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산 본당

毛山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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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소속 본당.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면 공수리 99-1 소재. 1985년 8월 29일 온양(현 아산 온천동) 본당 관할의 모산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성 프란치스코. 관할 구역은 공수리, 북수리 전역과 장재리, 세교리, 휴대리 일부 지역. 〔교 세〕 1985년 835명 1989년 719명, 1992년 980명, 1994년 1,176명. 〔역대 신부〕 초대 이은진(李殷鎭) 미카엘(1985.8~1991.8), 2 대 최병석(崔炳石) 마리아노(1991. 8~1993. 8) 3대 여준구(呂俊九) 안토니오(1993. 8~현재).
모산 일대에 흩어져 있던 몇몇 교우 가정들이 8 · 15 광복과 더불어 지금의 배방면 공수리 6구 지역인 옹기점으로 모여들면서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하였으며,1950년 5월에는 온양 본당 관할의 모산 공소로 설립되었다. 초기에는 사가(私家)에서 공소 예절을 드려야 하는 열악한 상황이었으나, 6 · 25 동란이 끝난 후의 어려움 속에서도 신자들은 자진해서 건축비를 모금하여 옹기점이 들어서 있는 이곳에 1956년 8월 공소 강당을 마련하였다. 이후로도 계속해서 교세가 증가하자 1976년에성당 건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듬해 공수리 산 4번지의 부지 519평을 매입하였으나 기대했던 본당 승격은 곧바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그 후 1984년 11월 25일 성당 건립 추진위원회를 개편하는 등의 재정비 작업을 거쳐 이듬해에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한편, 1980년대 초반부터 대규모의 요업(窯業) 공장들이 기존에 매입해 두었던 성당 부지 인근에 들어서면서 이곳이 본당 소재지로는 부적합하게 되어 1985년에매각하였다. 그리고 현재의 본당 소재지의 부지 539평을 매입하여 1987년 4월 5일 신축 공사에 착수하였으며, 이듬해 3월 31일 1층 성당에 대한 준공 검사만 마친상태에서 성당에 입주하였다. 그 해 11월부터 다시 2차 공사에 들어가 1990년 1월 19일 연건평 391평에 지상2층, 지하 1층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고 4월 5일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대다수의 신자들이 영세 상인들로서 생업에 종사해야하는 상황이기에 재정 기반이 취약한 편이고, 유동 인구의 비율 또한 높은 편이어서 사목상 어려움이 많지만, 청장년들의 활동을 최대한 지원하여 본당 활성화에 주력하
고 있다. (-> 대전교구)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