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태생의 네덜란드 화가. 독일라인 강 중류의 프랑크푸르트(Frankfurtam Main) 근처 젤리겐슈타트(Seligen-stadt)에서 태어나 퀼른(Köln)에서 미술을 배운 후 네덜란드로 가서 웨이덴(R. van der Weyden)으로부터 교육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1465년에 브뤼즈(Bruges)에 정착하여 큰 공방을 열고 수많은 초상화를 그렸으며, 1470~1480년경 결혼하여 3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1487년에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멤링은 1494년 사망할 때까지 브뤼즈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작품을 제작하였는데, 이탈리아의 상인들에게서도 작품을 의뢰받음으로써 네덜란드 회화가 이탈리아에 확산되는 데 기여하였다. 구성과 주제 면에서멤링의 양식은 웨이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나, 그의 작품에서는 웨이덴의 긴장된 감정이 결여되어 있다.
1475년에 영국의 존 돈(John Donne of Kidwelly) 경은 그의 가족과 함께 브뤼즈에 머무르는 동안 멤링에게 <성인들 및 기증자들과 함께 있는 성모와 아기 예수>란 제목의 3폭짜리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 그의 대표작이 된이 그림에는 그의 모든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정적인 매력, 경건한 절제와 세부적인 표면 묘사에 대한 관심 등이 잘 나타나 있다.
그가 그린 수많은 초상화에는 보다 생동감 있는 표현과 독창성이 드러나 있다. 몇몇 작품에서는 웨이덴이 창 안한, 한 쪽에는 성모자상을 그리고, 다른 한 쪽에는 기증자를 그린 2폭화(diptyque)를 모방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형태의 작품으로 대표적인 것은 <동정녀와 아기 예수와 마르틴 반 니외벤호벤〉(Vierge à I'Enfant et Martin van Nieuwenhoven, 1487)이 있다. 멤링은 이 유형을 명확하고조화로운 단계로까지 발전시켜, 종교적인 주제의 중앙 판넬 양쪽 날개에 기증자들이 중앙을 향해 무릎을 끓고 경배하는 모습을 담은 3폭화를 주로 그렸다.
멤링의 후원자들은 대부분 종교 단체와 관련 있는 사람이거나 돈 많은 사업가들이었다. 1479년에 제작된 <성 가타리나의 신비적 결혼>(Mariage mystique de sainte Catherine)은 전설을 소재로 제작된 제단화이다. 양쪽 패널에 그려져 있는 세례자 요한과 사도 요한 뒤에는 정교한 해설이 새겨져 있으며, 가운데 패널에는 천사들과 성가타리나를 비롯한 성인들에게 둘러싸여 옥좌에 앉아 있는 성모 마리아가 인상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런 구도는 멤링이 그린 수많은 종교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작품 중 긴 해설을 곁들인 가장 유명한 작품은 현재 성요한 병원 미술관에 있는 <성 우르술라의 유해함>(Châsssede sainte Ursule)이다. 1489년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두 수녀의 주문을 받고 제작되었는데, 이들 수녀는 성모 마리아 앞에 무릎을 끓고 있는 모습으로 그림 한 귀퉁이에 그려져 있다. 이 유해함은 성당을 축소한 형태로 되어 있으며, 본래 스테인드 글라스가 들어가야 할 양쪽 옆 부분은 6개의 패널화로 채워져 있다. 성 우르술라와 11,000명의 처녀들에 대해, 그리고 그들이 쾰른에서 로마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여행에 대해 이야기한 해설은 매력적이고 다채로우며 자세하지만, 극적인 묘미나 감정은거의 찾아볼 수 없다.
〔평 가〕 멤링은 어떤 형태의 작품에서도 자기 자신, 그리고 기증자의 종교적인 신념을 형상화하였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특히 성서적인 주제를 다룬 그의 3폭화, 2폭화, 혹은 단독 판넬화에서 이러한 측면이 두드러진다. 이것은 한두 명의 기증자 혹은 그들의 가족을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과 함께 그리는 당시의 사회적 · 종교적 전통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멤링의 작품에 내재되어 있는 그의 종교적인 정신을 이해하려면, 대체로 기도하는 모습을 하고 있는 그의 초상화들이 개인 경당을 위해 제 작된 것이며, 혹은 비록 중앙의 판넬이 현재 소실되었다하더라도 종교적인 주제의 작품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작품에 그려진 기증자들의 모아진손이나 깊은 명상에 잠긴 듯한 자세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지금은 소실되고 없는 본래 붙어 있었을 판넬의 내용이 비종교적일 것이라고 추측하기는 힘들다.
한편 멤링의 양식적인 특성을 볼 때, 많은 미술사가들은 브뤼즈의 이 유명한 화가를 인내심을 가지고 조심스 럽게 작업한 세밀화가(miniaturist)로 평가한다. 즉 멤링은 작은 양피지 조각 위에 그렸던 세밀화를 단지 중간 크기의 나무 판넬에 옮겨 놓았을 뿐이라고 평가받는다. 이러한 평가가 멤링의 수많은 작품에 적용되는 평가이기는하지만, 멤링은 간혹 대규모의 판넬화를 제작하기도 하였으므로 그 평가로 그의 작품 경향을 일반화시키기는 힘들다.
멤링의 세계적인 명성은 두 가지 장르의 회화, 즉 초상화와 성모 마리아의 재현에 근거한다. 그는 브뤼즈의 부유한 계층의 사람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한 초상화가로서 활동하였으며, 풍경을 배경으로 하여 측면의 얼굴을 그리는 단독 초상화를 개발하는 창의성을 보였다.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성모 마리아를 재현한 부분들이다. 멤링은 성모 마리아를 자주 다루었고 그가 다룬 종교적인 주제의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제시된다. 그러나 흥미 있는 것은 멤링이 그린 성모자상에서는 어머니와 아들 간에 보여지는 감정적인 친밀감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가 그린 성모 마리아는 아들에게 사랑을 쏟는 감정적인 어머니라기보다는 하늘의 여왕이라는 권위를 가진 위엄 있는, 엄격한 모습을 보여 주고있다. 어느 작품에서든 성모 마리아는 무표정하고 명상적인 얼굴로 표현되고 있다. 멤링의 작품은 그의 자연주의적인 묘사에도 불구하고 보다 시적이고 종교적인 신념을 형상화한 측면이 두드러지며, 바로 이 점이 그의 작품을 수세기 동안 지탱시켜 온 장점이라 할 수 있다.
(→ 회화)
※ 참고문헌 The Illustrated Library of Art-Part I, p. 838/ The Encyclo-pedia of World Art, pp. 729~7341 M. Zimmermann, 《Cath》 8, pp. 1137~1138/ G. Galavaris, 《NCE》 9, p. 639/J. Folie, 《EU》 14, pp. 943~945. 〔鄭泳沐〕
멤링, 한스 Memling, Ham(1430/1435~1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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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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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들 및 기증자들과 함께 있는 성모와 아기 예수> (한스 멤링 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