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주교
名義主教
〔라〕episcopus titularis · 〔영〕titular bi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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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현존하지 않는 어느 교구의 사목자로서 주교품을 받았 으나 그 교구에 대하여 실질적으로 재치권을 행사할 수 없는 주교. 만일 그가 대주교일 경우에는 명의 대주교라 부른다. 그 기원은 이단에서 회개한 주교와 이교도들에 의하여 점령당한 곳에서 피난 나온 주교들에게서 시작되 었다. 〔기 원〕 로마의 사제였던 노바시아누스가 고르넬리오 교황(251~253)에 대항하여 대립 교황이 된 후, 정통 주교 가 있는 곳에도 자신의 주장을 따르는 사람을 주교로 임 명하여 파견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그 세력이 프랑스, 스 페인, 북아프리카, 동로마에까지 퍼져 100년 이상 교회 를 분열시키게 되었다. 그런데 제1차 니체아 공의회 (325) 때 노바시아누스의 추종자들 중에서 회개하여 교 회로 돌아온 주교들에게 재치권을 행사할 교구 없이 다 만 주교의 칭호와 영예를 존속시켜 줌으로써 명의 주교 의 기원이 시작되었다.
그 뒤 7~8세기에 사라센 이슬람교도에 의하여 추방 된 주교들(중동, 소아시아, 아프리카, 스페인), 13세기에 이 교도들에 의하여 추방된 주교들(리보니아) 터키가 예루 살렘을 점령한 후 추방된 주교들은 서방 교회의 주교들 에게 피신하여 보좌 주교들이 되었다. 이들이 과거에 재 치권을 행사하던 교구들은 이미 외교인의 수중에 넘어가 있었으므로 상주할 수 없는 교구가 되었고, 그 교구들에 대한 재치권은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없는 명목상의 권 한에 불과하므로 명의 주교좌(sedes titularis)라고 불렀다. 그런데 피난 온 주교들은 이교도들에게 점령당한 자신의 교구 명의를 고수하였고, 그들이 사망하게 되자 상실된 교구를 위한 후계자들이 주교 서품을 받았다. 이들은 언 젠가는 잃었던 교구를 회복하기를 기대하면서 서방 교회 에서 대를 이어 보좌 주교의 직능을 수행했다. 이러한 관 습이 비엔느 공의회(1311~1312)와 트리엔트 공의회(1545~ 1563)에 의하여 정식으로 제도화되었고, 보좌 주교 임명 권은 사도좌에 유보되었다. 이러한 주교들은 처음에는 '미신자들 지역에서의 주교' (episcopus in partibus infidelium) 라고 호칭되었으나, 그들이 명의를 고수하고 있는 교구들이 미신자들뿐만이 아니라 이교도나 열교도들에게도 점령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황 레오 13세(1878~1903)가 1882년 3월 3일에 그 칭호를 '명의 주교' 로 바꾸었다. 그리고 그들이 실제로 정주하고 있던 곳의 교구장을 보좌했기 때문에 주교 예식 대리(vicarius in pontificalibus) , 보좌 주교(auxiliaris) 또는 관하 주교(suffraganeus)라고도 호칭되었다. 명의 주교는 재치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수 있는 교구를 가진 주교, 즉 상주 주교의 특전과 영예를 가진다.
교황 그레고리오 15세는 1622년 2월 5일에 명의 주교들은 그들의 명의 교구들에 대하여 아무 관할권도 없 음을 선포하였다. 그 뒤 역대 교황들은 교구장 외의 특수임무를 맡은 고위 성직자를 임명하는 데에 명의 주교 제도를 응용하게 되었다. 명의 주교(혹은 명의 대주교)의 예로는 교황청 근무 주교, 교황 사절, 성직 자치구장, 대목구장, 교구장 서리, 부주교, 보좌 주교, 은퇴한 주교 등이 명의 주교로 서임된다.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의 주교들 가운데 은퇴한 주교, 보좌 주교들은 명의 주교이다. (-> 주교 ; 보좌 주교)
※ 참고문헌 정진석, 《교회법 해설》 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3, pp. 118~123/F.J. Winsolw, 《NCE》 14, pp. 176~178. 〔宋悅燮〕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