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롬반 외방선교회소속 한국 선교사. 세례명 아르도. 한국명은 안성도. 1921년 7월 2일 아일랜드 러슬레(Roslea)의 타니티 복(Tanity Bog)에서 태어나 모나한(Monaghan)의 메칼톤(Macartan) 소신학교에서 수학했다. 달간 파크(Dalgan Park) 대신학교에서 수학한 후에, 1945년 12월 사제 서품을 받은 후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잠시 중국 상해(上海)에 머무르면서 한국어를 배웠다.
1947년 한국에 도착한 후 이듬해 1월 횡성(橫城) 본당 보좌 신부로 사목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49년 9월 강릉(江陵, 현 임당동) 본당 주임 신부로, 1951년 11월에는 횡성 본당 6대 주임 신부로 임명되어 1953년 5월까지 사목하였다. 또한 1954년 11월 횡성 본당 9대 주임으로 재부임하여 1958년 9월까지 사목한 후, 10월 춘천 죽림동(竹林洞) 본당 16대 주임 신부로 전임되어 1965년까지 약 7년 동안 사목하였으며, 1962년에는 잠시 휴양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죽림동 본당 재임 중 주일 학교의 운영을 원활히 하고 각 단체들을 활성화시켰으며, 전교 활동도 매우 적극적으로 전개하여 교세 신장 및 본당 발전에 크게 기여한 맥마흔 신부는, 1962년 3월 10일 한국 교회의 교계 제도 설정에 따라 춘천 지목구가 정식 교구로 되고, 그 후 1965년 5월 1일 춘천교구에서 원주교구가 분리 · 설정되자 1966년 5월 횡성 본당 13대 주임 신부로 임명되어 1968년 5월까지 사목하였다. 그 후 운교동(雲橋洞) 본당(1968. 6~1973), 효자동(孝子洞) 본당(1973~1975), 속초 교동(校洞) 본당(1975.4~ 1978. 1), 옥천동(玉泉洞) 본당(1978. 12~1982. 3) 주임으로 전교 및 사목 활동을 전개하였다.
맥마흔 신부는 춘천교구와 원주교구 본당에서 약 34년 동안 사목하면서 신자들의 신심 강화를 위해 자주 성령 피정을 실시하는가 하면, 각종 평신도 단체들을 증설하여 활동을 적극 활성화시켰다. 또 서울로 전임된 후 1982년 9월부터는 골롬반회에서 운영하는 '알코올 상습 교육과 예방' 의 지도 신부를 맡아 알코올 중독자와 그 가족들이 알코올 문제로부터 벗어나도록 헌신적인 봉사와 노력을 기울였다. 43년 동안 한국 천주교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특히 소외 계층에 중점을 두고 그들의 보호 및 자립 협조를 위한 사목 정책을 적극 전개하였던 맥마흔 신부는, 1990년 6월 11일 서울에서 간암으로 사망하여 용인(龍仁) 성직자 묘지에 묻혔다. (→ 춘천교구 ; 원주교구 ; 골롬반 외방선교회)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광주대교구, 《광주대교구 50년사》, 빛고을출판사, 1990/ 《변방 선교》 10호(1993. 겨울호), 골롬반외방선교회/ 《한국 선교 60년》, 골롬반 외방선교회, 1993/ 원주교구 30년사 편찬위원회, 《原州教區三十年史》, 천주교 원주교구, 1996/Jeremiah F. Kelly, The Splendid Cause(193~1983), Fathers, 1984/ Missionary Society of Saint Columban, Those who Joumeyed with Us(Deceased Columbans 1918~1995), p. 73. 〔李裕林〕
맥마흔, 아더 McMahon, Arthur(1921 ~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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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아더 맥마흔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