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만 남서쪽 32km 지점에 있는 옛 도시. 성서에는 메드바란 도시가 여러 번 등장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가나안으로 향해 갈 때 사해 동쪽에 위치한 메드바 읍을 점령하였고(민수 21, 30 ; 여호 13, 9.16), 다윗 치세 때(기원전 1010~970) 이스라엘군의 총사 령관 요압은 메드바 근처에서 암몬 사람들과 아람 사람들의 연합군과 싸웠다(1역대 19, 7-20, 3). 또한, 기원전 9세기경에 모압 임금 메샤(Mesha)는 모압의 수도 디본에 세운 메샤 승전비에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던 메드바를 수복하였다고 새겨 놓았다(메샤 승전비 제7~9줄, ANET 320). 기원전 2세기 마따디아 사제와 그의 다섯 아들들(요한, 시몬, 유다, 엘르아잘, 요나단)이 시리아 셀레우쿠스 왕조의 압제에서 벗어나려고 독립 운동을 벌였을 때 메드바 지방의 얌브리 사람들이 요한을 죽였는데, 이에 그의 동생들인 시몬과 요나단이 산속에 잠복해 있다가 신행(新行) 행렬을 습격해서 복수하였다(1마카 9, 36-42).
요한 히르카누스(John Hyrcanus, 기원전 134~104)가 메드바를 점령하였고(요세푸스, 《유대 고사》 13, 9. 1), 알렉산델 얀네우스(Alexander Jannaeus, 기원전 134~76)도 이곳을 지배하였다(《유대 고사》 13, 15. 4). 451년 칼체돈 공의회에 메드바의 주교 가이아노스(Gaianos)가 참석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지역은 614년 페르시아군의 침략을 받았고 635년 이슬람군에게 함락된 후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는데, 1880년에 케라크 지역에 살던 멜기트 그리스도인들이 대거 이주하면서 도시가 재건되어 현재 인구수는 약 4만 명 정도이다.
6세기경 메드바에는 모자이크 미술이 성행하였는데, 모자이크 가운데 그리스 정교회 소속의 성 게오르그 성당에 있는 이스라엘 지도 모자이크가 가장 유명하다. 지도 중심부에 예루살렘이 자리잡고 있으며, 북쪽 다마스커스 성문에서 남쪽 네아 성당 사이에 중앙통(cardo maxi-
mus)이 있고 그 양편에 주랑이 쭉 늘어서 있다. 골고타에 세운 성묘 성당(聖墓聖堂) 돔도 보인다. 세겜의 야곱우물, 마므레의 테레빈트 참나무, 사해 동쪽의 칼리로에 온천, 요르단 강과 사해, 요르단 강이 사해로 흘러 들어가는 입구에 요한이 세례를 베푼 베타바라, 케라크 요새 등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6세기에 세운 사도들의 성당에도 열두 사도들에게 봉헌된 큰 모자이크가 있다. (⇦ 마다바)
※ 참고문헌 Michele Piccirillo, 《ABD》 4, pp. 656~658/ 《Jordanie》 (Guides Bleus), Paris Hachette, 1986, pp. 94~95. 〔鄭良謨〕
메드바
〔히〕מֵידְבָא · 〔라〕Medaba · 〔영〕Mede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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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