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1월 6일에 로저스(Mary Joseph Rogers, 1882~1955)가 설립한 미국 최초의 외방 선교 수녀회. 설립 초기에는 복음이 선포되지 않은 아시아 지역의 선교를 목적으로 하였으나, 현재는 그리스도교 및 비그리스도교 국가에서 교리 교사 이외에 교육 · 의료 · 사회 복지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본부는 뉴욕 주 오시닝(Ossin-ing)에 있고, 한국 지부는 서울시 강서구 가양1동 대아 아파트 110동 703호에 있다.
〔설 립〕 1882년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난 로저스는 어릴 때 부터 중국 등 아시아 지역 선교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프로테스탄트에서 운영하는 스미스 대학 재학 시절, 교수에게서 가톨릭 학생 단체 활동을 권유받고 선교 사업을 위한 학생 단체를 조직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던 중 1906년 월시(J.A. Walsh) 신부를 만나게 되었다. 한눈에 로저스가 선교 사업에 큰 재목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월시 신부는, 전교지(傳敎誌) 《그 먼 땅에》(The Field Afar)의 교정쇄(校正刷)를 보여 줌으로써 그녀가 선교적 사명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후 보스톤(Boston) 공립학교의 교사로 근무하던 로저스는 우선 외방 전교에 관심이 있는 6명의 여성들을 모아 오시닝의 메리놀 신학 대학 근처의 한 농가(農家)에서 《그 먼 땅에》의 원고 편집 및 발송, 회계 사무 등의업무를 시작하였다. 수예품을 제작하여 판매함으로써 선교 사업에 재정적인 도움을 주는 한편, 의학과 간호학도 공부하기 시작하여 장차 본격적인 선교 사업에 투신할 준비를 하였다. 그 동안 점차 이들 가운데에서 수도 생활을 희망하는 여성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는데, 처음에는 외방 선교 사업을 돕는 단순한 여성 단체로 출발하였다가 독립된 수도 단체로 성장하게 되었다. 1912년 1월 6일 이들은 메리놀 외방전교회의 책임자인 월시 신부의 지도 아래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였다.
〔발전 및 영성〕 메리놀 수녀회는 아시아 지역으로의 선교에 앞서 미국에서 먼저 활동을 시작하였다. 1920년 로스앤젤레스와 시애틀에서 고아원 및 소수 민족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였고,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사회 복지 단체를 설립하였으며 의료 사업으로서 몬로비아(Monrovia)에 설립한 결핵 요양소는 이후 흉곽 병원(胸廓病院)으로 발전하였다. 캔사스 시티(Kansas City)에서는 인종 차별이 없는 병원도 운영하였다. 또 본래의 취지대로 홍콩(1921)을 시작으로 중국(1923) , 한국(1924), 필 리핀(1926) , 일본(1937) 등 아시아 각국에 진출함으로써 전교 활동의 포석을 마련하였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아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던 150여 명의 수녀들이 수개월에서 3년여 이상 체포 · 억류되기도 하였으며, 중국에서 추방된 수녀들은 자신들의 선교 지역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대만에서 활동을 이어가야만 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세계대전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도 선교 사업은 계속되어 파나마, 볼리비아, 니카라과에 진출하였으며, 전쟁이 종식된 이후에는 칠레, 페루, 과테말라, 멕시코 등 중남미 지역으로도 선교 활동의 폭을 넓혔다. 그리고 이 무렵 아시아 지역으로도 재진출을 시작하여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부문을 복구하는 사업에 참여하였고, 1948년에는 아프리카의 탄자니아, 세일론 및 캐롤라인 제도로도 진출하였다. 현재 유럽을 제외한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지의 32개 국에서 약 800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한편, 지원자가 증가함에 따라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탑스필드(Topsfield)와 미주리 주의 밸리 파크 (Valley Park)에 국제적인 수련소를 건립하였으며, 1961년에 필리핀 마닐라에도 아시아 지원자들을 위한 수련소를 마련하였다.
초창기 도미니코 수녀회의 수녀들로부터 수련을 받은메리놀 수녀회는 1920년 2월 14일 교황 베네딕도 15세에 의해 도미니코회의 규칙을 준수하는 '성 도미니코 외방선교 수녀회' (Foreign Mission Sisters ofSt. Dominic)로 인가를 받았고, 1954년 교황청의 인준을 거쳐 메리놀 수녀회로 수도회명을 고쳤다. 로저스 수녀의 가톨릭의 선교적 유산은 세례자 요한과 성 바오로, 그리고 메리놀 수녀회가 선교 사업을 시작할 즈음에 중국에서 활동하다가 순교한 버나드(TheophaneBenard)였다. 그녀는 하느님께 모든 것을 투신한 이들의 선교 열정을 메리놀 수녀회의 회원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삼음으로써 초대 교회의 모습을 재현하려 하였다. 기본적으로 도미니코 성인의 영성을 따르고 있는 메리놀 수녀회는 복음화를 필요로 하는 지역을 우선하여 선교의 대상국으로 삼는다. 파견된 이후에는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익히고 전통을 인정한 후, 선교지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사도직을 수행해 나감으로써 그들이 자
연스럽게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그 지역이 경제적 · 사회적 · 문화적 성숙을 이루었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복음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지역을 선택하여 선교 사업을 이어 가고 있다.
1932년 로저스 수녀는 메리놀 봉쇄 수녀원을 창설하여 선교를 위한 영성적인 후원을 통하여 수도회의 내적인 면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이 수녀들은 도미니코 제2회의 규칙을 따르고 있다.
〔한국 진출〕 메리놀회 선교사들의 초청으로 1924년 10월 19일 루둑(L. Luduc)을 포함한 6명의 수녀가 입국하였고 이듬해 10월 제2진으로 6명이 입국하였는데, 이 가운데에는 한국인 장정온(張貞溫, 앙네다) 수녀와 김교임(金敎任, 말가리다) 수녀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평안북도 의주(義州)에 임시 수녀원을 마련하여 한국어와 문화를 익히기 시작하였고, 1926년에는 소규모의 시약소를 설치하였다. 또 그 해 영유(永柔)에 수녀원을 신축하여 한국 지부를 이전하면서 각 본당에서의 전교 활동은 물론 의주에서와 마찬가지로 시약소를 설치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무료 봉사하였고, 고아원도 설립하여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1927년에는 영유 수녀원 내에 '여자 기예 학교' (女子技藝學校)를 설립하여 15세 전후의 소녀들에게 자수를 가르쳤으며, 의주에 남아 있던 3명의 수녀들은 메리놀회 캐시디(J.Casidy, 姜) 신부와 함께 사가(私家)를 매입하여 양로 시설을 마련하였다.
이와 같은 활발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들로 인해 그 성과가 더디게 나타나자 메리놀회의 모리스(J.E. Morris, 睦怡世) 신부는 방인(邦人) 수녀회의 설립을 절감하고, 그 양성을 메리놀 수녀회에 위촉하였다. 이에 1931년 7월 16일 평양 관후리(館後里) 성당 근처의 상수구리(上水口里) 257번지에 방인 수녀회의 숙소와 수련소로 이용할 사가 두 채를 매입하고 3명의 수녀가 양성을 담당하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1932년 영원한 도움의 성모 축일인 6월 27일에 입회자 5명으로 첫 미사를 봉헌함으로써 한국 최초의 현지인 수녀회인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가 창립되었고, 초대 수련장으로 장정온 수녀가 임명되었다.
1934년 메리놀회 신부들이 진남포에서 사목을 시작하였을 때, 메리놀 수녀회는 가정 방문 및 교리를 가르치면서 부녀자와 소녀들을 위한 단체 활동 등을 조직하여 본당 발전에 협조하였다. 1936년에는 신의주에 성모 병원을 개원하여, 의사인 멜시(Meercy) 수녀가 진료를 담당하였는데,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소속 수녀들이 파견되어 약국과 간호 업무를 도와 주었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을 도발한 일제는 이때를 조선에서 미국인을 몰아낼 수 있는 호기(好機)로 파악하고 평양 대목구에서 활동하고 있던 메리놀 수녀회 수녀들을 영유 본당에 감금하였으며, 이듬해 6월 1일에는 수녀 10명을 비롯한 메리놀회 선교사 35명을 미국으로 강제 추방하였다. 하지만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의 수도자 양성을 위해 홀로 평양에 남아 있던 장정온 수녀는 1950년 남하(南下)를 계획하던 중 그 해 10월 공산군에 의해 납치된 후 행방 불명이 되었다. 한편,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자신들이 사목하던 평안도 지역으로 돌아가려던 메리놀 수녀회는 38도선 북쪽 지역에 소련군이 진주하고 공산 정권이 들어섬에 따라 그 뜻을 실현하지 못하였다.
〔성장과 변모] 1949년 12월 28일 부산으로 입국한 메리놀 수녀회는, 이듬해 4월 15일 부산에 진료소를 개소하여 무료 진료를 실시하였다. 그 후 1950년 5월 1일 정식으로 의원 개설 허가를 받아 '메리놀 의원' (지금의 메리놀 병원)으로 명명하고 부산 지역 최초의 가톨릭 의료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후 6 · 25 동란의 발발로 발생한 피난민과 전상자들의 진료를 담당하였고, 구호 물자의 배급을 통해 전교 활동을 하였다. 병원의 시설 확충과 전문 인력의 확보를 위해 노력하였으나 재정적인 어려움을 감당하지 못하자 결국, 1969년 1월 1일자로 병원의 운영권을 부산교구에 이양하였다.
메리놀 수녀회는 부산 메리놀 병원의 운영 외에도 이미 1950년대 중반부터 전국 각지에서 의료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1956년 충북 증평(曾坪)에서 '메리놀 의원' 을 개원하여 내과 · 소아과 · 산부인과의 진료 과목을 설치하였으며, 결핵 담당부와 이동 진료소도 마련하여 1990년까지 운영하였다. 1963년 3월 개원한 강화도의 그리스도 왕 의원에서는 두 명의 수녀가 의사와 간호사로 1976년까지 봉사하였으며, 1969년 초에는 백령도의 김 안드레아 병원에 서빈(J. Sauvigne) 수녀 등 3명이 파견되어 1974년 2월 이 병원이 대한 적십자사에 인계될 때까지 활동하였다. 또한 1974년 6월에는 전라남도 소 록도에 나환자들을 간호하기 위해 3명이 파견되었고, 1976년에는 경북 울진군 삼율면 협동 진료소에서도 의료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979년 10월에는 광주에 있는 천주의 성 요한 병원에서 환자 및 그 가족을 위한 의료 사업과 사회 사업을 시작하였고, 1980년 4월에는 경남 거창의 나환자 마을에서도 봉사를 시작하였다. 한편, 1973년에는 노동 사도직에 관심 있는 여성들을 위해 서울 영등포구에서 2명의 수녀가 파견되어 공동체 생활의 기틀을 마련하였는데, 이후 이 공동체는 프라도 수녀회(Sister of Prado)로 발전하였다.
〔사도직 현황〕 1985년 용산에서 시작한 '막달레나의 집' 은 매매춘(賣買春) 여성들의 보호 외에 자립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있으며, 1996년 3월에는 용산역 부근에 매매춘 여성들을 위한 상담 사무실도 개설하였다. 막달레나의 집이 효시가 되어 이와 유사한 시설들이 미아리 · 이태원 · 천호동 등에 발족되었으며, 실무자들을 중심으로 가톨릭 여성 복지위원회가 결성되어 매맞는 여성 · 에이즈 · 매매춘 등의 사회 문제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함으로써 교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빈민 환자들의 진료를 담당하고 있는 서울 신림동의 '요셉 의원' 에서 의사와 사회 사업가, 물리 치료사로 활동 중에 있으며, 서울 가톨릭 사회 복지회에서 주관하고 있는 호스피스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있다. 광주대교구의 장산도(長山島)에서는 공소 예절을 돕는 일 외에 신자들을 위한 교리 교육과 공부방도 운영하고 있으며, 광주 전남대학교에서는 4명의 수녀가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현재 메리놀 수녀회 한국 지부장으로 있는 오티스(C.Ortis, 오영애) 수녀가 아시아 태평양 수녀 협의회(A.S.C.)의 사무국장을 역임하고 있고, 최근에는 1996년 8월 23일 개원한 '목동의 집' 에서 알코올 중독자들을 위한 회
복 프로그램과 상담을 실시하고 있다. 1996년 9월 현재 종신 서원자 11명, 유기 서원자 2명 등 총 13명의 회원이 있다. (→ 메리놀 병원 ; 메리놀 외방전교회 ;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평양교구사 편찬위원회 편, 《천주교 평양교구사》, 분도출판사, 1981/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부록, 가톨릭출판사, 1984/《한국 천주교회 연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메리놀 병원 40년사 편찬위원회 편, 《메리놀 병원 40년사》, 1991/ <메리놀 수녀회>, 《경향잡지》 1122호(1961. 9), pp. 42~46/ 《땅끝까지 복음을 선포하라>, 《경향잡지》 1418호(1986. 5), pp. 4~81 윤요한, <메리놀 수녀회>, 《교회와 역사》 80호(1982. 3), 국교회사연구소, p. 71 M. Colman, 《CE》 6, pp. 693~694/J.M. Lyons, 《NCE》 8, p. 399. 〔金成喜〕
메리놀 수녀회 - 修女會
〔영〕Maryknoll Si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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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자 로저스 수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