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 본당

木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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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양천구 신정6동 318소재. 1972년 6월 14일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사도 성 바오로. 관할 구역은 목동 아파트 7~9, 12~14단지. 〔교 세〕 1972년 800명, 1977년 1,954명,1985년 3,126명, 1990년 8,378명, 1994년 9,523명. 〔역대 신부〕 초대 휴즈(G. Hughes, 유) 그레고리오(1972.6~11), 2대 콘웨이(P.Conway, 구순혁) 파트리치오(1972.11~1977. 2) 3대 세퍼(W.F. Schaefer, 기영수) 굴리엘모(1977. 2~1981.9), 4대 브렌난(R. Brennan, 안광훈) 로베르토(1981. 9~1985.6), 5대 던(G. Dunne, 손) 제라르도(1985.6~1988. 2) 6대 김덕근(金德根) 요셉(1988.2~1996. 10) , 7대 김철호(金哲鎬) 바오로(1996. 10~현재).
〔공소 시대〕 1923년 10월 31일 행주(현 수색) 본당 소속 목동리 마장 공소로 시작된 이 지역 신앙 공동체는1936년 5월 영등포(현 도림동) 본당 관할의 신정동 공소로 변경되었다가, 1957년 6월에는 관할이 당산동 본당으로 다시 변경되었다. 그런 가운데 서울시의 도시 개발정책에 의해 시내 무허가 주택들이 철거되는 과정에서1964년 10월부터 용산 해방촌 지역 일대의 철거민들이지금의 목1동과 신정2동 안양천 제방지역으로 집단 이주하기 시작함으로써, 이 지역 상주 인구가 증가하였다.더불어 이전의 신정동 공소로부터 목동 지역의 주민들이 분리되어 1965년 1월에 목동 공소가 세워졌는데, 당시 공소 신자수는 506명이었다. 이후로도 서울 각지의 철거민들이 몰려들면서 신자수가 늘어나자 1972년 6월에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설립 및 성당 신축〕 이 지역의 사목을 담당하게 된 골롬반 외방선교회는 양천구 목1동 408-90번지에 성당터를 매입하여 잠시 동안 천막 교회생활을 하다가 성당을 완공하고 그 해 10월 12일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당시 목동 지역은 상습 침수 지역이었기 때문에 해마다 장마철만 되면 신자들의 가옥은 물론 성당도 물에 잠겨 피해를 보기 일쑤였다. 성당을 완공한 지 1년도 채 안된 1973년에는 장마로 인해 성당이 침수되고 담장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하였는데, 신자들은 생계를 잇기도 어려운 형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진해서 복구 공사에 참여하였으며, 1974년 성당을 보수할 때도 모든 공사가 신자들에 의해 이루어질 정도로 열심이었다. 이후 성당이 협소하여 본당 사목에 어려움이 따르자, 1980년 8월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이듬해 3월 1일 연건평 327평에 지하 1층, 지상 2층규모의 성당을 완공하였다.
한편, 1980년대 중반 이후 아파트촌이 들어서면서 신자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1990년 2월 7일 성당 건립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성당 신축 계획을 본격화하였다. 같은 해 3월 8일 현재의 성당 터 1,087평을 매입하고 1992년 4월 26일 신축 공사에 들어가, 4년여 만인 1996년 6월 16일 지상 4층, 지하 1층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였다. 소성당을 비롯하여 교리실, 피정실, 영안실,성체 조배실 등을 갖춘 목동 성당은 지역 주민들도 이용이 가능한 '문화관' 도 이때 함께 건립하였다.
〔발전 및 활동〕 본당 신설 이듬해인 1973년 6월 27일 등촌동 본당을, 그리고 1976년 12월 9일에는 신정동 본당을 분리시켰다. 밀린 교무금 때문에 미사 참례를 기피할 만큼 생활 형편이 어려운 신자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설립 초기의 골롬반 외방선교회 신부들은 빈민 사목에 중점을 두고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 강제로 이곳에 이주한 후 점차 생활 기반을 마련해 나가던 주민들은 1984년 신시가지 조성 계획으로 인해 또다른 지역으로 집단 이주당하게 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서울시를 상대로 생존권 보장을 위한 시위를 전개하였고, 2,000여 명의 목동 본당 신자들역시 목동 철거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서울시의 철거계획에 적극적으로 맞서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듬해 4월부터 목동을 떠나기 시작하였고,곧바로 이곳에 아파트촌이 들어서면서 목동 본당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1988년 2월 골롬반 외방 선교회에서 교구로 사목권이 이관된 후 부임한 6대 주임 김덕근 신부는 신자들의 공동체 의식 함양에 중점을 두고 사목하였다. 기존의 이 지역 주민들과 새로 입주하는 주민들 사이의 일체감을 조성하는 것이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니었으나, 이 무렵부터전개되기 시작한 '한마음 한 몸 운동' 을 통해 신자들의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였다. 1991년 8월에는 고척동본당을 분가시켰고, 이듬해 7월에는 본당 내에 '임마누엘 어린이 집' 을 개원하여 극빈 · 결손 가정의 어린이들을 돌보기 시작하였는데, 현재는 새 성당 입주로 인해 운영을 잠시 중단한 상태이지만 곧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다. 또 1995년 9월에는 성당 건립으로 인한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도 불우 이웃과 농어촌을 돕기 위한 바자회를 실시하였으며, 인근의 신목 · 양동 · 양목 초등학교의결식 아동들에게 급식을 지원하고, 산간 벽지 공소와 신학생들에게도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등 나눔을 통한 이웃 사랑 실천에 앞장서고 있다. (→ 서울대교구)

※ 참고문헌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가 톨릭 사전》/《나 너희와 함께》, 천주교 목동교회, 1992.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