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교구 소속 본당. 충청북도 단양군 매포읍 평동리134 소재. 1979년 3월 13일 단양 본당으로부터 분리· 신설되었으며, 주보는 노동자 성 요셉. 관할 구역은 매포읍 전역과 적성면 일부 지역. 〔교 세〕 1979년 514명,
1983년 663명, 1987년 686명, 1990년 733명, 1992년 818명, 1994년 830명. 〔역대 신부〕 초대 이영섭(李 永燮) 프란치스코(1979. 3~1983. 5), 2대 김종인(金種仁) 마태오(1983.5~1987.9), 3대 이대식(李大植) 야고보(1987.9~1991.4), 4대 배달하(裵達河) 필립보(1991.4~1994. 2) , 5대 백인현(白麟鉉) 안드레아(1994. 2~1996. 10), 6대 고정배(高珽培) 요셉(1996. 10~현재).
[공소 시대] 청주교구 단양 본당의 관할이었던 매포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10여 세대의 신자들을 중심으로 매포 공소가 발족된 것은 1960년이었다. 그 후 관할 구역 조정에 의해 1969년 5월 1일자로 원주교구 소속이 되었다. 1971년 5월 8일 매포면 매포리 103-7번지의 가옥을 임차하여 공소 건물로 잠시 사용하다가 이듬해 1 월 임차 건물과 부지 163평을 매입하여 8월 13일 공소강당을 완공하였으나, 축복식을 거행한 지 일주일도 되 지 않아 수해로 강당이 침수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때 20여 세대 신자들의 가옥도 유실되거나 침수되는 불 행을 겪게 되었는데, 이러한 딱한 사정이 언론 매체를 통해 알려지자 각계 각층으로부터 성금이 답지하였다. 이 에 힘을 얻은 신자들은 정영환(바오로) 전교 회장을 중심으로 강당 복구 사업에 헌신하여, 1973년에는 강당이 예전의 모습대로 복원되었고 신자들도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하였다.
〔설립과 발전〕 매포 지방에 시멘트 공장이 들어섬에 따라 인구도 늘어 점차 이 지역의 교세가 확장되자 본당 신설이 요청되었다. 1978년 5월 15일 매포읍 매포리에 부지 126평과 부속 건물을 추가 매입하는 등 시설 확충 을 거쳐 이듬해 3월 본당으로 승격하였지만, 본당 소재지가 충주댐 건설 수몰 지구로 고시됨에 따라 이전이 불
가피하였다. 그 후 1982년 3월 현재의 본당 소재지의 부지 404평을 매입하고 4월 3일 공사에 착수하여, 2년 5개월 만인 1984년 10월 7일 성당을 완공하고 10월 31일에 성당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1985년 7월 10일 수녀원을 완공한 후, 7월 22일 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분원이 설치되었으나 이듬해 5월 23일 철수하고, 1987년 1월부터는 프란치스코 전교 봉사 수녀회 수녀들이 매주 토 · 일요일에 출퇴근하면서 사 목에 협조하고 있다. 2대 주임 김종인 신부는 1985년에 성모 동산을 조성하였으며, 1990년과 1991년에는 성당 내 부속 시설들의 보수 작업이 단계적으로 실시되었다. 특히 4대 주임 배달하 신부는 1994년 1월 1일 영상 자 료 195편과 장서 627권을 갖춘 영상 자료실과 도서실을 개관하여 본당 신자뿐만 아니라 지역 내의 비신자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대도시에 비해 문화적 혜택을 누릴 기회가 적은 지역민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인구의 대도시 편중화 현상과 신단양의 아파트 건설 및 제천 · 매포간의 4차선 도로 개설 등으로 인해 매우 급격 히 신자수가 감소하는 실정에 있기 때문에 냉담자 권면 및 예비자 인도에 중점을 두고 본당 사목 계획을 수립하 고 있다. (→ 원주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원주교구 30년사 편찬위원회 편, 《원주교구 30년사》, 천주교 원주교구, 1996. 〔편찬실〕
매포 본당
梅浦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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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