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 아메리카에 위치한 나라로 공식 명칭은 멕시코 합중국(Estados Unidos Maxicanos). 북쪽은 미국, 남쪽은과테말라와 벨리즈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서쪽은 태평양, 동쪽은 멕시코만과 카리브해에 접해 있다. 면적은1,958,201㎢이고, 인구는 9,114만 명(1995)이며, 수도는 멕시코시(Mexico City). 인구의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이고 공용어는 스페인어이다.
〔역 사〕 기원전 2100년경부터 이곳에서 수렵과 채집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촌락 단위로 농경 생활을 시작한 것은 기원전 1500~900년경으로 여겨진다. 100~900년 사이에 올멕 · 톨텍 · 마야 · 아즈텍 문명이 발달하였 고, 1200년경부터는 아즈텍(Aztec)족이 다스리기 시작하였다. 15세기경부터 유럽인들의 팽창 정책의 일환으 로 신세계에 대한 탐험이 시작되었는데, 멕시코 지역을 탐험하도록 파견된 스페인의 코르테스(H. Cortés)에 의해1521년에 수도 테노치티틀란이 함락 · 파괴되었다. 그 자리에 멕시코시를 세운 코르테스는 1526년에 마야 문명의 잔존자들을 정복하고, 1540년대에는 북부 멕시코 대부분을 정복하였다. 스페인이 정복했을 때부터 독립이선포된 1821년까지 멕시코는 스페인 총독의 관할 지역이었는데, 19세기 이전에는 스페인의 지배에 대한 저항이 전혀 없었으나, 1810년부터 이달고(M. Hidalgo) 신부를 중심으로 독립 운동이 시작되어 1814년 그를 계승한모렐로스(J.M. Morelos) 신부에 의해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그 뒤를 이어 이투르비데(A. de Itúrbide)가 1821년9월 28일 멕시코의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1823년에는공화국으로 선포하였고 이듬해에는 연방 헌법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1845년에 발발한 미국 정부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이로써 1848년에 체결된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에 따라 현재 미국의 애리조나 주, 콜로라도 주 서부,네바다 · 유타 · 텍사스 · 캘리포니아 · 뉴멕시코 주 등의 지역을 넘겨주어야 했다. 1810년부터 계속해서 정부와 헌법이 수차례 붕괴되고 전쟁으로 수많은 멕시코인들이 사망하는 등 혼란과 고통의 역사를 겪어야 했던 멕시코는, 1910년에 이르러 비로소 디아스(P.Diaz)의 34년 간의 독재 정치가 막을 내렸지만 반란과 쿠데타는 계속되었다.
1913년에 다시 혁명이 일어나 정부가 또 한 번 전복된 후, 가톨릭은 사상 유례없는 박해를 받았으나 1934~1940년의 카르데나스(Lázaro Cárdenas)와 1940~1946년에 카마코(Camacho) 대통령이 펼친 교회에 대한 유화정책에 의해 비로소 종식되었다. 1970년대 초 루이스에케바리아 알바레스(Luis Echevarria Alvarez) 대통령은 1910년의 자유 혁명 정신을 되살리려고 하였는데, 그로 인해 그는 가톨릭 성직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로부터 공식적인 지지를 받았다. 또 1988년에 취임한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타리(Carlos Salinas de Gotari) 대통령은 헌법을 개정하였으며, 1992년 7월 국회 의원들은 헌법의 교회 관련 조항 개정을 시행하도록 하는 법안을 의결하였다. 교회와 국가 사이의 강력한 분리와 교회의 정치적 활동 금지를 공식화한 이 법안에 의해 국가와 교회의 관계가 정상화되었고 교황청과의 외교적인 관계 수용의 전제를 마련하게 되었다.
〔복음의 역사〕 그리스도교 신앙이 이곳에 전해진 것은 16세기 초였다. 1524년 수도회들에 의해 선교 활동이시작되어 1530년에 멕시코시가 교구가 되면서 선교와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프란치스코회, 도미니코회, 아우구스티노회, 예수회에 의한 선교 활동이 큰 성공을 거두어 16세기 말까지 많은 멕시코 원주민들이 세례를 받았다. 1571년에는 멕시코시에 종교 재판소가 설립되었는데, 이는 원주민들이 가지고 있었던 이교 신앙과의 혼합으로부터 가톨릭 신앙을 보존하고, 프로테스탄트의 확산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1767년 예수회가 스페인 정부에 의해 추방당함으로써 예수회가 운영하던 교육기관이나 다른 사도직이 약화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1553년에 예수회가 세운 멕시코 대학은 계속 발전하였다. 18세기 멕시코에서의 스페인 세력이 쇠퇴하면서가톨릭 교회 역시 쇠퇴하게 되었고, 따라서 복음화 활동도 약화되었다. 1810~1821년의 멕시코 독립 전쟁 중에 교황청은 멕시코를 스페인의 비체로이(Viceroy) 교구의 관할로 두었으며, 1821년 멕시코가 독립을 선포한 후 멕시코 황제는 가톨릭 신앙을 사회와 국가의 기둥 중 하나로 보았다. 그러나 군사 반란으로 1823년에 멕시코 공화국이 선포되면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위해 교황청과 정교 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교회와 국가 사이의 실제 활동 안에서는 싸움이 계속 이어졌다.
1857년 새 동맹 공화국 건설 이후부터 1861년까지는, 바티칸과의 공식적인 유대는 보존하면서도 일반적으 로 적대 관계가 지속되었다. 1917년에는 사회적 문제,정치적인 불안, 반정부주의가 절정을 이루어 교회는 실 제적으로 법의 보호권을 빼앗겼으며, 교회에 대한 박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다. 1926~1929년 카예스(P.E. Calles) 대통령은 교회를 반대하는 정책을 시행하여 성직자들의 성무 집행을 금지시켰는데, 이에 대하여 일부 지역의 멕시코 가톨릭인들은 '영원하신 왕 그리스도' (Vivo Cristo Rey!)라는 모토로 '크리스테로스'(Cristeros)라는 군사 조직과 합세해서 정부에 대항하는혁명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1938년에야 비로소 교회의 박해는 종식되었으나, 교회의 재산 소유와 학교를 세우는 일 등은 금지되었고 사제들은 공적으로 성직자 복장을 입지 못하였으며, 종교적인 어떠한 행사도 할 수 없었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 정부의 자유 혁명 정신이 재생된 이후, 박해는 종식되고 교회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 게 되었다. 1990년 2월 17일 이후에는 가톨릭 교회와 멕시코 정부 사이에 협력의 새 장(場)이 열리게 되었으 며, 1992년 9월에는 교황청과 멕시코 국가 사이의 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1995년 현재 총인구의 95.4%인 8,699만 2,000명의 가톨릭 신자가 있으며, 대교구 14,교구 60, 성직 자치구 7, 본당 5,064개에, 추기경 3, 대주교 18, 주교 92, 사제 12,196(교구 소속 8,832, 수도회소속 3,364), 종신 부제 297, 신학생 6,567, 수사 1,464,수녀 26,160명이 있다. 한인 교회 1개소에 교포 신자 40명의 사목을 담당하는 외국인 신부가 1명 있고, 한국인 수녀 2명이 활동하고 있다. (→ 라틴 아메리카 ; 과달루페의 성모)
※ 참고문헌 D. Olmedo, 《NCE》 9, pp. 770~783/ Jean A. Meyer,《EU》 15, pp. 254~2571 《EU》 Les Chiffres du Monde 1994, p. 362/ E.G.Jacob, (LThK) 7, pp. 381~385/ Reinhart Müller, 《TRE》 22, pp. 687~689/Robert A. Krieg, 《EC》, pp. 859~861/ Petit Robert Dictinnaire Universel des Noms Propres 2, Paris, 1988, p. 1199/ 1996 Catholic Almam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P.W. Powell, 《CE》 7, pp. 122~130/《한국 천주교회 연감》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한국 천주교 회 통계 1995》,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6. 〔梁惠貞〕
멕시코
〔영〕United Mexican St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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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과달루페 성당 앞에서 축제를 벌이는 멕시코인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