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교구 소속 침묵의 본당. 만주 간도성 연길현 명월구시(明月溝市) 소재. 1931년 10월 5일 대령동(大嶺 洞)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1935년에 본당 이름을 옹성라자(甕聲褶子)에서 명월구로 변경하였다. 주보는 성 요셉. 〔역대 신부〕 초대 슈레플(C. Schräfl, 周聖道)코르비니안(1931. 10~1936. 9), 2대 렌하르트(A. Lenhard,盧) 아놀드(1936. 9~1946.5).
〔공소 시대〕 주변이 산과 언덕으로 둘러싸인 명월구시의 작은 마을 옹성라자는 상권(商權)과 농토를 소유한 다수의 중국인들과, 일제의 탄압과 착취를 피해 이주해온 소수의 한국인들이 거주하고 있던 곳으로서, 팔도구 (八道溝) 본당의 관할 공소였다. 당시 연길 지역에서 사목하던 베네딕도 수도회 소속 선교사들에 의해 1924년10월 옹성라자에 '보록(保祿)학교' 가 설립되었는데 1926년 '해성(海聖)학교' 로 개칭된 이 학교의 운영으로한국인들의 이주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따라서 옹성라자공소의 교세도 점차 신장되어 그 해 6월 말 팔도구 본당소속의 대령동 공소가 대령동 본당으로 승격됨과 동시에 이 본당 관할로 이관되었다.
〔본당 설립 및 폐쇄〕 1930년경 대령동 본당의 초대 주임 랍(C. Rapp, 朴) 신부는 관할 구역의 교세가 계속 확대
되자 새로운 본당의 설립을 모색하였다. 보좌 아쇼프(S. Aschoff, 安) 신부에게 대령동 본당의 사목을 위임한 후, 규모는 작지만 여러 관할 공소의 중앙에 위치해 있고 해 성학교도 있어 교세 신장의 전망이 밝은 옹성라자로 거 처를 옮긴 랍 신부는, 우선 본당에서 북쪽으로 약 30리 정도 떨어진 곳에 부지를 마련하고 곧바로 해성학교의 교사(校舍) 증축 및 성당, 사제관 설립 공사에 착수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는 3개월 만에 용정 상시(龍井上市) 본당 주임으로 전임되고 말았다. 이어 1931년 10월 5일 옹성라자 본당의 설정과 함께 두도구 (頭道溝) 본당 초대 주임이었던 슈레플 신부가 초대 주 임으로 임명되었다. 슈레플 신부는 부임 직후 랍 신부가 주관하였던 많은 일들을 이어받아 본당의 기틀을 다져 나가는 한편, 매년 2월에는 관할 공소를 순방하면서 성사 집행 및 전교 활 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부녀자들의 전교를 위해 반일 (半日)학교를 개설하고 예비자 교리를 시작하였다. 특히 대령동 본당의 2대 주임 아쇼프 신부가 1932년 6월 4일 전염병으로 사망하자 1934년까지 주일마다 대령동 본당 을 방문하여 미사 집전 및 각종 성무 활동을 담당하였다. 1934년에는 성체 거동 행사와 해성학교의 운동회를 개 최하였고, 연길교구 초대 교구장 브레허(T. Breher, 白化東) 신부의 지시에 따라 해북진(海北鎮)의 선목 농장을 방문하여 한국인 신자들을 위해 성사를 베풀어 주었다. 1935년 봄에는 본당명을 명월구로 개명하였으며, 기존 의 초가집 성당이 협소하여 불편이 증대되자 해성학교 교사 증축 및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였다. 베네딕도 수 도회의 연길 수도원에서 파견된 수사들과 본당 신자들, 중국인 벽돌공 등의 노력으로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1935년 12월 성당 및 6개의 교실과 교무실 등을 완공하 고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1936년 6월에는 본당 내에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의 지원(支院)을 설치함으로써 지원장 리다(H. Rita) 수녀와 유영춘(柳永春, 알로이시아) 수녀, 그리고 2명의 지원자가 파견되었는데, 그들은 본당 여성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글 · 교리 · 재봉 · 가사 등을 교육시키고 본당 내에 진료소를 개설하여 시약 및 진료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듬해에는 연길 수녀원의 루가(E. Lukas) 수녀가 진료소 운영을 위해 파견되었으며, 수녀들은 매달 한 차례씩 사목 협조차 다조구 본당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명월구 본당은 계속적인 교세 신장으로 1936년 8월 신 참(新站) 본당을 분리시켰는데, 명월구 본당에서 약 5년 동안 사목하면서 본당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 슈레플 신 부가 이 신설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용정하시(龍井下市) 본당의 보좌였던 렌하르트 신부 가 2대 주임으로 부임하였을 때는 신흥 도시로 성장한 명월구시의 발전과 함께 명월구 본당의 교세 역시 크게 신장되어 1936년에 소속 공소 7개소에 신자수 1,266 명, 주일학교 학생수 133명이었다. 1938년에는 본당 수 녀원으로 사용하는 옛 사제관 건물이 몹시 낡고 비좁아 수녀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자 몇몇 신자들의 도움으로 현대식 흑벽돌 건물을 완공하였으며, 1942년에는 신자 가 계속 늘어남에 따라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약 2 년 후인 1944년에 벽돌 양옥 성당을 완공하였다. 그러 나 1946년 5월 20일 만주를 점령한 소련군에게 성당을 비롯한 모든 교회의 재산을 몰수당하고 렌하르트 신부와 루가 수녀, 돌로로사(F. Dolorosa) 수녀 등이 체포되어 연 길 감옥에 수감됨으로써 명월구 본당은 침묵의 교회가 되었다. 폐쇄될 당시 본당 내의 신심 단체로는 1934년 12월에 미혼 및 기혼 여성들을 중심으로 발족된 성 안나 부인회를 포함한 3개의 단체가 있었으며, 그 밖에 해성 학교, 진료소 등이 있었다. (-> 연길교구 ; 침묵의 교회)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가톨릭 청년》 41호(1936. 10)/ 주성도, 《하느님의 자비를 영원토록 노래하리라》, 분도출판사, 1993/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원 60년사 편찬위원회 편, 《은혜의 60년》, 부산성 베네딕도 수녀원, 1995. 〔편찬실〕
명월구 본당
明月溝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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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구 본당의 성체 거동 행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