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카 (332~387)

Mon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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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 성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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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 성녀.

성녀.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us, 354~430)의 어머니. 축일은 8월 27일. 332년 북아프리카 누미디아(Numi-dia)의 타가스테(Tagste)에서 그리스도교 신자 부모에게서 태어나 이교도인 파트리치우스(Patricius)와 결혼하였다. 장남인 아우구스티노와 나비지오(Navigius) 그리고 딸 페르페투아(Parpetua) 등 세 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끊임없는 기도와 인내로써 370년경에 남편과 시어머니를 개종시킬 수 있었으나 이듬해에 남편이 사망하였다.
아우구스티노는 《고백록》(Confessiones) 중 특히 제9권 에서 자신의 어머니인 모니카의 생애에 대하여 알려 주고 있다. 모니카가 과부가 되었을 때 아우구스티노의 나이는 18세였는데, 이때부터 그녀는 아우구스티노의 개종을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였으나 세속적인 성공에 대해 큰 야심을 갖고 있었던 그는 어머니의 종교심을 경멸하였다. 그녀는 아우구스티노가 교수로 있던 로마(383)와 밀라노(386)까지 따라가 그의 방탕한 생활을 참고 견디며 이를 중지시키기 위해 한때는 결혼을 시키려고 시도까지 하였으나, 아우구스티노는 모니카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니교(Manichaeismus)에 심취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교 철학을 연구하였다. 그의 이러한 방황과 윤리적 방탕은 모니카에게 가장 깊은 고통을 안겨 주었다.

설득하는 것을 포기하고 대신에 아들을 위해 밤샘 기 도하고 단식하는 모니카에게 성 암브로시오 주교는 "그 토록 많은 눈물을 흘린 아들은 잃어버릴 수 없다"는 확 신과 함께 그녀를 위로하였으며, 또한 그리스도교 신앙 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도 깊은 윤리적인 개종을 하도록 아우구스티노를 도와 주어, 마침내 아우구스티노는 387 년 부활절에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모니카는 아우 구스티노와 그의 친구들과 함께 아프리카로 여행을 갔다 가 로마 근처 오스티아(Osia)에서 387년 55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그녀는 죽기 전에 아우구스티노에게 "이 세상에서 지금 내게 기쁨을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모니카에 대한 공경은 처음에는 없었으나, 1162년 그 녀의 유해가 프랑스의 아라스(Amas) 근처 아우구스티노 수도원으로 옮겨지면서 전 교회로 확산되었으며, 다른 유물들은 1430년에 오스티아에서 로마에 있는 성 아우 구스티노 성당으로 옮겨졌고, 최근에 그녀의 무덤 비문 이 오스티아에서 발견되었다. 모니카는 가톨릭 여성 단 체의 수호 성녀로 그리스도교 어머니상의 모범으로서 높은 공경을 받고 있다. (-> 《고백록》 ; 아우구스티노) ※ 참고문헌  J. Geiger, 《NCE》 9, p. 1061/ Donald Attwater, The Penguin Dictionary of Saints, Great Britain, 1983, 2nd ed., p. 239/ David Hugh Farmer, The Oxford Dictionary of Saints, Oxford Univ. Press, 1987,pp. 305~306/ 최정오 편, 《가톨릭 성인 사전》, 계성출판사, 1987, pp. 289~290.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