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전 본당

茅田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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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소속 본당. 경북 문경시 모전동 52-7 소재. 1982년 9월 1일 점촌(店村)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한국 순교 성인. 관할 구역은 모전동, 영신동, 산양면 평지 2리(새발재), 포내리 전역과 중앙동 일부 지역이며, 관할 공소는 영순면의 사근, 말응, 오룡 등3개소. 〔교 세〕 1982년 1,048명, 1985년 1,265명,1988년 1,375명, 1991년 1,576명, 1994년 1,660명. 〔역대 신부〕 초대 조창래(趙昌來) 빈천시오(1982. 9~1987.3), 2대 공한영(孔漢英) 고스마(1987. 3~1990. 3), 3대 정일(鄭一) 가브리엘(1990. 3~1991. 7), 4대 박윤정(朴潤政)바오로(1991.7~현재).
1970년대 후반부터 주변 지역의 주택지 조성으로 모전동 일대는 거주 인구가 꾸준히 증가되고 교세도 점차신장되었다. 이에 당시 이 지역을 관할하고 있던 점촌 본당의 오성백(吳盛栢, 요아킴) 신부는 본당의 분리를 모색하고 본당 사목 협의회의 논의를 거쳐 안동교구에 이를 정식으로 요청하였다. 1978년 5월 교구에서 현 본당소재지의 부지 501평을 마련해 주었으며, 1981년 7월기공식을 거행하여 이듬해 7월 말 교리실 · 회의실 · 사제관 등을 갖춘 건평 204평에 지상 2층의 성당을 완공하였는데, 공사비 중 일부는 점촌 본당의 지원을 받았다.이어 같은 해 9월 1일자로 안동교구의 23번째 본당으로 정식 설립됨과 동시에 301세대 1,006명의 교적을 점촌본당으로부터 이관받은 모전 본당은, 9월 20일 성당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초대 주임 조창래 신부는 우선 본당 사목 협의회(회장: 최주한 헤르만)를 발족시키고, 1982년 10월 3일에는 본당 주보인 <잔디밭>을 창간하였으며, 성당 조경 사업에도 힘썼다. 1983년 5월에는 성모상을 건립하였으며, 그보다 앞선 4월부터는 수녀원 건립을 위한 특별 모금 운동을 전개하여 그 해 7월에 임시로 일반 주택을 임대한후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 수녀들을 초청하였다. 1984년에는 불우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였으며, 3월 18일부터 수녀원 건립 공사를 시작하여 그 해 5월 31일 24평 규모의 수녀원을 완공하고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그 후 본당에서는 신앙 교육과 자녀 교육을 위한 참부모강습회를 개최하고, 신자들을 대상으로 성서 읽기 운동을 전개하였다.
1988년 4월 본당 신앙 학교를 개강한 2대 주임 공한영 신부는 본당 내에 조립식 건물(24평)을 새로 지어 노동 상담소를 개설하였다. 부임 초기부터 소공동체 활성화에 주력하여 가정 방문을 실시하고 반 모임을 강조한3대 주임 정일 신부는, 1990년 8월 노동 상담소 사무실을 신축하였을 뿐만 아니라 같은 해 11월에는 본당 청년회를 결성하였다. 4대 주임 박윤정 신부 때에는 많은 평신도 단체들이 발족되어 활발한 활동이 전개됨으로써 본당 발전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1992년 11월 15일에는 본당 설정 10주년 기념식 및 추수 감사제를 거행하였으며, 1993년 3월에는 건전한 비디오 문화를 보급시키려는 목적으로 비디오 테이프 200여 개를 구입하여 본당신자들에게 대여해 주기도 하였다. 한편 문경 지역 탄광 의 폐광으로 상담자가 계속 줄어들자 약 5년 동안 운영해 오던 노동 상담소를 1993년 7월에 폐쇄하였다. 현재 관할 구역은 17개 반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여러신심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특히 레지오 마리애의 경우본당 차원에서의 단원 교육을 실시하는 등 많은 관심을쏟아 현재 1개 꾸리아에 11개 쁘레시디움이 있다. 그 밖에 모전 본당에서는 농촌 봉사 활동 참여, 체육 대회 및 등반 대회 실시, 신앙 학교 개설, 고아원 및 양로원 방문 등 신자 상호간의 친교는 물론 지역 사회에 봉사하는 많은 활동들을 전개하고 있다. (-> 안동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