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메나민, 다니엘 McMenamin, Daniel (1908~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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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메나민 신부와 광주 북동 본당 여학생들.

맥메나민 신부와 광주 북동 본당 여학생들.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세례명은 다니엘. 한국 성은 명(明). 1908년 아일랜드 레터케니(Letter- kenny)에서 태어나 세인트 유넌(St. Eunan) 소신학교를 거쳐 1926년 카히라콘(Cahiraco)의 세인트 세넌(St. Senan)소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이어 달간 파크(Dalgan Park) 대신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후 1932년 사제 서품을 받고 곧바로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1933년 10월 29일 아일랜드의 골롬반 외방선교회가 처음 한국에 진출할 때 10명의 동료 신부들과 함께 입국 한 맥메나민 신부는, 목포(木浦)에 머무르면서 한국어와 풍속을 익히고 1934년 3월 8일 라이언(Ryan, 羅) 신부 와 함께 제주도에 파견되어 서홍리(西烘里, 현 서귀포) 본당에서 전교 및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당시 한 국은 일제의 식민 통치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으며, 성사 집행을 비롯한 과중한 사목 활 동 등으로 폐결핵 증세까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광주 북동(北洞) 본당의 메리난(Mainan, 梅) 신부가 1935년 2월 새로 사제관을 건립하자 당시 골롬반 외방선교회 한국 지부의 책임자였던 맥폴린(O. McPolin, 林) 신부의 배려로 그곳에서 보좌 신부로 사목하게 되었다. 이어 1936년에 메리난 신부가 신병 치료차 미국으로 떠 나자 그의 후임으로 북동 본당 3대 주임 신부로 임명되었다. 일제 치하와 자신의 좋지 못한 건강 때문에 어려움 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본당 내에 혜성 학원을 설립하여 가정 환경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 해 주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 맥메나민 신부는, 건강이 악화되어 입국 5년 만인 1937년 12월 8일 폐결핵으로
광주에서 사망하여 전남 장성(長城)에 묻혔다가 후에 광주 남동(南洞) 성당 묘지로 이장되었다. (→ 광주대교구 ; 골롬반 외방선교회 )
※ 참고문헌  Jeremiah F. Kelly, The Splendid Cause(1933~1983), Columban Fathers, 1984/ Missionary Society of Saint Columban, Those who Joumeyed with Us(Deceased Columbans 1918~1995), p. 147/ 《한국 선교 60년》, 골롬반 외방선교회, 1993/ 천주교 광주대교구, 《광주대교구 50년사》, 빛고을출판사, 1990. 〔李裕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