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牧民心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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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

《목민심서》

수령(守令)이 지켜야 할 지침을 밝히면서 관리의 폭정 을 비판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저서. 지방 수령으로 임명을 받아 출발하는 데서부터 임무를 수행하고 해관되어 돌아올 때까지 지켜야 할 수령으로서의 행동 기준이 사례와 함께 기술되어 있다.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권16~29에 실려 있는 이 책은 48권 16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용은 부임(赴任) · 율기(律己) · 봉공(奉公) · 애민(愛民) · 이전(吏典) · 호전(戶典) · 예전(禮典) · 병전(兵典) · 형전(刑典) · 공전(工
典) · 진황(賑荒) · 해관(解官) 등 12편으로 나누어져 있고, 각 편은 다시 6조로 나누어 모두 72조로 구성되어있다. 이 책은 유배 생활 17년째 되던 해인 1818년(순조18)에 저술되기 시작하여 이듬해 봄에 완성되었다.
어려서부터 부친이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보면서 자란 정약용은 목민관(牧民官)으로서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들과 18년 동안의 강진(康津) 유배 생활 중에 농촌 실정을 보고 《목민심서》를 쓰기 시작하였다. "남쪽의 전부 소출(田賦所出)에는 지방 관헌의 관할로 인하여 그 폐단이막심하다" 고 통탄한 그는, 지방 관헌의 부패와 타락이현지의 말단뿐 아니라 중앙의 권력층과도 결탁되어 있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목관(牧官)이나 지방 관리의 부패와함께 관(官)과 결탁한 민(民)의 협잡도 똑같이 배격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지배층의 절약이 시급하며, 국가 경제의 관리와 동 · 면에서부터 행정적으로 새로운 회계 제도에 따라 수입과 지출을 일체 정비하여야 하고, 목민관은 덕과 아울러 능력과 위엄으로 공평무사(公平無私)하게 실무를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정약용은관제(官制) 비판의 근거를 청백리(淸白吏) 사상에 두고이서(吏胥)의 단속을 주장하였는데, 지방관 자신의 개인적 덕성에 호소하여 절약과 청백을 강조하였다. 이서의단속을 철저히 해야 하고, 법에 따라 처형까지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나아가 향리의 폐가 국가와 농민을파멸의 지경에 몰아넣고 있으니 장서원(掌胥院)을 두어단속하자고 하였다.
이 책에 실린 정약용의 사상은 유학 사상이라기보다는 협잡과 부패와 혼란으로 쇠퇴일로를 걷고 있는 국가 정치와 빈곤한 농민 생활을 극복하려는 실제적인 것이었으며, 그의 애민(愛民) 정신과 서학 사상이 적절히 절충되어 있어 당시의 현실, 즉 경제 · 정치 개혁을 잘 반영하고있다.
〔내 용〕 1편 부임 6조 : 제배(除拜) · 치장(治裝) · 사조(辭朝) · 계행(啓行) · 상관(上官) · 이사(苻事) 등으로구성되어 있으며, 수령으로 임명받은 때부터 행장을 차리는 방법과 임금에게 하직 인사를 드릴 때의 마음가짐을 설명하고 있다. 또 부임하는 길에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선배 수령들에 대한 태도, 향교와 사직단에 대한 봉심, 부임하여 실무를 맡아보는 일까지 설명되어 있다.
2편 율기 6조 :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고 아랫사람을 너그러이 대하고 대체(大體)를 잡도록 하는 방법인칙궁(飭躬)과, 청렴함을 근본으로 삼아 선물을 받지 말고 은혜 베풂도 삼가라는 청심(淸心), 가정을 바로 다스리라는 제가(齊家), 청탁을 물리치라는 병객(屏客), 어느 물건도 함부로 버림이 없이 옳게 쓰라는 절용(節用),가난한 친구와 나그네에게는 절약한 것을 베풀고 권문세가에게는 후하게 베풀지 말라는 낙시(樂施) 등의 내용이 담겨져 있다.
3편 봉공 6조 : 첨하(瞻賀), 수법(守法), 예제(禮際), 보문(報聞), 공납(貢納), 왕역(往役) 등 6개조 59절로이루어져 있다. 조정에서 기일 조정의 명령이 내려올 때지켜야 되는 법도를 설명하고, 법을 지키고 사리에 맞지않는 고을의 법은 수정하여야 하며, 상관, 동료만이 아닌후임자 및 아랫사람에게도 예의를 지키고, 공문은 수령이 직접 쓰도록 하였다. 또 보고문 작성과 그 처리 방법을 설명한 데 이어 아전의 횡령을 살피고 공납에 관한 법도를 설명하면서 일상적인 업무 이외의 일이 발생되었을때는 선행을 베풀라고 하였다.
4편 애민 6조 : 노인들을 우대하라는 양로(養老), 고아와 유아들을 돌보라는 자유(慈幼), 사궁(四窮)과 노총각, 노처녀들의 결혼을 언급한 진궁(振窮), 상(喪)당한사람을 돌보아 주라는 애상(哀喪), 불구자 · 중환자 · 유행병과 염병 처방에 대해 기술된 관질(寬疾) , 수재와 화재 등의 환난시 대처 방법인 구재(救災)가 설명되어 있다.
5편 이전 6조 : 관기숙정(官紀肅正)을 전제로 기술되어 있는데, 자신에게 허물이 없어야 다른 사람을 나무랄수 있다고 하며 이속(吏屬)의 법도를 설명한 속리(束吏), 위엄과 믿음으로 부하들을 통솔하라는 어중(馭衆) ,사람 쓰는 법에 대한 용인(用人), 인재를 천거하는 거현(擧賢), 아전의 부정과 작폐 및 민간의 실정을 탐문하는법에 대한 찰물(察物)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고공(考功)에서는 실적에 등급을 매겨 인사 이동의 자료로 제공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6편 호전 6조 : 농업 진흥과 민생 안정을 위한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데, 토지 정책을 자세히 설명한 전정(田政), 세금에 대해 예를 들어 기술한 세법(稅法), 환곡의운영 전반에 대한 내용을 수록한 곡부(穀簿), 오가 작통법과 십가 작패법을 기술한 호적(戶籍), 계방의 폐단과고마법 · 균역법 · 염세 등에 관해 기술한 평부(平賦), 수령의 으뜸가는 책무는 흥농(興農)에 있음을 강조한 권농(勸農)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세법, 곡부, 평부는상 · 하로 나누어 자세하게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7편 예전 6조 : 제사(祭祀)에서는 조선 왕조의 지방 군현이 주관하여 행했던 정기 · 부정기의 각종 제사에 대해 중국과 우리 나라의 선례들을 자료로 하여 그 의의와준비하는 자세 및 주선하는 지침 등을 서술하고 곁들여 민간의 사적인 미신, 이른바 음사(淫祀)의 처리를 다루고 있다. 또 빈객(賓客)에서는 당시 시대에 허례가 심했고 정치 부패의 원인이 되었던 중앙 관인의 지방 출장과감사의 순찰시 접대 방법의 합리적 개혁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향약을 중심으로 백성들의 교화에 힘쓸 것을설명한 교민(敎民), 효(孝)와 예(禮)의 가르침에 역점을두라는 흥학(興學) , 등위(等位)를 명확히 할 것과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설명한 변등(辨等) , 과거의 폐단을 없애고 시험 보는 법과 상 주는 법을 제시한 과예(課藝)가설명되어 있다.
8편 병전 6조 : 당시 가장 민폐가 심했던 군정 개혁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군적과 군포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를 다룬 첨정(簽丁), 조련과 교기(敎技)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연졸(練卒), 병기 관리는 수령의 직무임을 설명한 수병(修兵), 무예를 익히도록 권장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설명한 권무(勸武), 내란에 대한 대응 방법을 제시한 응변(應變), 국방 · 군비 · 전략 등의 제반 문제를 다룬 어구(禦寇) 등이 설명되어 있다.
9편 형전 6조 : 봉건적 형벌 제도의 남용을 견제하도록 하고 있는데, 수령이 백성들의 송사를 심리하는 일에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한 청송(聽訟), 옥에 갇힌 죄수의유무죄 판단과 경중을 결단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 단옥(斷獄), 형벌을 시행함에 있어 갖추어야 할 자세와 행형상의 제반 문제를 기술한 신형(愼刑), 감옥의 관리와옥중의 죄인을 불쌍히 여기라는 휼수(恤囚), 권력을 믿고 백성들을 침해하는 무리와 생활에 해를 끼치는 횡포한 짓을 금하는 방법을 기술한 금폭(禁暴), 도적 · 귀신· 맹수 등에게서의 피해를 없애는 방법을 기술한 제해(除害)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수령은 먼저 교도(敎導)하고 다음에 형벌한다는 생각을 굳게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10편 공전 6조 : 농업과 함께 임업 · 광업 · 교통 · 수공업 · 상업 등 각 분야의 생산력 발전을 위해 선진 기술을 도입할 것을 주장하는 등 산업 개발 문제와 그 대책을 다루고 있다. 산림을 보호하고 아낄 것을 기술한 산림(山林), 수리(水利)에 힘써 농업 발전에 이바지할 것을 다룬 천택(川澤), 관청의 건물을 신축 또는 보수하는 일에 대한 선해(膳廨), 성을 수축하고 호를 파서 백성을 보호하는 일이 수령의 직분이라는 수성(修城), 도로를 잘닦는 것도 수령의 책무라는 도로(道路), 공장(工匠)을 시켜 물품을 만드는 일에 대한 장작(匠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1편 진황 6조 : 빈민 구제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다루고 있는데, 흉년에 대비해 곡식 · 돈 · 물건을 미리준비하는 일에 관한 비자(備資), 흉년에 부유한 이들이 빈민을 위한 곡식과 재물을 내놓거나 직접 나누어 주도록 하는 일에 대해 기술한 권분(勸分), 흉년이 되면 곤궁한 백성들을 도와 주기 위한 계획을 설명한 규모(規謨) , 그리고 그것의 구체적인 시행 방법을 다룬 설시(設施),권농(勸農) · 구황(救荒)을 설명하면서 도둑질과 부정의 방지를 설명한 보력(補力), 흉년이 지난 후 그 기간 중에 일어난 일에 대한 상벌과 결산을 다룬 준사(竣事) 등으로 설명되어 있다.12편 해관 6조 : 수령직의 교체를 다룬 체대(遞代) ,전임시 청렴한 태도를 지키라는 귀장(歸裝), 백성들이 수령의 유임을 청하는 것에 관한 원류(願留), 형식적인 법규에 걸린 수령의 죄를 백성들이 용서 청하는 내용에관한 걸유(乞宥), 재임시 사망한 수령의 유가족들이 지켜야 할 자세에 대한 은졸(隱卒), 임지를 떠난 후 백성들로부터 사모(思慕)를 받을 수 있어야 참다운 선정이라고언급한 유애(遺愛) 등이 설명되어 있는데, 수령은 임무수행 중의 선종(善終)을 지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고있다.
〔평 가〕 방대한 《목민심서》의 내용 중에서 특별히 서학과 관련된 부분만을 분석하면 청렴, 절용, 근면, 하늘,상선벌악, 귀신붙이, 잡물, 음사 등이다. 이는 《목민심서》가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적극적인 도덕성을 기본요체로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강자 중심의 논리로 운영되고 있는 그 당시 사회의 부정 부패의 악순환을고발하고, 악순환의 고리를 풀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수령의 모범적인 행위를 통해 백성의 일상 생활을 계몽시키기 위하여 수령의 지도 지침을 아주 세밀하게 제시함으로써 문제의 객관화를 꾀하려고 하였다. 이와 같은 다산의 사상은 막스 베버(Max Weber)의 절약과 도덕성을기초로 한 서유럽 자본주의 경제 사상과도 일맥 상통한다. 조선 후기의 사회 · 경제 · 정치의 실상을 파악할 수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는 《목민심서》는, 1901년 광문사(廣文社)에서 영인되었으며, 1969년에는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국역 간행하였고 1978년부터는 역주와 함께 창작과 비평사에서 간행되었다. (-> 정약용)

※ 참고문헌  《茶山 丁若鏞의 西學思想》, 茶山文化祭記念論叢, 다섯수레, 1993/ 김옥희, 《韓國天主教思想史一茶山의 西學思想研究》 , 순교의 맥 출판사, 1992/ 박동옥, 《牧民心書에 나타난 茶山의 西學觀》, 다섯수레, 1993/ 정약용, 이을호 역, 《목민심서》, 현암사, 1970/정 약용, 《목민심서》 상 · 중 · 하, 박영사, 1973/ 정약용, 《역주 목민심서》 I ~ Ⅱ, 창작과 비평사, 1978/ 《다산 정약용의 서학 사상-예 론을 중심으로》, 정신문화연구원, 1985/ 《서학 사상에 대한 조선 후기 사회의 대응 양상》, 정신문화연구원, 1985. 〔金玉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