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포타미아

〔그〕Μεσοποταμία · 〔라 · 영〕Mesopotam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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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퀴 달린 수레 모양의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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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퀴 달린 수레 모양의 토기.

이라크의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지역 일대를 가리키는 명칭. 인류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지역으로, 그리스어로 메소포타미아는 '두 강 사이에 있는 땅' 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를 결정한 큰 정치 세력은 남부에 있는 바빌로니아와 북부에 있던 아시리아였다.
〔역 사〕 원문자 시대 : 기원전 32세기경 남쪽 메소포타미아에서 문자를 쓰기 시작하였던 수메르(Sumer) 사회에서 인간의 역사 시대는 시작되었다. 또한 수메르 사람들이 인류 문명의 발달에 큰 혁신을 일으킨 것은 '두 바퀴 달린 수레' 의 발명이었다. 이 지역은 여름에 비가 오지 않으며 겨울이 우기(雨期)여서 봄이 되면서 북쪽의 산에 쌓인 눈이 녹아 5월이 되면 남쪽 메소포타미아 두 강에 거의 매년 홍수가 났었다. 이 때문에 기원전 32세기경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하류의 사람들은 성벽을 쌓고 도시 국가 형태의 사회 생활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여러 도시의 통치자들은 서로 협력하여 두 강 사이의 땅에 수로를 만들어 경작지를 넓혀 연간 두세 차례의 수확으로 부(富)를 축적하였으며, 주변에서 침략하는 도적들에 대항하기 위해 모임을 갖기도 하였다. 또한 수로 밑에 퇴적된 침적토를 파내어 홍수에 대비하였으며 몇 년에 한 번씩 수호신의 신전을 개축하였고 큰 집들이 늘어났다. 이렇게 빨리 발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한 번에 많은 흙이나 물건을 손쉽게 운반할 수 있는 나귀가 끄는 네 바퀴 달린 수레의 사용이었다. 이로써 일은 빨라졌고 문화가 발전할 수 있는 터전이 되었다. 도시 중앙에 흙 벽돌로 높은 탑을 쌓고 그 꼭대기에 신전을 만들어 도시 수호신에게 예배를 드렸는데, 지구라트(Ziggut)라 부르는 이것의 흔적을 5,0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옛 도시의 폐허에서 발견할 수 있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바벨탑' 이라고 불리는 높은 탑(창세 11,1-9)은 바로 이 지구라트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메소포타미아의 두 강 사이의 도시 국가에서 문자를 만들어 점토판(粘土坂)에 기록하게 된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강 주변에서 점토를 쉽게 구할 수 있었고 그것으로 토판을 간단히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점토판에 기록된 내용은 고칠 수 없었으며 오래 보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메르인들은 이러한 점토판으로 간단한 영수증이나 계약서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점차 그들은 단순히 계약서에 그치지 않고 계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보상금을 지불하거나 신(神)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첨부하였다. 또한 신전에서 일하였던 사제들은 악한 귀신을 쫓아내려는 목적으로 주문(呪文)을 점토판에 기록하였으며, 사람이 뱀에 물렸거나 악한 저주에 걸렸을 때 그사람을 치유하기 위해 또는 어렵게 분만하는 여자를 돕기 위해 그 내용에 적합한 주문을 읽었다.
그러나 문자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기원전 5000년경에 사람들은 비슷한 모양의 조그만 조약돌 들을 명목상 물표(物標, token)로 사용하여 가축을 빌려주고 그 물표를 점토에 쌓아 봉(封)하여 보관하였다. 그러다가 세모나 네모 또는 동그라미 등의 조약돌 모양을 점토로 만들어서 조약돌 대신에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여러 종류의 품목을 구별하기 위해 점토로 만든 물표의 위 표면에 여러 모양의 상징적인 선(線)을 그어서 구체적인 품목의 내용을 표현하였다. 이때가 기원전 4000년 경이며 이렇게 사용함으로써 경제 활동이 좀더 세분화되고 정확해졌다. 점차 물량의 거래가 커지면서 많은 물표를 점토에 쌓아 봉하는 방법을 버리고 점토로 토판을 만들어 물표의 표면 모양을 토판 위에 갈대 줄기로 만든 첨필(尖筆)로 그려서 물표를 대신하였고 그 수효를 옆에찍었다. 그럼으로써 상징 문자(象徵文字)가 생겼는데 이때가 기원전 3300년경이다. 그 후 물표 위의 모양을 토판에 문자로 사용하듯이 점차로 사물의 모양을 특징적으로 간단하게 그린 상형 문자(象形文字)를 만들어 경제활동에 필요한 내용을 기록하게 되었는데, 기원전 30세기에 1,000여 개의 상형 문자가 생겨났다. 이때까지도 토판에 금을 긋고 문자를 기록하던 방향이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였으나 그 후 토판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90도 돌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씨를 쓰기시작하였고 문자 모양도 점차 쐐기 모양으로 변하였다.이러한 문자를 쐐기 문자(cuneiform)라고 부른다. 기원전26세기경부터 한 토판에 수십 행을 기록한 문학 작품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였으며 그 내용으로는 마귀를 쫓는 주문, 신과 신전을 찬양하는 시(詩),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르친 잠언, 도시와 도시 사이에 국경 분쟁으로 생긴 사건을 서술한 전쟁사, 정의 사회를 구현하겠다는 사회 개혁 칙령 등이 있었다. 또한 지중해 쪽에 위치한 상업 도시 에블라에서도 이 시대의 수메르 문자로 그들의 경제 활동을 기록하였다.
남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세워진 수메르 도시 국가의 기원전 28~26세기를 '초기 왕조 시대' 라고 부르는데, 이때에 여러 도시가 주요 도시 국가로 성장하였다. 도시 통치자들은 정치적 · 경제적 목적으로 모임을 갖는 '수메르 도시 국가 연맹체' 를 이루었으며, 주요 도시의 통치자들은 정치적 · 종교적 목적으로 모임을 가졌다. 한편 오래 전부터 아라비아 반도로부터 이 지역에 셈 언어권의 유목민들이 많이 들어와 살았다.
아카드 왕조 시대 : 기원전 2335년경 셈족인 사르곤(Sargon, 기원전 2334~2279)은 북쪽 메소포타미아에 아카드(Akkad)라는 도시를 세워 왕조를 창시하였다. 사르곤은 55년 동안의 재위 기간 중에 남쪽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도시 국가들을 정복하고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 이되었으며, 주변의 모든 도시를 정복하여 동쪽 자그로스(Zagros) 산맥 너머에 있었던 엘람(Elam)과 남쪽 바다 건너편의 딜문(Dilmun, 지금의 바레인)에서 지중해변까지의 땅을 통치하였다. 이로써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동서남북의 광대한 지역을 통치하는 제국이 형성되었다. 후대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왕들은 사르곤 왕 때와 같은 규모의 제국을 만들려고 주변의 수많은 도시들을 침략하였다. 사르곤 왕의 혁신적인 업적은 당시까지 국정 기록에 사용되던 수메르어를 그들의 언어인 셈어로 기록하게 하였다는 점이다. 많은 수메르 상형 문자의 음절을 빌려 그 음절로 그들의 말을 기록하는 음절 문자가 만들어졌고, 도시 국가 아카드의 이름을 따라 '아카드어' 라고 불렀다. 아카드어는 약 185년 간 지속된 아카드 왕조의 공용어였으며 기원전 2000년경부터 시작된 도시 국가 바빌론과 그 주변 국가들의 공용어였을 뿐만 아니라 기원전 6세기 말에 페르시아 제국이 바빌론을 점령할 때까지 고대 근동의 국제어로 사용되었다.
수메르 도시 국가 시대 : 아카드 왕국의 말기에 왕위다툼으로 내정이 혼란해졌을 때인 기원전 2150년경 이 민족의 침략으로 아카드 왕조는 멸망하였다. 그 후 약 40년이 지나 남쪽 메소포타미아 유프라테스 강 하류에 위치한 종교 도시 국가 우르(Ur)를 중심으로 수메르 도시 국가 연맹체가 형성되면서, 모든 국정 문서를 다시 수 메르어로 기록하였다. 많은 학교가 생겼고 그곳에서 신들과 왕들에 대한 찬양시가 창작되었으며, 초기 왕조 시 대의 왕이었던 루갈반다(Lugalbanda)나 길가메쉬(Gilga-mesh)의 영웅전을 교과 과정으로 가르쳤다. 또한 악한 귀신을 쫓아낼 목적으로 기록한 여러 종류의 많은 주문을 같은 종류끼리 모아 시리즈로 편집하였으며 사회 생활에 필요한 행정 문서는 물론 경제 전문 용어 사전, 여러 종류의 야생 동물과 가축, 식물 이름을 망라한 백과사전 등을 편찬하였다. 기원전 2112년부터 2004년까지 약 100년 동안 지속된 이 우르 3왕조는 수메르 문화의 전성기였다.
바빌로니아 시대 : 우르 3왕조 시대에 셈어를 사용하였던 아모리족들이 메소포타미아의 많은 도시로 이주해 왔다. 아모리족인 함무라비(Hammurabi, 기원전 1792~1750) 왕은 바빌론을 개축하고 왕조를 세워 바빌론을 중심으로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이때를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 라고 부른다. 한편 기원전 20세기경 북쪽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아슈르(Asshur)를 중심으로 아시리아 사람들은 아나톨리아(Anatolia, 지금의 터키)에 있었던 히타이트 왕국의 여러 도시에 거류지를 이루고 활발히 무역 거래를 하였다. 아시리아 상인들은 아슈르에서 만든 옷감과 티그리스 강 너머에서 수입한 주석을 아나톨리아에 가져가 팔고-아나톨리아에서는 주석으로 청동을 만들었다-금 · 은 등 광물을 사 왔다. 아나톨리아의 무역 중심지였던 카니쉬(Kanish, 지금의 퀼테페)에서는 그 당시의 무역 거래를 체결한 계약서뿐 아니라 서로 왕래한 편지 등 아카드어의 방언(方言)인 아시리아어로 기록된 1만 개가 넘는 토판이 발굴되었다. 아시리아는 다음 세기 이후 남쪽의 바빌로니아와 경쟁하기 시작하였으며 기원전 1595년 히타이트 군대에 의해 바빌론이 함락되자, 100여 년 간의 혼란 시대를 거쳐 1350년경부터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잡았다. 기원전 9세기에서 7세기 말까지 아시리아는 고대 근동 전체를 장악하고 제국을 이루었다. 기원전 7세기 말 아시리아의 왕족들 사이에 왕권 다툼으로 통치력이 약해졌을 때 바빌로니아에 칼데아 부족(Chaldean)들이 바빌로니아 왕조를 형성하여 아시리아의 통치에서 벗어나 기원전 625년경에 독립하였다. 그 후 칼데아 왕조는 급속히 강해져 네부카드네차르 2세(Nebuchhadnezzar Ⅱ, 기원전 604~562) 왕때 예루살렘은 물론 고대 근동 대부분의 도시를 정복하여 그 지역 상류층 사람들과 전문 직공들을 바빌로니아로 강제 이주시키고 바빌론의 개축 사업에 종사시켰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유대인들의 바빌론 유배도 이때 일어났던 사건이다. 100여 년 동안 지속된 이 시대를 '신바 빌로니아 시대' 라고 부르며,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 왕국의 고레스(Cyrus)가 군대를 이끌고 평화롭게 바빌론을 점령하면서 바빌로니아 시대는 끝이 났다.
기원전 2000년경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가 시작되면서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거의 모든 행정과 외교 문서 를 다시 아카드어로 기록하였고 바빌론 등 주요 도시의학교에서는 아카드어뿐 아니라 수메르어와 수메르 문학 작품들을 가르쳤다. 바빌로니아 학자들은 경제 용어와직업에 관한 용어, 나무 · 돌 · 짐승 등의 이름을 망라한 그 당시까지 전승으로 내려온 토판들을 정리하고 부가하여 전집(全集)으로 백과 사전을 편찬하였고, 교과 과정에 필수적인 문법책과 수메르어-아카드어 단어 사전을 만들어 지식을 전달하였다. 이 기간에 학교에서 배웠던수만 개의 토판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학 작품의 방대함을 말해 준다. 이러한 작품들 중 많은 이야기들이 고대근동의 여러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그들의 언어로 번역되고 전승되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들〕 기원전 32세기부터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크고 작은 각 도시마다 그 도시를 대표하는 수호신과 그의 신전이 세워졌다. 유프라테스 강 하류의 연못으로 둘러싸인 지역의 조금 높은 언덕에 위치하였던 에리두(Endu)에 연못과 지하수의 신 엔키(Enki,물고기잡이의 신 난쉐(Nanshe), 소나기와 쟁기의 신 닌우르타(Ninurta), 폭우를 상징하는 신 이쉬쿠르(lshkur)갈대로 엮어 지은 창고의 여신 인안나(Inanna), 그녀의 남편이며 반년을 저승에 가서 살아야 하는 운명인 양치기 두무지(Dumuz) 등 많은 신들이 가족 관계를 형성하며 섬겨졌다. 기원전 28~26세기 초기 왕조 시대에 도시 국가 통치자들의 모임에서 주요 도시의 수호신들은큰 신들이 되었으며, 그 외에 작은 도시의 수호신들과 많은 직종의 수호신들이 큰 신들을 보좌하는 신들이 되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종교사에 가장 독특한 개념으로 형성된 것은 '운명의 일곱 신' 인데 신들 중에 가장 큰 이일곱 신들이 세상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여겼다. 초기 왕조 시대에 만들어진 '운명의 일곱 신' 은 우루크(Uruk)의 수호신이었던 '하늘의 신' 인 '안' (An)이 하늘로 올라간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여섯 신들은 수메르 도시 국가 연맹체에서 정치적으로 중심 역할을 하였던 주요 도시들의수호신들이었다. 그들을 서열순으로 열거하면 수메르의중앙 지역인 도시 니푸르(Nippr)의 '바람 신' [風神] 엔릴(Enlil, 북쪽 케쉬(Kesh)의 '산등성이의 여신' 닌후르사가(Ninhursaa), 남쪽 에리두의 '지하수 신' 이며 항상'지혜의 신' 으로 등장하는 엔키, 에리두 위쪽에 위치한 도시 우르의 달 신' 난나(Nanna), 우루크 동쪽에 있는 라르사(Larsa)의 '정의의 신' 인 '태양 신' 우투(Utu), 우루크의 '금성' (金星)을 상징으로 하는 사랑의 여신 인안나 등이었다. 큰 신들 역시 가족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묘사되어 하늘 신과 땅 여신 사이의 아들이 바람 신엔릴이며 엔릴의 아들이 달의 신〔月神)인 난나이고, 그의 자식들이 태양 신과 사랑의 여신이었다. 한편 하늘 신과 지하수 여신 사이의 아들이 연못과 지하수 신 엔키라고 하였다. 기원전 24세기 중반에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소개된 셈족의 여신이며 아카드 왕국의 수호신인 이쉬타르(Ishtar)는 곧 수메르 여신 인안나와 동일시되었다. 또 기원전 20세기경 바빌론이 메소포타미아의 중심지가 되면서 그 도시의 수호신 마르둑(Marduk)이 모든 신들의 왕으로 섬겨지기 시작하였으며, 한편 북쪽의 아시리아는 도시 아슈르의 수호신 아슈르(Asshur)가 그들의 최고신이었다. 바빌로니아의 '신 목록' 에 의하면 신들의 수는3,600이나 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문학〕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학 작품 가운데 하나로 수메르에 사는 지혜롭고 유식한 아버지가 그의 아들에게 준 가르침이 기원전 2500년경 토판에 기록되어 있다(Instuctions of Shuruppak). "도둑질을 하지 말라···(남의) 집을 (부수고 들어가지) 말라···살인 강도를 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남의) 여자를 탐내지(?) 말라··· 맹세를 하지 말라··· 언쟁을 일으키지 말라··· 거짓을 (불리지) 말라···." 이러한 아버지의가르침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살인을 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을 하지 말라.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남의 집을 탐내지 말라' 는 십계명의 내용과 순서가 거의 같다. 한편 십계명에는 없지만 수메르 가르침에서는 "언쟁을 일으키지 말라"고 강조한다. 수메르 신화에 신들이서로 언쟁하는 이야기가 많고 수메르 문학 작품에 논박' (dispute, diatibe)이라는 장르의 작품이 수십 편 있는데, 아마도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회에 언쟁이 큰 문젯거리였던 것 같다. 이러한 주제가 구약성서에 반영된 것이바벨탑 이야기이다.
수메르 신화에 의하면 "태초에 세상에는 신(神)들이살았고 신들은 높은 신들과 낮은 신들로 구분되어 있었 다. 낮은 신들은 먹고 살기 위해 직접 노동을 하였고 높은 신들은 그들의 일을 지켜보고 있었다. 농사를 잘 짓고 홍수가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작은 신들은 강과 수로밑에 쌓인 침적토를 파내야 했으며 이렇게 해마다 겹치 는 노역을 그들은 감당할 수 없어 높은 신들에게 반란을일으켰다. 지혜의 신 엔키는 모신(母神)과 출산(出産) 여신들을 만들고, 반란하여 처형당한 낮은 신들의 우두머리의 피를 점토 덩어리에 섞어 사람을 만들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작은 신들의 노역을 대신할 사람을 만들었다"고 '사람이 태어난 이야기' 와 '아트라시스의 홍수 이야기' 등에 전해진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의 생존과 번영이 달린 가장 중요한 일은 해마다 범람하는 두 강을 잘 이용하는 것이었다. 두 강과 연결된 수로를 이용하여 농사를 잘 지으려면 수로 바닥에 침적된 흙을 종종 파내야만 하였다. 이 일을 게을리 하면 수로가 범람하고 도시 한가운데를 지나게 파 놓은 운하도 범람하여 홍수의 피해를 막을 수가없었다. 이러한 그들의 생활을 반영한 이야기가 슈루파크의 아들인 지우수드라(Ziusudra)의 '홍수 이야기' 이다."큰 신들이 만든 사람들은 들판에서 들짐승들과 즐겁게지냈다. 이후 도시가 생겨나고 점차 사람들에게 노역이심해지자 그들은 불평하며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신들의 왕인 엔릴은 이 소음 때문에 쉴수가 없자 홍수를 일으켜 모두 없애자고 결정하였다. 그러나 지혜의 신인 엔키는 지우수드라의 환영(幻影)에 나타나 대홍수가 생길 것을 알려 주며 큰 배를 만들라고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홍수에서 살아 남은 지우수드라는 큰 신들에게 축복을 받아 신처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바다 건너 저편 딜문땅에 가서 '사람의 이름' 을 보호하기 위해
영원히 살았다" 고 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의 가장 큰 두려움 중 하나는 저승의 악한 귀신들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병들게 한다는 것이었다. 저승입구는 달이 뜨는 동쪽 산 너머에 있고 출구는 해지는 쪽에 있으며 저승은 땅 밑에 있다 고 생각하였다. 괴롭게 죽은 사람들이나 한이 맺힌 사람들의 혼이 악한 저승 귀신들과 합세하여 땅 위에 올라와 사람을 해치고 병들게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병든 사람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지하수의 신 엔키의권능을 받은 마귀 쫓는 사제(司祭)가 환자의병의 종류에 알맞는 정결 예식과 주문을 읽어 환자의 몸에서 귀신을 쫓아내야 하며 때로는 그의 방이나 집에 거룩한 물이나 보리 가루를 뿌려악한 귀신이 다시는 들어오지 않게 막아야 한다고 여겼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회〕 당시 사회의 큰 문제는 권력자들과 사제들의 권한이 팽창되고 개인에게 부(富)가 축적되면서 부정, 부패, 비리가 심해졌던 것이었다. 기원전 2350년경에 도시 국가 라가쉬(Lagash의 통치자는 억울하게 피해받은 시민들의 사회 보장을 위하여 '사회개혁 칙령' 을 공포하였다. 그 내용 중에는 예를 들면, "가난한 사람이 양어장을 만들었는데 누군가 물고기를 잡아갔을 때, '오 태양 신이여' 하는 원성만 외쳤다. (이 제는) 가난한 사람이 양어장을 만들었을 때, 누구도 물고기를 잡아갈 수 없다. 도둑질이나 살인 강도로 팔려 간 가족들에게 자유를 주었고 고아와 과부가 권력자에게 넘어가지 않게 했다" 등이 있다. 약 250년 후 수메르 문화 전성기가 시작되는 우르 3왕조 시대의 창시자 우르남마(Ur-Namma, 기원전 2112~2095)는 이러한 통치자의 이념을 실현하여 인류 최초의 법전을 공포하였다. 이 법전 서문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노예가 된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고 바른 경제 시장을 확립하기 위해 도량 형기를 표준화하였으며, 고아가 부자에게, 과부가 권력자에게, 양 한 마리 가진 사람이 황소 한 마리 가진 사람에게넘어가지 않게 하였으며 반목과 폭행과 오 태양 신이여' 하는 원성이 사라지게 하였고 수메르에 정의를 확립하였다." 우르남마의 법전은 법전 역사상 최초의 것으로 유명하며 이보다 250여 년 후에 쓰여진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의 근간이 되었고 아시리아의 법과 히타이트 사람들의 법은 물론 구약성서의 모세 율법의 기본을 이루었다. 이러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지적 문화가 바빌론을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아시리아로 전승되었고, 또한 그 주변의 문화인 히타이트, 우가리트(Ugarit), 히브리, 고대 그리스 등으로 펴져 나가 성서와 서양 문화의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 구약성서 ; 시리아)
※ 참고문헌  W. Burkert, The Orientalizing Revolution. Near Eastern Influence on Greek Culture in the Early Archaic Age, Massachuset-ts, Harvard Univ. Press, 1992/ 一, The Camb-ridge Ancient History I~II, 3rd ed., Cambridge,Cambridge Univ. Press, 1970~ 1975/ Th.Jacobsen, The Treasures ofDarkmes. A HistoryofMesopotamicm Religion, New Haven, Yale Univ. Press, 1976/ 一, The Harps That Once ··· Sumerian Poetry in Translation, New Haven, Yale Univ. Press, 1987/ S.N. Kramer, History Begins at Sumer. Thirty-nine Firsts in Man's Recorded History, Philadelphia : The Pennsyl- vania Univ. Press, 1981/H. Nissen · P. Damerow · R. Englund, Archaic Bookkeeping. Early Writ- ing and Techniques of Economic Administration in the Ancient Near East, Chicago, Chicago Univ. Press, 1993/ J.N. Postgate, Early Mesopotamia. Society and Eco-nomy at the Dawn ofHistory, London, Routledge, 1992/ M. Roaf, Cultural Atlas of Mesopotamia and the Ancient Near East. Facts on File, New York, 1990 / W. von Soden, Einführung in die Altorientalistik, Darmstadt, 1985 ; The Ancient Orient. An Introcduction to the Study of the Ancient Near East, Michigan, 1994/ -, Texte aus der Umwelt des Alten Testcments 1~4, Giitersloh, 1984~ 1994. 〔曹哲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