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간, 프란시스 McGann, Framis(1910~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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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맥간 신부.

프란시스 맥간 신부.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세례명은 프란치스코. 한국 성은 한(韓) . 1910년 아일랜드롱포드(Longford) 발리마혼(Ballymahon)의 뉴캐슬(Newcastle)에서 태어나 물린가(Mullin-gar)의 세인트 피난(St.
Finian) 소신학교를 거쳐서 1929년에 달간파크(Dalgan Park) 대신 학교에 입학하였으며,1935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곧바로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이듬해 11월 7일 한국에 도착하였다. 입국 후 목포에서 한국어와 풍속을 익히고 있던 중 1937년 말 장성(長城) 본당 초대 보좌 신부로 임명되어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1939년 4월 25일 서울 대목구에서 춘천 지목구가 분리 · 설정되면서 강원도 지역이 골롬반 외방선교회에 위임됨에 따라 강원도 이천(伊川) 본당 주임 신부로 사목하였다.
그러나 맥간 신부를 포함한 선교사들은 일제 치하의 어려운 현실 속에서 많은 시련을 겪었는데, 특히 제2차세계대전 중 본국 아일랜드가 연합군측에 가담하자 일제 당국으로부터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1941년 12월 9일평강(平康) 및 이천 본당에서 사목하고 있던 동료 매긴(Maginn, 陳), 맥관(McGowan, 元), 헤이워드(Hayward, 吳) 신부 등과 평강 감옥에 감금된 맥간 신부는, 12월 25일 춘천 지목구에서 활동하던 다른 모든 동료 선교사 들과 함께 춘천으로 압송되어 경찰 학교에 감금되었다가 이듬해 석방되었다. 가택 연금 조처를 받아 일체의 성사 집행 및 전교 활동이 금지된 채 홍천(洪川) 본당에 머무르고 있던 그는, 8 · 15 광복 후 강릉(江陵, 현 임당동) 본 당 주임 신부로 부임하여 1947년까지 사목한 후 휴가차 본국으로 돌아갔다.
1948년 한국에 재입국한 맥간 신부는 그 해 6월 강릉본당에서 묵호(墨湖) 공소가 분리되어 본당으로 승격되 자 초대 주임 신부로 임명되어 1949년 3월까지 사목하였으며, 강릉 본당에 다시 부임하였으나 6 · 25 한국 전 쟁이 발발함에 따라 광주 지목구의 브렌난(Brennan, 安)주교의 지시로 동료 헨리(Henry, 玄海) 신부와 메리놀회 의 클리어리(Cleary, 吉) 신부, 미대사관 부영사인 맥도날드(McDonald) 등과 함께 부산으로 피신, 잠시 그곳에 서 사목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다시 강원도에 파견되어성 당 복구에 주력하였으며, 1952년에는 골롬반 외방선 교회의 총회에 참석하였다. 또 1954년에는 춘천 지목구의 경리 담당 신부로 활동하였으며, 1955년 9월 20일 춘천 지목구가 대목구로 승격되자 교구장 퀸란(Quinlan,具仁蘭) 주교를 도와 교구의 전반적인 업무를 담당하였 다. 이러한 그의 적극적인 사목 활동으로, 1958년 휴가차 본국 아일랜드로 돌아갈 때까지 강원도 지역의 교세 는 크게 신장되었다.
휴가를 마치고 재입국한 맥간 신부는 서울로 전임되어 1959년부터 골롬반 외방선교회 한국 지부 부지부장(副 支部長)을, 1962년에는 지부장을, 그리고 1963년부터는 지부 차장을 맡았으며 1964년에는 골롬반 외방선교 회에서 간행하는 신문 의 통신 기자를 겸임하기도 하였다. 1966년부터는 휴양소인 제주도의 골롬반 외 방선교회 사제관 관장으로 재직하면서 휴양 생활을 하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결국 1982년에 본국으로 돌아갔다. 1986년 10월 8일 달간 파크에서 사망하여 그곳에 묻혔다. (→ 광주대교구 ; 골롬반 외방선교회)
※ 참고문헌  Jeremiah F. Kelly, The Splendid Cause(1933~1983), Columban Fathers, 1984/ Missionary Society of Saint Columban, Those who Joumeyed with Us(Deceased Columbans 1918~1995), p. 120/ 천주교 광주대교구 편, 《광주대교구 50년사》, 빛고을출판사, 1990/ 춘천교구 50년사 편찬위원회 편, 《춘천교구 50년사》, 천주교 춘천교구, 1989/ 《한국 선교 60년》, 골롬반 외방선교회, 1993. 〔李裕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