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목 대리구

監牧代理區

〔라〕vicariatus foraneus · 〔영〕vicariate for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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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감목 대리구 자치 기성회 창립 총회 (1928).

황해도 감목 대리구 자치 기성회 창립 총회 (1928).

교회법상의 감목 대리구는 교구의 사목을 공동 활동으로 증진시킬 목적에서 교구 내의 여러 본당들을 하나의 연합으로 결합시킨 지구(地區)를 말한다(구 교회법 제445~450조, 새 교회법 제374, 553~555조). 다만 포교지(missiones)에서는, 특히 한국 포교지에서는 그 성격을 달리하여 장차 교구를 만들기 위한 첫 준비 단계로 적용되었으며, 그 지역은 보통 도(道) 단위로 오늘의 지구와는 상대가 안될 정도로 넓었다. 한국에서 이러한 지역을 감목 대리구로 부른 이유는 당시 주교를 감목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즉 '감목을 대리한 지구' 란 뜻이었다. 또 주교를 대리하여 이 지구를 통괄하는 사제를 '감목 대리' (교회법상으로는 지구 대리 또는 지구장)로 불렀는데, 감목 대리에게는 감목으로부터 견진성사 집전권까지 위임되었다.
한국에서 처음 감목 대리구가 생긴 것은 1928년의 황해도 감목 대리구였다(감목 대리는 金命濟 신부). 그것은 당시 서울교구를 맡고 있던 파리 외방전교회에서 동 회의 설립 취지에 따라 관하의 황해도 지역을 방인 교구로 조속히 발족시키려는 목적에서였다. 이와 같은 취지에서 1931년에는 역시 파리 외방전교회에서 담당하고 있던 대구교구의 관하 전라남 · 북도를 전라도 감목 대리구로 발족시켰다. 그러나 장차 전라도 전체를 방인 교구로 만들 때, 오히려 이것이 짐이 되어 지연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전라남도는 따로 떼어 선교단에 맡기기로 하였다. 그 결과 1934년 전라도 감목 대리구가 전라북도 감목 대리구와 전라남도 감목 대리구로 양분되는 동시에 북도는 방인 사제들에게(감목 대리는 金洋洪 신부), 남도는 성골롬반회에 위임되었다. 이후에도 한국 교회 안에서는 즉시 지목구(知牧區)나 대목구(代牧區)가 된 교구들(원산, 평양, 연길, 춘천)을 제외한 나머지 교구들은 모두 감목 대리구로, 즉 청주교구는 1953년 충북 감목 대리구로, 부산교구는 1954년 경남 감목 대리구로, 인천교구와 안동교구는 1958년 각기 인천 · 안동 감목 대리구로 시작되었다. 다만 대전교구만은 1948년 '독립 포교지'(Mlissio independens)로 시작되었는데, 이것 역시 정식 교구 제도에 속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상에서 설명한 감목 대리구 중에서 전주와 부산은 방인 교구가 되었으나, 황해도만은 방인 교구로 승격하지 못하고 1942년에 감목 대리구마저 폐지되었는데, 그것은 이 해에 서울교구 자체가 방인 교구장에게 위임됨으로써 더 이상 방인 교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감목 대리구 제도는 한국 교회의 포교지 시대에 있어서 교구의 증설, 무엇보다도 방인 교구의 육성을 촉진시켰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 참고문헌  《서울敎區年報》 Ⅱ , 한국교회사연구소, 1987/ 《教區年報》 Ⅰ,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黃海道天主教會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教區三十年史》, 천주교 부산교구, 1990/ 《인천교구사》, 천주교 인천교구, 1991. 〔崔奭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