맬서스, 토마스 로버트 Malthus, Thomas Robert (1766~1834)

글자 크기
4
토마스 로버트 맬서스.

토마스 로버트 맬서스.

경제학자. 인구 통계학자. 영국 성공회의 사제. 1766년 2월 14일 잉글랜드 서리(Sury)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주로 집에서 교육을 받다가 1784년 케임브리지(Cambridge)의 지저스 칼리지(Jesus College)에 입학하여, 1788년 졸업하기 전까지 여러 과목을 폭 넓게 공부하였다. 1789년에 부제, 1791년에 사제 서품을 받고 같은해 석사 학위를 받은 맬서스는 성공회의 사제였지만 경제학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맬서스는 1804년에 결혼하였는데, 그때 그의 부인 나이는 27~28세였다. 이 연령은 그가 후에 도덕적 제한의 실천으로 권장한 결 혼 적령 나이였다. 이듬해 헤일리버리(Haileybury)의 동인도 회사(East India Company)에서 운영하는 대학의 역사학과 정치 경제학 교수가 되었으며, 건강상의 이유로 거의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고 1819년에는 왕립 학회의 회원이 되었다. 또 1821년에 정치 경제 학회 회원, 1833년에는 프랑스 윤리학 · 정치학 학사원과 베를린 왕립 학 술원 회원이 되었다. 1834년 런던 통계 학회를 공동으로 설립하였고, 그 해 12월 23일 베스(Bath)에서 사망하 였다.
〔저 서〕 맬서스는 무엇보다도 《인구론》(人口論, An Es-say on the PincipllofPopulaion)의 저자로 유명하다. 《인구론》은 그가 출판한 첫 번째 저서로 1798년 익명으로 출판된 이후 다섯 차례(1803, 1806, 1807, 1817, 1826) 개정되었다. 본래 이 책은 당시 계몽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고드윈(W. Godwin)과 콩도르세(M.J.A.N. de Condorcet) 등의 이상주의적 세계관을 논박하기 위해 쓰여졌는데, 맬서스는 여기서 인구는 끊임없이 식량 공급을 초과할 것이므로 인간의 발전은 결국 급속도로 이루어질 수도 없거니와 무제한적인 것일 수도 없다는 점을 주장하였다. 더 나아가 식량 증가율과 인구 증가율의 차이는 결국 인구 성장에 제약을 가하게 되고, 이러한 제약을 가하는 과정은 빈곤과 죄악을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맬서스는 여러 가지 사실 자료와 해설을 덧붙여 1803년에 제2판을 출판하였는데, 인구 증가는 생활을 압박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과잉 인구 경향은 다양한 억제에 의해 극복된다는 근본적인 내용은 그대로남아 있었다.
초판에서 빈곤도 아니고 죄악도 아닌 형태의 억제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던 그는, 과잉 인구에 대한 억제로 가난이나 죄악을 들었지만, 제2판에서는 반드시 빈곤이라는 형태의 억제가 아닌 다른 형태의 억제, 즉 결혼 연령을 낮추거나 도덕적 억제를 선호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초판의 내용을 약간 수정하였다. 그는 도덕 적 억제는 비록 쉬운 해결책은 아니지만 빈곤이나 죄악을 유발하지 않고서도 실행할 수 있으며, 수용 가능하고 실효성 있는 억제라고 생각하였다. 맬서스는 또한 과잉인구에 대한 주요 해결책인 도덕적 억제를 실현하기 위 해 구빈법(救貧法, PoorLaws)의 개정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즉 그는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일가를 부양 할 능력이 있을 때까지 결혼을 미루도록 하기 위하여 구빈법의 기준을 가혹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렇 게 하지 않으면, 구빈법은 식량을 증가시키지 않고 인구만 증가시키게 되어 끊임없이 빈민만을 재생산하게 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평 가〕 일반적으로 맬서스와 《인구론》은 반인구적 · 반생명적이라고 평가된다. 그러나 이것은 인구 과잉인 사회에서 발생하는 병폐 현상에 대한 맬서스의 설명만을 근거로 한 그릇된 평가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하여 그는 《인구론》 제3판에 추가하고, 제5~6판에서 확대한 보론(補論)에서 자신은 결코 '인구의 적' 이 아니며 오히려 식량 공급과 조화를 이루는 한, 인구의 지속적 성장을 지지한다고 지적하였다. 사실 그는 매우 친인구적(親人口 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견해를 대변한다고 내세우는 현대의 '인구 제로 성장' 운동을 맬서스는 일반 원 리로서 지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1820년에 출판한 《정치 경제의 원리》(Principles ofPolitical Economy)에서 맬서스는, 인구 성장은 경제 성장의 '필요한' 요인이라고까지 하였다. 《인구론》은 오늘날 두 가지 의미에서필요성이 없어진 문헌이 되었다. 첫째로, 이상 사회론에 대한 반론의 입장에서 볼 때 이상 사회가 곧 도래할 것이라는 주장을 신봉하는 사람은 이제 별로 없기에 더 이상 커다란 시의성(時宜性)이 없다. 둘째로, 《인구론》은 대체로 세상 사람들에게 과잉 인구의 위험을 믿게 하는 데 성공하였기 때문에 필요성이 없어진 것이다. 이 책은 본래 의도했던 바를 성취하였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자체의 필요성을 없어지게 한 셈이다. 이는 사상사에서 드
물게 보는 업적이라 할 수 있다. 맬서스로 인해 오늘날 인구 논쟁은 인구의 '이론' 에서 그 '실천적 적용' 으로 옮겨 갔으며, 이제는 과잉 인구가 발생하는 과정과 그것을 예방할 수 있는 과정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 가족 계획 ; 인구 문제)
※ 참고문헌  The New Palgrave, A Dictionary of Economics, vol. 3, 1987/ 崔文煥, 《經濟學史》, 일신사, 1959. 〔韓弘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