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론의 한 특수 형태로서 일체의 인식을 감각적 지각에서 이끌어내는 인식론의 입장. 감각과 사유 사이에는 본질적 차이가 없고 오히려 모든 사유의 결과는 감각적 지각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17~18세기의 경험론의 발전과 관련이 있지만 그 자체로도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감각주의의 대표적인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기원전 488~415)는 '모든 것은 변한다' 라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입장을 수용하여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감각적 경험이 사람에 따라 다르기에 보편적이고 객관적 진리는 없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 대해 플라톤은 개인의 감각적 경험만으로는 참된 지식에 도달할 수 없다고 비판하였으나, 그의 감각론은 고르기아스 같은 회의론자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에피쿠로스(Epikouros, 기원전 341~270)는 감각적 지각을 지식의 원천이자 인식의 바탕으로 이해했다. 따라서 개념도 논리적 타당성의 단위라기보다는 감각적인 요소들을 상호 연합, 기억시키는 개체로 파악하였다. 이것은 세계에는 물질적인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없다고 말한 데 모크리토스의 유물론과 맥을 같이 한다.
월리엄 옥캄(William Ockham, 1285~1349)은 인식을 감각적 요소와 지성적 요소로 구별하고 직접적 경험을 포함한 감각적 인식만이 완전하며 오류는 지성적 판단에서 생긴다고 보았다. 스콜라 철학은 이성의 활동 안에만 인식을 위한 능동인(能動因) 전체가 있다고 보았으나 옥캄에게는 감각적 경험이 순수한 능동인이 된다. 일체의 보편적인 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보편자는 일종의 생각되어진 것이요 어떤 기호(sigmm)라고 한다. 그런데 이 기호는 일종의 허구(quoddam fictum)이며, 의미하는 어떤 것의 이름(nomen)일 뿐이라고 했다. 따라서 감각론은 유명론(Nominalismus)과도 맥을 같이 한다.
홉스(T. Hobbes, 1588~1679)도 모든 물음은 감각적 경험에서 시작되며 다른 모든 지식도 감각적 경험에 의존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감각주의는 유물론과 유명론으로 연결되어, 데카르트의 이성론과 근세의 형이상학에 적대적인 입장을 취한다. 인간을 물체로 보고 오성과 이성도 감각적인 것으로 보며, 인간과 동물의 차이도 질적 차이가 아닌 정도의 차이로 봄으로써 인간을 동물과 마찬가지로 감각적, 기계적 장치에 사로잡혀 있는 존재로 보았다. 또한 유쾌함을 주는 감각은 긍정하나 불쾌한 감각은 가치없는 것이라고 거부하였다.
로크(J. Locke, 1632~1704)는 관념이나 지식은 내적 · 외적인 감각의 경험을 통해서 얻게 된다고 본다. 외계에 물체가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의 인식은 감각적 인식만이 가능하다고 본다. 외적 물체는 감관의 지각에서 유래하고 경험은 그 본성상 개별의 경우에만 타당하기에 물체의 실체라는 것은 개연적(蓋然的)이라고 본다. 그러나 로크는 감각적 인식을 주장하지만 직관적, 논증적 지식을 더 높은 진리의 단계로 이해하기에 단순히 감각주의자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흄(D. Hume, 1711~1776)도 로크처럼 생득 개념(innate idea)을 부정하며 모든 인식 내용들이 감각적 경험에서 생겨난다고 주장한다. 감각에 생생히 찍혀진 것은 인상(impression)이고, 간접적이고 재생된 내용을 관념(idea)이라 하는데, 관념들은 모두 인상의 모사(模寫)라고 하였다. 경험도 시간, 공간의 접촉에 바탕한 관념의 연합으로 파악하여 인과율 같은 경험도 일종의 습관이나 연습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이처럼 흄의 감각주의는 회의론적이나 로크처럼 수학을 논증적 학문으로 인정했다.
콩디약(E.B. de Condillac, 1715~1780)은 《감각의 연구》라는 저서를 낼 정도로 철저한 감각주의자이다. 관념, 의지 등 모든 것을 변형된 감각으로 본 그는 인간이 인식과 의지의 동기를 감각을 통해서 얻기 때문에 인간도 동물의 단계에 있다고 보았다. 때문에 인간을 완전한 동물이요, 동물을 불완전한 인간이라고 했다. 윤리에 관해서도 쾌락, 불쾌의 감각을 기준으로 삼아 인간에게 쾌감을 주면 아름답고 선한 것으로 인정했다.
마흐(E. Mach, 1838~1916)는 "세계는 나의 감각이다"라고 하면서 감각적 경험에서 직접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 것만을 과학적 결론으로 수용한다. 그는 모든 과학적 진술은 감각들 사이의 관계들로 분석된다고 한다. 마흐의 감각주의는 과학의 통일 운동과 비엔나 서클의 논리 실증주의의 기초가 되었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일체의 인식을 감각에서 이끌어내는 감각주의와 의견을 달리하는 입장도 있다. 그중 대표적인 예로 아우구스티노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들 수 있다.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354~430)는 진리의 근원은 감각적 경험에 있지 않다고 본다. 감각적 지각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영혼이 자신의 어떤 것을 감각적 지각에 부여해야 한다. 영혼은 감각이 보고해 주는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 감각의 활동에다 스스로의 활동을 적용시킨다. 영혼은 감각적인 것을 위한 규칙과 이념을 가지고 있는데, 이 규칙과 이념들이 감각적인 것을 재는 척도이다. 아우구스티노는 감각적 경험이 필요없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이고 영원한 진리는 감각적 경험에서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of Aquinas, 1225~1274)는 구체적 감각의 대상보다 수학적 대상, 형이상학적 대상을 더 높은 단계로 보지만 인간의 인식이 감각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감각적인 것을 경시하지 않는다. 감각 기관이 결여되면 그 방면의 인식도 결여되며, 어떤 정신적인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상들의 도움을 받게 되고 감각적 사물의 본성을 통하여 비감각적인 사물의 인식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또한 개별적인 것으로부터 보편적인 것을 찾아내는데, 이 개별적인 것은 감각적 인식을 통해서만 파악되기 때문에 감각적 경험을 필요로 한다는것이다. 그렇다고 토마스가 감각적 인식이 정신적 인식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보는 것은 아니다. 감각적 인식을 넘어선 능동 이성을 정신적 인식의 본래적인 작용 원인으로 본다. 결국 감각 경험만으로는 안되기 때문에 감각 경험은 초월된다.
감각주의를 윤리적 · 문학적 의미로 사용할 때, '관능주의' 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이럴 때 관능의 의미는 쾌락의 의미와 유사하다. 특히 문학에서 관능주의라는 용어는 19세기 말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 퍼진 풍조로 퇴폐적 문화에 미적 동기를 구하는 데카당파에 속한 사람들을 총칭하는 뜻으로 사용한다. 프랑스의 보들레르(C.P. Baudelaire), 베를렌(P. Verlaine), 랭보(J.N.A. Rimbaud), 라포르즈(Laforge)와 영국의 스윈버언(A.S.S. Swinburne), 와일드(O. Wilde)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 참고문헌 D.M. Armstrong, Bodily Sensations, London, 1962/ E.G. Boring, Sensation and Perception in the History of experimental Psychology, New York, 1942/ P.C. Copleston, History of Philosophy, London, 1946/ R.J. Hirst, The Problem ofperception, London, 1959/ A. Bain, The Senses and the Intellect, London, 1855. 〔洪鍾律〕
감각주의
感覺主義
〔라〕sensualismus · 〔영〕sensation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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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