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

〔히〕מָשִׁיחַ · 〔라〕Messias · 〔영〕Messi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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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왕은 하느님이 당신 백성에게 보낸 구세주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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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왕은 하느님이 당신 백성에게 보낸 구세주로 여겨졌다.

I . 어원 및 개념
'메시아' 란 용어는 아람어 메시아(מְשִׁיחָא)와 히브리어 마시아(מָשִׁיחַ)에서 유래하였다. 이 말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어근인 동사 마사(מָשַׁח)의 용법을 보아야하는데, '마사' 는 몸이나 방패 등에 기름을 바르거나(이사 21, 5 ; 아모 6, 6), 돌 위에 기름을 붓거나(창세 28,18), 집에 칠을 하는 것(예레 22, 14) 같은 행위들을 지칭한다. 그러니까 이 동사의 뜻은 '기름을 바르다' , '기름을 붓다' , '칠을 하다' 이다. 따라서 메시아란 말의 의미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또는 '기름을 발린 자' 로 도유(塗油)된 사람을 뜻한다.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크리스토스 (Χριστός)이다.
구약 시대 때 기름을 바르는 행동은 야훼의 영에 의해하느님이 뽑은 사람을 지도적 지위에 취임시키는 의식이었다. 그래서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이룩하기 위하여 동원된 자들을 '도유된 자' (메시아)라고 하였다. 누구보다도 먼저 왕들이 기름 부음을 받은 후 등극하여 하느님의백성을 다스렸다(1사무 9, 16 ; 16, 3. 12-13). 나중에는예언자도 가끔 도유되었으며(1열왕 19, 16 ; 시편 105, 15; 1역대 16, 22), 바빌론 유배 이후에는 이 도유가 사제들에게로 확대되었다(다니 9, 25-26 : 2마카 1, 10). 이렇게첫 단계에서의 메시아는 하느님의 일꾼(왕, 예언자, 사제)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기원전 586년에 예루살렘 함락과다윗 후손의 학살 사건을 겪으면서 크게 실의에 빠져 그전까지는 메시아가 현재의 왕을 가리켰으나 그때부터 장차 이스라엘을 구원하러 올 미래의 인물을 가리키게 되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에는 메시아 출현을 애타게 기다리는 메시아 대망(待望) 사상이 본격적으로 생겨났다.즉 후기 유대이즘에 와서 메시아는 구원을 기다리는 종말론적 사상을 드러내며 '대망된 구원자' , '종말론적 구세주' 를 의미하게 되었다.
신약에 와서 메시아는 결정적으로 예언자요, 대사제요, 왕 중의 왕인 예수의 칭호로 쓰여지게 되었으며, 예 수가 오랫동안 기다려 오던 참 구세주임을 드러내게 되었다.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인류 구원을 위해 이 세 상에 오시어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래는 메시아(그리스도)이신 예수라고 하여야 하는데, 마 치 그리스도(메시아)가 예수의 고유한 이름인 것처럼 되어 오늘날까지 '예수 그리스도' 라고 불리고 있다.

II . 구약 시대의 사상

구약 시대의 메시아 사상은 상황과 사상에 따라 달랐기 때문에 간단하지 않다. 메시아 사상은 이스라엘의 파 란만장한 역사 속에서 다양하게 발전하고 변화하였다.메시아 사상이 복잡한 사상이라고는 하나 한 가지 분명 한 사실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생명줄이었다는 것이다. 고대 어느 민족도 유대 민족만큼 절 망과 시련 속에서도 결국에는 모든 적들로부터 승리하고완전한 평화와 행복의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결국 메시아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의 중심이었고 희망이었으며 버팀목이었다.
〔사상의 기원〕 하느님은 모든 사람과 친교의 삶을 살기를 원하여 아브라함을 선택하고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 을 맺었다. 이 계약으로써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이되고, 야훼는 이스라엘의 주(主)님이요 하느님이 되셨 다. "나는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너희 하느님이 되어주리라. 그러면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이집트인들의 강 제 노동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되리라"(출애 6, 7). 그래서 계약은 하느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의 근거요 토대이며, 이스라엘 종교 사상의 출발점이다.계약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그들을 구원해 줄 존재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이 기대감이 처음에는 하느님과의 계약 사상으로 나타나다가 다윗 왕조 시대에 와서는 나단 예언자의 신탁(2사무7, 5-16)이 근거가 된 왕정 신학이 첨가되면서 메시아 사상으로 변화되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메시아 사상은정치적 위기와 사회적인 고난 속에서도 야훼 하느님과의계약이 성취되기만을 기다리는 계약 사상에 그 뿌리를두고 있다.
〔사상의 발전과 변화〕 구약 시대 초기에는 어떤 특정한 구세주적인 인물을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계약 사상 에 근거해 하느님 자신과 하느님의 통치를 희망하였다.종말론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구약의 주제 중의 하나인 신정 정치(神政政治)를 기다린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희망이 장차 완벽한 왕이 나타남으로써 성취될 것으로 믿었으나, 불레셋이 이스라엘의 안전을 위협하자 군사적인 지도자를 갈망하게 되었고, 결국 사무엘을 통해 사울(1사무 9-10장)과 다윗(2사무 2, 4 ; 5, 3)을기름 부어 왕으로 추대하였다.
왕정 시대 : 사울이 죽은 후 다윗이 전 이스라엘의 통일 왕으로 등극하면서(2사무 5, 1-3) 이스라엘에도 본격적인 왕정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는근동의 다른 민족들의 경우와는 달리 왕정 정치가 좀처 럼 정통성을 확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고대 근동 국가에서 왕은 신이었으나 이스라엘에서는 왕은 신이 아니었고 하느님의 대리자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이 다윗, 솔로몬 시대의왕정 신학이었다. 다윗 왕조는 이 왕정 신학을 통해 왕정제도의 종교적 합법성을 획득하고 왕정 이데올로기를 수립할 수 있었다.
왕정 신학의 기반이 된 것은 무엇보다 일차적으로 나단의 예언(2사무 7, 1-17)이며 그 다음은 군왕 시편들(2 ;18 ; 20 ; 21 ; 45 ; 72 ; 101 ; 110 132 ; 144편)이었다.나단의 예언에 의하면 다윗 왕조는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의 보증이 된다. 그 표로 야훼와 다윗 가문의 왕 사이에 부자 관계가 선언되고(2사무 7. 14 ; 시편 2, 7), 다윗왕조는 영원히 존속할 근거를 얻게 된다(2사무 7, 16). 군왕 시편들 가운데 특히 72편은 왕이 구원자임을 가장 명확히 표현하고 있다. 왕은 약자와 궁핍한 자들을 구하고,정의로 다스리며 평화를 심고, 모든 원수들로부터 자기백성을 구하는 구원자이다. 그 왕은 영원토록 온 세계를다스릴 자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군왕 시편들과나단의 예언은 메시아적인 표현으로 해석되면서 메시아사상의 신학적 근거가 되었다. 그리고 이 덕분에 다윗 왕조 초기에 도유받은 모든 왕(메시아)은 하느님이 당신 백성에게 보낸 구세주로 여겨졌다. 점차 왕정 제도는 유대왕국에서 정착되어 갔다. 반면, 왕정 이데올로기 수립의주역은 다윗 왕조였기에 북이스라엘 왕국은 왕과 백성들사이에 남부 유대 왕국과 같은 안정과 신뢰를 갖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유대 왕들은 우상 숭배와 폭정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구세주가 되리라는 낙관을 흐리게 하였고, 이스라엘은 그 왕들에 대하여 환멸을 맛보아야만 했다. 왕들은 자기들이 마땅히 수행해야 할 의무들(신명 17, 14-20)을 잘 알면서도 윤리적인 면에서나 종교적인 면에서 불완전한 점이 많았다. 이에 예언자들은 하느님께 불충실한 왕들을 비판하였고 백성들로 하여금 미래의 왕에게 희망을 두도록 종용하였다. 결국 이스라엘은 나단의 예언과 군왕 시편들의 내용을 구현할 메시아왕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 시대에 왕정 신학과 다윗의 카리스마적인 통치가 바탕이 되어 형성된 다윗의 자손 메시아 사상은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통해 모든 원수들을 쳐부수고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으며 온 세상을 지배한다' 는 민족주의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바빌론 유배 시대 : 바빌론 유배 이전의 시편들을 보면, 왕직을 행사하는 메시아들은 이스라엘의 신앙 생활 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그들이 받은 도유는야훼로부터 선택받았다는 표지일 뿐만 아니라 야훼의 양자(시편 2, 7 ; 2사무 7. 14)이며 야훼의 보호를 받는 표시(시편 18, 50 ; 20, 7 ; 28, 8)가 되었다. 따라서 왕에 반대하는 자는 망할 것이고(시편 2, 2), 백성은 왕을 위하여기도할 의무를 가졌다(시편 84, 8 이하 : 132, 10). 왕에게손대는 것은 불경과 독성으로 간주되었으며(1사무 24, 7.11) 왕을 저주해도 안되었다(2사무 19, 21). 왕은 하느님께 자기 손으로 제사를 봉헌하였으며(2사무 24, 25 ; 1열왕 3, 4) 백성을 축복하였다(1열왕 8, 14).
그러나 예루살렘 함락과 다윗 가문의 학살 사건은 메시아에 대한 신앙에 매우 큰 충격을 주었다. 다윗의 자손메시아관에 입각한 메시아 대망 사상은 바빌론 유배 시기를 거치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나 이스라엘 신앙은 그것에 의연히 맞서 놀라운 불굴성과 활력을 드러냈는데, 물론 여기에는 이스라엘을 이끌어 나갔던 예언자들, 특히 예레미야와 에제키엘의 헌신적인 뒷받침이 있었다. 예언자들은 바빌론 유배라는 민족의 재난을 민족의 죄에 대한 야훼의 공정한 심판임을 선언함으로써 그비극을 논리 정연하게 설명하고, 또한 그것을 이스라엘의 역사적 신앙의 모순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진실성을 입증하는 사건으로 고찰하였다. 더욱이 그들은 일반 백성의 허황된 희망을 분쇄하면서도 야훼의 구속 경륜이 결국은 최종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 매달릴 수 있는 하나의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예언자들의 활약은 백성들로 하여금유배를 당연한 징벌로서도 받아들일 수 있게 하였으며,또한 새로운 미래를 위해 자기들의 마음을 준비시키는 정화 과정으로서도 받아들일 수 있게 하였다.
그래서 유배가 끝나 갈 무렵을 기점으로 다윗 후손 중에서 장차 메시아가 태어나리라는 사상은 변화하여 여러가지 모양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유배 말기에 '위로의 예언자' (유배 시기에 이사야 예언서의 40장에서 55장까지를 쓴 제2 이사야)는 메시아 역할을 맡을 새 인물을 등장시켰다. 그 인물은 바로 신비스러운 야훼의 종이었다(이사 42, 1-7 : 49, 1-9 ; 50, 4-9 : 52, 13-53, 12). 예언서에 나오는 야훼의 종은 기름으로 도유받는 것이 아니라 야훼의 얼(רוּחַ, πνεῦμα) 도유된다(이사 61, 1 ; 루가 4,18 ; 사도 10, 38). 이것은 예언자가 받는 영의 도유를 의미한다. 이 도유로써 예언자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명을 지니게 된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에충실한 야훼의 종은 예언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는인내(이사 50, 6)와 겸손(이사 53, 7)으로 고통을 통해 야훼의 뜻을 이룬다(이사 53, 4-10). 참된 하느님을 전하는예언자라면 고통을 몸소 겪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미약한 자들 가운데서 자주 당신 도구들을 선택하신다. 야훼의 종의 사명은 계약을 다시 맺고, 만백성의빛이 되는 일이다. 그는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침으로써(이사 53, 10) 백성을 살려내고 다스리게된다(이사 53, 12). 따라서 고통받는 종은 결국 왕권을 행사하게 되는데, 그가 곧 수난받는 메시아이며, 자기를 희생하여 세상을 구하는 구원자이다. 이사야 예언서는 백성의 죄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속죄 제물로 바치는 고통받는 종 안에서, 예언자적 활동과 왕적 영광이 사제적 기능과 함께 결합됨을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이 예언서들은 이 신비한 존재에 관해 장엄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그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있어 이는 놀라운 계시가 아닐 수 없다. 훗날 예수의 제자들은 이 계시가 말하는 야훼의 수난받는종을 떠올리면서 스승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중 몇몇 부류의 사람들은 야훼의 직접 통치에 입각한 '메시아 없는 메시아관' 을 가졌 다(에제 3, 1-7). 이는 하느님이 인간적인 왕을 세우지 않고 몸소 당신 왕국을 재건하리라는 기대를 뜻한다(신정국가 : 에제 40-48장 참조). 시편들은 이런 야훼의 왕권 수립이 미래에 있으리라 노래한다(시편 97, 1-4 ; 98, 6-9).
그들은 종말에야 비로소 실현될 신적 왕국에 그들의 희망을 걸었다. 이 영광된 시대가 열리면, 야훼께서 친히당신 백성 위에 군림하시고(이사 40, 9 이하), 모든 민족들이 야훼를 왕이라 선포할 것이다(즈가 14, 6-9). 또 다른 한편, 신명기 18장 15절과 말라기서 3장 22절에 따라 유배 이후 예언자들은 메시아의 역할을 맡을 마지막 예언자를 기대하였고, 사제계(司祭孫)에서는 그들 나름대로 메시아로 등장할 사제를 기다렸다. 쿰란 공동체는 아론의 사제직을 이어받을 메시아와 다윗의 후손으로 나라를 중흥시킬 또 다른 메시아를 고대하였다. 바빌론 유배 이후 시대 : 이스라엘 백성은 다윗과 맺은약속을 신뢰하였기 때문에 야훼의 권능이 나타나서 다윗왕조를 재생시키고 그 영구성을 확고히 해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시편 132, 17).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으로서 원수들을 무찌르고 그 백성을 구하는 영광스럽고 강력하며 의롭고 지혜로운 자로 여겨졌다(시편 2 ; 110 ; 132, 17-18). 강대국들에게 늘 유린당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메시아관과 함께 언제나 민족 재건에 그 희망을 집중하였다.
그러나 유배에서 해방되어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다윗 왕조가 회복될 전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즈가리야 예언자가 힘을 썼는데도 불구하고(즈가 6, 9-14)즈루빠벨이 왕위에 오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는 왕도, 왕정 이데올로기도 더 이상존재하지 않았다. 이후로 유대 민족의 지도자로서의 왕인 메시아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 앞에는 율법과사제들뿐이었다. 그 결과 사제들의 역할이 커지면서 그들이 이스라엘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대사제가 왕의지위를 확보하고 왕을 대신하여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되었다. 이것이 사제로서 도유를 받은 것인지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로서 받은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려우나 그때부터 사제들까지도 도유를 받게 되었다. 사제계의문헌을 보면 그들이 사제의 도유를 정당화하려고 노력하 였음을 알 수 있다. 즉 바빌론 유배 이전에 쓰여진 성서에는 사제들이 도유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나 유배 이후 기록된 후기 사제계 문헌의 성서에는 아론 때부터사제들이 도유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출애 29, 7 ; 28, 41 ; 30, 30 ; 40, 15 ; 시편 133, 2). 물론 이것들은 유배이후에 기록된 문헌들이지만 이미 그 이전부터 왕직과 사제직을 연결시키려는 경향은 있었다(예레 33, 14-18 ;에제 45, 1-8 ; 즈가 4, 1-14 ; 6, 13). 이를 확대 해석한 이스라엘 백성 중 일부는 두 인물의 메시아를 기대하게 된다. 하나는 왕으로서의 메시아이고, 다른 하나는 사제로서의 메시아이다. 사제들의 위신은 높아져서 기름 바르는 의식으로 그들은 축성되었다. 이때부터 메시아 대망 사상은 점점 정해지지 않은 미래를 향하여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즉 왕인메시아가 미래에 나타나실 것이라는 사상이 발전되어 나갔다. 메시아의 특성도 전쟁하는 왕의 모습에서 겸손하고 평화스러운 왕의 모습으로 변화하여 갔다. 그는 전투할 때 타는 군마 대신 어린 나귀를 탄다(즈가 9, 9-10).메시아로서의 구원 사명 영역도 전세계로 확대되면서 민족주의적인 요소를 뛰어넘을 준비를 한다. 그리고 다윗의 자손 메시아 사상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메시아의 수난까지 암시되었다(다니 9, 26). 이로써 앞서 기록된군왕 시편들이 새로운 메시아적 이해를 염두에 두고 다시 읽혀지며 새로운 전망 안에서 이해된다. 즉 그 시편들이 미래에 나타날 참된 메시아를 두고 불려진다.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가문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황제가 헬레니즘 정착의 일환으로 유대교 말살 정책을 펼쳤을 때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들인 사제들이 보여 준성직 매수 등의 부패는 메시아 사상에 또 다른 변화를 불 러일으키는 자극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 메시아 사상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묵시 문학적인 '사람의 아들' [人子]로서의 메시아 신앙이다.그는 하느님의 구속 사업을 성취시키기 위해 나타나는데다윗의 후손보다 더 신비스런 인물로 묘사되었다. 그는구름을 타고 하느님의 옥좌 앞으로 나아가 하느님으로부터 임명과 사명을 부여받는다(다니 7, 13-14). 그의 사명은 세상 종말에 모든 악의 세력을 굴복시키고 영광스러운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다니 7, 23-27). 이와같이 묵시 문학은 하늘의 구름을 타고 와 영원한 하느님의 나라를 세울 초월적인 '사람의 아들' 의 출현을 예고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구약 시대의 메시아관은 다양하고 복잡하였다. 이 다양성과 복잡성 속에서 발견 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약속과 계약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꾸준히 보여 준 신뢰와 믿음이다. 이 메시아 사상의 다양성은 곧 하느님에 대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끊임없는 기대와 희망의 다양한 표현들이다. 이런기대와 희망이 유대 민족으로 하여금 어떠한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다시 활력을 되찾게 하는 불굴의 종말론적 신앙을 지니게 하였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의 메시아사상은, 이스라엘이 하느님과의 계약을 근거로 하여 염원하였던 자신들의 영광스럽고 위대한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라 정의할 수 있다. 본질적으로 메시아는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구속 사업을 위임받은 자이다. 따라서 그의 사명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구원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닥치는 위기를 일시적으로 극복하는 것은 메시아의 진정한 사명이 아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의메시아관은 종말론적인 성격을 띠었고, 미래를 지향하는 역사는 최종 목적에 도달해야만 그 의미를 가진다. 구원은 하느님의 사업이므로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가 나타남으로써 비로소 그 최종 의미가 세상에 구현될 것이다. 따라서 구약은 언제나 신약을 지향하였다.

Ⅲ . 신약 시대의 사상

예수는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요한 4, 25-27)와 대사제의 심문(마르 14, 61-62) 때를 제외하고는 직접적으로 자신을 '메시아' 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는 진정으로 유일한 메시아이다. 그래서 초대 교회는 주저 없이 예수에게 메시아(그리스도)라는 칭호를 붙였다. 결국그리스도는 예수의 고유한 이름이 되었다. 이런 예수가왜 자신을 메시아라고 직접적으로 밝히는 것을 꺼려 하였을까? 이는 예수 당시에 널리 퍼져 있던 메시아관들에문제점이 많았음을 알려 준다. 그리고 문제점이 많은 상황에서 메시아 문제에 대해 예수가 보인 태도를 보면 진정한 메시아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예수 시대 유대인들의 메시아 사상〕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랜 역사에 걸쳐 하느님의 약속에 의지하며 살아왔 다. 이스라엘의 승리와 영광을 보장하신 하느님이 모든원수들의 계교를 꺾고 이스라엘에게 권세와 번영을 줄 것이라고 믿었다. 이 믿음은 메시아 대망 사상으로 응집되었으며, 그들은 전력을 다해 메시아를 기다려 왔다. 왜냐하면 너무나 오랫동안 그들은 주변 강대국들의 침략과압정에 시달려 왔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예수 시대의 유대인들도 열렬히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마태 21, 6-9; 루가 1, 68-69 ; 2, 38 ; 7. 18-19 ; 24, 21 ; 요한 1, 19-20; 4, 25-26 ; 10, 24 등). 그런데 메시아에 대한 그들의 생각들은 각양각색이었다.
일반 민중의 메시아관(지상적 메시아관) : 예수 당시 이스라엘의 일반 대중은, 원수들을 몰아내고 자기들에게자유를 가져다 줄 해방자 즉 다윗 왕손으로서의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것은 굴욕적인 처지였던 당시의암울한 시대적 상황 때문에 자연스럽게 치솟은 다윗 왕조의 복원에 대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메시아관은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지상적인 것이었다. 이런 입장에서 군중은,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예수를 그들의 기대에 호응할 메시아로 여겨 마치 왕을 영접하듯 환호성을 올리며 열렬히 환영하였다(마태 21, 9 ; 마르 11,8-10 ; 루가 19, 37-38 ; 요한 12, 12-13). 일반적으로 지식인들이나 상류층 사람들보다 일반 민중이 메시아에 대한기대를 더 가졌다. 그들은 유배 이후부터 이스라엘에는 예언 운동이 없었기 때문에 너무나 오랫동안 하느님이침묵을 지켜 왔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예수가 활동할 무렵 로마 식민 통치의 격동기를 맞은 이스라엘에서는그 동안 동면 상태에 들어가 있던 메시아 대망 사상이 다시 되살아나서 기세를 올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바리사이인들의 메시아관 : 기원전 152년에 형성되어 예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정신적 삶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지상적 메시아관을 배척하였다. 그들은 메시아의 역할이 하늘 나라를 설립하는데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이 세상에서 고난과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 대한 내세 신앙과 죽은 자의 부활 신앙에 있었다.그들의 구원관은 율법 준수에 의한 자력 구원(自力救援)이었다. 따라서 율법을 자유로이 가르치고 영원한 생명에 대한 복음을 전파할 수만 있으면 로마가 이스라엘을지배해도 좋다고 여겼다. 세상의 지배는 과도기적인 것이므로 지배자가 로마이든 그 누구이 든 상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스라엘 일반 대중은 비록 바리사이인들의구원 교리를 따르기는 하였지만 로마 의 압정에 의한 생활고의 가중 때문에 민족주의 색채가 농후한 국가적메시아관 혹은 지상적 메시아관에 이 끌렸던 것이다.
바리사이인들은, 예수가 그들과는 달리 하느님 나라에 대해 새로운 가르침을 권위 있게 전개하고, 또 군중 들이 그를 메시아로 여기자 예수가메시아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애를썼다. 그들이 예수를 논박하기 위해 주장한 메시아에 대한 조건들을 보면다음과 같다. 먼저, 예수가 다윗의자손임을 부인하는 것처럼 보이자 메 시아는 반드시 다윗의 후손이어야 한다(마태 22, 41-46 ;마르 12, 35-37 ; 루가 20, 41-44)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메시아 이전에 엘리야가 나타나야 하고(마태 17, 10-13 ;마르 9, 11-13), 메시아는 군중 앞에서 그에 상응하는 표징을 보여야 한다(마태 16, 1-4 ; 마르 8, 11-13)고 하였다. 이런 그들의 주장들에 대해 예수는 명쾌하게 응답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예수가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완수하기 전에 죽었기 때문에 절대로 메시아일 수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는 부활하였다. 따라서 그는 그의 죽음으로써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완수한 것이다.그러므로 그들의 주장은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예수가 메시아임을 확신시켜 주는 데 오히려 커다란 도움이 되었을 뿐이다.
기타 여러 메시아관들 : 예수 당시 무력으로 로마에 항 거하였던 열혈당원(Zealot)들은 바리사이인들과는 달리 내세 신앙보다 현실적인 메시아 운동을 전개하면서 정치 적이고 민족적인 메시아를 기다렸다. 그리고 랍비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윤리적 행동과 정의의 실천으로 메시 아 시대를 열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율법 교사로서의 메 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밖에도 메시아를 종말의 대 사제, 예언자, 재림할 엘리야, 하느님의 종, 사람의 아들 등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일반 지식인들은 메시아상(像)을 구체적인 한 인물에 서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유대 사상 속에는 메 시아가 하느님과 인간들 사이에서 중재자로서의 기능을 반드시 수행하는 것으로는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자기 행위를 통해서 메시아 시대를 앞당기거나 지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 가 운데 소수이긴 하지만 메시아에 대한 희망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부활 신앙을 거부하며 현실주의 노선을 걸음으로써 이스라엘의 상류 계급에 속하였던 사두가이파 사람들이었다. 〔예수의 메시아관〕 예수 시대에는 여러 형태의 메시아 관들이 난립하고 있었으므로 메시아 칭호의 의미는 확정 되지 않은 채 불투명하였다. 그래서 예수는 선불리 메시 아 칭호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신 사명을 분명히 하기 에는 이 칭호가 너무 모호하고 오해받기가 쉬웠기 때문 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단지 그릇된 메시아 사상을 배척 하였을 뿐 메시아 개념은 거부하지 않았다. 따라서 군중 들은 충분히 예수를 메시아로 여길 수 있었다(요한 4, 29 ; 7, 40).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일반 대중들이 메시아 인 예수의 실상은 접어두고 그들 좋을 대로 그들의 관점 에서 예수를 메시아로 보았다는 데에 있다.
예수와 유대인들과의 차이점 : 예수와 유대인 사이의 심각한 이견은 구원을 이루는 방법과 구원의 범위에 있 었다. 이 문제에서 예수는 유대인들과 커다란 차이를 보 였는데, 예수는 유대인들이 바라는 메시아의 왕권을 거 부하면서도 메시아로서의 권위는 포기하지 않았다. 예수 는 그 권위를 보다 높은 차원에서 발휘하였다. 메시아는 본래 이스라엘을 살리는 분이기에, 이스라엘의 구원을 예수가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예수는 다만 이스라엘뿐 만 아니라 온 인류를 역사 속에서 구원할 목적으로 이 세 상에 온 분이었다. 그래서 예수는 정복과 지배를 통해 이 스라엘의 국력 신장과 번영을 추구하는 유대인들의 국가 적 메시아관을 당연히 거절하였다. 군중들이 바라는 메 시아 왕국과 예수가 세우려는 하느님 나라는 그 차원을 달리하였다. 그래서 예수는 유대인들에게 세속화 · 물질 화되어 있는 메시아적 약속들을 영신적 실재(實在)들로 써 대치하였다.
그는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이사야서에 나오는 '고통 받는 종' 으로서 시작할 것임을 밝혔는데, 고통받는 메시 아라는 사상은 유대인들의 지성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제자들까지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을 다니엘서에 나오는 '사람의 아들' 로 소개하면서 자신의 생명을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바침으로써 영광에 들어갈 것임을 예언하였다(마태 16, 21 ; 마르 8, 31-38 ; 루가 18, 31). 그는 민족주의적 메시아관을 가지고 있는 군중들에게 참된 메시아는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사명 을 완수하기 위해 고통과 죽음을 감수하는 '고난받는 메 시아 임을 강조하였다. 이로써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한 다는 것은, 물질적 가치보다 영적인 가치를 더 중요시하 는 것임을 피력하였다. 이와 같이 예수는 메시아의 사명 인 구원을 이루는 방법과 그 범위에서 유대인들과는 근 본적인 차이를 보였다.
메시아 함구령의 의미 : 예수의 메시아관은 일명 고 난받는 메시아관' 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원죄에 물 든 인간을 사랑으로 구원하려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십 자가의 길을 걸어야만 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다시 말해 참 메시아는 고통과 죽음을 통해 구원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아야 비로소 복음서가 전 하는 메시아 문제에 대한 예수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는 당신을 메시아로 선포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당신을 메시아로 고백하는 악령들에게 입을 다물 것을 지시하고(마르 3, 11 ; 루가 4, 41), 베드로의 메 시아 고백이 있은 다음 제자들에게도 함구령을 내렸다 (마르 8, 30 ; 마태 16, 20). 이 밖에 메시아적 표징이 되는 치유의 기적을 베푼 다음에도 그 치유 사실을 퍼뜨리지 못하게 하였다(마르 1, 44 ; 5, 43 ; 7, 36 ; 8, 26). 예수는 왜 이렇게 함구령을 내렸을까? 그것은 변질된 메시아 사 상에 자신이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이며, 또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예수는 언제나 정치적으로 오해될 수 있는 위험을 지닌 메시아 이해를 수정하지 않고서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베드로는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하면서도 스승의 수난 예고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것은 곧 베드로가 생각하 는 메시아는, 고난이나 죽음과는 거리가 먼 영광만이 보 장된 왕으로서의 메시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 에 대해 예수는 극단적인 질책을 내리며 그것을 사람의 일로 규정하였다. 따라서 함구령을 내린 예수의 태도는 메시아 사상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메시아 사상 을 문제 삼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메시아의 정체 : 공관 복음을 보면, 필립보의 가리사 리아 지방에서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이 있은 이후 예수 가 메시아임이 알려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마태 16, 13- 20 ; 마르 8, 27-30 ; 루가 9, 18-21). 그때 예수는 비로소 당신이 고난받는 '사람의 아들' 임을 제자들에게 가르쳤 다. 그러나 제자들은 사람의 아들의 수난의 의미를 파악 하지 못하였다(마태 16, 21-28 : 마르 8, 31-38 ; 루가 9, 18-21) 그리고 체포되어 대사제 앞에서 심문을 받을 때, 당신이 메시아인지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강요받았다. 이때 예수는 "당신이 찬양받으실 분의 아들 그리스도 요?(마르 14, 61)라는 물음에 "내가 (그)입니다. 여러분 은 인자가 전능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또한 하늘의 구름과 함께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르 14, 62)라고 대답하였다. 이 대답으로 말미암아 예 수는 '유대인의 왕' 이라는 죄목으로 처형되지만, 이것은 수난이 시작되는 순간에 이루어진 분명한 메시아 선언이 었다.
제자들은 예수 부활 이후에야 비로소 스승이, 자기들 이 생각하던 그런 메시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다. 예수는 분명 유대 민족이 대망하던 메시아와는 다른 메시아였다. 그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성령에 의한 것 이 외에는 기름 부음을 결코 받지 않은 메시아였다(마태 3, 13-17 ; 마르 1, 9-11 ; 루가 3, 21-22). 예수의 메시아관은 지상의 어떤 정치 세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늘 섬김을 받기보다는 섬기는 자가 되도록 가르쳤다(마르 10, 45 ; 요한 13, 14-15). 예수에게 있어 메시아의 권위 는 사랑과 봉사였다. 그래서 그는 수난의 길을 묵묵히 걸 으며 성부께는 전적으로 신뢰와 순종하는 모습을, 그리 고 사람들에게는 사랑과 봉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마 디로 그는 십자가의 메시아로서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구원하는 구세주였다(루가 24, 46 ; 요한 4, 42 ; 1 요한 4, 14).

IV . 초대 교회의 신앙

부활은 죽은 자의 소생 즉 묵은 생명으로의 복귀가 아 니며, 이승살이로 되돌아온 것도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 구나 더 이상 바랄 수 없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그래 서 부활에 대한 신앙은,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는 가능하 다는 것을 믿는 신앙에 근거한다. 이 부활로써 예수는 결 정적으로 '하느님의 아들' 임이 드러나게 되었다.
〔메시아 선포〕 초대 교회는 부활의 빛으로 예수의 죽 음을 바라보았다. 예수의 죽음은 이제 이 부활 사건 때문 에 모든 것을 무(無)로 돌리는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전 혀 다른 차원인 근본적인 새로움으로 건너가는 우리를 위한 죽음이 되었다(1고린 15, 1 이하 ; 로마 4, 25). 바로 죽음 자체가 예수의 메시지와 활동의 요약이며 총괄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진정한 메시아적 사명이 예수의 죽 음과 부활로써 완성된 것이다. 유대 민족이 숱한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불굴의 신앙으로 지녀왔던 메시아 대망 사상이 예수에 의해 그 참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그래 서 초대 교회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한 예수를 아무런 구애 없이 메시아로 선포하였다. 이로써 예수의 부활은 야훼 하느님께 일체의 기대를 거는 신앙(메시아적 신앙)을 입증해 주는 사건이 되었으며, '마지막에 가서 죽은 자 들이 모두 부활하리라' 는 신앙이 가능하게 하였다(1고린 15, 20-23)
부활을 체험한 초대 교회는 예수를 메시아라고 고백하 며 이를 유대인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신약과 구약의 연속성과 신약은 구약의 완성임을 강조하였다. 구약 시 대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들의 영광은 부활을 통해 영 광의 왕으로 왕좌에 오른 예수의 영광을 희미하게 예고 할 뿐이다. "그분은 하느님의 오른편으로 높이 올려져 아버지로부터 성령의 약속을 받으신 다음에, 여러분이 보고 듣는 이 성령을 쏟아 주셨습니다. 사실 다윗은 하늘 에 올라가지 못했으니 그 자신이 이렇게 말합니다. '주 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도다.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 의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어 라' (시편 110, 1).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집안은 확실히 알아 두시오.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곧 여러분이 십자가 형에 처한 이 예수를 주님과 그리스도로 삼으셨습니다" (사도 2, 33-36). 물론 유대인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 다. 교회가 예수를 메시아로 선포함으로써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밀접히 연결되면서도 단절의 길을 걷게 되었다.
〔메시아적 칭호들〕 신약성서를 보면, 예수에게 적용된 수많은 칭호들을 볼 수 있다. 그리스도, 주님, 사람의 아 들, 하느님의 아들, 다윗의 자손, 야훼의 종, 대사제, 예 언자, 새 아담 등이다. 이런 칭호들은 예수의 정체와 사 명을 명시하기 위하여 예수 시대의 사람들과 초대 교회 가 사용한 존칭들이다. 이 칭호들은 거의 대부분 구약성 서에서 나왔는데 대다수가 메시아 사상과 관련되어 있는 메시아적 칭호들이다. 물론 구약 시대부터 사용되었던 칭호들은 변화를 보이며 의미가 달라지기도 하였다. 그 래서 특별히 '다윗의 자손 , '하느님 의 아들' , '인자' 라는 칭호들의 의미 는 예수에게서 확인된 메시아상(像) 과 연결시켜야만 온전히 알 수 있는 전통적인 메시아 칭호들이다. 예수에 게 적용된 이 수많은 칭호들은 교회 의 선교 활동 무대가 히브리 문화권 에서 그리스 문화권으로 옮겨 가면서 그 수가 줄어들었다. 왜냐하면 칭호 들의 의미를 잘 알고 그것을 잘 사용 하기 위해서는 구약성서에 조예가 깊 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칭호 는 신구약 성서의 일관성과 지속성을 잘 드러내며 우리 신앙의 내용을 집 약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사용되 고 있다.
부활 이후 예수가 참된 메시아임 을 깨닫게 된 교회는 예수께 '주님' (사도 2, 36 ; 2고린 4, 5-6 ; 루가 2, 11), '하느님의 아들' (사도 9, 20 ; 로 마 1, 4 ; 갈라 2, 20 ; 마르 14, 6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1데살 1, 13 ; 사도 15, 26)라는 최상의 칭호들을 주저 없이 부여하였 다. '주님' 이란 칭호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왕직을 행사 하실 메시아와 통하는 이름이므로 예수의 메시아성을 명 백히 하기 위해 사용하였고, '하느님의 아들' 이란 칭호 는 부활을 통해 예수와 하느님과의 부자 관계를 이해하 게 된 교회가 예수의 친자성(親子性)과 메시아로서의 신 비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라는 복합 칭호는 하느님의 주권과 메시아 사 상을 드러내면서 무엇보다도 예수의 주권을 잘 말해 주 고 있다. 메시아의 최종 목적이 주권을 확보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메시아도 주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왕직을 행사할 메시아 : 시편 110편 ; 군중을 다스리는 야훼의 종 : 이사 53, 12).
'그리스도' 라는 칭호는, 초대 교회가 예수의 죽음을 구원 사건으로 해석할 때 사용하다가(1로마 5, 6 ; 14, 15 ; 1고린 8, 11 ; 갈라 2, 21 ; 3, 13), 차츰 죽음과 부활을 언급하면서 부활에 관한 대목에서도 사용하였다(1고린 15, 3-5 ; 로마 6, 3-9 ; 8, 34 ; 14, 9 ;1데살 4, 14). 그리 고 이 칭호는 부활하신 예수가 맡은 종말의 기능까지 표 시하기 위해 사용되었다(1고린 15, 24-28). 이와 같이 그 리스도란 칭호는 예수의 이름에 밀접히 결합되면서 마침 내는 칭호의 역할을 벗어나 예수의 고유한 이름이 되어 (1고린 15, 3-5. 12-23 : 정관사 없이 사용) 모든 메시아적 칭호들을 종합하는 중심이 되었다. (→ 예수 그리스도) ※ 참고문헌  H. Gross · P. Grelot, 《SM》 5, pp. 241~250/ K. Rahner · H. Vorgrinler, Dizionario di Teologia, Herder Morcelliana, 1968/ AA.VV., Dizionario teologico enciclopedico, Casale Monferrato, 1993/ L. Bouyer, Breve Dizionario Teologico, Bologna, 1993/ W. Grundmann · F. Hesse · M. de Jonge · A.S. van der Woude, chriô, christós ktl., 《TDNT》 9, pp. 493~580/ E. Jenni, 《IDB》 3, pp. 360~365/ P. Grelot · P.E. Bonnard, (DTB), pp. 679~686(《성서 신학 사전》, 광주 가톨릭대학, 1984, pp. 153~157)/ J. Bright, A History of lsrael, Philadephia, 1971(김 윤주 역, 《이 스라엘의 歷史》 上 · 下, 분도출판사, 1979)/ O.A. Piper, 《ISBE》 3, pp. 330~338/ R.E. Brown · J.A. Fitzmyer · R.E. Murphy, Grande Commentario Biblicco, Brescia 1974/ M.J. Cantley, 《NCE》 9, p. 714/ S.K. Macdonld, Messiahship of our Lord, 《NCE》 9, p. 714/ M.J. Cantley, 《NCE》 9, pp. 714~721/ H.W. Wolff, Herrschaft Jahwes und Messiasgestalt im AT, 《ZAW》 54, pp. 168~202/ G. von Rad, Erwägungen Zu den Köingspsalmen, (ZAW) 58, pp. 216~2221 H. Ringgren, König und Messias, 《ZAW》 64, pp. 120~147/ 민영진 외, 《성서 백과 대사전》 3, 성서 교재간 행사, 1980, pp. 848~8671 B. Dupuy, <메시아 待望 思想>, 《神學展望》 73~74호(1986) R. Pesch,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 《神學展望》 25 · 27호(1974)/ A. Gelin, Les Idées Maitresses de I'Ancien Testament, Paris, 1955(서인식 역, 《구약성서의 중심 사상》, 성경의 세계 15, 분도출판 사, 1972)/ P.F. Ellis, The Chronicler's History and The Prophets ofJudah, Minnesota (김윤주 역, 《연대기 작자의 역사와 유대의 예언자들》, 성 경의 세계 11, 분도출판사, 1971)/ J.L. McKenzie, 김수복 역, 《구약성 서 신학 개요》, 성경의 세계 18, 분도출판사, 1973. 〔徐炅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