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일동 본당

明逸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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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강동구 명일2동 48-10소재. 1987년 8월 19일 천호동, 암사동, 고덕동 본당에서 분리 · 신설되었으며, 주보는 성가정. 관할 구역은 명일1 · 2동 일부 지역과 고덕1동 전역. 〔교 세〕 1987년 3,434명, 1990년 5,818명, 1994년 6,660명.
〔역대 신부〕 초대 민병덕(閔炳德) 비오(1987.8~1988.9), 2대 박찬윤(朴贊潤) 히폴리토(1988.9~1991.9) 3대 정광웅(鄭光雄) 요셉(1991.9~현재).
〔설립과 발전〕 1980년대 중반부터 명일동 지역 일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인구가 급증하자 본 당 설립 문제가 시급히 요청되었다. 이에 따라 천호동 본당 오태순(吳泰淳, 토마스) 신부는 1986년 12월 13일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천호동, 암사동, 고덕동 본당소속 신자들로 명일동 본당 설립 추진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이듬해 2월 27일 서울대교구와 세 본당의 도움으로 현 본당 소재지의 대지 400평을 매입하였다. 같은
해 3 월 10일에는 명일동 신동아 아파트에 사제관을 마련하 여 초대 신부가 부임하기 전까지 본당 신설을 논의하는 장소로 사용하였으며, 1986년 8월 16일에는 조립식 임 시 성당(130평) 축성식을 거행하고 8월 19일자로 본당 을 신설하였다. 그러나 기존의 부지에 성당을 신축하면 이 지역의 신 자들을 모두 수용할 수가 없어 1988년 4월 15일 부지 200평을 추가 매입하였으며,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성당 신축 계획을 점차 구체화하였다. 그러나 이때 교구 차원이 아닌 단일 본당 차원에서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 하는 동시에 열린 교회, 봉사하는 교회로서의 역할도 수 행하자는 논의가 대두되었다. 그리하여 노인 종합 복지 관을 겸한 성당을 강동구 고덕1동 317-25번지에 짓기 로 결정하고 1994년 9월 서울시 의회의 심의를거쳐 공 유 재산 사용에 대한 허가를 취득한 후, 이듬해 3월 25 일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연건평 1,632평에 지상 3층, 지하 2층 규모로 1997년 8월경에 완공될 예정인 이 건 물에는, 3층에 들어서게 될 성당 외에는 각 층마다 노인 복지를 위한 편의 시설(물리 치료실, 교리실, 강의실, 식당) 이 설치되는데, 본당 신자들은 사회 복지 시설의 봉사자 로서 적극적인 참여의 뜻을 표명하고 있다. 〔사목 및 활동〕 1988년 주일학교를 후원하는 자모회 와 구역별로 조직된 레지오 마리애가 활동을 시작하였 고, 1989년에는 신자들의 기도단, 제대회, 독서단 등 6 개의 전례 봉사 단체가 조직되었다. 또한 여성 교우들에 비해 활동이 저조한 남성 신자들의 관심을 교회로 유도하기 위해 남성들로만 구성된 구역 · 반 모임을 결성하는 등 각 신심 단체들이 조직되어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해마다 바자회를 개최하여 성당 건립 기금 마련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신심 증대의 차원에서 1990년에는 1년동안 전 신자 대상으로 구역별 피정을 실시하였다.
1993년 6월에는 의료 부문에서 종사하고 있는 신자들이 의료 봉사단(의사 20명, 약사 10명, 간호사 12명)을 발족시 켰는데, 이들은 구역 내 가정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을 방 문 봉사하는 것 외에도 주 1회 경기도 하남시에 소재한 무의탁 및 극빈 정신 지체 장애인 복지 시설인 '작은 프 란치스코의 집' 에서 의료 봉사를 하고 있다. 한편, 1995 년 4월 30일 서울대교구 내에서는 처음으로 정신 지체 및 정신 분열 증세를 보이는 어린이와 청년들에게 교리 를 가르치는 '파란 마음 교실' 을 개설하여 교리 교사 13 명과 봉사자 5명이 다운증후군, 자폐증 어린이 13명과 20~30세의 청년 14명에게 개별 수업을 하고 있다.
매월 첫째 주일을 '가정의 날' 로 정해 가정 공동체 기도를 드리고 있으며, 1년 성서 읽기표를 제작하여 전 신 자를 대상으로 성서 읽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명일동본당에는 현재 레지오 마리애 2개 꾸리아에 39개 쁘레 시디움을 비롯하여, 연령회, 청년 성서 모임, M.E., 교리 교사회 등 27개의 평신도 사도직 단체가 있다. (-> 서울대교구)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