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데인 문헌> - 文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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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재화가 결여된 이 세상의 불의를 단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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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재화가 결여된 이 세상의 불의를 단죄한다.

1968년 8월 24일부터 9월 6일까지 콜롬비아의 보고타와 메데인에서 개최된 제2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단 총회의 결과를 담은 문서. 교황청의 추인을 거쳐 1968년 11월 30일에 공포된 이 문서의 공식 명칭은 <제2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 회의 총회 최종 결의>이나, 개최지의 명칭을 붙여 간략히 <메데인 문헌>이라고 부른다.
〔배 경〕 1955년 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된 세계 성체 대회를 계기로 창설된 라틴 아메리카 주교 회의(Conserjo Episcopal Latinoamericano, CELAM)는 10년마다 총회를 개최하는데, 제1차 총회는 1956년 리오데자네이루에서 열렸고, 가장 최근의 총회인 제4차 총회는 개최 연도인 1989년에 열리지 못하고 1992년 산토 도밍고에서 열렸다. CELAM은 창설 이후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하다가 칠레의 라라인(Manuel Larrain) 주교가 의장직을 맡는 동안 획기적인 개혁을 단행하여 1963년에여러 사목 분야에 분과 위원회를 설치하였으며, 브란다오(Avelar Brandāo) 주교가 의장직을 맡던 1966년 초에는 본격적인 회합들을 추진하면서 당시로서는 놀라운 성명서들을 발표하였다. 메데인 회의를 준비하는 분과 위원회도 이때 각기 설치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참석했던 라틴 아메리카 교회의 주교들은 '침묵의 교회' 라고 불리울 만큼 발언에 소극적이었는데, 공의회의 의제들이 라틴 아메리카 교회가 처한 상황과는 다른 유럽 교회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지향하고 있던 '세상 안의 교회' 와 '교회 쇄신' 이라는 관점을 라틴 아메리카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4년 간의 공의회를 마치고 1965년에 돌아온 라틴 아메리카 주교들은 1968년으로 예정된 메데인 회의의 목적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따라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적 변형을 도모하는 데 두었다. 그러나 메데인 회의가 막상 개최되자 내용은 단순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적용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적 현실로부터 출발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을 해석하고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에 비추어 공의회를 바라봄으로써 놀라운 진보를 보여 주었던 것이다. 이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폐막되고 메데인 회의가 개막되기까지 불과 3년 동안 라틴 아메리카 교회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기를 맞았던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3년이 바로 해방 신학이 태동한 시기였다. 이 시기 동안 콩가르(P. Congar)와 곤살레스 루이스(José Maria González Ruiz) 등은 종교적 · 신학적 · 영성적 차원으로만 이해되어 오던 '가난' 또는 '가난한 사람들' 의 개념에 현실적 · 실제적 · 물질적인 차원을 변증법적으로 조화시킴으로써, 해방 신학자들에게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과 실천을 재해석할 수 있는 풍부한 신학적 지식을 제공해 주었다. 또한 1967년 브라질의 카마라(Helder Camara) 대주교를 비롯한 18명의 주교들이 <제3 세계 국민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발표하여 세계적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1968년에는 페루의 평신도들이 '복음적 가난' 을 다룬 탁월한 문헌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구티에레스(Gustovo Gutiérrez)는 1967년 7월 몬트리올(Montreal) 대학에서 교회 및 가난의 문제에 관해 강의함으로써 그의 저작 활동 가운데진정한 '질적 비약' 을 보여 주었고, 그로부터 1년 뒤 페루의 침보테(Chimbote)에서 "해방 신학을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강연함으로써 해방 신학이라는 신학 사조를 본격적으로 제시하였다. 공의회와 메데인 회의 사이에 이처럼 중요한 문헌들이 발표됨으로써 메데인 회의는 단순히 공의회를 적용한다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점증하는 라틴 아메리카 사회와 교회의 요구에 응답해야 하였다.
〔과 정〕 메데인 회의는 준비 과정과 회의에서부터 문헌 작성에 이르기까지 성직자와 주교들뿐만 아니라 각 분야의 직능(職能) 대표들과 사목 분야 대표, 현장 전문가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하였는데, 이들 전문가들은 여러 준비 위원회에 참여하여 메데인 회의를 기초에서부터 뒷 받침하였다. <메데인 문헌>의 준비 작업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두 가지 원칙을 내놓았다. 하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라틴 아메리카에 '아지오르나멘토' (aggiorna-mento, 쇄신과 적응)한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라틴아메리카 상황에 맞는 토착화를 지향한다는 것이었다.이를 위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새로운 신학적 내용을 연구하는 신학자들과 라틴 아메리카의 상황을 분석하고 서술할 사회학자들을 위촉하였다. 이들 가운데 다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과를 적극 받아들이고 있던 칠레와 브라질 교회의 사람들이었다. 초안 문서는 1964년 부터 구티에레스, 세군도(Juan Luis Segundo) , 헤라(LucioGera) , 아스만(Hugo Assmann) 등의 신학자들에게 위촉되어 작성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사목 헌장>을 통해 채택된 바 있는 서술 체계인 "사실의 제기와 분석 → 성서적 · 신학적 고찰 → 변화와 투신의 필요성과 사목적 대안 제시" 라는 구도를 통해 모든 문서를 정리해 나갔다.
첫날은 보고타에서 회의를 했는데, 바오로 6세 교황은 개막 연설을 한 다음 바로 떠났다. 서방의 매스컴들은 교황의 일정에 따라 움직였으므로, 거기까지만 취재하고 떠나려고 했지만 정작 준비 위원들이 제출한 초안은 참석자들에게 충격적이고도 현실적인 사회 파악을 가능하게 했다. "라틴 아메리카의 상황이 그들이 생각한 것보다 더욱 나빴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 없이 참여하려 하였던 일부 주교들은 크게 자극을 받았다. 회의가 끝나고 <메데인 문헌>이 발표되자 유럽과 북아메리카 지역을 비롯한 세계 각 지역의 언론에서는 "어떻게 전통적으로 보수적이었던 라틴 아메리카 주교들이 이러한 문헌을 발표하게 되었을까" 하는 반응을 보였고, 실제로 가장 보수적인 인사들로 꼽히고 있던 콜롬비아 주교단은 <메데인 문헌>을 최종적으로 채택하는 것을 거부하기도 하였다.
〔내 용〕 <메데인 문헌> 첫머리에는 교황 바오로 6세의 개막 연설이 실려 있고, 그 다음에 제2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 회의 총회가 라틴 아메리카 민중에게 보내는 메시지와 3부 16장으로 구성된 본문이 실려 있다. CELAM의 최종 결의라는 면에서 메시지와 본문이 본래 의미의 <메데인 문헌>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중 메시지는 본문에서 제시할 내용들의 주제를 앞서 제시하고 있는 부분이다. 본문을 구성하는 각 장별(1~16장) 주제는 정의, 평화, 가정과 인구 문제, 교육, 청년, 민중 사목, 엘리트 사목, 교리 교육, 전례, 평신도 운동, 사제, 수도자, 성직자의 양성, 교회의 가난, 연대 사목, 사회 홍보 수단이다. 각 장의 제목만 보더라도 <메데인 문헌>이 얼마나 다양하고 구체적인 사안들을 다루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푸에블라 문헌>이 그로부터 10여 년 뒤에 나왔지만 그 구체성에 있어서는 <메데인 문헌>에 비해 떨어진다고 할수 있다. <메데인 문헌> 16개의 장 중에서 3개 장(제1장 정의, 제2장 평화, 제14장 교회의 가난)은 특별히 강력한 결단을 표명하고 있고, 나머지는 전통적이고 관례적인 노선과 내용을 담고 있다. 메데인 회의에 참석한 130명의 주교들은 압도적인 지지로 최종 문헌을 채택하였는데, 중요하게 여겨지는 제1, 2, 14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장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정의(正義)이다. 주교들은 먼저 라틴 아메리카의 상황을 "하늘을 향하여 울부짖는 불의"(1항)라고 규정 짓는다. 라틴 아메리카 사회는 "사회 문화적 통합과 연대성"이 결여되어 있고, "높은 구매력을 가진 계층의 가능성만을 고려하고 도모해 주는 체제" 로서, 한마디로 "불의한 구조" (2항)이다. 이러한 불의한 상황을 성찰하면서 주교들은 "온갖 노예 상태에서 만민을 해방하시는 하느님"을 고백한다. 진정한 해방을 얻기 위한 인간의 회개는 "당장 구조의 변혁을 요구" (3항)하게 되어 있고,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을 통해 "세상 안에서 정의를 실현시키도록"(4항) 움직여야 한다고 단언한다. 주교들은 이러한 분석과 성찰에 기반해서 라틴 아메리카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지침들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특징적인 것은 주교들이 '자본주의적 자유주의 체제' 와 '마르크스주의적 체제' 모두를 지양한 제3의 길을 모색한다는 점이다. 주교들은 이러한 경제를 '인간다운 경제' 라고 부르는데, 이를 위해서 현재의 "기업의 목적에 관한 가치 평가와 태도 및 기업의 조직과 기능을 신속하게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기업은 인간의 공동체이자 노동의 집약" 으로서 "어떤 개인이나 사회, 국가의 소유물"(10항)과 동일시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결론적으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정치 참여는 '양심상의 의무' 이며, "공동체 생활을 위한 보다 고귀하고 효과적인 사랑의 실천" 이라고 단언한다.
제2장은 평화(平和)를 다룬다. 주교들의 평화에 대한 성찰은 매우 역동적이다. 그 역동성은 "발전은 곧 평화" (<민족들의 발전>, 87항)이므로 라틴 아메리카의 저발전 상황은 "불의한 상황"(1항)임을 규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라틴 아메리카의 평화를 해치는 여러 긴장들을 주교들은"계급 사이의 긴장과 내부적 식민주의"(2~7항) "국제적 긴장과 외부적 신식민주의"(8~10항),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국가 사이의 긴장"(11~13항)의 세 가지로 구분한다. 이러한 긴장이 지배하는 라틴 아메리카 사회에서 주교들이 지향하는 평화는 "정의의 결실"(사목 78항)로서의 평화이다. 주교들은 평화가 '정의로운 새 질서' 속에서, "쟁취되고 건설" 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무엇보다 핵심적인 것은 주교들이 "사회적 평화가 존재하지 않는 곳, 불의한 불평등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주님마저도 배격한다"(14항)고 하여 '정의로운 평화' 의 건설이 그리스도인들의 중대한 사명임을 지적하는 부분이다.
제14장은 교회의 가난을 다룬다. <메데인 문헌>은 가난의 의미를 세 가지로 구분한다. '재화(물질)가 결핍된 상태로서의 가난' , '영적 가난' , 그리고 '투신으로서의 가난' 이 그것이다. '물질적 가난' 은 그것 자체가 "불의와 범죄의 결과" 로서 '단죄' 의 대상이다. '영적 가난' 은 "하느님께 자기 자신을 개방하는 자세" 이며 "모든 것을 주님께 기대하고 희망하는 순응"의 자세이다. '투신으로서의 가난' 은 "이 세상 재화 앞에서의 영적 자유를 증거"하기 위해 "스스로 취하는" 가난이다. 이 가난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가난해지신 그리스도" (4항)를 따르는 가난이다. 따라서 교회는 "재화가 결여된 이 세상의 불의를 단죄" 하며, "주님께 자기 자신을 개방하는 태도로 영적 가난을 설교하며, "교회 스스로 물질적 가난 속으로 뛰어든다"(5항).
〔사 상〕 <메데인 문헌>이 전개하고 있는 사상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메데인 문헌>은 인간이 처한 현실 정황에 입각하여 복음과 인간의 총체적 발전을 본다. 그것은 인간의 진보를 복음의 힘(또는 구원)과 동일시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진보와 무관한 어떤 것도 아니라는 입장을 취한다. 그리하여 <메데인 문헌>은 교회의 임무는 모든 이들이 하느님의 역사(役事)하심에 의거해 세상을 변혁하는 일에 부름받고 있음을 증언하는 것이라고 자임한다. 둘째, <메데인 문헌>은 발전 이론(Theory of development)의 한계를 지적하며 라틴 아메리카의 상황을 종속 상황이라 진단한다. 그것은 발전(또는 개발)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종속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구원의 역사에서 하느님의 활동은 인간을 거의 모든 차원에서 온전하게 총체적으로 해방시키고 발전시키는 활동" (1장 4항)이기에 종속을 거부한 인간의 총체적 발전, 완전한 진보를 '해방' 이라 한다. 셋째, <메데인 문헌>은 그리스도인들이 능동적으로 진보를 성취하는 복음적 임무와 사명을 띠고 있으며, 해방을 향한 투신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임을 확인한다. 하느님 앞에서 마음이 완고해져서는 안되며(영적 가난), 세상에 가득한 가난을 단죄하고 스스로 가난 속으로 뛰어드는(투신) 복음적 감수성과 결단력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구티에레스는 이 문헌이 가지는 이러한 특징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비교하여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공의회가 발전국에서 출발하여 민중들의 저발전을 이야기하고 발전국들이 저발전 국가와 그 민중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할 것에 대해 말한다면, 메데인 회의는 가난한 나라들에서 출발하여 문제를 보려 한다."
<메데인 문헌>의 사상을 검토할 때 특별히 주목해야 할 주제는 가난과 폭력의 문제이다. 스페인의 성서학자 곤살레스 루이스가 일찍이 영적 가난과 물질적 가난이 갖는 긴장 관계를 밝혔고, 구티에레스가 여기에 그리스도의 '케노시스' (κένωσις, 자기 비움)에 근거를 둔 연대와 저항으로서의 가난의 의미를 더함으로써 이 둘 사이의 긴장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종합해 냈다. <메데인 문헌>에 나오는 가난의 개념이 탁월한 신앙적 역동성을 보이는 것은 이들의 기여와 무관하지 않다. 이처럼 <메데인 문헌>은 가난의 증언, 그리고 그것이 수반하는 성찰에 대한 자신의 강력한 부름을 그리스도의 모범에 근거를 두려고 했으며(14장 7항), <푸에블라 문헌> 역시 <메데인 문헌>을 따라 그리스도론적 기초를 강조하였다. 또한 <푸에블라 문헌>은 <메데인 문헌>이 채택한 가난의 세가지 의미를 그대로 적용하고 있으며, 가난한 사람들과의 연대라는 <메데인 문헌>이 가진 기본 관점을 구체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확히 말해 <메데인 문헌>은 '가난한 사람들' 보다는 '가난' 에 대해 더 많이 언급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 모습은 어떠한가를 정확히 밝힌 것은 <푸에블라 문헌>에 와서이다.
<메데인 문헌>의 초안이 집필되고 있던 1966년에 토레스(Camilo Torres) 신부가 무장 혁명 투쟁에 참여하던 와중에 피살됨으로써 폭력의 문제가 제기되었고, <메데인 문헌>도 폭력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게 되었다(2장 15~19항). <메데인 문헌>은 '제도화된 폭력' (2장 16항) 또는 '구조적 불의' (1장 2항)의 개념을 지적함으로써 폭력을 물리적인 폭력으로만 보는 시각을 극복하였다. 또한, "폭력은 그리스도교적인 것도 아니고 복음적인 것도 아니다"(교황 바오로 6세, 메데인 회의 개막 연설)라는 것을 적극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한 평화주의자는 아니다"(2장 15항)라고 선언하여 '구조적 불의' 와 '제도화된 폭력' 에 직면한 그리스도인들의 "정당한 반란"(<민족들의 발전>, 31항)을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폭력의 문제와 관련하여, 폭력적 혁명은 불의에 대한 부적절한 해결책이지만, 예외적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삽입 구절이 붙는 식의 서술 방식은 오늘날 가톨릭 사회 교서가 가진 일반적 설명 논리와 일치한다.
〔평 가〕 단지 라틴 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전세계 교회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메데인 문헌>의 공적은 "해방에 관한 논의를 교회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제기하고, 이미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고 있던 해방의 실천에 교회의 권위를 실어 주었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 메데인 회의는 이미 싹트고 있던 해방 신학을 정식으로 출범시켰고, 기초 공동체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였다. 아울러 메데인 회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더불어 평신도들을 역사와 교회의 전면에 부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구티에레스는메데인 회의가 라틴 아메리카 교회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는 면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보다 더욱 특별한 성과를 남겼다고 평가하였다. 그는 "공의회가 '세상 안에 있는 교회' 를 말하였다면, 메데인 회의는 라틴 아메리카 교회가 현존하는 세상은 충만한 혁명의 과정을 거치고 있음을 입증하였다. 또한 공의회가 교회 쇄신을 위한 노선을 제시했다면 메데인 회의는 이 대륙에 올바르게 현존하기 위하여 교회가 쇄신되어야 할 규범들을 지적하였다"고 하였다. <메데인 문헌>이 사회적 변혁 문제를 제안하면서도 구체적인 사회학적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는 점, 다시 말해 이른바 '제3의 길 이 어떠한 것인가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은 한계라고 할 수 있다. (→ 해방 신학 ; <푸에블라 문헌>)
※ 참고문헌  Segunda Conferencia General del Episcopado Latino-americano, Medellin Conclusiones : Edición Official del SecretariadoGeneral de CELAM, Bogotá, 1974(김수복 . 성염 역, 《메데인 문헌 : 제2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 회의 총회 최종 결의》, 분도출판사, 1989)/Gustavo Gutiérrez, A Theology ofLiberation : History, Politics and Salvation,2nd ed., trans. & ed., Sister Caridad Inda and John Eagleson, Orbis Books,1988(성 역, 《해방 신학》, 분도출판사, 1977)/ 一, The Power ofthe Poorin History, trans. by Robert R. Barr, Claretian Publications, Philippinines,1985/ Julio Lois, Teologia de la liberacion : Opcion por los pobres, IEPALA,1986(김수 역, 《해 방 신학의 구조와 논리》, 한국신 1988)/Donal Dorr, Optionfor the Poor A Hundred Years of Vacticon Social Teaching,Orbis Books, 1983(오경환 역, 《가난한 이를 위한 선택 : 교황청 사회문헌 연구》, 분도출판사, 1987)/ John Eagleson & Philip Scharper ed.,Puebla and Beyond : Documentation and Commentary, Orbis Books, 1979(성찬성 역, 《푸에블라 문헌 : 제3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 회의 총회 최종 결의》, 분도출판사, 1991)/ Leonardo Boff & Clodovis Boff, Salvationand Liberation, Claretian Publications, Philippinines, 1985(논장 신서 편집부 역, 《해방 신학의 이론과 실천》, 논장, 1988)/ Enrique Dussel, AHistory of the Church in Latin America, Colonialism to Liberalism(1492~1979), Grand Rapids, 1981/ Arthur F. McGovern, Liberation Theology andits Critics : wardan Assessment, Orbis Books, 1989/ 가톨릭 사회과학 연 구소, 《시원하게 풀어본 사회 교리》, 성바오로출판사, 1995.〔裵佑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