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고요한 가운데 눈을 감고 깊이 생각함 또는 그 생각.
눈을 감는 것은 시각뿐 아니라 오관 전체를 바깥 사물로부터 차단하고(冥想 또는 瞑想은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자기의 모든 신체 기능을 집중시켜(recollection은 이런 의미에서이다) 자기 자신을 성찰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행위는모든 분심을 제거함으로써 이루어지는데, 만일 명상을 자연적인 차원으로만 한정하고 관상(觀想)을 초자연적인 차원으로 한정하여 논한다면, 명상은 관상의 준비 단계로 관상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중개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때의 명상은 어떤 주제나 상징, 공안(公案)이나 교리에 의식을 집중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명상은 사변과 인식의 차원에 머물러 있지만, 관상은 명상의 단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더욱 직관적이다. 명상이 사변과 인식의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라면, 이런 생각이나 인식을 통하여 진리에 도달하는 길은 흔히 '부정'(否定)이라는 방법(via negativa)을 사용한다. 그것은 '무엇이 아니다' 라는 부정을 통해서 인간 인식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노력이다.
여기서는 명상을 이렇게 좁은 의미로만 살피는 대신 그리스도교 영성 생활에서 활용되는 모든 종류의 명상을 다 살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동양 사상의 전통적 흐름속에서 한국 교회가 맡게 될 과제, 즉 동서양의 수덕 신비 신학의 접목 내지 통합을 전망하기 위함이다.
〔단 계〕 명상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자연적인 명상이 있는가 하면, 일시적으로 이루어지는 명상, 그리고 일종 의 습성처럼 이루어지는 명상도 있다. 영성 생활에 있어 서 명상은 하느님과 하느님에 관한 것에 대해 자신의 모 든 능력을 집중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명 상은 기도를 위한 마음 자세일 수도 있고 기도의 한 종류 일 수도 있다. 영성 생활에서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무르 는 명상은, 하느님은 어디에나 계시며(무소 부재하신 하느 님) 특히 은총 지위(恩寵地位)에 있는 영혼 안에 계신다 (성삼의 내재)는 사실을 생각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여기에는 두 가지 명상법이 있다. 하나는 하느님을 매 순간 모든 사물에서 보는 것으로서, 모든 것을 하느님의 섭리와 연결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십자고상이나 성 상 또는 상본 같은 시각적인 상징물을 이용함으로써 크 게 도움을 받는다. 또 하나의 명상법은 영혼 안에 머물러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면서 사는 것이다. 하느 님은 무소 부재(無所不在)한 분으로서 어디에나 머물러 계시는 방식으로 우리 안에 계실 뿐 아니라, 생명의 은총 또는 성화 은총을 통하여 우리 안에 살아 계신다. 여기에 서 우리는 우리 영혼을 내면으로 돌리지만, 그것은 우리 자신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살고 계시는 하 느님을 보기 위한 것이다. 일종의 습성처럼 된 명상은 기 도를 위한 가장 좋은 도구이다. 명상은 인간 행위를 초자 연적인 것이 되도록 동기를 부여하며, 죄의 유혹을 극복 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염경 기도(念經祈禱)이거나 묵상 기도(默想祈禱)이거나 간에, 기도를 위한 마음 자세로서의 명상은 기도문과 기도의 의미, 그리고 기도를 들으시는 하느님께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다(토마스 아퀴나스, 《신학 대전》, II-II, 83, 13). 염경 기도는 말마디에 정신을 집중시킨다. 모든 기도는 그 기도를 들어 주시는 하느님께 마음을 모으는 자세가 요구된다. 가장 높은 경지의 기도에서는 말마디나 말의 의미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하느님 안
에 잠기는 명상만 있을 뿐이다. 기도를 위한 명상을 막는 장애 요소 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격한 성격, 생생한 상상, 정신 집중의 부족, 제어되지 않은 감정, 감각적인 성격, 신체 또는 정신 질환, 나쁜 습성, 주위 환경, 나아가 마귀의 방해 등이다. 그러나 인간 정신은 부동의 정신 집중 상태로 오랜 시간 동안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Teresa de Avila, 1515~1582)는 명 상을 특별한 기도로 분류하였고, 보쉬에(J.-B. Bossuet, 1627~1704)는 이를 '단순 소박한 기도' 라고 하였다. 순 수한 기도, 하느님의 현존에 머무르는 기도, 또는 신앙의 단순한 관조(觀照)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명상(또는 명상 기도)은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시는 일종의 신비 기 도와 초자연적이지만 인간이 이루는 기도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관상(또는 관상 기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성적 또는 지성적인 기도나 감성적인 기도와 는 달리, 명상 기도는 하느님을 바라보거나 하느님께 관 련된 신비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명상 기도에 서는 인간의 모든 능력이 단 하나의 행위, 즉 '하느님을 바라봄' 에 집중된다.
하느님이 은혜로이 베푸시는 명상은 관상이라 말할 수 있으며, 참된 신비 기도의 첫 단계인 이것은 성령의 선물 이며 초자연적 기도이다.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거나 일반적 은총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 님이 특별히 이루어 주시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하느님 은 그 사람의 존재 전체를 하나로 모아 당신 자신에게 집 중시켜 주신다. 명상에는 하느님의 현존을 몸 전체로 느끼는 상태가 뒤따르며, 지성이나 여타의 인간 능력들의 활동이 일시 정지한다. 신비 기도에 이르기 위해서는 언제나 이와 같 은 명상과 수동적 자세가 요구된다. 하느님께로부터 오 는 명상 기도는 특히 지성에 영향을 미친다. 조용한 명상 기도에서도 의지는 나름대로 작용하지만, 하느님과의 합 일은 내적인 모든 능력을 사로잡는다. 단순한 기도로서 의 명상에 있어서 외부의 감각 기관은 전혀 방해받지 않 고 자유롭게 작용하지만, 하느님께 사로잡혀 하느님과 하나된 상태에서는 외부의 감각 기관이 하느님께 집중되 어 있어서 자연의 대상물들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하느 님의 현존에 대한 의식은 너무나 확고 부동한 것이어서, 영혼은 마침내 변화되어 하느님과의 합일 또는 신비로운 혼인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이승에서의 지복직관(至福直觀) 상태이다. 〔역 사〕 기도는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항상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해 왔다. 기도와 명상은 서로 다른 것이기는 하지만, 분명 한 계통을 이루고 있다. 그리스도교 명상,특히 수도원에서 발전시킨 명상은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매우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명상이 초대 교회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헤르메스 문학(Hermetic literature)과 신플라톤주의 철학의 영향 때문이다. 헤르메스의 저서들은 하느님에 대한 지식에 이르는 신비로운 길이라는 주제를 그리스도교에 제공하였다. 유대교 신비주의에서도 발견되는 이러한 주제는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의 중심에 자리잡았다. '여럿' 으로부터 벗어나 '하나' 에 이른다는 생각은 신플라톤주의 철학자인 플로티누스(Plotinus)의 사상에서 비롯되었다. 플로티누스는 하느님 인식에 이르는 단계를, 덕행을 실천함,감각 기능을 넘어서서 생각을 발전시킴, 합일을 이루는데 있어서 생각의 틀을 벗어남, '하나' 에 온전히 합일함등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3세기 이후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이와 같은 비그리스도교 사상들이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 흡수되어 들어왔고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발전에 두드러지게 기여한 인물이 바로 글레멘스(Clemens)와 오리제네스(Origenes)이다. 글레멘스는 명상을 통하여 실재의 자연적 인식에 이른 다음, 그리스도의선물인 그노시스(gnosis)를 통하여 영적인 실재들에 대한 인식에 이르게 된다고 보았다. 이 과정에서 영적인 의미는 항상 감추어져 있으므로 이를 식별해 내기 위해서는 성서를 읽고 묵상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고 하였다. 오리제네스는 이러한 골격에다 일종의 명상적 상징을 도입하였는데, 그것은 영혼과 '로고스' (그리스도) 사이에 맺어지는 혼인이다.
은수 생활 또는 사막의 수도 생활은 명상을 위한 초기 교회의 영성 형태였다. 일상적인 삶에서 떠나 사막에 머 무르게 되자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영적인 깨달음을 중 요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사람들은 적막한 사막 생활을 통하여 깊고도 내적인 고요함을 누리게 되 었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은총을 통하여 완덕에 이르 기 위해 성서 말씀에 대한 지속적인 명상 생활을 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3세기에 벌써 지속적인 명상이라고 하 는 이상(理想)이 삶 가운데 실현되었다. 이때 '마음의 기 도' 또는 '예수 기도' 가 생겨났다. 예수 기도란 "천주 성 자 주 예수 그리스도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는 짧 은 기도문을 되풀이하여 외우는 것이다. 이 기도가 교회 전체에 퍼진 것은 7세기 이후이다. 예수 기도는 특히 동 방 교회의 영성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 나 이와 같은 명상은 정신보다 마음에 더욱 관심을 기울 이기 때문에 신플라톤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호흡의 조 절과 시선의 고정은 짧은 화살 기도를 끊임없이 반복하 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전통은 오늘날에도 그리스의 아토스 산을 중심으로 한 수도 생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16~17세기에 이르러 교회는 명상을 합리화하고 체 계화하였다. 이러한 발전은 중세 프란치스코회 회원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명상 방법을 연상하게 하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성 보나벤투라(Bonaventura, 1217~1274)이다. 《세 가지 길》(De triplici via)에서 그는 서방 교회에서 말하는 명상의 세 과정, 즉 정화-조명-일치' 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로올라의 성 이냐시오(Ignatius de Loyola, 1491~1556)는 《영신 수련》(Exercitia Spiritualia)이라는 책
을 저술하였는데, 여기에서 그는 명상 과정을 나름대로 일목 요연하게 정리하였다. 명상에 대한 그의 개념은 다른 저자들처럼 그렇게 높은 경지의 것이 아닐지도 모르나 그의 방법론 은 힌두교와 불교의 명상법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시각적 방법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예를 들어 이냐시오의 네 번째 방법은 명상자가 어떤 구체적인 모 습, 이를테면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눈앞에 그 려 보도록 하며, 그 같은 상상에 오관(五官)을 총동원하 도록 한다. 이런 식으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져 봄으로써 명상자의 의식 안에 그 이미지가 생생하 게 살아 숨쉬게 하였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자서전적으로 쓴 《천주 자비 의 글》(Libro de las misericordias Dios)에서 명상의 체험을 자세하게 서술하였는데, 일련의 탈혼 상태 후에 따라오 는 영적인 '무미건조함' 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이것 을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비유하였는데, 이러한 상징적 표현은 이미 오리제네스도 언급한 바 있다. 또한 데레사 성녀는 정원 가꾸기라는 상징을 활용하여 이성적 명상은 대야로 물을 길어다 정원에 물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 지만, 본 의미의 명상은 호스로 물을 대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물론 하느님과의 합일은 비를 맞고 함빡 젖는 것과 같다. 데레사 성녀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십자가의 성 요한(Juan de la Cruz, 1542~1591)은 성 보나벤투라가 말한 '세가지 길' 을 재정립하였다. 정화 단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조명 단계는 약혼이라는 상징으로, 그리고 합일 또는일치 단계는 영적 혼인이라는 상징으로 설명하였다. 성녀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 모두 '영혼의 어둔 밤 에대해 언급하는데, 이것은 '조명' 을 위한 '정화' 를 가져오는 고독의 명상 단계로서 물론 하느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특수한 경지이다.
프랑스 교회에서 명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인물은 프란치스코 살레시오(F. Salesius, 1567~1622)이다. 《신심 생활의 입문》(Intoduction à la vie dévote, 1609)에서 그는 명상의 다섯 단계를 이야기한다. 명상의 준비 단계는 세 가지로, 하느님의 현존 앞에 자신을 머물게 함,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함,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서 한 장면을 상상함이다. 명상자에게 제1 단계에서 이루어진 가장 강렬한이미지들은 제2 단계의 기초가 되며, 제2 단계에서 발생한 느낌 내지 체험은 제3 단계에서 이해와 의지의 행위로 발전한다. 제4 단계에는 감사와 봉헌이 이루어진다.그것은 명상의 결과들을 하나의 제물로 하느님께 바치는것이며, 깨달음을 실천하려는 원의의 봉헌이다. 제5 단계는 '영적 꽃다발' 로 발전한다. 말하자면 일상 생활 속에서 명상을 지속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의 과제〕 한국 교회는 우리의 언어로, 특히 동양의 전통을 살려 한국인에게 맞는 나름대로의 명상법을 개발하여야 한다. 여기에는 상당한 위험 부담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용어의 명확한 개념 정립을 이루어 나가면서 가톨릭적인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대화하는 교회' 의 모습을 견지한다면, 교회가 오랜 전통을 통해 이룬 신앙 유산을 더욱 풍요롭게 하면서도 쓸데없는 논쟁이나 혼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 관상 ; 기도 ; 묵상)
※ 참고문헌 Teresa de Jesus, St., Libro de las misericordias de Dios(서울 가르멜 여자 수도원 역, 《천주 자비의 글》, 분도출판사, 1983) 1Frangois de Sales, St., Introduction to the Devout Life(서울 성모 영보 가르멜 수도원 역, 《신심 생활의 입문》, 가톨릭출판사, 1959)/ Juan de laCruz, St., Noche Oscura(최민순 역, 《어둔 밤》, 성바오로출판사, 1973)/Ignatius de Loyola St., Exercitia Spimitualia(윤석 역, 《영신 수련》,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67)/ Jordan Aumann, Christian Spirituality in theCatholic Tradition(이홍이)근 · 이영희 역, 《가톨릭 전통과 그리스도교영성》, 분도출판사, 1991)/ 익명의 수도자, On the Invocation of theName of Jesu((포무수 역,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 성바오로 출 판사, 1987)/F.B. Underwood, (ER)9, pp. 324~331. 〔丁勝鉉〕
명상
瞑想
〔라〕recollectio · 〔영〕re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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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은 관상의 준비 단계로 관상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중개 역할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