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슬포 본당

摹瑟浦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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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교구 소속 본당.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 하모리805 소재. 1958년 6월 27일 서귀포 본당에서 분리 · 신설되었으며, 주보는 파티마의 성모. 관할 구역은 대정읍과 안덕면 전역. 관할 공소는 무릉, 화순 2개소. 〔교 세〕1958년 532명, 1963년 785명, 1967년 831명, 1974년 806명, 1980년 937명, 1984년 1,018명, 1991년1,149명, 1994년 1,202명. 〔역대 신부〕 초대 캄피온(L.Campion, 파) 라흘린(1958. 6~1962. 10), 2대 클리어리(C.Cleary, 신) 고르넬리오(1962. 10~1964. 12), 3대 맥폴린(B.McPolin, 목) 브렌다노(1964. 12~1965. 2), 4대 오고르맨 (D. O' Gorman, 은) 다니엘(1965. 2~1967. 8), 5대 오닐(V.O' Neill, 오) 빈천시오(1967. 8~1968. 9) , 6대 로반(M.Roban, 노) 마일즈(1968. 9~1972. 10), 7대 김병준(金丙準) 요한(1972. 10~1973. 2), 8대 허승조(許勝照) 바오로(1973. 2~1976. 4), 9대 크롭츠(J.Crofts, 길) 요셉(1976.4~1977. 6), 10대다기(B. Dagge, 탁승헌) 베르나르도(1977. 6~1978. 9), 11대 머피(P.Murphy, 민) 파트리치오 (1978. 9~1982. 9), 12대 돌란(J. Dolan, 도) 요셉(1982.9~1983. 8), 13대 머리(A. Murray, 함) 애단(1983. 8~1986.4), 14대 오고르맨(1986. 4~1989. 5), 15대 페리(F. Ferrie,황) 프란치스코(1989. 5~1994. 8), 16대 고병수(高秉洙)
요한(1994.8~현재).
〔전 사〕 1901년 제주교안(濟州敎案)이 발생한 이후반(反)가톨릭적인 분위기가 남아 있었던 모슬포에 가톨릭 교세가 호전되기 시작한 것은 6 · 25 동란 무렵부터이다. 이 지역은 이미 중일(中日) 전쟁 직후 일제에 의해군용 비행장이 건설되면서 중국 폭격 기지로 이용되었으며, 1951년 3월 21일 육군 제1 훈련소가 들어선 데 이어, 중국군 포로 수용소가 설치되는 등 군사 기지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에 따라 1951년 안달원(安達遠, 베드로) 신부와, 중국에서 10여 년 간 선교활동을 했던 메리놀회 소속의 설리번(H. Sullivan, 薛) 신부가 훈련병 및 중국군 포로 신자들의 사목을 담당하기위해 각각 파견되었다. 이듬해 9월 14일에는 훈련소 내에 우리 나라 최초의 군인 교회인 강병대(强兵臺) 성당이 준공되어 군인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과 피난민 신자들이 함께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모슬포 지역의 기지촌화(基地村化)로 점차 전입 인구와 교우수가 증가하여 이들을 위한 별도의 사목이 필요하게 되자, 설리번 신부는 1952년 말 현 본당 소재지의 부지 약 1,140평을 매입하였다. 곧바로 시작된성당 신축 공사는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조인되고 8월 5일부터 남북한간에 포로 교환이 이루어지면서그 규모가 축소되었다. 이듬해 2월 15일 36평의 성당을 완공하여 3월 7일 축성식을 거행하였는데, 이후 이 성당은 중국군 포로들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뜻에서 건축 공사에 참여했다고 하여 '통회의 집' 으로 불렸다.
〔공소 시대〕 1955년 11월 육군 제1 훈련소의 3대 군종 김덕제(金德濟, 치릴로) 신부가 새 임지로 떠나게 되면서 군종 신부의 대민(對民) 사목은 종료되고, 이 지역신자들은 서귀포 본당 관할의 모슬포 공소로 편입되었다. 이 시기에는 가톨릭 구제위원회(Catholic Relief Service: C.R.S.)의 원조 물자를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이를 전교와 연결시킴으로써 많은 주민들이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1956년 대정읍(大靜邑)으로 승격되고, 해안 지대에 도로가 개통되어 신흥 취락 지역으로 부상하자 1957년 초 당시 서귀포 본당의 주임 브래디(R. Brady, 牟) 신부는 이 지역에 본당 신설 계획을 세운 후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였으며, 1958년 6월 27일에는 모슬포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성장과 변모〕 1958년 6월 29일 지하 1층, 지상 1층,연건평 160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한 모슬포 본당은, 공소 설립을 활발히 추진하여 1960년 3월 19일 무릉(武陵) 공소, 1961년 10월 22일에는 화순(和順) 공소를 각각 설립하였다. 예비자 인도에도 주력하여 교세가 꾸준히 증가하였을 뿐만 아니라, 단체 설립도 활발해져 점차본당의 기틀을 잡아 가게 되었다.
1973년 초 7대 주임 김병준 신부는 오기선(吳基先,요셉) 신부, 무릉 공소 회장 등과 오랜 기간에 걸친 현장조사를 통해 대정읍 동일리 9번지에 있는 정난주(丁蘭珠, 마리아)의 묘지를 발견하였다. 이를 계기로 1994년9월 25일 제주교구에서 주최한 순교자 현양 대회에서 정난주의 묘지가 성역화되는 계기가 마련되었고, 이에따라 최근 이곳은 제주의 중요한 천주교 사적지로 부상하였다.
한편 1960년에 사제관(32평), 1981년 수녀원(22평1985년에는 교리실(40평)을 마련하였으며, 1996년 2월 에는 성당 신축 후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통회의 집을연건평 103평에 지상 2층 규모로 증축하여 신자 및 지역 주민들에게 교육 · 결혼 · 회갑 · 회의 장소로 개방하였다. 또한 5월에는 성당 지하의 교리실을 상주 및 조문객 대기실 · 연도실 식당 등의 부대 시설을 갖춘 영안실(일명 '평화의 방' )로 개축하여 역시 무상으로 사용하도록하고 있다. 이외에도 1995년 1월 본당 내에 '새 생명 살리기 운동 본부' 가 발족되어 가정 형편이 어려운 심장병, 백혈병 어린이 3명을 완치시키는 등 지방 본당으로는 드물게 주민들을 위한 복지 사업을 매우 적극적으로추진하고 있다. (-> 제주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경합지》 1085호(1958. 8). 〔편찬실〕
((Re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