韓鐘勳) 스테파노(1964. 11~1967. 1), 4대 임충승(林忠承) 시몬(1967. 1~1969. 12), 5대 강현홍(康賢洪) 사도 요한(1969. 12~1977. 3), 6대 황규철(黃圭鐵) 비오(1977. 3~1980. 8), 7대 박철(朴鐵) 바오로(1980. 8~1983. 8), 8대 박종만(朴鐘萬) 세자 요한(1983. 8~1986. 12), 9대 정성진(鄭聖鎭) 세자 요한(1986. 12~1990. 5), 10대 김상순(金尙淳) 프란치스코 사베리오(1990. 5~현재).
〔본당 설립〕 미양면 지역에 복음이 전파된 것은 1870년경 평택에 거주하던 신자 이성호가 병인박해(1866)의 여파를 피해 바울(암동)로 이주하면서였다. 이후 그의 전교 활동으로 천주교 신앙은 갈전리를 비롯하여 이웃 마을로 전파되었고, 1883년 바울 공소가, 1890년 갈전리 공소가 설립되었다. 이후 이 공소들은 1890년부터 간양골 본당(間良谷本堂, 충남 예산군 예산읍 간량리)에, 1894년부터 구합덕 본당의 전신인 양촌 본당(陽村本堂, 충남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에, 1895년부터 공세리 본당(貢稅里本堂, 충남 아산군 인주면 공세리)에 속하였다가 1900년 안성 본당이 설립되면서 그 관할 공소가 되었다. 그 동안 바울 공소는 신자수가 줄어든 반면에 갈전리 공소의 교세는 점차 확대되어 1898년에 첫 강당을 건립하였고, 1936년에는 두번째 강당을 신축하였다. 갈전리 공소에서 본당 승격 운동이 전개된 것은 해방과 6 · 25 사변을 겪은 뒤 신자가 날로 증가한 때문이었다. 이에 이곳 신자들은 1958년 7월 '본당 설립 기성회' 를 조직하고 본당의 정욱진(丁旭鎭,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에게 본당 신설을 건의하는 한편 사제관 신축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자 교구청에서는 사제관 준공(11월 15일)과 때를 같이하여 1959년 11월 16일자로 '갈전리 본당' 의 신설을 발표하고, 그 초대 신부로 안성 본당의 보좌로 있던 양병묵(루가) 신부를 임명하였다. 이때 본당의 총 신자수는 약 800명이었고, 여러 공소 중 강덕리 공소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폐지되었다.
〔성장과 변모〕 본당 설립 후 가장 시급한 일은 성당 건립이었으나 이곳 상황으로서는 빠른 시일 안에 결실을 거둘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에 양 신부와 신자들은 우선 기본적인 사업부터 하나씩 이루어나가기로 하고 첫번째 사업으로 성당 우물 공사와 갈전리 부락 전기 공사를 시작하였다. 그런 다음 주일학교 건립을 위해 바울 공소와 후평리 공소 강당 헌 자재로 교실을 신축하였으며, 이어 성당 건립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오랫동안 실현되지 못하다가 제4대 임충승(시몬) 신부 재임시인 1968년 2월 12일 '성당 건축 준비 위원회' 가 조직되면서 실천에 옮겨질 수 있었다. 이때부터 신자들은 모두 이 사업에 헌신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일부 신자들의 성금 봉헌으로 1968년 12월 11일에는 마침내 새성당(건평 89평) 봉헌식을 갖게 되었다. 아울러 이듬해 11월 사제관을 준공하였고, 제6대 황규철(비오) 신부 재임시인 1978년 9월에는 수녀원과 교육관을 신축하였다. 당시까지 본당에는 상주 수녀가 없었으며, 1989년 2월 24일에서야 '미리내 성모 성심 수녀회' 수녀들이 처음으로 파견되어 분원을 설립했다. 아울러 신자들은 이듬해 '새 성당 부지 구입 추진위원회' 를 발족하고 지금까지 신축 성당 건립에 노력해 오고 있다. (→ 수원교구) 〔車基眞〕
갈전리 본당
葛田里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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