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우르술라회 창립자. 축일은 1월 27일. 1474년 (혹은 1470년) 3월 21일 이탈리아 북부의 가르다(Garda) 호수 남쪽 데센자노(Desenzano)에서 태어나 경건한 신앙인으로 교육받은 그녀는 어려서부터 성인전을 즐겨 읽었고, 성인들의 금욕 생활에 감명을 받아 금욕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13세 때 첫영성체를 한 후 평생 동안 동정을 지킬 것을 결심하였는데, 쌍둥이같이 자라던 15세의 언니와, 브레시아 시민(Cins Brixiae)이라는 귀족 작위와 넓은 땅을 가진 영주였던 아버지 조반니(Giovanni Merici)와 어머니를 연달아 여의고 외삼촌의 보살핌을 받으며 5년 간 살로(Salo)에서 살게 되었다. 당시 이 도시는 유명한 휴양지였는데 비도덕적이고 향락적인 모습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순수한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그들의 영혼을 위하여 산에 올라가 조용히 기도하곤 하던 메리치는, 그 후 프란치스코 재속회(3회)에 입회하여 기도와 가난, 극기의 생활을 철저히 실천하며 자신을 이웃을 위한 속죄의 제물로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부모처럼 돌보아 주던 외삼촌의 사망 후 고향 데센자노로 돌아온 메리치는 가난하고 소박하게 생활하면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았는데, 특히 주위의 가난한 아이들을 모아 기도와 신앙 생활을 지도하였다. 1497 ~ 1498년경 그녀는 후에 '브루다초의 계시' (Vision di Brudazzo)라고 불리는 놀라운 일을 겪게 되었다. 브루다초의 들판에서 기도하고 있던 메리치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고 머리를 장식한 동정녀들이 나타나, 그들 중 그녀의 죽은 언니나 친구로 여겨지는 한 처녀가 "브레시아(Brescia)에 선택받은 동정녀들의 모임을 만들라는 하느님의 뜻을 전한 후, 천사들의 옹위를 받으며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이 계시는 그녀의 기억 속에 각인되었지만 마음에만 간직한 채 메리치는 일상적인 삶을 계속하였다.
그러던 중 데센자노에 휴양 온 브레시아의 귀족 파텐골라(Patengola) 가족과 친밀하게 지내게 되었는데, 갑작스런 두 아들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그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1516년에 브레시아를 방문한 메리치는 그들의 청으로 그곳에 머물게 되었다. 당시 브레시아의 사람들은 신앙에 대해 무지하고 문란한 성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성직자와 수도자들조차 타락한 삶을 살고 있었다. 또한 상류층의 지나친 부와 사치에 비해서 서민들의 살림은 궁핍하여 그들의 자녀들은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 거리에서 구걸을 하며 지냈다. 이곳에서 메리치는 죄인들의 영혼을 위하여 속죄와 금욕 생활을 하는 한편, 데센자노에서와 같이 청소년들에게 종교 교육을 실시하였다. 당시의 도덕적 문란함이 성직자와 시민들의 종교적인 무지에서 온다고 여긴 그녀는, 교육을 통하여 가정과 사회를 그리스도화함으로써 이를 도덕적으로 정화시키고자 하였다. 특히 메리치는 모든 계층의 소녀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펼쳤는데, 동정을 지키며 신앙 생활을 살고자 한 많은 소녀들에게 그녀의 삶은 모범과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일상적인 가사 노동 중에서도 기도와 속죄 생활로 내적으로 깊이 성장한 그녀는 자신의 삶을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부드러움, 현명함, 모성적인 자비로움은 빛을 발하였다. 그녀의 삶은 곧 브레시아 사람들에게 자랑이 되었으며, 그녀는 '브레시아의 안젤라' (Angela di Brescia)라고 불렸다.
1524년 50세가 된 메리치는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지로 순례 길에 올랐으나 그곳에 도착하기 전 크레타(Kreta) 항구에서 갑자기 눈이 멀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성지를 전부 순례하며 어디서나 열렬하게 기도하였는데, 순례에서 돌아오는 도중 칸티아(Candia)의 기적의 십자가상 앞에서 다시 눈을 뜨게 되는 치유의 기적을 체험하고서 더욱 하느님의 이끄 심에 의지하게 되었다.
1525년 교황 글레멘스(Clemens) 7세는 특별 성년을 선포하고 순례를 권장하였다. 이에 성년의 은총에 참여하고자 로마를 방문한 메리치에게 교황은 로마의 자선 사업을 맡기고 싶어하였으나, 그녀는 동정녀들의 모임을 시작하고자 하는 뜻이 있음을 밝힌 후 교황의 허가를 청하고 브레시아로 돌아갔다. 카알 5세와 프랑스와의 전쟁 (1526~1529)으로 1528년에 브레시아가 점령당하자 크레모나(Cremona)로 피난을 간 그녀는, 이곳에서 심한 병을 앓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은 그녀가 죽으리라 예상하였고 파텐골라 부인은 묘비명까지 준비하였지만, 그녀는 탈혼한 후 다시 건강을 회복하였다. 그리고 1529년에는 자신을 평화의 제물로 바치기 위해 성모의 성지인 바랄로 산(Monte Varallo)으로 순례를 하였다. 1530년 전쟁이 끝나 브레시아로 돌아온 메리치는 뜻을 같이하는 12명의 동정녀들과 함께 이듬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었으며, 1532년 바랄로 산으로 성지 순례를 가 보리수나무 십자가 아래에서 자신들을 봉헌함으로써 '겸손한 이들' (dimesse)로 불려지는 단체를 창설하였다.
28명의 동정녀들은 1535년 11월 25일 브레시아의 성 아프라(St. Afra) 성당에서 영성체를 하고 메리치가 만든 규칙에 따라 청빈 · 정결 · 순명을 지키는 회원이 될 것을 서명함으로써 '우르술라회' 가 공식적으로 창설되 었고, 1537년에는 메리치를 초대 원장으로 선출하였다. 그녀들은 가족을 떠나지 않고 하느님이 그들을 원하시는 바로 그 자리인 세속에서, 수도복이 아닌 단순한 복장의 평범한 모습으로 환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직접 방문하여 그들에게 봉사하면서 이웃 사랑에 헌신하였고, 청소년들 에게 종교적인 진리를 가르치고 그들을 올바르게 이끄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 후 우르술라회는 청소년 교육 특히 가톨릭 여성 교육을 위해 크게 기여한 여자 수도회로 성장하였다.
1540년 1월 27일 사망하여 성 아프라 성당에 묻힌 메리치는 1768년 교황 글레멘스 8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807년 5월 24일 교황 비오 7세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우르술라회의 창립자 라는 칭호가 부여되었다. 1962년에는 그녀의 고향인 데센자노의 수호 성녀가 되었고, 그녀가 세례받은 성당은 '성녀 안젤라 성당' 으로 불려지고 있다. (⇦ 안젤라 메리치)
※ 참고문헌 K. Seibel-Royer, Die heilige Angela Merici, Grinderin des ersten weiblichen Säkularinstitutes, Gratz 1966/ S. Undset, Die hl. Angela Merici, Freiburg I. Br., 1933/ M.P. Desaing O.S.U., Die Ursulinen, Orden der Kirche, Bd. 9, Freiburg i. d. Schweiz, 1968/ M. Heimbucher, Die Orden und Kongregationen der katholischen Kirche, Bd. 1, Paderborn, 1987/ K. Fäber, Die Schule sHimmelsleiter, Heilige sindAnders, Freiburg i. Br., 1958/ 《LTnK》 1, pp. 530~531/ W. Otto, Lexikon der Namen und Heiligen, Insburg, 1984, p. 134/ M.A. Gallin, 《NCE》 9, p. 681/ S. Pedica, Bibliotheca Sactorum I, pp. 1192~1 195. 〔吳善子〕
메리치, 안젤라 Merici, Angela (1470/1474~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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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안젤라 메리치 성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