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동 본당

木城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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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주교좌 본당. 경북 안동시 목성동 산 1 소재. 1927년 6월 1일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1973년에 본당명을 안동 본당에서 목성동 본당으로 변경하였다. 주보는 원죄 없으신 잉태. 관할 구역은 광석동, 금곡동, 남문동, 대석동, 동부동, 동문동, 목성동, 명륜동, 법상동,북문동, 삼산동, 서부동, 신안동, 신세동, 상아동, 안기동, 안막동, 안흥동, 옥정동, 운흥동, 율세동, 옥야동, 천리동, 화성동, 북후면 지역 일대. 〔교 세〕 1964년 2,119명, 1971년 2,231명, 1976년 2,498명, 1981년 1,699명, 1987년 2,069명, 1990년 2,079명, 1994년 2,244명. 〔역대 신부〕 초대 서정도(徐廷道) 베르나르 (1927.6~1939. 5), 2대 정재석(鄭在石) 요셉(1939. 5~1942. 5), 3대 신순균(申順均) 바오로(1942. 5~1943. 3), 4대 김동욱 (金東旭) 마티아(1943. 3~1951. 9), 5대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1951. 9~1953.4), 6대 정행만(鄭行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1953. 4~1955. 5), 7대 박춘택(朴春澤) 베드로(1955. 5~1957. 7), 8대 르베리에(R. Leverrier, 여동찬)로제리오(1957.7~1964. 9), 9대 코요스(C. Coyos, 구인덕)첼레스티노(1964. 9~1965.6), 10대 데상(C. Deschamps, 차기선) 크리스티아노(196. 6~1967. 6), 11대 펠리스(M.Pélisse, 배세영) 마르첼리노(1967. 6~1968. 3), 12대 데상(1968. 3~1969. 1), 13대 도몽(P. Domon, 문세화) 베드로(1969. 1~1970. 10), 14대 이길준(李吉俊) 바오로(1970.10~1973. 8), 15대 류강하(柳康夏) 베드로(1973.8~1979.5), 16대 이춘우(李春雨) 프란치스코(1979. 5~1985. 6) 17대 이성길(李誠吉) 바오로(1985. 6~1991. 6), 18대 김재문(金在文) 이냐시오(1991.6~현재). .
〔전 사〕 1800년대 초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박해로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의 신자들이 경상도 일대로 몰려들면서 유학(儒學)의 본거지였던 이곳 안동 지역에도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그런 가운데 1815년 을해박해(乙亥迫害) 때 안동 우련밭(봉화군 재산면 갈산리우련전)에서 성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의 종조부 (從祖父)인 김종한(金宗漢, 안드레아)과 예비자 이윤집이 체포되어 1816년 대구 감영에서 참수 순교하였다.이후 일직면 귀미리와 길안면 금곡리(현 구마동), 서후면 명리(명동)에 교우촌이 형성되었다가 1866년 병인박해 (丙寅迫害)로 인해 명리 지역 신자들은 대부분 냉담하게되었고, 금곡리의 손(孫) 베드로가 서울로 압송되어 순교한 후 신자들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러다가1914년 대구에 살던 신자 이윤구가 안동으로 이주해 오면서부터 신앙 공동체가 다시 형성되었고, 1923년경에대구교구 퇴강(退江) 본당(1969년 폐쇄) 관할의 안동읍공소가 설치되면서 교세가 확장되었다. 1926년 공소 순방 때 안동 지역에 이미 100여 명의 신자가 있는 것을 확인한 대구교구장 드망즈(F. Demange, 安世華) 주교는,그 후 본당 승격을 추진하게 되었다.
〔본당 설립과 정착〕 안동 본당은 1927년 본당 승격과 동시에 안동시 율세동(현 동부초등학교 뒷산 밑)에 사가(私家)를 매입하여 임시 성당으로 이용하였으나, 그 해 예수 성탄 대축일에 화재가 발생하여 성당이 불에 타버렸다. 이때 안동 본당은 일본인들이 신사 참배(神社參拜)하던 원불교계 사원이 있는 입구에 있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의 방해가 심해 도저히 이곳에 성당을 재건할 수가 없었다. 당시 주임으로 있던 서정도 신부의 종숙(從叔) 서병조(徐丙朝, 베드로)는 이런 딱한 소식을 듣고, 안막동에 615평의 부지와 가옥을 매입하여 헌납하였으며,그의 부인 이 마리아가 성모상을 봉헌하였고, 인근 상주(현 서문동) 본당의 김문옥(金紋玉, 요셉) 신부도 서병조가 기부한 부지 옆의 570여 평을 기부하였다. 이때 서정도 신부의 친척이 성당 종을 기증하였는데, 일제 시대 말기에 일본인들에게 이 종을 약탈당하지 않으려고 당시주임으로 있던 김동욱 신부가 노심초사하였다는 일화가있다. 이와 같은 주위의 도움으로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1928년 10월 14일에 완공하였다. 그리고 1928년에 소년 소녀회, 1932년에 진행회 등의 단체가 창립되면서 교세도 증가하여 1932년 11월에는 107명이나 되는 신자들이 견진성사를 받았다.
목성산에는 일제 때 일본인들에게만 개방된 감은사(感恩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1945년 광복과 함께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폐쇄되었고, 그 부지는 적산(敵産)으로 분류되어 미군정청(美軍政廳)에 이관되었다. 그러나 이미 종교 용지로 사용되고 있던 부지였기에미군정청은 대구교구에 이를 무상으로 인계하였고, 안동 본당은 안막동에서 안동의 중심부인 목성산 기슭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1949년 4월 15일 성당과 사제관, 수녀원의 신축 공사에 들어가 같은 해 12월 18일 축성식을거행하였는데, 1956년 6월 7일 누전으로 추측되는 화재가 발생하여 성당 건물이 모두 불에 타버렸다. 이로 인해한동안 벽만 남아 있던 성당 터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등큰 불편을 겪어 오다가 1957년 5월 24일 성당(81평)과강당을 완공하였다. 그 후 8대 주임 르베리에 신부는161평 규모의 십자가형 성당으로 증축하였으며, 안동지역 최초의 유치원인 '성심유치원' 을 1964년 3월에 개원하였다.
〔발전과 변모〕 1969년 5월 29일 안동교구 설립과 함께 두봉(R. Dupont, 杜峰) 주교가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되면서 안동 본당은 안동교구 주교좌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1973년 8월 23일 동부동(東部洞, 현 용상동) 본당을 분리시키면서 본당명을 목성동 본당으로 변경하였다.한편 '한국 가톨릭 농민회' 를 중심으로 한 가톨릭 농민운동은 1979년 '안동 농민회 사건' (일명 오원춘 사건)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는데, 이때부터 안동교구의주교좌 본당인 목성동 성당은 농민 운동은 물론, 지역민의 민주화 운동의 장(場)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그런 와중에도 1979년 12월 1일 태화동(太華洞) 본당을 분리시켰고, 본당 내의 사도직 단체들을 재정비하였다. 특히 40~50대 남성 신자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밀알회' 는 가톨릭을 지역 사회에 홍보한다는 예비 선교차원에서 1983년 5월 31일 '나는 무엇하는 사람인가'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개최하여 1,000여 명의 신자 및 비신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1988년 5월에는 성당 입구 성모상이 있던 곳에 예수 성심상을 안치했고, 성당 북쪽 빈터에 성모 동산을 조성하였다. 또 1990년 7월 8일에는 레지오 마리애 '일치의 모후' 꾸리아가 신설되었고, 1993년에는 '고리회' 가 결성되어 안동교구에서운영하고 있는 학생 회관 무료 급식소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1994년에는 수녀원 로 앞의 부지 80평을매입하여 조립식 교육관을 신축했다. 1995년 7월 16일에는 관할 구담(九潭)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화재로 소실된 후 복구 및 증축 공사를 시행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목성동 본당은 교구 차원의행사가 많기 때문에 이미 1988년 11월 결성된 성당 건립 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성당 신축 계획을 진했었다. 그러나 주교좌 성당의 신축은 교구 차원의 종합적인 설계와 장기적인 발전 계획안이 마련된후 건축되어야 하기에 계속해서 건립 논의를 하고 있는 중이다. (⇦ 안동 본당 ; → 안동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경 향잡지》 649호(1928. 11), 662호(1929. 5), 787호(1934. 8)/ <새벽> 78호(1936. 7)/ 한국교회사연구소,《드망즈 주교 일기》, 가톨릭신문사, 1987/ 천주교 부산교구사 편찬위원회, 《교구 연보》, 천주교 부산교구, 1984/ 천주교 안동교구사 25년사 편찬위원회, 《교구 농민회》, 안동교구사 자료 제3집, 천주교안동교구, 1996/ 천주교 대구대교구사 편찬위원회 편, 大邱本堂百年史》, 대건출판사, 1986/ 마백락, 《경상도 교회와 순교자들》, 대건출판사, 1989/ 《서문동 성당 50년사》, 천주교 서문동 교회, 1987.〔편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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