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에 두 차례 언급되어 있으나 확인되지 않는 성서의 지명. 모리아란 이름의 뜻과 유래는 분명하지 않다. 창세기 22장 14절에서는 그 유래를 ‘야훼 이레’(יְהוָה יִרְאֶה)와 연결시켜 소개하고 있는데, 이 이름은 ‘보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어간인 ‘라아’(רָאָה, 창세 22, 4. 8. 14)에 야훼의 축약형인 ‘야’(יָהּ)를 붙여서 모리아와 연관시킨 민간 어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 어원설은 모리아라는 단어에서 모음 ‘오’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아마 야훼 이레란 이름은 본래 ‘하느님께서 보신다’는 뜻의 ‘엘로힘 이레’(אֱלֹהִים יִרְאֶה)가 잘못 전해진 것으로 여겨지나, 실체적인 의미는 알 수 없다.
성서상의 언급 : 모리야라는 지명이 처음 언급된 곳은 창세기로,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사악을 하느님께 번제물로 봉헌할 장소로 지시받은 곳이 "모리야 땅" (창세 22, 2)이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Ber-sheba)에서 사흘 길을걸어서 그 산이 멀리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창세 22, 2-4)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사흘 길 은 아마도 이집트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러 광야로 사흘 길을 걸어간다는 내용(출애 3, 18 ; 5, 3 ;8, 23)과 연관된 것으로 여겨진다. 또 일반적으로 구약성서에서 '사흘' 은 매우 중요한 사건을 준비하는 기간을 일컫는 관용적인 표현(창세 31, 22 ; 34, 25 ; 40, 20 ; 42, 18)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 구절에 모리야 땅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이 언급되어 있지 않아서 그 위치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성서에서 두 번째로 모리야가 등장하는 대목은 솔로몬이 야훼의 성전을 짓는 구절이다. "솔로몬은 다윗에게 주님이 나타나셨던(공동 번역 선왕 다윗이 환상으로 본) 예루살렘 모리야 산에 야훼의 성전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 곳은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이었다" (2역대 3,1). 일찍이 다윗은 병적 조사를 한 탓에 하느님의 노여움을 사서, 사흘 동안 전염병이 돌아 숱한 백성이 죽는 벌을 받았다. 그가 속죄의 뜻으로 야훼 하느님께 제단을 쌓고 번제와 친교제를 올린 곳이 바로 오르난(Ornan, 또는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이었다(2사무 24장 ; 1역대 21장). 아마 이 타작 마당은 다윗의 도성 북쪽에 있는 한 언덕의 넓은 지역을 가리켰을 것이다.
장소에 대한 학자들의 이견 : 창세기의 '모리야 땅' 과 역대기의 '모리야 산' 이 같은 곳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의견 차이가 있다. 유대 전승(《희년서》 18, 13)이나 요세푸스(《유대 고사기》 I 13. 1 ; Ⅶ. 13. 4)는 이 두 곳이 같다고 여겼으나,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같지 않다고 여기고 있다. 그 근거로, 예루살렘은 나무가 많은 지역이라 이사악이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지고 갈 필요가 없었으며, 브엘세바에서 80km 가량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사흘 길 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창세기의 모리야 땅(דְּבִיר הָאָרֶץ)은 넓은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인 데 비해, 역대기의 모리야 산(הַר הַמּוֹרִיָּה)은 어느 산 하나만 가리킨다는 것이다(J. 스키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곳이 모두 모리야로 표기된 배경에 대해서는 견해가 두 가지로 나뉜다. 즉 본래 모리야 땅은 이사악의 봉헌 터였는데, 후에 역대기 편자 또는 그가 받아들인 사료가 성전과 예루살렘이 좀더 오래된 성소였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잘못 일치시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역대기 편자는 열왕기에는 전혀 언급이 없던 성전의 위치를 '야훼의 산' 을 강조한 이사야(이사 2, 2; 30, 29 ; 65, 25 ; 66, 20)의 영향을 받아 야훼의 산으로 알려진 모리야 산과 연결시켰으리라는 추정이다(J. 마이어). 또 다른 주장은 이와는 반대로 본래 성전 터의 이름이 모리야였는데, 성조들과 예루살렘 성전을 연관시키기위해 창세기 22장에 나와 있던 실제 지명을 없애고 모리야로 대체하였다는 것이다(C. 베스터만). 현재는 이 주장이 좀더 인정받고 있다. 사실 고대의 주요 번역 성서들은 모리야 대신 다른 지명을 언급하고 있는데, 시리아어역 성서인 페쉬타(Peshita)에서는 "아모리족의 땅" 으로, 칠십인역 성서는 "언덕 지역" 으로, 불가타 성서는 "비전의 땅" 으로 나와 있다. 만일 이사악이 봉헌된 장소의 이름이 바뀌었다고 가정할 경우 그 원래의 지명은, 모리야와 발음이 비슷하여 쉽게 바뀔 수 있었던 '모레' (מוֹרֶה, 창세 12, 6-7)와 '아모리족의 땅' , 그리고 '여루엘' (יוֹאֵל,2역대 20, 16) 등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모리야 땅의 위치는 확실하게 알 수가 없다. 창세기의 표현을 보면, 그곳은 매우 잘 알려져 있는 고대의 성소로 여겨진다. 그런데 하느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계약의 맥락에서 이사악의 봉헌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사마리아인들이 이 중요한 봉헌이 그들의 성산(聖山)인 그리짐(Gerizim) 산에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듯이, 유대인들도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장소인 예루살렘 성전 터와 연결시켰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현재 예루살렘 옛 시가지의 남동쪽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 터에는 이슬람 사원인 엘 아크사(El-Aqsa) 모스크와 바위돔 모스크가 세워져 있다. 특히 바위돔 사원의 지하에는 솔로몬 성전의 번제단이 서 있었다는 거룩한 바위가 있는데, 전승에 따르면 이곳이 모리야 산이다. 그래서 이곳은 유대인들의 성지일 뿐만 아니라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이곳으로 와(코란 17장 '밤 여행의 장' 참조) 가브리엘 천사의 인도를 받아 천계(天界)로 여행을 떠난 곳이라는 《하디스》(Hadith, '말씀' 이란 뜻으로 무함마드의 언행에 관한 전승을 적은 글)에 따라, 이슬람교에서도 메카(Mecca)와 메디나(Medina)에 이어 이곳을 세 번째의 중요한 성지로 여기고 있다. (-> 성전 ; 예루살렘)
※ 참고문헌 정양모 · 이영헌, 《이스라엘 성지, 어제와 오늘》, 생 활성서사, 1988/ J.R. Davila, 《ABD》 4, p. 905/ N.M. Sarna, Genesis ; The JPS Torah Commentary, Jewish Publication Society, 1989, pp. 391 ~392. 〔李鎔結〕
모리야
〔히〕מוֹרִיָּה · 〔라〕Moria · 〔영〕 Mori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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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전승에 의하면 바위돔 모스크가 세워져 있는 이곳이 모리야 산이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